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고 이용마 MBC 기자는 월간지 《참여사회> 11호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검사‘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권력의 사냥개‘다. 주인이 "가서 물어!"라고 시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가서 무는 존재, 주인이 시키기 전에는 절대 물 수도 없는 존재다.
(・・・) 하지만 최근엔 이런 사냥개 이미지에 한 가지 더 덧붙여졌다. 권력자에게 빌붙어 아양을 떠는 애완견 이미지다. 돈많고 힘센 권력자들의 무법 행위 앞에서 비굴하게 꼬리를 내리고 기분을 맞추려고 보이는 행태를 빗댄 것이다."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된다.
면, 법률마저 바꿔 권력기관의 모든 틀을 문재인 정부 이전의 모습으로 돌리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당시 민정수석으로 권력기관개혁을 주 임무로 삼고 일했던 나로서는 무참한 심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진과 퇴행을 예상하고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해 국민 여러분 앞에 석고대죄하고 싶다. 내가 부족했다.

민주화운동의 원로인 함세웅 신부는 2023년 7월 23일 오마이TV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분이 위장을 좀 잘했대요. (…) 검찰청장 후보자가 검찰을개혁하겠다고 약속을 하니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믿을 수밖에없죠. 그 말을 조사를 합니까? 수사를 합니까? 아주 위장술이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속았고 저희도 속았습니다.

2장에서 서술하겠지만,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사라지고 법을이용한 지배rule by law‘가 판을 치고 있다. 군사독재 시대에서는 검찰권이 정치권력의 의도대로 운영되는 정도였다면, 이제 검찰 자체가 정치권력을 잡았다. "권력의 시녀가 권력 자체가 된 것이다.
검찰청이 경찰청, 국세청, 관세청 등 17개 청 위에 군림함은 물론,5정부 각 부서 요직에 전현직 검사를 배치해 "검찰 가족이 지배하는나라가 만들어졌다. 전두환 정권 시절 육사 ‘하나회‘가 권력의 핵심역할을 했다면,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는 전현직 검사들이 권력의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신군부대신 ‘신부 집권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검찰이 지배하는 ‘대한검檢국‘이 되어버렸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을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로 바꾸고, 제2항을 "대한민국의 주권은 검찰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검찰로부터 나온다"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검사들은 종종 자신을 ‘칼잡이‘, 즉 ‘검사‘로 자처한다.
이 점에서 윤석열 정권은 우리 역사에서 고려시대 무신정권武臣政權 현대의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이은 네 번째 무신정권이다. 각각 칼, 총, 형벌권을 무기로 삼고 거병해 정권을 잡았다. 무신정변 후에는 항상 피바람이 불었다. 이의민은 의종의 허리를 부러뜨려 죽였고,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 등을 일으켜 수많은 민주화 인사를 중정에서 고문했고 마침내 ‘사법살인‘했으며, 전두환은 광주에서 피의 학살을 저질렀다.

문재인 정부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지향하면서 단계적으로검경 간의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고 성취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기 위해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행사하는 범죄를 담당하는 ‘중대범죄수사청‘ 법안 발의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시행령을 통해 이러한 모든 개혁을 무산시켰다. 2017년과 2019년 거리를 밝혔던 촛불시민의 요구는 중대한 일격을 맞았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러한 반동에 대해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한다.

자유는 법률의 보호를 받아 최초로 성립한다. 이 세상에 법말고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 법이야말로 자유를 지켜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다.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당연한 성현의 말과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법이 정부의 노예이고, 법이 자유를 옥죄는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법은 ‘지배 계급의 도구‘라는 마르크스주의 명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이 판결을 접하면서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했던 이탈리아계 정치인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가 떠올랐다. 그는 1930년대 초 대공황 시기에 잠시 뉴욕시 치안판사로 재판을 하게 됐다. 그는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어느 노파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배고픈 사람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도시 시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방청객 모두에게 각각 50센트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철학자 강남순 교수는 "폭력과 보복의 얼굴을 가진 정의와 "연민과 환대의 얼굴"을 가진 정의를 구별한다. 전자는 "특정 그룹의권력 강화와 이익 증진을 위해 국가·정치 집단·시민 집단 또는 파괴적 분노에 사로잡힌 개인들이 호명하는 정의"라면, 후자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와 평등한 삶을 증진하고 다층적 운동을 하는 이들이 실천하는 정의다.

