모성 플롯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데, 올바른 상황에서라면 배우자와 자녀의 사랑이 기쁨, 지지, 자유, 강인함의강력한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니 모리슨은 엄마가 되는 일이 "내게 벌어진 가장 해방적인 일"이라며 "나는(그것이 무엇이었건 간에) 내가 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누군가 내게 그렇게 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46 어슐러 르 귄은 결혼생활과 자녀들을 통해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정감을찾았다.

20세기의 여성 창작자들은 자신이 자녀들뿐만 아니라 남편과애인들에게마저 이타적(selfless)일 것이라는 기대에 맞서 싸웠다.
전통적 결혼관계 안에서의 양육은 이들 여성을 정서적으로 갉아먹었고, 그 결과 이들은 창작에 필수적인 독립심을 빼앗겼다.
여성들은 감당 불가능한 노동에 끊임없이 부딪혔다.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배우자, 가족, 공동체가 이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거나 작업을 그만두라고 부추겼기 때문이다. 어드리크는 여성 작가들이 "배우자나 가족과 일부러 거리를 두지않으면 완전히 먹혀버리곤 했다고 설명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모성은 어떤 경험보다도 내게 정서적으로 많은 요구를 했다. 모성은 이따금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다정할 수 있을지를 강조했고, 또 다른 때에는 내 한계에 직면해 절망케 했다. 모성은 나를 시험해보게 하고 내 자신을 마주하게하는데, 이런 면에서 글쓰기와도 비슷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오랫동안 작업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한편으로 더욱 진정한 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나의 확고한 기반을 되찾기 위해이 미지의 장소에 대해 배워야 했고, 영혼의 근본적 변화라 할만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나는 엄마 영웅들에 대해 찾아보며 이들이 여성들의 이야기안에 줄곧 존재해왔음을 알게 됐다. 그녀들의 주체성은 자기상실과 자기발견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청소년기에, 출산기에, 그리고 장년기에 이들은 줄곧 자신들을 향한 "몰살"의 위협을 마주하고 힘을 회복해야 했다.

이 책이 하려는 이야기 중 하나는 어떻게 모성이 우발적 사고이자 의무에서 하나의 선택이 되었으며, 그것이 여성들의 삶에 얼마나 심오한 영향을 끼쳐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성 작가들의 커리어에 관해 읽을 때, 그들이 얼마나 적은 선택지를 갖고있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필수다. 앨리스 닐이 그녀의 첫 결혼에관해 말했던 것처럼, "처음에 나는 아이들을 원치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생겼다."

앨리스는 화가이자 엄마가 되기 위해 평생 다른 사람들의기대를 저버리며 살아야 했다. 그녀는 유대감이 깊고 정이 넘치는 가족의 가장이자, 천재들에게 따라붙는 불편함을 감수하며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비전을 추구하던 예술가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능숙하고 독창적인 붓터치를 통해 날카롭고 불안한 드라마를 담아낸 초상화가로 잘 알려진, 끈질기고 난해한 괴물 같은 예술가였다. 한 비평가는 그를 ‘아줌마 영웅(auntie-hero)‘이라 부르기도 했다.

앨리스의 모성은 예술가의 소명과 양육 사이에 얼마나 많은갈등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 젊은 예술가는 80세가다 된 앨리스를 보고 "물방울무늬 드레스를 입고 할머니 스타일로 흐물흐물하게 꼬아 올린 머리를 한 나이든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강철 같은 결의에 감탄하며 이렇게 물었다. "화려한 패턴의 레이온 원피스에 가려진 가슴 속에 어떻게 군인의 심장이 뛰고 있단 말인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앨리스는 그간 그토록 두려워하던 선택을 하게 되었다. 1931년 9월 요양원에서 퇴원하며 치료사들의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예술가는 엄마가 될 수 없다.
카를로스는 파리에, 이사베타는 쿠바에 머무는 동안 앨리스는보헤미아적인 그리니치빌리지로 이주해 자신의 소명에 따라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예술가는 무릇 창조적 인격뿐만 아니라 공적 자아, 즉 세상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인격 역시 만들어야 한다. 앨리스는 다른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끊임없이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의 남성 동료들은 여성들은 지나치게 신중하고 가정적이기 때문에 진짜 예술을 할 수 없다며 혐오감을 표출했다. 젊은 여성이 예술가로서의 일정한 신용을 얻으려면 남성 예술가처럼 창조적 허세를 부리며 살아야 했다. 앨리스는 일부러 터프하게 행동하고 주변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음으로써 예술가의 자격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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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가를 맴도는 그레고리안 성가그들의 강해 소리 낮게 들리고눈 아래 저잣거리는 저세상처럼 아득하다

