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장기간에 걸쳐 인간의 동기에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 소유의 심리 메커니즘을 탐구한 최초의 보고서다. ‘소유하다 to own‘ 라는 말은 우리가일상에서 엄청나게 자주 사용하면서도 인간의 마음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용어다. 인간의 행동은 소유와 뿌리 깊게얽혀 있다.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가는 곳,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기술하는 방식, 우리가 누구를 돕거나 벌하는방식 등등이 모두 소유와 얽혀 있다. 문명의 조직 자체가 소유개념에 기초하며, 만약 이것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붕괴하고 말것이다.

사람이 자기 몸에 가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행위는 자살이다. 대체로 자살을 범죄로 취급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많은국가에서 자살은 불법이다. 조력 자살과 안락사는 불치병에 걸려 비참한 일상을 보내는 환자가 대상이라 하더라도 영국에서위법으로 처벌을 받는 행위다. 고대 로마에서 자살은 시민들사이에서 때로는 고결한 행위로까지 인정받았으나 노예와 군인의 자살은 불법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주인 또는 국가의재산이었고, 따라서 자살은 절도 행위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절도는 중죄였으므로, 이들의 자살 미수는 엄밀히 말해아이러니하게도 사형에 처할 만한 범죄였다.

기무엇을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견해는 시대에 따라서도다르다. 사람을 물건처럼 소유한다는 것은 아주 혐오스러운 관념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꽤 최근까지 많은 국가에서노예를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다. 전쟁을 통해 승전국이얻는 이점 중 하나는 땅과 자원의 지배를 넘어 소중한 노동력을 제공할 사람들을 노예로 얻는 것이었다. 고대 세계의 위대한 불가사의 중 몇은 외국 노예들이 건설했다. 기자Giza의 대피라미드는 10만 명의 노예가 30년 동안 힘들게 일해 완성한 결과다.

이와 관련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노예는 자유의지가 없는존재가 되었다. 노예는 사실상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였다. 19세기의 한 유명한 판례 사건에서 루크Luke 라는 이름의흑인 노예는 주인의 토지로 뛰어 들어온 당나귀를 쏘아 죽여고의로 재산을 파괴했다는 혐의로 플로리다의 법정에 섰다."
처음에 그는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는 당나귀를쏘라는 주인의 명령이 있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만약 루크에게 처벌을 내렸다면 그것은 루크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노예법을 지키기 위해 법원은 아이러니하게도 루크를 감옥에 가두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노예를 동산 간주했으며, 따으로라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불복종하려는 의지‘는인정되지 않았다.

결혼은 자원을 공유해 가문의 장기적 번영을 도모하는 전략적 수단이었다. 남편은 아내 · 자녀 • 하인을 포함한 재산을 책임.
졌으며 법정에서 이들을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남편은 소유자처럼 이들을 통제했다. ‘혼인관계 wedlock‘라는 용어에도 이런 소유권 서약의 의미가 담겨 있다. 서구권에서는18~19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사랑이 결혼 방정식의 일부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사랑이 성공적인 결혼의 필요조건이 되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는 부모와 자식의 소유 관계가 양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즉 연로한 부모가 타인에게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 성인 자녀는 부모를 돌볼 법적 의무가 있는데, 이것은 예를 들어 미국과 영국의 ‘노부모부양법 filial support law‘에 규정되어 있다. 최근 미국의 양로원에서는노쇠한 부모 대신 자식에게 돌봄 비용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2012년 펜실베이니아의 한 양로원은 아들에게 어머니의 돌봄비용으로 9만2,000달러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으며, 이와 유사한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25 이제 전후 베이비붐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고 인간 수명이 유례없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는 노인 부양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점점 더 그 자녀에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서양 민주 국가에서 최근 확산 중인 정치적 불안정도, 외부인의 위협으로 느껴진 것들로부터 국가의 정체성과 소유권을지키려는 싸움이다. 브렉시트의 ‘통제권 회수‘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정책은 모두 외국인의 공격으로부터 자기 것을 지키려는 국수주의의 노골적 표현이다. 이런 정책의언어는 모두 소유에 관한 것으로 내 나라, 내 직업, 내 생활방식을 지키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가정을 하나 해보자. 트럼프의 집권은 핵심 유권자층의 경제적 고통에 기인한다. 트럼프를 가장 강력히 지지했던 중서부의 사양 산업 지대에서는 기술 혁신 및 값싼 수입품과의 경쟁에 밀린 전통 산업이 몰락했고, 그에 따라 불평등이증가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화의 증가로 이런 경제적 전환이 촉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유 재산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국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한 세계화 과정으로부터 온갖혜택을 누린 인물을 가난한 사람들이 선택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들이야말로 자신이 공감하지 않는 문화적 변화의 흐름에 뒤처지고 있으며, 본인 국가의 지배적인 가치관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집단이다.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고령의 백인 남성들은 1950년대 · 1960년대 사회에서 문화적다수를 차지했지만, 자신들의 우세와 특권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1970년대에 일어난 침묵의 혁명이 오늘날 분노에찬 반혁명적 반발로 발전한 듯하다.

