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를 여는 첫 장면인 저녁 파티는 유난히인물이 많은 소설이 될 작품의 첫 장에서 주요 인물을
‘위치시키는 어려운 기술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어떤 독자도 지루하고도 하찮은상트페테르부르크 연회에 연이어 도착하는 이들을 한명이라도 잊거나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의강력한 손길로 톨스토이는 모든 인물들을 한데 모아우리 앞에서 행동하게끔 만든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는 소설가가 이 다음으로직면해야 할 질문이다.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는 기술은도입부에서 여러 인물을 제시하는 능력보다 훨씬 더중요하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에서 보잘것없는 한남자의 죽음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우화로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충분히 전개했다. 조금 더나아갔더라면 지나친 복잡함과 꼼꼼함이라는빠졌을 테고, 불필요한 세부 묘사로 의미를 퇴색시키고말았을 것이다. 자신의 주제가 요하는 돛의 양에 대해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감각을 지닌 또 다른 작가는모파상이다. 가장 좋은 증거는 「이베트」에 들어 있다. 꽃한 송이가 어떻게 나비 한 마리에 꺾이고 마는지에 관한 끔찍한 기록 말이다.

발자크, 톨스토이, 새커리, 조지 엘리엇과 같은위대한 소설 작가들(끊임없이 그들에게로 돌아간다!)은전부 주제의 비율에 관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고, 위대한주장을 펼치기 위해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살라티엘 파비(Salathiel Pavy)의 묘비명을 쓴벤 존슨의 시보다 더 아름다운 영어 운문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실낙원」에는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며, 넉넉한분량으로 쓰였기에 그만큼 위대해졌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작업에 돌입할 때부터 자신이 손에 쥔 주제가살라티엘 파비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실낙원』에 관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깨달음을 주는 사건은 소설가가 지닌 상상력의감수성에 대한 증거일 뿐 아니라 그의 이야기에현재성과 직접성을 부여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하다. 대화보다는 깨달음을 주는 사건을 적절히 활용했을 때 직접성의 효과가 훨씬 더 크다.

그러나 깨달음을 주는 사건을 선택하는 일은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프랑스인들이말했듯, 방식이 중요하다. 정원 장면에서 스탕달이 보여준 무심하고 직설적인 서술은 모든 단어, 모든 구절이의미 있다. 방식에 관한 질문(각 장면에 적용되는특수한 방식)은 소설가가 결코 방심해선 안 되는 또다른 지점으로 이어진다. 모든 이야기가 고유한 층위를지닌다는 말은 그것만의 방식, 전체 의미를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내포한다는 뜻이다.

괴테는 오직 생명의 나무만이 푸르며 모든 이론은회색이라고 선언했다. 생각에 대해 생각한 적 없다"고자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에 대해 생각한 적이없을지언정, 그는 예술에 대해선 매우 많은 생각을했기에, 예술적 실천에 관한 그의 격언은 자칭철학자들보다 더욱 심오하다.

그런데 대륙의 소설가들, 예컨대 톨스토이, 발자크,
플로베르의 소설에서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인물 묘사는 관습 연구와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어있다. 「루진」에서 투르게네프는 단일한 인물의 묘사로구축된 소설의 꽤나 드문 예를 보여 주었다. 그 반대편에놓인 새뮤얼 버틀러의 만인의 길」은 탁월한 인물 묘사덕에 가족과 사회 집단의 초상화를 그려 냈는데, 우리가발견할 수 있는 가장 독특한 ‘관습‘소설 중 하나다.
이러한 서두의 제안들은 피상적이긴 해도, 단순히정의 내리는 것보다는 인물 혹은 상황에 더 무게중심을두는 다양한 소설의 유형을 유념하는 데 도움이 될 수있다.