상형문자로 불안한 잠꼬대를 하고마침내 도시의 아침은 모퉁이에 숨어 기다려요밤은 찾는 자의 것당신은 모르죠?

비둘기들은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혼자 죽는다고 한다남산에도 시청 앞에도 공원에도 비둘기의 주검은 없다떼 지어 날아오르던 검은 지붕들붉은 발자국 찍히던 보도블록에도 없다누구 본 사람 있나요?
제 몸 태울 땔감 지고 길 떠나는 인도 노인처럼 비둘기는따가운 햇살 한짐 지고 도시를 떠났을까적멸의 푸른 깃털 하나 어디에 내려놓았을까

내 이웃 중의 이웃 베다니 집나사로는 없고 마음 가난한 할머니 몇분배나무밭 옆 눅눅한 집 한채모로 누워 혹은 조그맣게 쪼그리고얇은 햇볕에 지푸라기 육신 내다 말리고 계신다나귀 새끼는 보이지 않고등불 든 신랑은 아직 오지 않고늙은 잇몸처럼 하늘도 내려앉아철없는 참새들만 식은 굴뚝 위에서 짹짹거리는막다른 골목에서 그래그래고개 주억거리며부르튼 길 끝 내다보고 계신다그 끝에 우두커니 내가 서 있다

너의사랑은고향집우물보다더아득하다 그우물속의낡은두레박보다더무겁다 두레박속의넘치는물보다더차다 그물속에잠긴달보다더외롭다 달속의토끼그토끼의눈보다더서럽다

느닷없이 머리가 아프면서, 그리고열이 약간 있으면서타이레놀을 먹어야 하나 샤워를 해야 하나해장국을 먹어야 하나 불고기를 먹어야 하나허기가 들면서산책을 할까 영화를 볼까보험을 들까 노래방을 갈까 말눈물이 나면서점점 어지러워지면서 처참해지면서너를 처음 만난 날

몇번이고 발을 헛디뎠다
그날 밤에도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손금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동서남북 가는 곳마다 막다른 골목이야촉촉이 땀이 배인 좁은 길들잔금으로 어지러운 구겨진 대로들유사 이래로 길들은 늘 덜컹거렸지거미들은 끝없이 운명의 줄을 뽑아내고우연처럼 깜박이는 신호등마른 강물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증발해버렸어촘촘한 문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낡은 조감도칼자국 같은 깊은 상처 하나아프게 접혀 있네않겠다

헤엄쳐서 갈 수밖엔 없다 그곳에언젠가는 작은 방 하나 숨겨놓고 그 속에서내 지리멸렬의 생을 되돌려주겠다낮이면 죽은 듯 잠만 자다가 밤이면 귀 세우고캄캄한 기억들 불러모으겠다그 부유하는 기억들 속에 몸 담그고 긴 밤 견디겠다

그러고도 시간은 남아
생애가 저무는 더딘 오후에
탁자 위 소국 한 송이
혼자서 핀다

해는 지는데 나뭇가지에서 떨고 있다가야 할 길과 지나온 길을 지우며 등 구부려가야지 가야지찢긴 플래카드처럼 낙심에 떨며차가운 낮달 사이로 흩뿌리는 겨울비머리 기댈 마른 잎 하나 없는 굴욕의 빈 가지 위에서저 무한천공 갈 길은 아직 먼데감기는 눈 치켜뜨며정신 차려 정신 차려야지온몸 쪼아대는