디지털 재산은 어떨까? 누가 길에서 당신을 카메라로 찍으면 당신이 찍힌 사진은 그 사람 소유인가? 신체 부위 판매와마찬가지로 이것도 당신이 세계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다르다.
많은 국가에서 공공장소에서의 사진 촬영을 문제 삼지 않지만,
몇몇 국가에서는 피사체가 되는 사람의 허가 또는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다른 사람을 그냥 바라보는 것은 괜찮지만, 이런 경험을 사진으로 저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의 주인이기를 원한다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등이 추적될 수 있다. 동의 박스에체크 표시를 하는 순간 이러한 행위는 완벽하게 합법이 된다.
적어도 이런 회사에서 데이터 마이닝 data mining 사업을 한다는사실이 주목받기 전까지는 이에 신경 쓰는 사용자도 많지 않았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추적당하지 않도록‘ 활동 흔적을 제거또는 삭제하는 방법으로 개인 정보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는법적 권리가 생겼다. 그러나 이는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이런회사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혜택까지 포기해야 한다. 이는 디지털 세대의 일부가 되기 위해 우리가 지불하는 대가인 셈이다.

인간에게는 경쟁의 본성이 있다. 1898년 심리학자 노먼 트리플릿 Norman Triplett은 사이클 선수가 그냥 시간을 잴 때보다 경쟁 상대가 있을 때 더 빠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초의 사회심리학 실험으로 꼽히는 이 실험에서 그는 아이들이 낚싯줄을얼마나 빨리 감는지를 측정했는데, 이때 혼자서 낚싯줄을 감는경우, 다른 아이와 경쟁하면서 감는 경우를 모두 재보았다! 그결과 아이들은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서로 경쟁할 때 더 빠른속도를 보였다. 트리플릿은 이것을 ‘경쟁 본능‘이라고 불렀는데, 동물계 전반에 걸쳐 발견되는 근본적인 행동 방식인 듯하다. 가장 명백한 경쟁 상황은 식사 시간이다. 아이들이 저녁 식탁에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더라도 짐승 같다고 꾸짖지 말기바란다. 미친 듯이 다투며 먹는 행동은 입이 많을 때 아르마딜로 armadillo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가죽이 딱딱한 동물 - 옮긴이)든얼룩말이든 모든 종에서 관찰된다.

점유 possession의 어원인 라틴어 ‘포시데레possidere‘는 문자그대로 해석하면 ‘앉다‘ 또는 ‘몸무게나 발을 올려놓다‘라는 의미다. 개가 사람에게 앞발을 얹으면 우리는 보통 이것을 애정의 표시로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지배의 표시다. 개에게 있는늑대의 유전자가 여전히 무리 내 위계질서 의식에 관한 신호를보내는 것이다. 점유는 통제력을 제공하고, 이는 다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관건은 통제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물리적 경쟁은 큰 대가를 치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대결을 피해 위험을 줄이기 위한 특정 행동전략이 발달했다.

