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끝에 서 있는 한 사람. 신 씨는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칠판에 적힌 글씨를 지우개로 닦아내는 것처럼, 그렇게하면 기억이 지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 걸까. 신 씨는 들고 있던 고구마 한 조각을 접시에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절벽 위 커다란 범선 모양의 도서관. 먼 옛날 그 자리엔 등대가 있었다. 평생 수평선과 하늘만 바라보던 등대지기. 그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려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선생님. 만약 선생님이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 뜻대로 해줘야 할까요. 아니면 설득해서 완벽한꿈의 세계에 순응하며 살도록 한 번 더 도와줘야 할까요."
P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굳게 다문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J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 앉아 차분하게 대답을기다렸다. 너무 아름다운 날이었다.

왜 한계 앞에 무너진 사람의 등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커지는 걸까.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헛된 꿈을꾸는 사람의 손은 왜 잡아주고 싶은 걸까. 왜 나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마음으로는 그것이 진정한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에게 진심을 담아 당신은 멋졌고 나는 그런 사람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밥을 사주고 싶다고 했고 당신의 말과 노래를 더 들어주고싶다고 했다. 허락해준다면 당신의 매니저를 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레릭이라고 하는 거야. 가치 있는 유물이라는 뜻이지.
쉽게 말해 레릭은 망가트리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악기를가치 있는 유물로 만드는 과정인 거야. 고귀하게 재탄생시키는 거지.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에이징된 악기는 소리부터 다르거든."

실패한 가수는 왼쪽 어깨엔 멀쩡한 기타를 오른쪽 어깨엔 내가 사준 망가진 기타를 메고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미안하다고 했다가 고마워라고 했다가 마지막엔 너무한다고 했다. 그가 떠난 침대엔 그의 실패의 기록을 담은 얇디얇은 노트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해가 지는 군청색 해변,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사라지며서서히 물드는 저녁. 수상한 자가 겨울 바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 시간이 묘한 시간이라는 걸 안다. 어떤 이는 ‘매직아워‘라 부르고 어떤 이는 저것이 내 개인지 내 개를 물어 죽일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하여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부른다.

소년은 장작 하나를 벽난로에 집어넣고 창가에 서서 밝아오는 바다를 바라봤다. 소년의 몸을 통과한 흰빛이 식탁을 환하게만들었다. 나무를 먹은 불꽃이 몸을 키우며 힘차게 흔들리면서 사방으로 온기가 퍼지는 새벽. 빵은 맛있고 커피는끝내줍니다, 라고 후기에 남겨야 할 것 같다.