진정한 상황소설, 즉 보다 압축적이고 무엇보다도더욱 불가피한 사건을 담은 작품은, 최소한영어권에서는 외부 사건들이 뒤얽히는 의미에서의기존 ‘플롯‘ 개념이 진짜 드라마는 영혼의 드라마라는발견으로 변화하고 나서야 형태를 갖추었다. 실제로상황소설은 영어권에선 한 번도 통용된 적 없다. 반면프랑스에선 17~18세기 심리소설로부터 자연스럽게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인물들의 갈등은 도입부부터인물 자체의 묘사를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었고, 주인공은특정 개인이 아닌 특수한 열정의 소유자로 탈바꿈하곤했다.

소설 리뷰의 싸구려 공식들을 버리고 예술의 의미와한계에 관한 보다 명확하고 깊은 표현을 찾고자하는 사려 깊은 비평가라면, 상황소설과 인물(또는관습)소설을 필연적으로 대립적이고 상호인
것으로 말로만 그럴듯하게 정의 내라는 매 분개할것이다. 그 사려 깊은 비평가가 좋을 것이며 사깊은 소설가는 그와 견해를 같이 할 것이다. 거의 모든다양하고 풍부한 위대한 소설들이 두 유형의 소설을하나의 걸작으로 결합해 낼 수 있는 빛나는 가능성을보여 주는데, 그러한 자의적인 구분이, 하나를 다른하나에 대립시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담아내답은 명확하다. 창작 능력이 어느 정도 이상이되면 서로 상충되는 듯 보이는 다양한 방법들이 작가의종합적인 시야 안에서 한데 모이고, 주제에 내재한상황들은 전체적인 구성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완전한 배경 안에서 도드라지게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두고 했던 말처럼, 우리의 질문을따르는 게 아니라 다만 자유로이 쓴 가장 위대한소설가들에게만 해당된다. 그들의 드넓은시야는 그만큼이나 대단한 구성력의 힘과 결합되어있다. 하지만 많은 소설가들은 창조적인 시야를가졌으나 구성력과 표현력은 부족하거나, 혹은 한 작품내에서 인물을 빚어 가고 상황을 충돌시키는 데 동등한힘을 쏟을 능력이 없다. 언제나 모든 분류를 넘어서는최고의 도구를 지니지 못했기에, 대부분의 소설 작품은상황소설이나 인물소설 둘 중 하나로 분류될 수밖에없으며, 그로써 소설 세계는 갈등 상황 혹은 인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피상적인 비평가들의 이론을 강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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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두려움에 있어서라면 새커리는 타고난재능 덕에 가장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트롤럽은아마 제인 오스틴의 아류였을 테고, 새커리 이후로 영국소설가들 중 가장 풍성한 재능을 타고난 조지 엘리엇은비난하거나 촉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멈칫거리는대신 위트와 아이러니와 섬세함이라는 보물을 쏟아부었을지도 모른다.

편의상 분류하자면 대부분의 소설은 관습소설,
인물(혹은 심리)소설, 그리고 모험소설이라는 세 유형중 하나에 속한다. 이렇게 지정하면 서로 다른 방법론을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각각의전형적인 예시로 첫 번째 유형에는 허영의 시장」,
두 번째 유형에는 「마담 보바리」, 세 번째 유형에는[롭 로이」혹은 「밸런트레이 귀공자가 속한다고 할 수있다. 이러한 분류는 익살스러운 관습소설, 로맨스,
그리고 철학적 로맨스라고 불리는 하위분류를 포함할수 있도록 더 확장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첫 번째유형에는 픽윅 클럽 여행기』가, 두 번째 유형에는「해리 리치먼드의 모험』과 파르마 수도원』혹은 로나둔』이, 세 번째 유형에는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혹은 에피쿠로스 학파 마리우스가 독자들 앞에놓일 수 있다.

분류를 위한 모든 시도는 학교 시험 또는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내용처럼 여겨질 수 있으며,
워즈워스의 "오쿠쿠, 너를 새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방황하는 목소리?"라는 구절과 관련해 학생더러 "더나은 구절을 쓰고 그 이유를 밝히라"고 지시하는 악명높은 시험 문제의 수준으로 사안을 축소시킬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분류는 늘 자의적이고 폄하적이다.