나는 한국 법 현실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법과 법학이 우리 현실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법학을 공부한 이래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Thoreau가 1849년에 지은 명저 시민불복종에서 한 말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인간men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신민臣民, subject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the law에 대한 존경보다는먼저 정의the right 에 대한 존경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은 ‘국가‘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우
‘리는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인간을 국가의 틀과 규범 안으로욱여넣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고통을줄이기 위해 국가의 틀과 규범을 넘어설 ‘자연권’이 있으며, 이를 억압하는 국가에 맞서고 그 국가를 개조하고, 나아가 전복할 ‘저항권‘
이 있다.
이러한 법 사상이 없었다면, 종교개혁도, 반봉건시민혁명도,
반제민족해방도, 반독재민주화도, 여성해방운동도 없었을 것이다.
"법에 대한 존경"보다 "정의에 대한 존경"이 먼저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로처럼 나 역시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법에 대한 존경은 과잉 강조되고, "정의에 대한 존경"은 과소강조되고 있다.

법학과 법률가는 이런 점을 직시해야 한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강조했다. "분별 있는 관찰자"는 "역사의 수많은 부분을차지해 온 고통과 불평등에 대해 무지하거나 이에 대한 인정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15 존 롤스John Rawls도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회적 가치들, 자유, 기회, 소득, 재산 및 자존감의 기반 등은 이들 가치의 전부 또는 일부분의 불평등한 분배가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단순한 불평등은 부정의가 된다(차등의 원칙).

순자는 중용의 핵심을 저울에 비유해 "겸진만물이중현형兼陳
‘萬物而重縣衡"이라고 했다. 즉, "만물들을 다같이 늘어놓고 곧고 바름을 재고 헤아리는 것"21 이다. 최상용 교수의 해석을 빌리자면 이렇다. "겸진만물은 저울에 달려는 물건을 저울판에 옮겨놓는 것을 말하며, 사물의 관계와 인간의 행위를 두루 고려해서 골고루 살핀다는 뜻이다. ‘중현형‘은 저울추를 ‘中(중)에다 달라는 말인데, 이中은 저울눈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달 때마다, 즉사물의 관계와 인간행위를 둘러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官所以不明者 (관소이불명자)民工於謨身 不以漠犯官也 (민공모신 불이막범관야)如汝者 官當以千金買之也(여여자 관당이천금매지야)번역하자면 이렇다. "관이 현명해지지 못하는 까닭은 민이 제몸을 꾀하는 데만 재간을 부리고 관에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같은 사람은 관이 천금을 주고 사야 할 사람이다." 지금 보아도 놀라운 사상이자 판결이다. 현대식 용어로 말하자면, 불의하고 부패한 권력 앞에서 시민은 움츠리지 말고 권력에 대한 비판을 실천해야 하며, 이러한 시민에게는 형벌이 아니라 상찬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은 함석헌 선생의 금언, "깨어 있는 씨알이라야 산다"를 선취先取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수사, 법원의 판결을 더욱 자주 접하게 된다. 법률가들은 자신이 진정한 중용의 자세를 취하고있는지, 아니면 중립의 이름 아래 강자 편을 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의 법 공부가 후자의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법과 법률가 모두에게 비극일 것이다. 예수도 경고했다.
"저주받으리라, 법률가여. 너희는 지식으로 들어가는 열쇠를가지고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막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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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에는 모든 사랑 속에 나를 일인칭으로 투입했었다.
그때의 ‘나‘는 세상의 어떤 사랑에도 도저히 무관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언제라도, ‘나‘에게도 가능한 것이라고 여겼었다.
이십 대를 넘긴 한참 뒤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나는 사랑을 일인칭으로 서술할 수 없음을,
사랑은 일상으로 스며들고 그리움으로 무늬지며 남겨지는 것임을그리고 이제 나는 삼인칭으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이야기해도 사랑은 아름답다.
사랑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화를 다 뛰어넘고,
사랑은 어떤 예측도 불허한다.
사랑은 우리를 훈련시킨다.
우리가 사랑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 놓은 질서나 제도 속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만나면 나는 몹시 즐겁다. 우선은 그들이 주는 신선함이 즐겁고, 두 번째는 내 인물소설의 목록을 하나 더 늘릴 수 있으니 다시 즐겁다.
알고 보면 그렇게 사는 일은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살아가는 인물을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지독한 인생살이는알게 모르게 우리를 위축시키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일은 위험한 시도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세뇌시킨다. 우리는 미리 타협하고 미리 우울해 한다.
여기 덜 위축당하고 덜 세뇌당한 사람들 몇이 있다. 그래서 미리미리우울해 하는 방법은 배우지 않아도 좋았던 사람들. 아찔한 파격이나과격한 탈선은 전혀 없이,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꾸려나가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김 선배, 김밥아주머니, 야채아저씨, 김대호 씨, 박영국 씨, 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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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우리는 어쩔수없이 그 모순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주리는 정말 조금도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참말이지,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모는 전화선 저쪽에서 몰랐을 것이다. 이모의 마지막 말 때문에 내가 그 순간 왈칵 울어버렸다는 것을. 나는 울음을 감추기 위해서 얼른 전화를 끊었다. 벌써 가득 고여 흐르고 있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나는 창밖을보았다. 거기 가을을 건너가고 있는 높고 푸른 하늘이 무심하게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내가 남들보다 술에 대해 월등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된 대학시절 초반 몇 년을 제외하곤 가능한 한 술을 마시지 않은 것도 어쩌면 그런 두려움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타인들 앞에서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장악할 수 없어 스스로를 방치해버리는 순간을 맛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결단코 ‘나’를장악하며 한 생애를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못 했지만,
나는 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번 일로 진모가 개과천선해서 새 삶을 살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기대는 일찌감치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애시당초 진모에게는새 삶이라는 것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 애에게는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다만 역할이 바뀔 뿐이었다.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진모가 해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 애의 마음속에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은 그 애만의 우상이 존재하는 한은.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다 거짓이었다. 사랑은 바다만큼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은 사랑이었다. 아름답지 않아도내 속에 들어앉은 이 허허한 느낌은 분명 사랑이었다. 지금 내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굴곡 심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 이 남자는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사랑이었다. 마음속으로 열두 번도 더 ‘안진진, 괜찮아?‘라고 묻고 있을 이 남자를 통해 나는 앞으로 사랑을배울 것이었다. 때로 추하고 때로는 서글프며 또한 가끔씩은 아름답기도 할 사랑을…………

