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 정말 그런가…내가 여기서 언니들이랑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보는 일보다 글쓰는 게 더 숭고한 일인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누가 물으면 난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아.

5월의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다. 당신은 정윤의 흔들리는 어깨를한 손으로 잡고 그녀 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무엇이 지나가고, 무엇이 그대로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당신의품에 기댈 수 있도록, 당신은 정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에게 그런 방문들은 뜻밖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다정했고,
그녀가 겪은 고통을 위로했다. 그녀는 잠시였지만 그들에게 정성껏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그 느낌은 수술 후 그녀의 혈관을흐르던 모르핀처럼 부드럽고 달았고, 그녀는 덜 아플 수 있었다.
그들이 한때 누구보다도 그녀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잊은 건 아니었지만.

그때 할머니 모습이 잊히질 않아요. 말로 일격을 가하고 싶으면서도 겁먹은 게 제 눈에는 보였거든요. 씨발년아, 라고 할 때는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꼭 울 것 같았어요. 욕도 못하는 사람이 최대치의 욕을 한 거죠.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 기억이 자주 떠올라요. 저를 지키려는 매 순간순간이 무서웠을 것 같고, 용기를 냈어야 했을것 같고, 세상 소심한 사람이 막, 씨발년이라는 말도 해야 했고.
선배.
말해줘서 고마워요.

사람들이 또 무슨 얘기 했는데요.
선배 일 잘하고 똑부러진다고, 그래서 어른들도 좋아한다고요.
그녀는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의 무리에 시선을 둔 채 사람들이자신과 김상무를 두고 어떤 태도로 이야기했을지 어림해봤다. 그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그 무렵 다희는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서 시험 준비를 했다. 회사는 인턴 기간이 끝날 때쯤 자체 시험을 통해 인턴의 삼분의 일을 신입사원으로 채용할 예정이었다. 세명중 한 명이에요. 다희는 종종 농담처럼 그 말을 하곤 했다. 세명중 한명. 떨어질 확률이 더 높지만 희망을 갖게 하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다희가 그 셋중 하나가 되기를 빌었다.

그녀의 팀 사람들은 인턴들이 없을 때면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아직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오히려 일을 만드는 경우도 많고, 일을 습득하는 속도도 느리다는 얘기였다. 그런 불만들은 ‘그래도 우리가 인턴을 챙겨야 한다‘는 시혜적인 말로 끝나곤했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팀사람들은 그녀에게 다희와의 관계에 대해 묻기도 했다. 어차피 떠날 확률이 더 높은 사람에게 왜 그렇게 잘해주느냐고. 그녀는 그저 통근하는 경로가 비슷해서 같이 차를 타고 다니는 거라고 답했다. 공채 출신의 정규직 사원과 친밀하게 지냈더라면 그런 질문을받을 일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웃으며 사무실을 나왔지만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다.

가끔은……제가 커다란 스노볼 위를 기어다니는 달팽이 같아요. 스노볼 안에는 예쁜 집도 있고,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선물 꾸러미도 있고,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저는 그걸 계속 바라보면서 들어가지는 못해요. 들어갈 방법도 없는 것 같고.

다희와 함께 출근하던 마지막 한 달 동안, 둘은 그날 일을 입에올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대화했다. 그것이그녀는 슬펐는데, 다희도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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