소설가는 많은 주제가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서로다른 유형의 요소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떤방법을 사용할지 결정하는 데 가장 먼저 관심을 둔다.
예컨대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과 외제니 그랑데에서거의 동일한 요소들을 포함하는 서로 다른 두 방법을썼다. 하나는 끔찍한 아버지를 광대한 사회적 파노라마한가운데에 서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느생기 없는 시골 마을이라는 좁은 배경 위에 서너 명의주변인물들과 더불어 그 구두쇠(이야기의 제목이 된바로 그 이름)를 몰리에르처럼 양각으로 새겨 드러내는 것이었다.

‘상황‘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지는 않은 모든주제에 관해서라면 소설이 훨씬 더 우월하며, 이는 그저자유, 즉 하나의 표현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 수월하게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러티브가 허용하는방식으로 설명하고 해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방울처럼 능숙소설에서 대화의 사용은 꽤나 명확한 규칙을 정할수 있는 몇 안 되는 문제다. 대화는 절정의 순간을 위해남겨 두어야 하며, 서사의 거대한 물결이 해안가에있는 관찰자를 향해 휘어지며 부서질 때의 물보라로여겨야 한다. 일어났다 흩어지는 파도 반짝이는물보라, 심지어는 짧고 들쑥날쑥한 문단으로 나뉘는페이지의 단순한 시각적 광경 자체까지도 서사의 간격안에서 절정의 순간들과 매끄럽게 사라지는 움직임 사이의 대비를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단편소설 쓰기에 관해, 계획과 전개의 모든 세부사항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에 내가 지나치게 연연하는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단편소설은 즉흥이다.
땅속에 단단히 박힌 견고한 기념물과도 같은 소설과달리, 단편소설은 휙 떠오른 공상의 일시적인 은신처인 것이다.

것이다.
이는 단지 규모가 다른 것만이 아니라, 그렇게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단편소설이 둘 이상의 삶을 연결하는 극적인 절정의축소판이라면, 전형적인 소설은 일반적으로 시간의간극을 두고 나뉜 일련의 사건이 점진적으로 전개되는과정을 다루며, 이때 중심인물들 외에도 많은 이들이어느 정도 부차적인 역할을 한다. 소설에선 옷을 말고갑판을 정리할 필요가 없다. 소설가는 자신의 주제가필요로 하고 항해술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범포와 승객을 실어야 한다.

한 세대 전 영국에서 소개된 무대 사실주의는 극과무관한 기물을 잔뜩 놓음으로써 그러한 배경 지표들을감춰 버렸다. 그러나 그 사물들은 극작가만큼이나소설가에게도 중요하기에, 구성의 미로 속 안내자들로서지금도 건재하다. 연극과 소설에서 모두 반쯤 그린인물을 여럿 세우는 것보다 단 몇 명의 인물을꿰뚫듯 탐구하는 편이 훨씬 더 심오한 효과를 낼수있다. 소설가든 극작가든 예상되는 이야기의 끝까지우선 따라가 보고, 그 인물이 없을 때 이야기가 더빈약하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은 채로 인물을 만들어내는 모험을 해선 안 된다. 미리 임무를 부여받지않은 인물들은 다른 유형의 어중이떠중이들만큼이나 당혹스러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는 또 다른 중요한 원칙으로 이어진다.
소설가에게 있어 풍경이나 거리, 혹은 집이 주는 인상은영혼의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어야 하며, ‘묘사하는문단’을 쓰는 것과 그 스타일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즉,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지성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만을 묘사해야 하며, 그지성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서술되어야 한다.