반면에 인간은 소지품을 적극적으로 축적한다. 인류 역사 전체는 제작된 소지품들로 가득 찬 보물 창고이며,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소지품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역사적인 물건들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의 먼 친척과 우리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를 확인하면서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은 소유물 자체를 소중히여기는, (이런 의미에서) 물질주의적인 최초의 동물이었다. 이런소유물은 상징적이고 심미적이며 자기 정체성의 확장이고, 보호와 때로는 숭배의 대상이 된 소지품이었다. 그들은 결국에는이 소유물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기까지 했는데, 이런 양도는소유의 규칙을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소유의 규칙을 따르기 시작하면서 재산 축적과 부의 이전에 기초한, 안정된 사회가 마침내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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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 아래에서, 나는 순간 루차노를 알아봤고, 내 심장은 미친 듯이, 언제나 그렇듯이 기쁨과 거부감이 뒤섞여 미칠듯이 고동치며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고, 그렇다. 부차노가 바로 그 순간 재빠르게 대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풀가 박사가 우리 아버지에게 남긴 최악의 인상을 떠올리면서도 나는 옹호하려고 노력했다. 소용없었다. 노는 강도를 더했다. 자기 아버지는 멍청이일 뿐 아니라 인색하고 폭력적이라고 거듭 말했다. 나는 그가 말하게 놔두었다. 자기아버지가 언짢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올 때 일단 먼저 건드리는 것은 언제나 가족이었다고 했다. 종종 모두를 때리기도 했다고.

있잖아, 한번은 침대 등받이 위로 등이 솟아오르는 것을 봤어. 여자의 등이었는데, 위아래로 들썩이며 ‘아아 음, 아아 음하고 꼭 흔들목마를 타듯 오르내리던데. 또 한번은 두 사람이벌거벗고 방 안을 돌아다녔고, 그래서 열쇠구멍으로 앞쪽 뒤쪽‘이 보였다 말았다 했지. 또 어느 쌍은 침대가 아니라 문 바로 옆의 바닥에서 했어. 그때는 아무리 눈을 아래로 내리깔아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그 대신 유례없이 잘 들려서, 결국 그게 더 좋았지.

"취향이니까." 너는 원하는 사람을 마음껏 네 집에 초대할 수있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만약 네가 우리 집에 오고 싶다면좋아. 하지만 그 녀석은 안 돼, 절대. 생각도 하지 마!"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중얼거렸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미안하지만 둘 다 가게나, 아니면 아무도 못가."

그날 저녁 나와 카톨리카는 돌발적으로 헤어졌는데, 아니정확히 말하면 그가 우리 사이에 냉랭하게 ‘안녕‘이라고 먼지고는, 등을 돌려 서둘러 조카 대로 쪽으로 멀어져갔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 이후로 그는 결연한 마음으로 그 태도를 계속유지했다. 우리가 나눈 이상한 대화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그모든 태도를 취했는데, 나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당시까지 우리를 분리시키고 있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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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그는 사소한 것으로 괴로워하는 고질적인 내 성향,
남들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나의 끝도 없는 욕구, 그리고 자신의 불행 탓에 자기 성격이 바뀌었음을 넌지시 말하고있었다. 내킨다면 나는 평소처럼 유치한 변덕으로 장난을 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오텔로는 원하지도 않고,
시간도 없었다. 시련이 그를 어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른은 확고한 것을 좇아야 한다.

교회는 황량해 보였다. 나는 관광객처럼 고고하게 오늘측랑으로 천천히 나아갔지만, 위쪽의 커다란 창문들을 통해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제단들 위에 있는 거대한 바로크 유화들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옅은 어둠 속에잠긴 익랑에 다다른 나는 햇살이 넘치는 왼쪽 측랑으로 건너갔다. 거기에 모여 있는 수상한 뭔가가 있어 나의 관심을 끌었는데, 조용하고 정적인 사람들이 두 개의 작은 출입문 중 두번째 문 옆에 무리지어 있었다.

그때쯤 그는 목소리를 낮춰 이 주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탐색을 이어갔다. 이번은, 적어도 지금 이번만은, 우리가과리니 건물 현관으로 들어가, 교실까지 이어지는 긴 복도를지나, 마침내 교실 안 우리 책상에 도착하기까지, 우애 좋은두 친구처럼 발걸음을 맞춰가며 걸을,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쉬는 중에는 내가 기분이 좋고 머리를 식히며 재미있어 하도록 최상의 노력을 쏟았다.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었다. 첫날부터 내가 그를 보호해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교과서들을 빌려줬고, 우리 집에서 후하게 대접하고, 숙제도 실질적으로는 내가 해주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는데, 자기가 여기서, 내 존재, 격려가 되는 나의 목격자로서, 초라하지만 아마 멸시할 수는 없을 선물로 나에게이렇게 보상하고 있지 않으냐고 말이다. 이게 별것 아니라고?
물론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아야 했다. 그가 그 이상을 줄 수는 없었다.