서서히 미소가 사라지고 있다. 단정하지만 단호한 음성의 닥터. 자, 이제 이야기를 나눕시다. 간밤엔 왜 그러셨나요? 그제야 난 이마와 왼쪽 눈을 덮고 있는 붕대를 감각한다. 따뜻하다. 부드러운 젤리처럼 따뜻한 것이 안에 둥지를틀고 있는 것 같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구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그의 입에서 당나귀, 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가족들은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더 이상은 안 돼. 이건 불가능해.
가족들의 힘으론 그를 도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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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반응은 나를 안타깝게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알게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화제가 점점 어긋나기만 한다는것을 그들이 화제에 올리는 이야기는 보너스를 얼마나 받았느냐는: 지독한 직속 상관이 걸렸다는 둥, 유급 휴가를 어떻게 이용하면좋겠냐는 둥 모두 나와는 무관한 것들뿐이었다. 나는 "자네들 신세가 부럽군"이란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십대는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시절로 보인다. 이십대란, 혼자서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한 힘을 체득해야 하는 귀중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득도 해도 안 되는 어중간한 친구를 잔뜩 갖고 있어봐야, 그저 외로움이나 달랠 수 있을 뿐이다. 지리멸렬한 만남을 거듭한다면 자립과 독립으로부터 멀어지고 말 따름이다. 한 사람의 어엿한 남자가 될 기회를 놓치고 마는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아부 아니면 거만이라는 두 가지 태도밖에 취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의외로 많다. 그냥 평범하게 타인과 접할 줄을 모른다.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며 대화를 나누고 일을 추진해나갈 줄을모른다. 어쨌든 이 세계에서는 필자 쪽에 그런 경향이 강한데 유치해서 어이가 없을 때가 많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편집자는 그런 태도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것도 일에 포함되는 것으로 여기는지시시껄렁한 칭찬까지 곁들인다. 그리고 내가 대등한 관계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몇 사람은 오히려 거드름을 피운다.
대출판사, 또는 대신문사의 인간들은 그러한 나의 태도를 자기들에대한 아첨이라고 해석하는지, 유난스레 목청을 높인다. 같잖은 그엘리트 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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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출판사의 젊은 사장이 영화에손을 댄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고참 능구렁이들은 위험하다는 둥어떻다는 둥 그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를 죽 늘어놓는 모양인데,
그들에게는 신참을 비웃을 자격이 없다. 나 같은 영화팬으로서는차제에 어떤 세계에 있는 사람이고를 막론하고 영화 만들기에 힘을 쏟는 자가 있다면 박수를 보내고 싶고 기대를 걸고 싶다. 실패와 성공을 문제삼기 전에, 그런 계기로 우리나라 영화계가 재기해주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상정하고 0246〈댈린저〉는 좋았다. 그런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다.

겨울밤, 이불 속에서 이 책을 펼치면 나는 아주 행복했다. 피가요동쳤다. 그런 나머지 어른이 되면 바다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선박 통신사를 양성하는 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백경』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들어도 멜빌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웬일인지 작가한테는 전혀 흥미가 일지않았다. 그런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소설 같은 것을 쓰는 타입의 인간을 이리저리 들쑤셔보았자 어차피 별 재미도 없는에피소드가 몇 가지 드러날 뿐인데 그것을 억지로 작품세계에 끼워맞추는 그럴싸한 해설 따위는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하얗고 거대한 고래가 과연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운운하는 억지 평론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저 가만히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 느닷없이 엉뚱한질문을 퍼부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시골길에서 버스를 기다리고있는 모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쓴 작품이 「버스 정거장이고, 질문을 잔뜩 퍼부은 일로 태어난 작품이 「늦은 오후의 거짓말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두 편의 중편소설과 한 편의 전작 장편소설이 자리하고 있다. 일인칭을 위한 열두 편이 다 끝나면 비교적 쉽사리 그 작품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듯하다.

시사회에 참석하여 완성된 작품을 보았다. 감독에게 감상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어중간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찍으면 이렇게 되리란 예상이 적중했다.
나는 화면이 아름다웠다고 느낌을 말했다. 그러자 젊은 감독은갑자기 침묵하더니 혼자 도로를 건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로서는 자신이 있었으리라. 굉장히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칭찬을 해줬어야 했나,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적절한 기회를 만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재능을 잠재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적절한 기회라고 해서 딱히 선생에게 돈을주고 배우는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 같은 사람은 문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궁지에 몰려 사면초가가 되자 소설을 썼다. 하기야 운도 재능의 일부분이라는 일설이 있으니 뭐라 단언할 수는 없다. 나는 앞으로도 아마 그림은 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란 것은 자유와 변화였을 것이다. 넘쳐흐를 정도의 자유와 격렬한 변화, 이를테면 그림으로 그린 듯 반듯한 정의의 깃발아래, 마음에 들지 않는 치들을-그게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는 짐작도 못 했지만-전부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증오의 대상인 가상의 적이 필요했는데, 행동 범위가 극단적으로 좁은아이였던 나로서는 아무리 찾아도 그 대상을 설정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손에 넣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과연 있을까. 그것을 잃으면 끝장이라고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있다. 그것도 하나나 둘도 아니라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나 둘을 잃었다고 해서, 손에 넣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뭐 그리 대수로운가.