단편소설에 관한 장에서도 서술했듯, 어느 누구도똑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으며, 이야기꾼은 주제를선택한 다음 문제의 일화가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발생할지를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한다. 똑같은 경험도누가 겪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소설에적용하면 어려운 문제처럼 보일 수 있는데, 형상화되는인물의 입장에서 더 긴 시간 범위가 필요하고 행동의반경에 더 많은 인물이 필요한 데다 독자가 일어날법하다고 느낄 만큼 전지적이며 편재한 서술이 필요하기때문이다. 이 문제는 전체적인 개인사를 유지하면서도인상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방편, 즉 한 인물에게서 다른 인물에게로 시선을 이동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반사체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아니다. 더욱더 힘든 건 각각의 시선이 어느 장면에서드러날지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가능한 유일한 규칙은첫 번째 반사체가 어떠한 개연성하에서도 인지할 수없거나 인식하더라도 반응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이야기를 진척시키기 위해 곁에 있는 또 하나의 반사체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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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헛된 듯 보이던 오랜 세월 동안 하찮은 것들을
‘귀중하게‘ 벼려낸 그 각오란 실상 그가 지닌 힘의비결이었다. 습관이 사람을 만들듯 작가의 문체를만든다. 자신의 생각을 거의 만족스럽게 표현하는 데여러 번 흡족함을 느낀 작가라면 단번에 자신의 재능에 경계를 그으며, 결코 그것을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주제는 그 자체로 우리의 도덕적경험을 비추는 무언가를 담고 있어야 한다. 만약그 확장성, 그 필수적인 반향이 없다면 그 주제는아무리 표면이 화려해 보여도 그저 지엽적인 해프닝,
맥락에서 찢겨 나온 무의미한 사실의 조각에 지나지않는다. 그러나 상상력을 통해 충분히 깊이 탐구했다고해서,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모든 해프닝으로부터잠재력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절반의진실일 뿐이다. 그 반대 역시 진실이다. 즉, 상상력이제한되면 위대한 주제도 협소해진다. 그러나 폭넓은창조적 시각이 있다면, 비록 인간 경험의 어떠한단면도 온전히 공허하게 보일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본능적으로 우리가 공통으로 겪는 괴로움의 면면이극적이고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들을 모색할 수있다. 그 자체로서 삶 안에 흩어져 있으며 결정적이지 :않은 사건들의 일종의 요약 혹은 축약본이 되는 주제들말이다.

정말로 좋은 주제를 잡았다면 작가는눈물이 날 정도로 깊이 파고들기만 하면 되는데,
러시아인들은 거의 항상 그 깊이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프랑스와 러시아의 예술이 함께 빚어낸 결과,
단편소설은 형식의 심오함과 더불어 그 감각의 굉장한엄밀성을 얻게 되었다. 삶의 표면에 느슨하게 걸친거미줄 대신, 그들은 인간 경험의 본질로 곧장 향하는최적의 통로를 만들어 냈다.

독자의 신뢰를 얻고 나면, 다음 원칙은 독자의주의를 산만하게 하거나 흩뜨리는 일을 피하기다.
공포 이야기가 되고자 하는 많은 소설들은 공포를늘어놓거나 다채롭게 만듦으로써 더 무섭지 않게된다. 무엇보다도, 공포 요소를 늘어놓는다면 그것들이 분산되는 게 아니라 누적되어야 한다.

특수한 경우에는 이 원칙을 옹호할 수 있다. 그러나어떠한 일반 이론을 세우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모든 ‘주제‘는 (소설가의 입장에서) 필연적으로 자체적인차원을 내포해야 한다. 그리고 소설가의 본질적 재능 중하나는 그 주제가 현현을 요청하며 소설가에게 스스로를내보이는지를, 그리고 그 분량이 단편에 적절할지장편에 적절할지를 식별하는 일이다. 만약 둘 모두에적용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면 둘 다에 부적절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단편소설이 절정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도덕적 드라마를 활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만약 해당사건이 한 번의 불현듯 떠오르는 회고를 통해 충분히다뤄질 수 있는 경우라면 단편소설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만약 주제가 무척 복잡하고 연속적인 단계들이매우 흥미로워 정교하게 해명될 필요가 있는 경우,
시간의 경과가 반드시 암시되어야 하므로 소설의 형식이 적절하다.