갈라진 내 음성이 김장우의 주문에 하나를 더 보탰다. 그가 나를 보았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들이 그를 몹시 피곤해 보이게 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밖을 보았다. 거기에도 바다가 있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모래사장을 걷는 남자들과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깔깔 웃어대는 여자들이 점령하고 있는 바다가거기 있었다.

소주에 관한 말은 끊겼지만, 낯설음에 대한 절절한 고백은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진실, 바로 그 진실을말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문득 달리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당황해 하는 출발선상의 달리기 선수처럼 나는 그날 오후 한없이 막막했던 것이다. 오른발부터 내밀고 달려야 하는지 왼발 먼저 힘을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 어디를 움직여야 이 무거운 몸이 앞으로나가는 것인지조차 알수 없게 된 마라토너의 절망이 고스란히 내것이었음을 김장우는 정녕 모를 것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하면 무조건 멈춰야하는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보장하는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거리에서나, 비어있는 모든 전화기 앞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전화의 구속은 점령군의 그것보다 훨씬 집요하다.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란 단 두 가지 종류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그 혹은 그녀일것 같고, 오래도록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고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솔직함보다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죽는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보여주지 못한 채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감정을극대화시키는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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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 정색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것인지 그것조차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내겐 사랑에 꼭 필요한 맹목(盲目)이란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막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이 하나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러나탐색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며, 선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의 대가일 것이므로.

