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고 이용마 MBC 기자는 월간지 《참여사회> 11호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검사‘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권력의 사냥개‘다. 주인이 "가서 물어!"라고 시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가서 무는 존재, 주인이 시키기 전에는 절대 물 수도 없는 존재다. (・・・) 하지만 최근엔 이런 사냥개 이미지에 한 가지 더 덧붙여졌다. 권력자에게 빌붙어 아양을 떠는 애완견 이미지다. 돈많고 힘센 권력자들의 무법 행위 앞에서 비굴하게 꼬리를 내리고 기분을 맞추려고 보이는 행태를 빗댄 것이다."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된다. 면, 법률마저 바꿔 권력기관의 모든 틀을 문재인 정부 이전의 모습으로 돌리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당시 민정수석으로 권력기관개혁을 주 임무로 삼고 일했던 나로서는 무참한 심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진과 퇴행을 예상하고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해 국민 여러분 앞에 석고대죄하고 싶다. 내가 부족했다.
민주화운동의 원로인 함세웅 신부는 2023년 7월 23일 오마이TV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분이 위장을 좀 잘했대요. (…) 검찰청장 후보자가 검찰을개혁하겠다고 약속을 하니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믿을 수밖에없죠. 그 말을 조사를 합니까? 수사를 합니까? 아주 위장술이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속았고 저희도 속았습니다.
2장에서 서술하겠지만,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사라지고 법을이용한 지배rule by law‘가 판을 치고 있다. 군사독재 시대에서는 검찰권이 정치권력의 의도대로 운영되는 정도였다면, 이제 검찰 자체가 정치권력을 잡았다. "권력의 시녀가 권력 자체가 된 것이다. 검찰청이 경찰청, 국세청, 관세청 등 17개 청 위에 군림함은 물론,5정부 각 부서 요직에 전현직 검사를 배치해 "검찰 가족이 지배하는나라가 만들어졌다. 전두환 정권 시절 육사 ‘하나회‘가 권력의 핵심역할을 했다면,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는 전현직 검사들이 권력의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신군부대신 ‘신부 집권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검찰이 지배하는 ‘대한검檢국‘이 되어버렸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을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로 바꾸고, 제2항을 "대한민국의 주권은 검찰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검찰로부터 나온다"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검사들은 종종 자신을 ‘칼잡이‘, 즉 ‘검사‘로 자처한다. 이 점에서 윤석열 정권은 우리 역사에서 고려시대 무신정권武臣政權 현대의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이은 네 번째 무신정권이다. 각각 칼, 총, 형벌권을 무기로 삼고 거병해 정권을 잡았다. 무신정변 후에는 항상 피바람이 불었다. 이의민은 의종의 허리를 부러뜨려 죽였고,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 등을 일으켜 수많은 민주화 인사를 중정에서 고문했고 마침내 ‘사법살인‘했으며, 전두환은 광주에서 피의 학살을 저질렀다.
문재인 정부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지향하면서 단계적으로검경 간의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고 성취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기 위해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행사하는 범죄를 담당하는 ‘중대범죄수사청‘ 법안 발의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시행령을 통해 이러한 모든 개혁을 무산시켰다. 2017년과 2019년 거리를 밝혔던 촛불시민의 요구는 중대한 일격을 맞았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러한 반동에 대해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한다.
자유는 법률의 보호를 받아 최초로 성립한다. 이 세상에 법말고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 법이야말로 자유를 지켜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다.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당연한 성현의 말과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법이 정부의 노예이고, 법이 자유를 옥죄는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법은 ‘지배 계급의 도구‘라는 마르크스주의 명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이 판결을 접하면서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했던 이탈리아계 정치인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가 떠올랐다. 그는 1930년대 초 대공황 시기에 잠시 뉴욕시 치안판사로 재판을 하게 됐다. 그는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어느 노파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배고픈 사람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도시 시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방청객 모두에게 각각 50센트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철학자 강남순 교수는 "폭력과 보복의 얼굴을 가진 정의와 "연민과 환대의 얼굴"을 가진 정의를 구별한다. 전자는 "특정 그룹의권력 강화와 이익 증진을 위해 국가·정치 집단·시민 집단 또는 파괴적 분노에 사로잡힌 개인들이 호명하는 정의"라면, 후자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와 평등한 삶을 증진하고 다층적 운동을 하는 이들이 실천하는 정의다.
나는 한국 법 현실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법과 법학이 우리 현실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법학을 공부한 이래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Thoreau가 1849년에 지은 명저 시민불복종에서 한 말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인간men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신민臣民, subject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the law에 대한 존경보다는먼저 정의the right 에 대한 존경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은 ‘국가‘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우 ‘리는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인간을 국가의 틀과 규범 안으로욱여넣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고통을줄이기 위해 국가의 틀과 규범을 넘어설 ‘자연권’이 있으며, 이를 억압하는 국가에 맞서고 그 국가를 개조하고, 나아가 전복할 ‘저항권‘ 이 있다. 이러한 법 사상이 없었다면, 종교개혁도, 반봉건시민혁명도, 반제민족해방도, 반독재민주화도, 여성해방운동도 없었을 것이다. "법에 대한 존경"보다 "정의에 대한 존경"이 먼저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로처럼 나 역시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법에 대한 존경은 과잉 강조되고, "정의에 대한 존경"은 과소강조되고 있다.
법학과 법률가는 이런 점을 직시해야 한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강조했다. "분별 있는 관찰자"는 "역사의 수많은 부분을차지해 온 고통과 불평등에 대해 무지하거나 이에 대한 인정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15 존 롤스John Rawls도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회적 가치들, 자유, 기회, 소득, 재산 및 자존감의 기반 등은 이들 가치의 전부 또는 일부분의 불평등한 분배가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단순한 불평등은 부정의가 된다(차등의 원칙).
순자는 중용의 핵심을 저울에 비유해 "겸진만물이중현형兼陳 ‘萬物而重縣衡"이라고 했다. 즉, "만물들을 다같이 늘어놓고 곧고 바름을 재고 헤아리는 것"21 이다. 최상용 교수의 해석을 빌리자면 이렇다. "겸진만물은 저울에 달려는 물건을 저울판에 옮겨놓는 것을 말하며, 사물의 관계와 인간의 행위를 두루 고려해서 골고루 살핀다는 뜻이다. ‘중현형‘은 저울추를 ‘中(중)에다 달라는 말인데, 이中은 저울눈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달 때마다, 즉사물의 관계와 인간행위를 둘러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官所以不明者 (관소이불명자)民工於謨身 不以漠犯官也 (민공모신 불이막범관야)如汝者 官當以千金買之也(여여자 관당이천금매지야)번역하자면 이렇다. "관이 현명해지지 못하는 까닭은 민이 제몸을 꾀하는 데만 재간을 부리고 관에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같은 사람은 관이 천금을 주고 사야 할 사람이다." 지금 보아도 놀라운 사상이자 판결이다. 현대식 용어로 말하자면, 불의하고 부패한 권력 앞에서 시민은 움츠리지 말고 권력에 대한 비판을 실천해야 하며, 이러한 시민에게는 형벌이 아니라 상찬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은 함석헌 선생의 금언, "깨어 있는 씨알이라야 산다"를 선취先取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수사, 법원의 판결을 더욱 자주 접하게 된다. 법률가들은 자신이 진정한 중용의 자세를 취하고있는지, 아니면 중립의 이름 아래 강자 편을 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의 법 공부가 후자의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법과 법률가 모두에게 비극일 것이다. 예수도 경고했다. "저주받으리라, 법률가여. 너희는 지식으로 들어가는 열쇠를가지고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막고 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