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련이나 걱정근심에 사로잡혔거든 잠을 자보라.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일러주라. 지금 당장 내가 죽어도 지구는 제 궤도를 돌고 회사는 여전히 돌아간다고. 그러니 걱정할 게 무엇인가? 매사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죽음이 와서 비웃으며 물질적인 삶과 그 임무들이 덧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걱정과 근심을 놓아버리라. 아침과 밤에 절대 고요 속으로 들어가라. 특히 걱정거리가 생겼을 때, 일 분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어보라. 그렇게 몇 분 더 있으라. 그러고 나서 과거에 경험한 행복했던 순간들을 상상해보라. 머릿속에서 근심걱정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계속 행복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하루에 세 번 근심걱정을 털어버리라. 아침 7시, 자신에게 들려주라. "7시에서 8시까지 간밤의 근심걱정을 모두 털어버리자.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걱정은 사절이다. 지금 나는 근심 단식중이다."
오후 1시, 다시 말하라. "나는 괜찮다. 걱정하지 않겠다."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에게 말해주라. "나는 균형잡힌 보좌에 앉아있는 ‘평화의 왕자(Prince of Peace)‘다."

인생에서 참으로 필요한 것이 정신력이고 영적인 건강임을 모든 사람이 기억해야 한다. 목표는 최대한의 평화, 전천후로 발휘할수 있는 정신력, 그리고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물질적 안정이다.

함께 어울릴 사람들을 주의 깊게 선택하라. 자신보다 침착하고 강하고 슬기롭고 심지 깊은 사람들과 사귀라. 범죄자를 더 큰범죄자 무리에 가두어두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교도소를 떠날 때 교도관이 물을 것이다. "언제 다시 올래?" 신경질적인사람이 신경질적인 사람들 무리에 속해있으면 더 나아질 수가 없다. 언제나 평온한 사람들을 선택하라.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은 간단한 버릇 하나들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집중력 있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버릇을 들일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신적·육체적·영적 버릇이 있거든 당장 떨쳐버리라. 그것을 그냥 놔두지 말라.

기억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 훈련되어야 한다. 자신을 위로 끌어올릴 고상한 경험들을 떠올리는 데만 써야 한다. 많은경험에서 추려낸 좋은 것들만 기억보관소에 저장되어야 한다. 끈적거리는 더러운 생각들이 기억보관소에 들어있으면 예기치 않은순간에 같은 생각들이 말과 행동으로 튀어나올 것이다. 속에 선한것들만 있으면 선한 것들만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자기 마음의문을 조심히 지키라.

마음이 튼튼해지면 몸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무슨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은 절대 자유로워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에 진실과 더불어 깨친 영혼의 힘이 담겨 있어야 한다. 확신과 믿음과 직관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강하게진동하는 폭탄 같아서 온갖 곤경의 바윗돌을 깨부수고 바라던화를 가져다준다. 비록 참말이라도 불쾌한 말은 입에 담지 말라.

강한 의지로 끈기 있게 외는 주문의 힘은 잠재의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기적 같은 정신의 힘이 저장되어 있는 초超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언제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에만 마음을 쓰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고, 유익한 정보들로 자신을 가득 채우면 인생을 더욱값진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아무쪼록 하느님이 주신 능력, 자기 존재 가장 깊은 데서 나오는 무한능력을 남김없이 모두 써야 한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본인의 신성한 정체를 짐승의 탈 뒤에 감추는 것과 같다. 그러지 말라. 그러지 말고 위없이 높고 더없이 선한 것을 희망하라. 하느님의 자녀인 당신에게 그보다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희망을 지키라. 언제고 자기 안에서 잊었던 하느님의형상을 다시 기억해내리라는 것을 직관하는 데서 희망이 생겨난다.

기억하라. 모든 행복과 번영으로 가는, 건강과 재물과 평화와지혜를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은 명상을 통해 응답받을 때까지 쉬지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고요한 마음의 송신기로 하느님께 전송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기술(art)을 익히라. 근심걱정, 질병, 죽음의 호랑이가 당신을 쫓아 달려오고 있다. 당신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침묵 속에 있다.
더 많이 침묵할수록 더 많이 행복할 것이다. 깊이 명상하는 사람은 놀라운 침묵을 느끼는데, 그것은 사람들에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유지되는 침묵이다. 명상에서 배운 것을 말과 행동으로 실습하면서 아무도 자신의 고요를 흐트러뜨리지 못하게 하라. 자신의평화를 꼭 부여잡고 있으라.