이렇게 말하면 보다 정확해질지도 모르겠다. 강함보다 약함을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연한 향기를 선호하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문제는 김장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화두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향해 직진으로 강한 화살을 쏘지 못한다. 마음으로 사랑이 넘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한참 후에나 희미한 선 하나를 긋는 남자

비비추 때문에 우리가 ‘그날 오후‘에 도착한 시각은 서산으로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바람은 서늘했고, 노을은 아름다웠다. 가장아름다운 오후 시간에 우리는 제대로 ‘그날 오후‘에 도착한 것이었다. 몇 시 몇 분까지 시내로 들어가 몇 시 몇 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봐야 하고 몇 시에 저녁을 먹어야 하는 시간표를 상비하고 다니는 사람들한테는 찾아오기 어려운 우연이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무더웠던 7월이 지나고 8월이 되자 더위가 한고비 꺾였다. 아직 그럴 때도 아닌데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기까지 했다. 이상저온 현상이라고 했다. 지난번 폭염도 대단했는데 그때도 기상대는이상고온이라고 설명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다 이상한 것이라는 뜻일 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모처럼 갈치를 탐하는 식성이 아닌 탓에 내가 이모부에게 관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제 설움에 겨운 어머니도 이야기의 처음에는 맹렬히 아버지를비난하고 나섰다. 말하자면 눈물 콧물 닦아가며 아버지가 어떤 일들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설명하는 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이 도화선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내 아버지의 성토대회에서 가장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사람은 이모였다.

사랑의 배신자를 처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꿈속에서도 생각나지 않도록 완벽하게잊어주는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진모는 아마 진모라면 더욱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비둘기의 배신으로 보스에의 꿈이 조금 무의미해졌겠지만, 그 꿈을 충동질해줄 다른 여자가또 나타날 것이 틀림없으므로,

순식간에 벌어진 이 일에 어머니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말았다. 나의 실수였다. 뽀끌래 미장원이란 명칭에 대해 우리 식구는 이미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너무나 오래된 어머니의단골 미장원이어서 지금은 그냥 하나의 이름일 뿐이었는데………….

나는 조용히 이모가 떨어뜨린 숟가락을 주웠다. 이모도 굳었던얼굴을 풀고 새 숟가락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식탁을 떠났다. 이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주리는 동생을 툭 치며 나무라는 시늉을했다. 주혁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익숙한 솜씨로 접시에 놓인 나물을 썰었다. 어머니도 더 이상은 주혁에게 젓가락질로 시비를 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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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와 똑같은 거짓말을 어쩌면 결혼할지도 모를 남자에게 느닷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 유명한 4월 1일, 만우절, 밤 아홉시 이십분에,
이 거짓말……….

크리스털 화병을 내밀면서 라일락을 말하던 이모 집 정원에도라일락이 없다. 이모 집만이 아니고 그 동네 담장 위로 확인할 수있는 잘사는 집 정원의 수종(樹種)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라일락이 포함되지 않는다. 라일락은 그 화사한 자태와 향기와 멋들어진 이름에도 불구하고 부잣집 정원에 선택되지 않고 초라한마당의 한 뼘 땅에서 더 많이 존재한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 나는 봄이 오면 늘 라일락을 주목했다. 내가 나무라면 나는 라일락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거듭 말하지만 우리 집에는 한 그루의 라일락도 없다.

그래도 어머니는 요즘 무척 행복할 터였다. 진모가 무슨 생각인지 매일 저녁 늦지 않게 돌아와서 자기 방에 불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어머니 표정은 저절로 환해졌다. 냉장고 속에 진모가 좋아하는 갈치토막이 빠지지 않는 것도 다 그 탓일 것이었다. 나는 절대갈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갈치는 아버지가 몹시 탐하는 생선이었고 그래서 진모가 그 습성을 물려받은 것이므로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이렇게 해석해보았다. 김장웁니다. 안진진과 일요일을 함께 보내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서 쓸쓸하게 남도로 떠납니다. 쓸쓸함이 가시면 돌아오겠습니다……….
내 마음대로 해석한 김장우의 전화 메시지 때문에 나는 쉽게 하늘색 전화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동전은 넘치도록 많은데, 뒤에서 빨리 끊어달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데, 조용조용 꽃가지를흔들고 있는 라일락은 저리도 아름다운데, 밤공기 속에 흩어지는이 라일락 향기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은은하기만 한데..…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 달은 모자란 시간 때문에 한없이짧다. 또한,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 달은 무엇이든 다 이룰수 있을 만큼 한없이 넉넉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한 달 동안 사랑을 완성할 수도 있고 또한 사랑을 완전히 부숴버릴 수도 있다.
6월이 지나고 7월이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알았다. 지나간 한달이 나와 김장우의 사이를, 그리고 나와 나영규와의 사이를 깜짝놀랄 만큼 발전시켜 버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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