마른 봄바람에 먼지 뒤집어쓰고 짜증나
볼 부어 있던 목련 봉오리들
봄비 한나절 다녀간 뒤 금세 함박웃음 터져
벌어진 입 다물지 못하네
허리 흔들며
들뜬 웃음소리
뜰 안이 소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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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현 시인이 문예연감 2018(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에 따르면, 문학 잡지(시)의 숫자가 538종에 이릅니다. 이 말은 538종의 잡지에서 시인을 배출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1명씩만 잡아도 538명입니다. 그런데 문예지에서 1명씩만 배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2명씩 계산하면 1,000명이 훌쩍 넘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10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면, 시인 1만 명.
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이죠"

내 관점으로 보자면 나와 같은 작가들 쪽작가 지망생의 친구와 선이 그나마 운이 좀 있는 편이고, 문학사적 측면에서 보자면내가 쓰고 있는 글들은 당신이 쓰고 있는 글과 마찬가지로별 가치가 없는, 고전이 되지 못하는 쓰레기다. 나는 ‘럭키
‘당신‘이고, 당신은 ‘언럭키 나다. 아니면 그저 우리 모두 문학에 빠진 불행한 이들일 뿐이다.

그러니까 당신도 퇴근하고 읽고 써라. 그 일이 가치 있는지없는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설령 무가치하더라도 그러는 게재미있다면, 그 재미를 위해 힘을 들여라. 재미야말로 당신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니까. (뭐? 부모가 돈이 많아서 일을 안 해도 돼서 시간이 남아돈다고? 꼴 보기 싫으니까다른 데로 가세요)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있지만모든 존재가 그를 토대로 서 있다.
그는 가까이 있으면서 동시에 멀리 있고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으며움직이면서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다.
『바가바드 기타」 중에서

H서서 하는 동작을 모두 끝낸 뒤 앉아서 하는 동작과 누워서 하는 동작, 거꾸로 서는 동작 등을 이어갔다. 그리고마지막으로 사바사나에 이르자, 자리에 누워 시원하게 숨을 쉬는 회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수련실의 불을 끄고 사바사나에 좋은 명상 음악을 틀어놓은 뒤 나도 잠깐 매트 위에등을 대고 누워 호흡을 골랐다. 이내 수업을 마치고 수련실밖으로 나가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옷을 갈아입은 뒤요가원 밖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결 밝아 보였다.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와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가는 학생도 있었다. ‘오늘 수업 어땠나요? 저와 함께한 시간이 괜찮았나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담담하게 "네. 다음에 또 뵐게요"라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본래의 나는 집중력이 없고 산만하고 조급한 사람이었다. 의지력 또한 부족해 한 가지 일을 오래하지 못했다. 그러나 ‘본래‘라는 건 없다는 사실을 요가를 하면서 깨우쳐나갔다. 요가를 수련해오는 동안 이전에 없던 집중력과 의지력이 점점 자라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그것은 어쩌면원래부터 없던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인데 그동안 내가사용하지 않아 묻혀 있던 건 아닐까 싶다. 요가는 그렇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보물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 일과 닮았다.

위태롭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내 마음을 나조차도 어찌하지 못해 나의 삶은 항상 아프고 비루했다. 요가를 해보겠다고 수련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꾸만 다른 곳을 향해 떠돌아다니는 생각 때문에 많은 시간을 공허하게 흘려버리기도 했다. 돌아보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또한 내 몸과 마음의 원리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으므로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식사를 하기 위해 수저를 들기 전, 두 손을 모으고 눈을감았다. 소중한 음식을 나에게 내어준 자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이것이 부디 내 안에 잘 스며들기를, 좋은 에너지를 주기를,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했다.
이 세계에, 그 안의 당신께 평안과 축복이 있기를.
나마스떼.

1) 우연히 글을 쓰는 경우나 운때가 맞아서 글을 쓰게 된 것은 고정적으로 전업 작가가 되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시를 쓰기도 하는 기차 차장은 기차의 차장으로근무하지 않는 시인보다 더 잘산다.