예상치 못한 눈이 아침 아홉시 반 무렵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눈송이들이 고요하게 침침한 예수교회를 배경으로천천히 가만가만 미끄러지는 모습을 교실 안에서 바라보다,
나중에 밖으로 나와 보르골레오니 거리가 온통 하얗게 뒤덮인 광경을 마주하니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던지! 으레 그렇듯 소동을 피우며,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바탕 눈싸움이 벌어졌고, 그러다가 이번은 나와 루차노가 서로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네시에 평소처럼우리가 다시 만날 걸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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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물었다. 어떤 말은, 특정 음식이 인체에 계속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듯, 정신에 그렇게 반복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고오익은 생각했다. 말의 독성은 음식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음식은 기피할 의지만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말은 아무리 기피하려 해도 그럴 수 없기때문이다. 아니, 기피하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점점 더 그말에 사로잡혀 꼼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다. 원채는 다 갚기 전에는 절대 안 없어진다고, 죽어도 안 끝나고 죽고 또 죽어서도 갚아야 하는 빛이 원채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익은 그게 바로 사는일 같다고 생각했다. 기피 의지와 기피 불가능성이 정비례하는그런 원채 같은 무서운 말과 일들이 원채처럼 쌓여가는오익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희미하지만 또렷한 어떤 소리가 들려온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오익에게 증상이 나타난 건 그러고 얼마 뒤였다. 오랜만에 학교때 선배들을 만나기 위해 전철역을 향해 가던 중에 어머니에게서전화가 걸려왔다. 대꾸를 하면 통화가 더 길어질 테니 아무 말도하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지만 어머니가 다짜고짜 나는 요양원같은 데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말하는 바람에 누가 요양원에 가시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궤헤그르르궤에 그릇이 들었다는 뜻인가.
………궤헤그르르 오익의 두 눈이 슬슬 감겼다. 졸음이 쏟아졌………다. 오익은 낮잠에 빠져들면서 자신이 결국 박사논문을 쓰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해도 아무렇지 않았고 지금 당장은궤헤그르르……… 그 의미를 알아내는 일이 훨씬 중요한 것 같았다. 잠들면 악몽 속에서나마 알아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뜻밖에도 숲속 식당은 운치 있는 오두막 이런 게 아니라 둥근유리 천장에 사방이 개폐 가능한 유리문으로 된 현대식 건물이었다. 식당 앞에서 제부가 내게 좋지요 뭐 어쩌고 했다. 청력이 좋지않은데다 마스크 때문에 뒷말을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나는 좋네요. 했다. 식당의 평평한 마당 끝에 도로가 있고, 도로 너머로 논과 밭이 펼쳐졌고, 그 뒤로 노랗고 빨갛게 단풍이 든 낮은 언덕과높은 산들의 능선이 빙 둘러쳐져 있었다. 식당은 알록달록한 그릇한가운데 놓인 유리구슬처럼 사방으로 단풍 든 산에 둘러싸인 야트막한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런 모호하고 어두운 기운을 가만히 품고 있기만했던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있는 그대로 때로는 1과장해서 드러내곤 했다. 스물넷이었으니까, 위험한 무엇을 가만히 갖고 있는 것으로는 안 되고 그걸 어떻게든 뱉어내거나 발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이였으니까, 그 내용이나 표현이 기괴하고 언짢아서 누구에게도 제대로 가닿지 못하리란 걸 알 수도 없고 신경도 못 쓰는 나이였으니까.

아무 일도 아니다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되는 듯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듯 어제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내 손에 쥔 확실한 패는 오늘밖에 없고 그 하루를 땔감 삼아 시간을 활활 태워버리면 그만이라고생각했다.