나는 문학 팬 대부분이 좋아하는 소설들이 형편없이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당신들 멋대로 몸부림쳐봐라‘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자신을 단련하지 않고 감수성에 휘말린 채,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이에 작가는 여장 남자가 되고 말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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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 때 눈이란 조건은 무진 애를 먹게 한 부분이라 눈감아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역시 주인공과 그의 친구였다. 배역이 결정되었을 때 나는 이 두 사람이면 메이크업과 여러 가지 속임수를구사하여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폭력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두 남자가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파 속을 걸으면 지나가던 대부분의 남자들이 길을 양보할 만큼 박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등장인물에 대해서 나는 가능하면 적은 편이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많은 인물들을 차례차례 등장시켜 스토리를 불려나가는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이상에서 쓴 내용은 절대로 불평이 아니다. 또 원작의 이미지를망가뜨렸다는 종류의 분노도 아니다. 하물며 내가 만들었다면 훨씬나은 작품으로 완성시켰을 것이라는 자만은 더욱 아니다.

작품을 하나 쓰고 아침에 눈을 떠, 마치 문을 열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듯 쉽게, 남이 질투를 해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이특수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으니 말이다. 그때까지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문학 청년이 아니라 통신사로 살았고, 다니던 회사가 도산할 지경에 이르러 할 수 없이 전직을 해야 하는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필시 한평생 원고지와는 무관한 인간으로 쾌적한 인생을즐기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은 때로 후회마저 하고 있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종류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그 이미지의 뒤를 살피면 무엇이 있을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매력적인 작품을 탄생시키고자 할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방해가 된다는 것을 터득한 터여서 그 부분에는 결코 손을 대지 않았다.

새로움이란 결코 독선적인 작품을 뜻하지 않는다. 새롭다고 여겨지는 작품이 이해되지 못하는 것은 독자가 게을러 불협화음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인가. 어떤 음악 관계자가 텔레비전에 출연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현대음악을 딱 한 번 들어보고 경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그들에게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는 데도 일 주일쯤 연습 기간이 필요한데, 한 번 들은것만으로 불쾌한 음악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이상하다. 모차르트나베토벤이 작곡한 음악만 해도 당시에는 난해하다는 둥 두통이 인다는 둥의 평가밖에 받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펜을 들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꼭 십 년 전의 일이다. 그 한 편의 작품으로 나는 아무 마음의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소설가‘란 직함을 얻게 되었고, 스스로도때로는 무턱대고 그렇게 생각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신인상 수상의변(辯)에다,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어쩌구저쩌구…………‘ 라고거창한 소리를 써서 잘난 척하기도 했다.

곰곰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 전부터 국어 교과서에 그 일부가 실리는 소위 명작에 싫증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덕분에 집에는 정말 문학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래서 할 일이 없어 따분하기 짝이 없을 때면 한 권씩 훑어보았는데 마지막까지 제대로 읽은 작품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재미가 없어서 못 읽겠다"고 하면, 아버지는 "너 같은 나이에는 아직 인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학이란 재미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새로운 문학을 생산한다는 것은 자신의 체질에 적합한 새로운문체를 개발하여 체득하는 일이며, 새로운 문체는 곧 인간을 새로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오 년에 승부를 내리란 생각은 옳지 않았다. 오 년이 지나도 새롭고, 재미있는 소설‘은 멀기만 했다.

기성의 문학에 염증을 내고 있는 필자들이 더없이 독선적이고색다른 발상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다 치고, 그들의 최대 약점은 뭐니뭐니해도 새로운 효과를 노리기에 적합한문체를 자신의 체질에 적합한 형태로 체득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않았다는 것이었다. 난해함을 오히려 고마워하는 일부 독자들이 있다는 것에 힘입어 씨름을 하는 사이에 하루하루 쇠퇴를 거듭한 나머지 새로움은커녕 낡아빠지고 만 것이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화산의 정상에 서서 사방을 바라다보니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자들이 거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눈에 보이지않아, 절반은 의아스러웠고 절반은 만족했다. 그리고 문학을 하면서무언가에 대해 새삼 골똘히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새로움을 찾아돌진하는 것이 여러 의미에서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다.