예술의 규칙과 공식보다도 창작자 개인의 창의력, 혹은
"영감"(靈感, inspiration)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서양 문학 중심으로 봤을 때 18세기 말, 19세기 초 낭만주의시대부터다. 예술사조로서 낭만주의는 인간의 감정을 이성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세상에는 인간이 이성과 합리로 이해하고 파악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은 예술작품이 독자나관객, 청중에게 무엇보다도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낭만주의 시대에는 호러나 로맨스등 현재의 장르문학이라고 할 만한 문학 분야들이 발전하게된다. 낭만주의 이전의 1700년대 계몽주의 시대나 이후의1850~1860년대 이후 실증주의 시대에는 문학작품이 독자에게 교훈을 주거나 세상에 대한 어떤 사실을 가르치거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믿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어 냉전은 종식되고 공산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하여 러시아와 구공산권이 더 이상 금지된 땅이 아니게 되자 한국에서는 그동안 갈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나도 그런 물결을 타고 러시아 어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사실 나는 아주 단순하게 러시아 글자가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했다. 그런데 그 뒤에는 훨씬 더 넓고 깊은 세계가 있었다.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본 사람은 모두 알고 있겠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열망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불치병이기도 하다. 계속 이야기를 만드시는 분들의 앞길에 가시와 못과 쐐기풀이 조금은 덜 덮여 있기를 바라며, 자신의이야기를 믿고, 자기 자신을 믿고 굳건히 그 길을 가시기를 소망한다.

X산다는 건 원래 단순한 거야. 애초에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의지처가 필요하진 않았어.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 돈은 좀 벌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일하고, 돈을 벌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버는 거다.
산다는 걸 그렇게 정해놓으면 편하다. 그녀에게 그런 말을마지막으로 했던 것 같다. 사람이 왜 그렇게 단순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데. 뭐가 좀 아니다 싶으면 살아온 걸 뒤돌아보고 다른 길도 모색해 보고 해야 할 거 아냐. 독기 좀갖고 살아보란 말이야, 라고 악을 썼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도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일찍 불을 밝힌 가로등이 허공에 떠 있다. 담배 한 대피우려고 차창을 열었는데 짠내 먹은 바람이 밀려들어 온다. 바람이 따뜻할 때 이 길을 다녔는데 이젠 차갑다. 반년동안 무수히 다닌 길인데 오늘의 바람과 빛은 어제의 것들이 아니었다.

림자와 노을, 그림자 노을……… 끝없이 반복된다. 그녀는력발전기를 보면 늘보가 떠오른다고 했다. 느리게 돌아가는날개가 그런 상상력을 이끌어낸 것이겠지만 뭐 그럴 수도있다. 그녀가 나무늘보를 떠올렸든 치타를 떠올렸든 이제크게 애쓸 필요 없다. 지난 시간들 속에 박힌 기억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나눌 사람이 아니니.

뭍에서 섬으로 섬에서 뭍으로, 단순한 이 길을 반년 동안 오갔다. 방조제 건너 뭍에 숙소가 있고 섬에 직장이 있었다. 직원이라야 평소엔 둘뿐인 일터다. 방조제에서 벗어나 5분 남짓 섬 안쪽으로 달리면 도로가 좁아지기 시작하는 곳에 수목장이 나타난다. 수목장까지 가는 길 주변은 온통 바지락 칼국수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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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으로 유명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여주인공 블랑쉬 뒤부아는 극의 말미에서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의사의 지시에 따르며 이렇게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살아왔어요." 물론 나는 모든 면에서 블랑쉬 뒤부아와 다르지만,
이 대사는 내 마음을 저민다.

.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오래된 교훈을 반복해서 이야별것 없기하며 학생들이 왼발 옮기고 오른발 옮기는 걸음마를 지켜보는 것, 그러면서 간혹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것뿐이다.