나도 어느새 경서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가사를 모르는 부분에선 혼자 부르기도 했다. 노래가 3절까지 완벽하게 끝났을 때 구선배가 뭐 이런 빌어먹을 노래를 끝까지 다부르고 난리냐며 술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승희가 좋아요, 하고 일어났다. 경서도 좋죠. 하고 일어나더니, 같이 가도 되는지 빠져줘야 하는지 몰라 멀뚱멀뚱 앉아 있는 내게 기묘한 손짓을 했다. 다리가 불편한 숙녀에게 춤이라도 권하는 듯한, 우아하고 장난스런 초대의 손짓을.

자다 가끔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날 때가 있다. 누구나 자기가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경서와 내가 멀어지게 된 데 특별한이유나 계기는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당시내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고 대학원이라는 접점이 없어지면서 우리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번쩍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것들이 뜻밖의 별자리를 만들면서 내 정신은 깊은 어둠과무지에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났다.

나는 여자의 말투를 흉내낸 게 아니라 내 속에 오랫동안 고여있던 가래 같은 말을 내뱉은 것이다. 학대의 사슬 속에는 죽여버릴까와 죽어버릴까밖에 없다. 학대당한 자가 더 약한 존재에게 학대를 갚는 그 사슬을 끊으려면 단지 모음 하나만 바꾸면 된다. 비록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모음이라 해도.

나는 흰 종이를 꺼내 큼지막하게 123이라고 써보았다.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세 숫자는 볼수록 춤을 추기 위해 준비하는사람처럼 보였다. 양력 음력이라는 두 겹의 차원이 123 이라는동일한 무늬로 만나,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우주의 왈츠를 추는 날. 내생애 한 번밖에 없었을 그날에 나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나. 어머니 앞에 엎드려 울며 다시 착한 딸이 되겠다고 빌고 있었나, 끝장을 보자고 대들다 오빠에게 머리를 펀칭볼처럼 두드려 맞고 쓰러져 있었나. 세상은 그날 왜 나를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원하지 않는 짓을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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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반희는 여행에 대해서보다 자신이 전화로 한 말들을 먼저 돌아보았다. 너무 많은 말을 한 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적게 하려고 애써서 채운을 서운하게 한 건 아닌지, 혹시 쓸데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반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점검을 하는 자신이 싫었고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채운과의 관계에서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못했다. 자꾸 살피게 되었다. 채운이 알지 모르지만, 반희가 자신을 ‘엄마‘라고 칭하지 않고 채운을 ‘딸‘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그런 살핌의 일종이었다.
가끔 오늘처럼 실패하기는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었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둘 사이가 끊어진다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여야 했다.

올라올 때만 해도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해가 비쳤는데 어느새 산그늘이 졌다. 산길을 내려가면서 채운은 반희가 말한 그날이 자신이 기억하는 그날일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운 기억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기억하는 날은 실제가 아니라 상상인지도 몰랐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초에서 고2까지, 채운은 늘어뜨린 손가락을 천천히 꼽아보았다. 팔 년이었다.
엄마가 버틴 시간, 그리고 고2에서 지금까지 손가락을 꼽아보니칠 년이었다. 세상에, 엄마가 집 나간 지 칠 년밖에 안 됐다고? 채운은 어이가 없었다. 엄마는 팔 년이고 자신은 칠 년이라니, 뭔가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겨우 잠들었던 반희는 테라스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빛과 새소리에 잠을 깼다. 옆에 채운이 누워 있었다. 자는 얼굴은 아기 같은데 잔뜩 술냄새를 풍기고 얕게 코까지골며 자고 있었다. 반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아 채운의어깨를 내려다보았다.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채운의 오른쪽 어깨에 타투를 했다가 지운 자국이 손바닥만한 크기의 흉터로 남아 있었다. 흔적으로는 아마 애초에 장미 모양의 타투를 하지 않았을까싶었다. 타투를 한 것도 지운 것도 오로지 채운의 의지였을까. 혹시라도..….…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반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베르타는 이건 바로 내 얘기가 아닌가 싶어 잠시 어리둥절했다.
마리아가 자신의 집에 일을 다녔던 한 달 남짓 동안 베르타가 느꼈던 바로 그 감정, 그 대화를 데레사가 고스란히 복기하고 있는듯했다. 베르타는 먼 하늘을 바라보는 또래 친구 데레사에게 깊은친밀감을 느꼈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하고 사비나가 말했다. 저도 베르타 자매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덩달아 데레사가 고개를 끄덕였고 올가도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산나는 긴 이야기를 할 수있게 되어 다소 흥분된 기색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마리아는 장례를 부탁하면서 장례미사를 위한 헌금도 냈는데그때만 해도 안셀모 신부는 마리아가 이렇게까지 빨리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 뜻을 잘 알았다고 답하고 감사히 헌금을받았다. 그때부터 마리아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성당 사택으로 반찬과 국을 날라왔고 죽기 바로 전주까지도 역시 반찬과 국을 만들어날라주었는데, 그날 아침에 우리 신부님이 마리아가 만들어준 그반찬과 국을 먹고 바로 당사자의 장례를 준비하러 나갔다고 수산나가 말하자, 올가가 그 참 기가 막히구만, 기가 막혀 했다.