항아리의 출렁이는 물 위에 비친 달은 일그러져 보이지만 달자체는 결코 일그러지지 않는다. 일그러진 달의 모습은 출렁이는물결의 작품이다. 항아리의 물을 고요하게 하라. 일그러지지 않은온전한 달을 보게 될 것이다.

온갖 복잡한 생각들의 신전神殿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하느님이 당신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당신 마음에서 세속적인 생각들이 전부 지워졌음을 확인하기까지 하느님은 스스로를당신에게 넘겨주시지 않는다. 그분은 쉴 새 없는 돌풍 앞에서 버티지 못하는 촛불과 같다. 쉴 새 없는 온갖 생각에서 자유로워졌을때 비로소 그분이 당신에게서 타오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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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막히고 제한된 골방에서 나오라. 생기 넘치는 생각들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라. 낙담, 불만, 절망의 독기어린생각들을 토해내라. 질병, 노화老化, 죽음 따위 인간의 한계를 자신의 마음에 암시하지 말라. 그 대신 자신에게 끊임없이 일러주라.
"나는 무한無限(the Infinite)이다. 잠시 몸을 입은 무한이 나다."
자기 신뢰의 오솔길을 오래 걸으라. 판단, 성찰, 창의를 연습하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적 사유거침없이 즐기라.

스스로 알기만 한다면, 그대들 모두가 신神(god)이다. 당신은마땅히 자기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기 의식의 물결 밑에 하느님의 바다가 있다. 당신의 신성한 태생권리 (Divine Birth)를 주장하라. 깨어나라. 그러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

실패가 거듭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 그것들을 당신의 육체적 정신적 성숙에 독이 되게 하지 말고 자극제로 삼으라. 실패했을 때야말로 성공의 씨를 뿌리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실패의 원인을 제거하고 이루고자 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라. 상황이 당신을 몽둥이로 치더라도 고개 숙이지 말라.

자신에게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버릇이 있더라도 낙심하지말라. 선한 의지력과 올바른 명상을 버릇으로 삼아 그것들을 정복할 수 있다. 지금이 그때다. 그릇된 행동의 마수에서 해방되어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빚어줄 생각과 행동을 새로운 버릇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비극을 낳는 물질적 차원에 머무르는 경향이 반복된다면 일단 자신을 유혹하는 환경에서 멀리 떨어지라. 그리고 안 좋은 생각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법을 배우라. 선하고 바른 환경에 둘러싸여 자신에게 이롭고 건강한 생각들로 내면을 채우라.

완전한 자유와 지속적인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제대로명상하는 것이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하느님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분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한계들을 정복하고통제하게 될 것이다.

끈질긴 노력만이 과거 카르마의 악한 종자들을 불태워버릴수 있다. 선한 카르마로 이루어지는 평형平衡이 이삭처럼 익어서고개를 숙이려 할 때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희망을 포기하는, 그래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을 놓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도 버릇의 노예로 태어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행동으로 스스로 버릇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처음 마시는 술잔이사람을 술주정뱅이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행동을 생각 없이 되풀이하다 보면 그 행동은 어느새 버릇이 되어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 반복의 강한 힘이 이성의 나약한 힘을 눌러버리는 것이다.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마음은 앵무새 같아서 우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 그 마음에 피곤, 불만, 안 좋은 생각들을 들려주지 말고 기쁨, 풍성, 평화를 들려주라. 그러면 그것들이 삶에서표출될 것이다.
일하되 기꺼이, 그리고 끈질기게 하라. 자기 안에서 쉼 없이흐르는 영원한 에너지를 느끼라. 싫증이나 피곤한 내색은 절대 금물이다. ‘고단하다‘는 말을 아예 입에 담지 말라.

자신이 완전히 부서지고 일그러져 남은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당신에겐 필요한 힘이 다 있다. 다만그것을 쓰지 않을 뿐이다. 생각의 힘보다 큰 힘은 없다. 자신을 세속에 묶어놓는 작은 버릇들로부터 되살아나라. 영원한 하느님의웃음, 아무도 당신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백만 불짜리 웃음을 되살리라.

당신의 실존은 그분의 꿈이다. 단지 당신은 스스로 나약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책임을 주님이 지시게 하면 스스로 움켜잡고 있는 거짓 망상을 부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자기 안에 있는 완전한 하느님의형상을 인식하기 쉬워질 것이다.
당신이 노력하는 한限, 하느님은 결코! 당신을 넘어지게 놔두지 않으신다.

툭하면 화를 내거나 자기연민(self-pity)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한다. 그것은 우리의 신경과민을 조장할 뿐이다. 무언가를 불평할수도 있고, 그 사실을 남이 모를 수도 있다. 스스로 내면을 살펴서신경과민의 원인들을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무도, 자기 자신까지도, 원망하지 말라. 비난과 책망은 이미저지른 일을 지워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사정에 스스로를 의탁하게 만든다.

