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 새벽 세시의 수련 앞에 섰다. 그때까지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달빛 아래 둥근 잎들 위로 수련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불과 백여 미터만 나가면도시의 불빛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고즈넉하고 묵묵한 아름다움뿐이었다. 수련은 피었을까? 질문이 나를 거기까지 데려갔고,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질문은 사라졌다.
이게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세계라는 게 믿어지는가? 이것은 완벽한, 단 하나의 세계다. 이런 세계 속에서는 우리 역시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생각의쓸모는 점점 줄어들고, 심장의 박동은 낱낱이 느껴지고, 오직 모를 뿐인데도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불운과 불행의 차이는 무엇일까? 불운은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다.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니라 미야노가병에 걸리게 된 건 불운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운명이나 팔자같은 자기 바깥의 이야기에서 찾으면 불행이 된다. 그래서 불운은 점, 불행은 선이라고 이소노는 말한다. 불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라 인생의 어느 지점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 불행으로도, 재밌는 에피소드로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여길 수있다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우연을 내 인생의 이야기 속으로 녹여내는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우연이란 ‘나‘가 있기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그 모습을 달리하는게 인간의 우연한 삶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온갖 우연한 일들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여 녹여낼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하고 안이하게 외부의 스토리에 내 인생을 내어주고마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길 기뻐하는 것을 더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길. 그러기로 결심하고 또 결심하길. 그리하여 더욱더 먼 미래까지 나아가길.
계절마다 시차는 있었지만, 대개 골목길로 어스름이 깔릴 즈음이면 성당의 종소리가 둥글게 울려퍼졌다. 공감각적 표현이라는 말은 학생이 된 뒤에야 배웠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매일 둥근 종소리를 들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평화에 대해 논하라는 논술 문제가 나온다면, 아마도 나는 답안지에 이렇게 쓸것이다. 그건 하루 종일 실컷 놀다가 허기지고 지친 몸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듣는, 멀고도 둥근 종소리, 라고, 그렇게 종소리를 듣고 들어가면 엄마가 차린 저녁밥이 있었다. 내겐 그게 집이었다.
문득 그때 왜 울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누군가 아이들만따로 단체 사진을 찍어주자고 한 모양이었다. 나보다 나이가많고 어른들 말을 잘 알아듣는 아이들이 잔디밭 가장자리에 줄지어 앉아 어깨동무를 해가며 포즈를 잡는 동안, 나는 그들의앞쪽 보도에 따로 떨어져나와 울고 있었다. 왜 거기에 낯선 아이들과 모여 있어야 하는지, 무엇보다 왜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지 나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해도달래지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 앞에 있다거나 막 손을 스쳤다거나.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엄마가 손을 뻗어 뽑아내면 네잎클로버였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네잎클로버를 뽑을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달라졌다. 물론내 마음이 달라져서 그랬겠지만, 엄마가 정말 멋진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네잎클로버를 그렇게 잘 찾아낼까. 내 기억을 통틀어 그날의 엄마가 제일 뽐내는 엄마였다. 미신대로라면 행운으로 가득했어야 할 사람. 하지만 그날 찾은 네잎클로버는 모두 내 몫이었다. 엄마에게받은 네잎클로버들을 화단에 가지런히 놓고 보니 마치 내가 찾은 것인 양 뿌듯했다.
사랑과 관련되지 않은 관계들을 해체시키고, 낮을증가시키고, 밤을 단축시키며,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고, 태양을 빛나게 한다.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그 일은 매일 반복됐다. 나는 그날 번 돈을 제일 먼저 일수아주머니에게 건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빚을 모두 갚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매일 돈 받으러 오던 게 지긋지긋했다고 엄마가 말하는 걸 듣고 나는 깜짝놀랐다. 나는 두 분의 사이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싫은내색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저절로 생긴 능력이었다. 엄마에게는 손님을 기다리며혼자 앉아 TV를 바라보던 숱한 밤들이 있었을 테니까. TV 드라마 속 갖가지 인생 문제와 여러 애환들의 전개 방향은 대개뻔했을 테니까.
사십 년 전의 엄마를 마치 어제 일처럼 바라보듯이, 나는 사십 년 뒤의 열무를 마치 내일 일처럼 바라본다. 사십 년 뒤, 그러니까 2063년의 열무를.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호수공원으로 나갔다. 지난여름, 호숫가에는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피난민들을 위한 수용시설이 만들어졌다. 관리하지 못한 화단에는 잡초가 웃자라 그들이 버린 오물들이 떠다니는 호수를 가렸다. 해가 질 무렵이면미세먼지로 흐릿한 석양을 배경으로 날벌레들이 떼 지어 날아다녀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북풍은 그 모든 것을 몰아냈을뿐 아니라 백설의 두툼한 이불을 깔아 한순간 세상을 새뜻하만들었다. 나는 이제 희망을 알지 못한다. 희망을 버리니 절망은 저절로 버려졌다. 아무 욕망도 없는 마음으로 걸어가는데깍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 쌓인 가로등 위에 앉아 설경을감상하던 까치의 감탄사였다. 내가 올려다보자 까치는 맞은편나무로 날아가더니 시치미를 뚝 떼고 과묵해졌다.
소로가 먼저 있어, 오래전, 호숫가의 소로에게 그랬듯이. 그렇게 우리는 여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되어졌다.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때로 낭독회는 예정된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두세 시간씩 이어지곤 했다. 덕분에 좋은 추억이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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