소미가 페북의 그 집사님을 잘 아느냐고 묻자 현수는 잘 모른다고, 그 여자가 집사냐고 되물었다. 근처 지리에 밝은 사람답게 현수는 국도를 달리다 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더니 이리저리 우회전좌회전을 하며 달렸고 심지어 포장도 안 된 논둑길을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기도 했다. 논둑길 중간쯤에서 현수가 소미를 돌아보며뭐라고 말했다. 차가 빨리 달리지 않는데도 엔진소리가 시끄러워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 들린다고 소미가 소리치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미와 현수가 시킨 만둣국이 나왔다. 알이 굵으니까 여기 놓고 꺼먹어, 하고 현수가 앞접시를 들어 보였다. 소미가 굵은 만두한 알을 앞접시에 덜어놓는데 옆자리 남자가 얘는 또 왜 이래 이거 왜 이래 이거, 하고 소리쳤다. 돌아보니 남자의 시선은 옆자리유아차에 앉혀둔 앉혀두었다기보다 담요로 칭칭 감아 묶어둔 듯보이는 작은애를 향해 있었다. 돌쯤 되었나 싶은 작은애가 입가에흰 국물을 흘리며 토하고 있었다.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바라보는 동안 남자가 말했다.

언젠가 한번 소미는 그 땅을 싸게라도 팔아치우려고 한 적이있었다. 묘지로 둘러싸일 땅을 붙들고 있으면 뭐하나 던져버리자 싶어 충동적으로 땅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업자 말로는 산 값의 반도 받기 어려울 거라고 했지만 소미는 어떻게든 팔아달라고했다. 얼마 뒤 업자가 연락을 해서 마침 사겠다는 외지인이 나섰는데 손해를 보더라도 이 기회에 처분하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했다. 소미는 매매계약을 하러 전철과 기차를 갈아타고 U시 역으로갔다. 시간이 일렀고 배도 고파서 소미는 택시를 잡아타고 만둣국을 파는 식당에 갔다.

소미는 그렇다고, 혼자서, 매일, 기차 타고, 소풍 가듯이, 하더니 남편을 빤히 쳐다보았다. 남편은 속으로 소풍이라니 이 여자참 철없는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소미는 처음에 누구 만나는 사람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갑자기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소미는 현수인지 뭔지 하는 친구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웃고 끝낼 때도 웃은 것인데 남편으로서는 아내가 이렇게 잘 웃는 여자였던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수와 웃음, 이 조합은 한동안 남편 뇌리에 납득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깊이 박혀 있었는데, 땅의 존재를 안 뒤부터는 U시와 웃음, 이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간단히 교체되었다. 이번에는 참으로납득이 되는 조합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현수와 연락할 방법을 찾자면 없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현수가 그 땅의 현재 가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까. 안다면 자기의 혜안이 맞았다고 기뻐하기만 하고 끝낼까. 사람은 절대 그렇게 무구하지 않다. 또 현수가 얼마나 거칠게 변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때 마흔다섯 살의현수도 소미의 상상과는 너무도 달랐지 않은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인문대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던 늘씬한 아가씨가 이혼하고 혼자 딸 둘을 키우는 뚱뚱한 중년 여자가 되어 피곤에 전 모습으로 부동산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았던가.

사거리에서 혜영은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좌회전 차선에 접어들며 왼쪽 방향지시등을 켰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자매는 규칙적인 점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이 그날 하루 중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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