열등감은 우월감 못지않게 나쁘다. 본디 당신은 하느님의 자식이다. 그러니 당신이 누구보다 못하다거나 낫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다. 열등감도 우월감도 영혼의 진화를 더디게 할 뿐이다.

겁내지 않음으로 두려움을 없애라. 설령 고통의 바다에서 출렁이고 있거나, 죽음이 방문을 두드린다고 해도 당신은 영원히 안전한 하느님의 성벽 안에서 무사하다는 사실을 믿으라 하느님의보호하시는 빛이 ‘최후의 심판‘이라는 위협적인 구름을 흩어버리고, 시련의 파도를 잠잠하게 하고, 견고한 성 안에 있든 사방으로고난의 총탄이 날아드는 일상의 전장戰場에 있든 어디서나 당신을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다.

정신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잠재의식에도 두려워하는 버릇이 생긴다. 그러면 일상에서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잠재의식의 두려워하는 버릇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끌어오고, 그에 맞서 싸우려는 의식적인 마음을 마비시킬 것이다.

마음을 용기에 집중하고 내면에 있는 절대 평화로 눈길을 돌려 두려움의 뿌리를 뽑으라. 질병이나 실패 따위 겁내지 않는 건강하고 든든한 사람들과 사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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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 정말 그런가…내가 여기서 언니들이랑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보는 일보다 글쓰는 게 더 숭고한 일인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누가 물으면 난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아.

5월의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다. 당신은 정윤의 흔들리는 어깨를한 손으로 잡고 그녀 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무엇이 지나가고, 무엇이 그대로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당신의품에 기댈 수 있도록, 당신은 정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에게 그런 방문들은 뜻밖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다정했고,
그녀가 겪은 고통을 위로했다. 그녀는 잠시였지만 그들에게 정성껏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그 느낌은 수술 후 그녀의 혈관을흐르던 모르핀처럼 부드럽고 달았고, 그녀는 덜 아플 수 있었다.
그들이 한때 누구보다도 그녀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잊은 건 아니었지만.

그때 할머니 모습이 잊히질 않아요. 말로 일격을 가하고 싶으면서도 겁먹은 게 제 눈에는 보였거든요. 씨발년아, 라고 할 때는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꼭 울 것 같았어요. 욕도 못하는 사람이 최대치의 욕을 한 거죠.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 기억이 자주 떠올라요. 저를 지키려는 매 순간순간이 무서웠을 것 같고, 용기를 냈어야 했을것 같고, 세상 소심한 사람이 막, 씨발년이라는 말도 해야 했고.
선배.
말해줘서 고마워요.

사람들이 또 무슨 얘기 했는데요.
선배 일 잘하고 똑부러진다고, 그래서 어른들도 좋아한다고요.
그녀는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의 무리에 시선을 둔 채 사람들이자신과 김상무를 두고 어떤 태도로 이야기했을지 어림해봤다. 그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그 무렵 다희는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서 시험 준비를 했다. 회사는 인턴 기간이 끝날 때쯤 자체 시험을 통해 인턴의 삼분의 일을 신입사원으로 채용할 예정이었다. 세명중 한 명이에요. 다희는 종종 농담처럼 그 말을 하곤 했다. 세명중 한명. 떨어질 확률이 더 높지만 희망을 갖게 하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다희가 그 셋중 하나가 되기를 빌었다.

그녀의 팀 사람들은 인턴들이 없을 때면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아직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오히려 일을 만드는 경우도 많고, 일을 습득하는 속도도 느리다는 얘기였다. 그런 불만들은 ‘그래도 우리가 인턴을 챙겨야 한다‘는 시혜적인 말로 끝나곤했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팀사람들은 그녀에게 다희와의 관계에 대해 묻기도 했다. 어차피 떠날 확률이 더 높은 사람에게 왜 그렇게 잘해주느냐고. 그녀는 그저 통근하는 경로가 비슷해서 같이 차를 타고 다니는 거라고 답했다. 공채 출신의 정규직 사원과 친밀하게 지냈더라면 그런 질문을받을 일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웃으며 사무실을 나왔지만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다.

가끔은……제가 커다란 스노볼 위를 기어다니는 달팽이 같아요. 스노볼 안에는 예쁜 집도 있고,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선물 꾸러미도 있고,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저는 그걸 계속 바라보면서 들어가지는 못해요. 들어갈 방법도 없는 것 같고.