출판계약서에 작가는 ‘갑‘이라고 쓰여 있지만 천만의 말씀, 우리는 갑이 아니다. 갑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은0.00001% 정도의 작가를 빼면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당신이나 나는 죽을 때까지 을로 살 확률이 높다. 내가 쓰려는책에 대해 이해도도 깊고 열성이 넘치는 명민한 편집자를만나서 함께 책을 만들어가게 된다면 작가 인생에서 손으로꼽을 만한 행복한 시간이 되겠지만 한창 초짜라거나 격무에지쳐서 위에서 하라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또는 의욕은넘치는데 실력이 안 되는 편집자를 만났다면 이런 말을 죽도록 듣게 될 것이다. "작가님, 잘 모르겠지만 이건 좀 아닌것 같아요." 이런 소리를 대여섯 번 이상 듣게 되면, 자기도모르게 미치고 팔짝 뛰게 될 거라고 내가 장담한다. 나는 경력이 20년 차를 넘어가고 나서도 책 표지, 심지어는 책 제목 선정 과정에서도 배제된 적이 있다. 편집부에서 알아서결정해 버리고 완성본을 보냈기에 당시 나는 시중에 책이풀린 후에야 내 책이 어떻게 생겼고 제목이 뭐라고 지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도대체 뭘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노동은 하루하루 계속되었다. 운동장에 우두커니서 있는 말들이 마실 물을 가득 채우고 저녁에 먹을 건초를 정리해 둔 후 마사를 청소하고 말들이 여기저기 싼 똥을또 치운다. 나중에는 말들이 똥 만드는 자판기로 보일 정도였다. 하필 때는 여름, 작열하는 햇살 아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똥을 치우다 보면 카뮈의 이방인이 이해될 정도였다.
그래, 오죽이나 해가 뜨거웠으면…………

엄마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고 처음 말했을 때, 엄마는걸레로 방바닥을 훔치고 있었다. 내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어서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엄마,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아마도 열한 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걸레질을 멈추더니 바닥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작가는 배고픈 직업이야. 다른 걸 해."

센터를 돌아다녔고, 미배정 물건이 담긴박스 근처를 항구의 갈매기처럼 맴돌았다. 그땐 그게 나의삶이었고, 소설은 영적인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들이도대체 무슨 돈으로 먹고사는지 궁금했다. 모두 가까스로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으니 소설을 쓰다가 슬럼프에 빠질 정도로 좌절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완드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단, 쓸 땐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이후의 일은 신의 뜻대로, 그것이 나의 기본자세다.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을 사랑한다. 그래서 가끔, 아니 자주 가족에게 미안하다. 내가 돈을 더 많이벌면 그들의 삶이 한층 더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기에희생당한 나무에게도 미안하다. 종이가 아까운 글을 쓰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므로

한국고용정보원이 2020년에 내놓은 『2018 한국의 직업정보』를 살펴보면 어쨌거나 시인은 직업으로 분류되어 있다. 근로 시간이 짧은 직업 상위 30개 중 하나이며, 공간 자율성이 높은 직업 상위 20개 중 하나이다. 그리고 평균 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 50개 중 하나로, 2위이다. 1위를 놓치는 때가 별로 없었는데 2018년에 설문에 응답한 30명 중에아주 잘나가는 시인들이 있었던 모양인지 평균 연 소득이 1,209만 원으로 뛰어버렸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11년간 그가 인세로 벌어들인 돈을 살펴보면 도합 2,450만 원가량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등단 11년차의 잘 나가는 시인 S의 수익을 보고도 S처럼 전업 시인으로 비루하게 살기를 꿈꾸는가? 아니면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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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 그리고 패턴화되어계속 반복되는 부정적인 일들은 대개 어린 시절에서 출발합니다.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거나, 자라는 동안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현했을 때 수용받지 못해 그것이 고착되어성인이 되어서도 힘든 순간들, 또래 집단에서 거절당하고따돌림을 당했던 기억, 부모님의 싸움에 늘 무섭고 불안에 떨어야했던 시간들. 그 어린 나이에 멈춰 울고 있는 내면아이가 떠나지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합니다.

이렇게 지금의 나를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나를 안아주는 시간도 마음을 들여다보는글쓰기에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내가 나를 이해하는 가능성의 문을 더 많이열어둘수록 우리가 쓸 수 있는 내 마음의 이야기는 더 커질것입니다. 사고를 추적하는 연습을 통해 내가 나를 얼마나이해하고 있는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가늠하는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글쓰기를 진심을 다해응원합니다. 그로 인해 궁극적으로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기를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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