작가가 자신의 뒤엉킨 ‘재료‘를 더듬거리기 시작하는순간, 즉 어떠한 실제 사건이 어수선하게 넘쳐나는지점들 사이에서 망설이기 시작하는 순간, 독자는 곧장머뭇거리게 되고, 그러면 현실의 환상은 사라지고 만다.
인쇄된 페이지 위의 문장들을 주시하지 않으면 연극에서무대 위의 시각 장치들에 유념하지 않아 주제가‘진행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실패를 낳는다. 단편소설작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술적 묘기를 최소한으로줄여야 한다. 가장 영리한 여배우가 화장을 가장 옅게하듯이 말이다. 다만 그가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은 종이위에 살아남은 그 최소한의 묘기가 독자의 상상력과 자신의 상상력 사이를 잇는 유일한 다리라는 점이다.

관부적절하거나 비현실적인 결말은 소설에선 그효과가 미미할지 몰라도 단편소설에선 그 가치를 매우떨어뜨린다. 서술된 이야기가 무엇이든 4,500번째단어에서 끝맺도록 자동 설정한 여섯 개 정도의
‘표준화된‘ 결말을 보여 주는, 기계적으로 찍어 낸 듯한암울한 규칙성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모든 주제가고유한 차원을 지니고 있으므로 명백히 그 결론도처음부터 지어지게 마련이니, 가장 깊은 층위의 의미에부합하게끔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면 그 작품의 의미는 없어진다.

이는 또 다른 요점으로 이어진다. 보여 줄 도롱뇽이없다면, 독자의 귀를 막아 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핀 작은 불꽃의 중심부가 살아 움직이지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흔들더라도 독자의 기억 속에 일화를각인시킬 방법은 없다. 이야기를 말할 가치가 있는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도롱뇽이다.

단서가 주어지면 작가는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손길은 확고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싶은 것, 혹은 그 이야기가 말해질 가치가 있는 이유를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제에 대한 이러한확고한 지배력을 갖기 위해선 아무리 단편소설이라도쓰기 전부터 깊이 숙고해야 한다. 자신이 택한 형식이지니는 한계로 인해 캐릭터를 정교하게 만들어 현실과의유사성을 연출할 수 없기에, 단편소설 작가는 모험자체를 더욱더 생생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언젠가 뉴욕의 한 유명한 프랑스 제과점 주인은 그가만든 초콜릿이 맛있긴 한데 왜 파리의 초콜릿과는다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여기선비용 때문에 프랑스 제과업자들만큼이나 여러 번 작업할수 없기 때문이죠." 또 다른 가정적인 비유도 이 교훈을확실히 일러 준다. 가장 단순해 보이는 소스는 가장절묘하게 배합해 섞은 소스이며, 가장 단순해 보이는드레스는 디자인하는 데 가장 많은 연구가 필요한 법이다.

선택이라는 귀중한 본능은 오랜 인내로 제련된다.
우리가 천재는 아닐지라도, 천재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전달하고자 가장 의존하는 것은 틀림없이그 인내심이다. 이 점에서 반복과 고집은 허용된다.
이야기가 짧을수록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 세부사항이 더 많이 탈락되고, 불필요한 것을 버렸을 때도무엇을 유지할지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중요한요소들이 배치되는 순서가 지니는 효과에 더 의존하기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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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각과 감각의 동요, 지나가는 모든 인상에관한 자동적인 반응을 기록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현재의주자들이 여기는 듯한 바와는 달리 그다지 새롭지않다. 대부분의 위대한 소설가들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삼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설계에 부합하도록 하기위해 활용해 왔다. 가령 극심한 정신적 고통의 순간을묘사하는 게 목표인 경우, 일련의 단절된 인상들을무의미한 정밀함으로 기록하는 일이 그에 부합할 때말이다. 소설이 심리적인 것이 된 이후로 감정의 파고를생생하게 만드는 ‘효과‘의 가치는 줄곧 알려져 있었고,
소설가들은 그러한 경우에 애먼 하찮은 생각들이 뇌에영향을 미치는 강도를 점점 더 인식해 오고 있었다.