다희와 함께 출근하던 마지막 한 달 동안, 둘은 그날 일을 입에올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대화했다. 그것이그녀는 슬펐는데, 다희도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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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녀는 그렇게썼다. 책방에는 다리가 가느다란 식탁 의자가 있었고, 그녀는 거기에 앉아 구매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날 다 읽는 건 어려웠으므로 그녀는 다음날에도, 그다음날에도 책방의 식탁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주인은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책방 주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계산대에 가만히 앉아서 손님이 오는지 가는지 신경쓰지 않던 모습을 그런 주인 덕분에 나는 책방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 또한 그 책방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나는 반가웠다.

‘이것은 내가 서른네번째로 쓰는 자기소개서다‘라는 첫 문장 뒤로 그녀는 자기소개서에 쓸 수 없었던, 혹은 자기소개서에 썼으나사실이 아니었던 내용에 대해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아이를 낳고퇴사한 첫째 언니,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서른다섯이 되면 더이상고용될 수 없으리라는 불안을 지니고 사는 둘째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자신의 삶이 두 언니들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궁금하다고 썼다. 면접장에서 전원이 남성인 회사 간부들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는 말도 있었다. ‘나의 삶에는 특별할 것이 없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이런 자기소개서 같은 건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글은 그런 식으로 끝났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순응주의, 능동적인 순종. 그런 말들에서 나의 글이,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발표자의 글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이라는 말은 나를 모욕하지 않으려는 배려였을 뿐, 그녀가 속으로는 분명 다른 판단을 내렸으리라고 짐작했다. 나는 그때 강의실을 둘러싼 이상한 열기를 기억한다. 그녀의발언에 대한 지지와, 한편으로는 분명한 반감이 뒤섞인 공기를.
그 학기 내내, 그녀의 수업시간에는 그런 긴장감이 돌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글이나 번역서를 찾을 수 없었다. 구 년 전의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윤은 당신이 써간 글을 자주 칭찬했다. 텍스트의 내용을 잘파악하여 정리했고 접근이 신중하다고 했다. 반대로 그녀는 희영의 글에 대해서는 완곡하게나마 매번 비판했다. 이 주장에 대한객관적인 근거가 뭐죠?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글은 강요가 될수밖에 없어요. 논리의 비약이 잦아요. 그때마다 희영은 정윤의조언을 노트에 메모했다.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그런 말에는 언제나 힘이 있었다고.
이건 여성 문제가 아니다, 더 큰 억압의 문제다, 라는 식의 논리는언제나 강했고 다수를 설복할 수 있었다. 정윤이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논의조차 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정윤은 수면으로 올려놓고자 노력했다. 정윤이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희영의 주제는 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아직도 그날 밤을 기억한다. 희영이 써온 긴 글을 처음읽고 받았던 충격을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 차갑게 언 발의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글을 읽던 스물에서 스물하나가 되어가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신은 입을 다물고 희영의 감정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편집부에서 가장 가까웠던 정윤을 빼앗긴 심정일지, 회의 시간마다희영의 주장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용욱에 대한 거부감일지. 어쩌면 희영은 그때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정윤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정윤에게 열등감을느끼고, 정윤이 자신보다 더 돋보이는 것을 경계했던 용욱의 마음을 꿰뚫어보았는지도 모른다고.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기지촌 활동가들이 만든 소식지를 읽으며 마음이 끌렸다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그곳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는 희영의 얼굴을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당신은 희영이아까웠다. 희영의 재주가, 희영의 능력이 그런 활동으로 낭비되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가게를 나와 희영의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걸으면 걸을수록 공간이 더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높은 건물이 없지. 밤에 정말 어둡다.
당신과 희영 앞으로 기다란 그림자가 졌다.
희영의 집은 벽돌로 지은 삼층짜리 다세대주택의 꼭대기 층이었다. 신발을 벗고 장판에 발을 디디니 발바닥이 델 것처럼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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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 새벽 세시의 수련 앞에 섰다.
그때까지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달빛 아래 둥근 잎들 위로 수련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불과 백여 미터만 나가면도시의 불빛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고즈넉하고 묵묵한 아름다움뿐이었다.
수련은 피었을까? 질문이 나를 거기까지 데려갔고,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질문은 사라졌다.

