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각과 감각의 동요, 지나가는 모든 인상에관한 자동적인 반응을 기록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현재의주자들이 여기는 듯한 바와는 달리 그다지 새롭지않다. 대부분의 위대한 소설가들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삼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설계에 부합하도록 하기위해 활용해 왔다. 가령 극심한 정신적 고통의 순간을묘사하는 게 목표인 경우, 일련의 단절된 인상들을무의미한 정밀함으로 기록하는 일이 그에 부합할 때말이다. 소설이 심리적인 것이 된 이후로 감정의 파고를생생하게 만드는 ‘효과‘의 가치는 줄곧 알려져 있었고,
소설가들은 그러한 경우에 애먼 하찮은 생각들이 뇌에영향을 미치는 강도를 점점 더 인식해 오고 있었다.

얼마 전 한 문필가가 도스토옙스키가 톨스토이보다우월하다고 선언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정신이 "더 혼란스럽기에, 그가 전반적인 러시아인들의혼란스러운 내면을 보다 "진실하게 표현한다는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혼란에 깊이 빠진 내면이 어떻게혼란을 파악하고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밝히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 주장은 상상 속 감정과 그객관적 표현을 혼동한 결과였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특정한 인물을 만들어 내거나 특수한 사회적 상태를묘사하려는 소설가라면 스스로를 그들과 동일시할 수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예술가가 상상력을 지녀야한다는 말을 길게 늘어놓은 셈이었지만 말이다.

한편 언어로 표현하는 건 훨씬 더 어려운데, 대상과 예술가 사이의관계가 너무 밀접하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자신이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탄생하는 바로 그 재료로작업한다.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선 영혼이 스스로를표상하는 데 쓰는 기호들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대상을 다시 볼 때 물감이나 대리석, 혹은 청동으로표현하는 경우엔 복잡하게 뒤얽힌 실제로부터예술적 시각을 분리해 내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
한편 생각 자체가 만들어지는 데 사용되는 바로 그단어 덩어리들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은 무한히 어려워진다.

무엇이든 하나를 알기 위해선훨씬 더 많은 다른 것들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매튜아놀드가 오래전 지적했듯, 당면한 주제에 관해 눈에보이는 부분적인 결과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아야한다. 영국인만이 아는 영국에 대해 저들이 무엇을알아야 하는가?"라던 키플링 씨의 말은 창조적인예술가에게도 상징적인 좌우명이 될 수 있다.

경험과 사색이 무슨 소용이냐고. 답은 이것이다. 그가독자들(그리고 편집자와 발행인)을 떠올리기를 완전히멈추고,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창조적인 예술가가항상 신비로운 서신을 주고받는 어딘가에 실재하며언젠가 발신자도 모르는 사이에 답신을 받게 될 또다른 자아를 위해 쓰지 않는다면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없을 것이다. 지적이고 도덕적인 경험의 경우, 창조적상상력은 마음속에 충분히 오래 머금고 또 충분히곱씹는다면 작은 것이라도 멀리 갈 수 있다. 한 번의비통한 사건으로 시인은 많은 노래를, 소설가는 여러편의 소설을 얻게 될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서질 수 있는 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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