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를 여는 첫 장면인 저녁 파티는 유난히인물이 많은 소설이 될 작품의 첫 장에서 주요 인물을 ‘위치시키는 어려운 기술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어떤 독자도 지루하고도 하찮은상트페테르부르크 연회에 연이어 도착하는 이들을 한명이라도 잊거나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의강력한 손길로 톨스토이는 모든 인물들을 한데 모아우리 앞에서 행동하게끔 만든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는 소설가가 이 다음으로직면해야 할 질문이다.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는 기술은도입부에서 여러 인물을 제시하는 능력보다 훨씬 더중요하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에서 보잘것없는 한남자의 죽음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우화로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충분히 전개했다. 조금 더나아갔더라면 지나친 복잡함과 꼼꼼함이라는빠졌을 테고, 불필요한 세부 묘사로 의미를 퇴색시키고말았을 것이다. 자신의 주제가 요하는 돛의 양에 대해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감각을 지닌 또 다른 작가는모파상이다. 가장 좋은 증거는 「이베트」에 들어 있다. 꽃한 송이가 어떻게 나비 한 마리에 꺾이고 마는지에 관한 끔찍한 기록 말이다.
발자크, 톨스토이, 새커리, 조지 엘리엇과 같은위대한 소설 작가들(끊임없이 그들에게로 돌아간다!)은전부 주제의 비율에 관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고, 위대한주장을 펼치기 위해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살라티엘 파비(Salathiel Pavy)의 묘비명을 쓴벤 존슨의 시보다 더 아름다운 영어 운문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실낙원」에는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며, 넉넉한분량으로 쓰였기에 그만큼 위대해졌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작업에 돌입할 때부터 자신이 손에 쥔 주제가살라티엘 파비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실낙원』에 관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깨달음을 주는 사건은 소설가가 지닌 상상력의감수성에 대한 증거일 뿐 아니라 그의 이야기에현재성과 직접성을 부여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하다. 대화보다는 깨달음을 주는 사건을 적절히 활용했을 때 직접성의 효과가 훨씬 더 크다.
그러나 깨달음을 주는 사건을 선택하는 일은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프랑스인들이말했듯, 방식이 중요하다. 정원 장면에서 스탕달이 보여준 무심하고 직설적인 서술은 모든 단어, 모든 구절이의미 있다. 방식에 관한 질문(각 장면에 적용되는특수한 방식)은 소설가가 결코 방심해선 안 되는 또다른 지점으로 이어진다. 모든 이야기가 고유한 층위를지닌다는 말은 그것만의 방식, 전체 의미를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내포한다는 뜻이다.
괴테는 오직 생명의 나무만이 푸르며 모든 이론은회색이라고 선언했다. 생각에 대해 생각한 적 없다"고자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에 대해 생각한 적이없을지언정, 그는 예술에 대해선 매우 많은 생각을했기에, 예술적 실천에 관한 그의 격언은 자칭철학자들보다 더욱 심오하다.
그런데 대륙의 소설가들, 예컨대 톨스토이, 발자크, 플로베르의 소설에서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인물 묘사는 관습 연구와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어있다. 「루진」에서 투르게네프는 단일한 인물의 묘사로구축된 소설의 꽤나 드문 예를 보여 주었다. 그 반대편에놓인 새뮤얼 버틀러의 만인의 길」은 탁월한 인물 묘사덕에 가족과 사회 집단의 초상화를 그려 냈는데, 우리가발견할 수 있는 가장 독특한 ‘관습‘소설 중 하나다. 이러한 서두의 제안들은 피상적이긴 해도, 단순히정의 내리는 것보다는 인물 혹은 상황에 더 무게중심을두는 다양한 소설의 유형을 유념하는 데 도움이 될 수있다.
진정한 상황소설, 즉 보다 압축적이고 무엇보다도더욱 불가피한 사건을 담은 작품은, 최소한영어권에서는 외부 사건들이 뒤얽히는 의미에서의기존 ‘플롯‘ 개념이 진짜 드라마는 영혼의 드라마라는발견으로 변화하고 나서야 형태를 갖추었다. 실제로상황소설은 영어권에선 한 번도 통용된 적 없다. 반면프랑스에선 17~18세기 심리소설로부터 자연스럽게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인물들의 갈등은 도입부부터인물 자체의 묘사를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었고, 주인공은특정 개인이 아닌 특수한 열정의 소유자로 탈바꿈하곤했다.
소설 리뷰의 싸구려 공식들을 버리고 예술의 의미와한계에 관한 보다 명확하고 깊은 표현을 찾고자하는 사려 깊은 비평가라면, 상황소설과 인물(또는관습)소설을 필연적으로 대립적이고 상호인 것으로 말로만 그럴듯하게 정의 내라는 매 분개할것이다. 그 사려 깊은 비평가가 좋을 것이며 사깊은 소설가는 그와 견해를 같이 할 것이다. 거의 모든다양하고 풍부한 위대한 소설들이 두 유형의 소설을하나의 걸작으로 결합해 낼 수 있는 빛나는 가능성을보여 주는데, 그러한 자의적인 구분이, 하나를 다른하나에 대립시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담아내답은 명확하다. 창작 능력이 어느 정도 이상이되면 서로 상충되는 듯 보이는 다양한 방법들이 작가의종합적인 시야 안에서 한데 모이고, 주제에 내재한상황들은 전체적인 구성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완전한 배경 안에서 도드라지게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두고 했던 말처럼, 우리의 질문을따르는 게 아니라 다만 자유로이 쓴 가장 위대한소설가들에게만 해당된다. 그들의 드넓은시야는 그만큼이나 대단한 구성력의 힘과 결합되어있다. 하지만 많은 소설가들은 창조적인 시야를가졌으나 구성력과 표현력은 부족하거나, 혹은 한 작품내에서 인물을 빚어 가고 상황을 충돌시키는 데 동등한힘을 쏟을 능력이 없다. 언제나 모든 분류를 넘어서는최고의 도구를 지니지 못했기에, 대부분의 소설 작품은상황소설이나 인물소설 둘 중 하나로 분류될 수밖에없으며, 그로써 소설 세계는 갈등 상황 혹은 인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피상적인 비평가들의 이론을 강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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