얼마 전 한 문필가가 도스토옙스키가 톨스토이보다우월하다고 선언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정신이 "더 혼란스럽기에, 그가 전반적인 러시아인들의혼란스러운 내면을 보다 "진실하게 표현한다는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혼란에 깊이 빠진 내면이 어떻게혼란을 파악하고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밝히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 주장은 상상 속 감정과 그객관적 표현을 혼동한 결과였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특정한 인물을 만들어 내거나 특수한 사회적 상태를묘사하려는 소설가라면 스스로를 그들과 동일시할 수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예술가가 상상력을 지녀야한다는 말을 길게 늘어놓은 셈이었지만 말이다.

한편 언어로 표현하는 건 훨씬 더 어려운데, 대상과 예술가 사이의관계가 너무 밀접하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자신이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탄생하는 바로 그 재료로작업한다.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선 영혼이 스스로를표상하는 데 쓰는 기호들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대상을 다시 볼 때 물감이나 대리석, 혹은 청동으로표현하는 경우엔 복잡하게 뒤얽힌 실제로부터예술적 시각을 분리해 내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
한편 생각 자체가 만들어지는 데 사용되는 바로 그단어 덩어리들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은 무한히 어려워진다.

무엇이든 하나를 알기 위해선훨씬 더 많은 다른 것들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매튜아놀드가 오래전 지적했듯, 당면한 주제에 관해 눈에보이는 부분적인 결과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아야한다. 영국인만이 아는 영국에 대해 저들이 무엇을알아야 하는가?"라던 키플링 씨의 말은 창조적인예술가에게도 상징적인 좌우명이 될 수 있다.

경험과 사색이 무슨 소용이냐고. 답은 이것이다. 그가독자들(그리고 편집자와 발행인)을 떠올리기를 완전히멈추고,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창조적인 예술가가항상 신비로운 서신을 주고받는 어딘가에 실재하며언젠가 발신자도 모르는 사이에 답신을 받게 될 또다른 자아를 위해 쓰지 않는다면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없을 것이다. 지적이고 도덕적인 경험의 경우, 창조적상상력은 마음속에 충분히 오래 머금고 또 충분히곱씹는다면 작은 것이라도 멀리 갈 수 있다. 한 번의비통한 사건으로 시인은 많은 노래를, 소설가는 여러편의 소설을 얻게 될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서질 수 있는 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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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우두머리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는 적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벌레들이 고향을파괴하도록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월말의 어느 날 밤에 마을 우두머리는 잠에서 깨어 아들인하반마오에게 따라오라고 일렀다. 열여덟 살인 마오는 누구보다도 준수하고 총명하고 사려 깊었다.

뚜바는 언제나 벙어리 영감 하반노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 뚜바는 보이는 것도 평범할뿐더러 일반적인 뚜바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보기 싫게 생겼고 다른 뚜바들보다 소리도 절대 크게 나지 않았다.

딸아이의 생일을 맞아, 티에 여사는 음식을 장만하고 손님들을 초대했다. 그날 참석자는 거리에서 금은방을 하는 여사둘과 티에우 씨와 같은 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둘 그리고 토아의 친구인 젊은이 댓 명이었다. 닭기름 색 새틴으로 만든 옷을 위아래로 차려입은 티에 여사는 열 살은 젊어 보였다. 청바지에 붉은 티셔츠를 입은 토아는 반짝반짝 빛이 났고 제법귀티가 흘렀다. 그녀의 어머니 말에 따르면, 토아의 아름다움은 ‘정신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점은 좀 의심스럽다. 토아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이고 대학 입시에도 낙방했으며 지적훈련이라고는 야간 영어 수업용 교재를 보는 게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바로 그 젊음과 살랑거리는 엉덩이, 코를 찡긋할 때의 기막힌 행동거지는 과연 매력적이었다.

