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우리는 어쩔수없이 그 모순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주리는 정말 조금도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참말이지,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모는 전화선 저쪽에서 몰랐을 것이다. 이모의 마지막 말 때문에 내가 그 순간 왈칵 울어버렸다는 것을. 나는 울음을 감추기 위해서 얼른 전화를 끊었다. 벌써 가득 고여 흐르고 있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나는 창밖을보았다. 거기 가을을 건너가고 있는 높고 푸른 하늘이 무심하게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내가 남들보다 술에 대해 월등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된 대학시절 초반 몇 년을 제외하곤 가능한 한 술을 마시지 않은 것도 어쩌면 그런 두려움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타인들 앞에서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장악할 수 없어 스스로를 방치해버리는 순간을 맛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결단코 ‘나’를장악하며 한 생애를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못 했지만,
나는 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번 일로 진모가 개과천선해서 새 삶을 살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기대는 일찌감치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애시당초 진모에게는새 삶이라는 것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 애에게는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다만 역할이 바뀔 뿐이었다.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진모가 해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 애의 마음속에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은 그 애만의 우상이 존재하는 한은.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다 거짓이었다. 사랑은 바다만큼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은 사랑이었다. 아름답지 않아도내 속에 들어앉은 이 허허한 느낌은 분명 사랑이었다. 지금 내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굴곡 심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 이 남자는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사랑이었다. 마음속으로 열두 번도 더 ‘안진진, 괜찮아?‘라고 묻고 있을 이 남자를 통해 나는 앞으로 사랑을배울 것이었다. 때로 추하고 때로는 서글프며 또한 가끔씩은 아름답기도 할 사랑을…………

갈라진 내 음성이 김장우의 주문에 하나를 더 보탰다. 그가 나를 보았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들이 그를 몹시 피곤해 보이게 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밖을 보았다. 거기에도 바다가 있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모래사장을 걷는 남자들과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깔깔 웃어대는 여자들이 점령하고 있는 바다가거기 있었다.

소주에 관한 말은 끊겼지만, 낯설음에 대한 절절한 고백은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진실, 바로 그 진실을말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문득 달리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당황해 하는 출발선상의 달리기 선수처럼 나는 그날 오후 한없이 막막했던 것이다. 오른발부터 내밀고 달려야 하는지 왼발 먼저 힘을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 어디를 움직여야 이 무거운 몸이 앞으로나가는 것인지조차 알수 없게 된 마라토너의 절망이 고스란히 내것이었음을 김장우는 정녕 모를 것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하면 무조건 멈춰야하는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보장하는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거리에서나, 비어있는 모든 전화기 앞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전화의 구속은 점령군의 그것보다 훨씬 집요하다.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란 단 두 가지 종류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그 혹은 그녀일것 같고, 오래도록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고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솔직함보다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죽는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보여주지 못한 채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감정을극대화시키는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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