이게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세계라는 게 믿어지는가? 이것은 완벽한, 단 하나의 세계다.
이런 세계 속에서는 우리 역시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생각의쓸모는 점점 줄어들고, 심장의 박동은 낱낱이 느껴지고, 오직 모를 뿐인데도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불운과 불행의 차이는 무엇일까? 불운은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다.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니라 미야노가병에 걸리게 된 건 불운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운명이나 팔자같은 자기 바깥의 이야기에서 찾으면 불행이 된다. 그래서 불운은 점, 불행은 선이라고 이소노는 말한다. 불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라 인생의 어느 지점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 불행으로도, 재밌는 에피소드로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여길 수있다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우연을 내 인생의 이야기 속으로 녹여내는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우연이란 ‘나‘가 있기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그 모습을 달리하는게 인간의 우연한 삶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온갖 우연한 일들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여 녹여낼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하고 안이하게 외부의 스토리에 내 인생을 내어주고마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길 기뻐하는 것을 더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길. 그러기로 결심하고 또 결심하길.
그리하여 더욱더 먼 미래까지 나아가길.

계절마다 시차는 있었지만, 대개 골목길로 어스름이 깔릴 즈음이면 성당의 종소리가 둥글게 울려퍼졌다. 공감각적 표현이라는 말은 학생이 된 뒤에야 배웠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매일 둥근 종소리를 들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평화에 대해 논하라는 논술 문제가 나온다면, 아마도 나는 답안지에 이렇게 쓸것이다. 그건 하루 종일 실컷 놀다가 허기지고 지친 몸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듣는, 멀고도 둥근 종소리, 라고, 그렇게 종소리를 듣고 들어가면 엄마가 차린 저녁밥이 있었다. 내겐 그게 집이었다.

문득 그때 왜 울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누군가 아이들만따로 단체 사진을 찍어주자고 한 모양이었다. 나보다 나이가많고 어른들 말을 잘 알아듣는 아이들이 잔디밭 가장자리에 줄지어 앉아 어깨동무를 해가며 포즈를 잡는 동안, 나는 그들의앞쪽 보도에 따로 떨어져나와 울고 있었다. 왜 거기에 낯선 아이들과 모여 있어야 하는지, 무엇보다 왜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지 나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해도달래지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 앞에 있다거나 막 손을 스쳤다거나.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엄마가 손을 뻗어 뽑아내면 네잎클로버였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네잎클로버를 뽑을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달라졌다. 물론내 마음이 달라져서 그랬겠지만, 엄마가 정말 멋진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네잎클로버를 그렇게 잘 찾아낼까. 내 기억을 통틀어 그날의 엄마가 제일 뽐내는 엄마였다. 미신대로라면 행운으로 가득했어야 할 사람.
하지만 그날 찾은 네잎클로버는 모두 내 몫이었다. 엄마에게받은 네잎클로버들을 화단에 가지런히 놓고 보니 마치 내가 찾은 것인 양 뿌듯했다.

사랑과 관련되지 않은 관계들을 해체시키고, 낮을증가시키고, 밤을 단축시키며,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고, 태양을 빛나게 한다.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그 일은 매일 반복됐다. 나는 그날 번 돈을 제일 먼저 일수아주머니에게 건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빚을 모두 갚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매일 돈 받으러 오던 게 지긋지긋했다고 엄마가 말하는 걸 듣고 나는 깜짝놀랐다. 나는 두 분의 사이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싫은내색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저절로 생긴 능력이었다. 엄마에게는 손님을 기다리며혼자 앉아 TV를 바라보던 숱한 밤들이 있었을 테니까. TV 드라마 속 갖가지 인생 문제와 여러 애환들의 전개 방향은 대개뻔했을 테니까.

사십 년 전의 엄마를 마치 어제 일처럼 바라보듯이,
나는 사십 년 뒤의 열무를 마치 내일 일처럼 바라본다.
사십 년 뒤, 그러니까 2063년의 열무를.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호수공원으로 나갔다. 지난여름, 호숫가에는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피난민들을 위한 수용시설이 만들어졌다. 관리하지 못한 화단에는 잡초가 웃자라 그들이 버린 오물들이 떠다니는 호수를 가렸다. 해가 질 무렵이면미세먼지로 흐릿한 석양을 배경으로 날벌레들이 떼 지어 날아다녀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북풍은 그 모든 것을 몰아냈을뿐 아니라 백설의 두툼한 이불을 깔아 한순간 세상을 새뜻하만들었다. 나는 이제 희망을 알지 못한다. 희망을 버리니 절망은 저절로 버려졌다. 아무 욕망도 없는 마음으로 걸어가는데깍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 쌓인 가로등 위에 앉아 설경을감상하던 까치의 감탄사였다. 내가 올려다보자 까치는 맞은편나무로 날아가더니 시치미를 뚝 떼고 과묵해졌다.

소로가 먼저 있어,
오래전, 호숫가의 소로에게 그랬듯이.
그렇게 우리는 여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되어졌다.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때로 낭독회는 예정된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두세 시간씩 이어지곤 했다. 덕분에 좋은 추억이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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