오후에 퐁은 티에우화를 데리러 갔다. 두 사람은 즐겁게 먹고 마셨다. 처음에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다가, 나중에는 약 기운이 퍼지면서 서로 어깨를 가까이하고 흐트러졌다. 퐁은 티에우화를 부축해서 방으로 들어왔다. 브엉빈 영감이 문을 닫고앉아서 보초를 섰다. 그날 이후로 그들은 몇 번 더 함께 다녔다. 티에우화가 젊은 퐁을 만난 것은 실로 큰 가뭄에 소나기를만난 것과 같았다. 두 사람은 함께 살자고 맹세를 했다.
약속한 날짜가 되자 퐁은 까이강 나루로 나가 물건을 받아서선라로 갔다.

산간 마을에 있는 사범학교에서 7월 말에 고원지대 교사를위한 훈련 교실을 열었다. 열한 명이 참가했고, 그들 모두는 처음 수업을 하는 젊은 교생들이었다. 도시의 독자 여러분은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의 고원지대 학교에 대해 분명히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곳
‘보다 더 단조롭고 이익을 덜 추구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것뿐이다. 그곳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낄지는 여러분에게 달렸다.

"아무도 믿어서는 안 돼! 사는 건 참 쉽지! 어려움에 닥쳐서사람을 믿으면 끝장이야! 사람은 누구나 다 배신을 할 가능성이 있어. 가장 고귀한 믿음조차도 배신을 하지. 그래서 죽음이라는 게 있는 거야…….… 유일하게 죽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신화야………… 신화 속에서는 사랑이라는 게 가장 위대하고도 쓰라린 신화적 존재지………."

"말씀드리자면, 칠전팔도七顚八倒하기도 했지만요, 결론적으로는 사는 건 참 쉽더라고요! 아빠 기억하세요? 그 시절 수업에 열한 명이 있었잖아요……… 반이나 죽어버렸어요・・・・・ 전은지금 진짜 높은 관리가 돼서 더 이상 교육 쪽 일은 하지 않고요. 히에우는 심각한 중독자가 돼서, 아편 중독요, 제자하고까지 놀아나는 바람에 학교에서 쫓겨났어요."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람 그림자 하나 없어야 한다는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사는 건 참 쉽다! 그는 반드시 돌아갈것이다! 그는 거기로 갈 것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동물닐까? 내일을 위해…….… 내일을…………

그렇게 가끔씩, 서너 달마다 아버지는 신문에 인쇄된 호앗삼촌의 시나 풍자 민요를 찾아냈어요. 아버지는 신문들을 열심히 살펴보았어요. 신문을 사는 돈이 우리 집에서 적지 않은 소비 항목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우리 금두꺼비 매형이 전부 책임을 졌죠. 푹 매형이 나에게 말했어요. "계속 노인네가 그 쓸데없는 일에 빠져 있도록 놔두자고, 만약 노인네가 다른 일에정신이 팔려 있다면 우리만 죽어날 테니까." 나는 매형의 그런실용적인 사고방식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매형은 아버지랑나이도 거의 비슷했고 게다가 나에게 용돈도 자주 주었기 때문에 그냥 그 말에 따랐죠.

비가 왔고, 나는 길가에 있는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주인은 손님에게 호의적이었고 꽤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식당 벽에는 가족들의 사진이 몇 장 걸려 있었다. 나는 그저 문득 빛나는 눈에 어딘가에 몰두하는 듯한 눈빛이 어리고,
한편으로는 마음을 졸이며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은 사람이 찍힌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눈빛이 계속 나를 따라다녀 끊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식당 주인에게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아………… 그 사람은 우리 호앗 삼촌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싶으세요? 그럼 맥주 몇 병과 안주를 주문하시면 선생님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이런 날씨에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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