십여 년 전 텔렉스 오퍼레이터로 모 회사의 통신과에 근무하던시절, 나는 어떤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흠칫 놀란 일이 있다.
"그럼, 자네한테 무슨 다른 재주라도 있단 말이야?"
그야말로 선배의 말씀 그대로였다. 당시 나는 간신히 텔렉스로송수신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밖에 없었고, 세상이 인정해줄 만한 특기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별의미도 없이, 하품을 하듯
"이런 일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중얼거린 내게 선배가 그런 말을한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고, 그 다음부터는 그런 류의 불평을 두 번 다시 늘어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말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내 인생은 별볼일 없이 끝나고 말것이란 초조함을 느꼈다.

반면에 소설이나 영화, 레코드는 좋았다. 세상에 선을 보이기 전에 결정적인 실수가 수정되거나 삭제되므로, 안심하고 읽을 수도있고 보고 듣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소설의 경우에는 등장인물의 모습이 직접 눈에 보이지않는다는 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기 취향의 이미지를 적용할 수도 있다. 영화라면 적어도 배우를 흥분시키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고 분노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 레코드는 생음악보다 질좋은 음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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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모두와 함께 왁자지껄 소동을 피우다가도 어느 틈엔가 예의 범상치 않은 눈길로, 술에 만취되어 큰 소리로 꽥꽥거리는 선원들을 관찰하곤 했다. 그리고는 알게 모르게 차가운 방관자가 되려 노력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오래도록 짓무른 상처나 비극적인 냄새가 푹푹 풍기는 환경에처해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뜻 같다. 과연 그럴까. 만약 정말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다른 직업을 찾으러 집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앞으로도 몇 편의 소설을 쓰리라 자신감에 넘쳐 있는 나는 책상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소설들이 분노에차 있고 고뇌하는 작가들의 작품보다 질이 떨어지리라는 생각도하지 않는다. 참으로 당당한 자신감이다.

그래서 시골에 살면서 소설을 쓰는 나는 내 쪽이 정상이라고 믿는다. 볼티지가 높아진 틈을 타 단숨에 매듭을 짓는 타입의 소설가든 파상공격 타입의 소설가든 한 작품이 끝나면 방대한 에너지를진지하게 소비하느라 무척 지쳐 있을 터이므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소설을 한 편 쓰고 나면 당장이라도 레이오프(layoff)를 취해야 하는데, 술 같은 것으로 간편하게 기분을 전환하고는 다시 쓰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가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천재이든지 특이한 체질의 소유자일 것이다.

이미 주인공을 나‘로 하든 ‘마루야마 겐지‘로 하든, 더 나아가소재를 자기 체험에서 얻었다고 주석을 달든 아무도 소설을 진실그 자체라고 믿지 않는다. 만약 믿는 자가 있다면 세상 물정 하나모르면서 문학에만 심취해 있는 소녀든지, 행복한 인생을 보내다 노망이 들었는데도 문학을 좋아하는 풍류객 정도일 것이다. 소설뿐만아니라 영화나 연극에도 사람들은 옛날처럼 심취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어떤 시골에서도 마쯔리 (일본 고유의 전통 축제 -옮긴이)에서본 유랑 극단 때문에 이틀, 사흘을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그 작품에 몇 가지쯤 감동할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눈물을 쥐어짜게 하는 힘이 있다 해도, 모두 마음속으로는 ‘이건 진짜 같은거짓 이야기‘ 라고 생각할 것이다. 텔레비전이 방방곡곡으로 보급된탓인지 활자의 범람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의 눈은 기름이 올랐고 의심이 많아졌다.

그 조건이란 우선 ‘풍경‘의 유무이다. 내가 말하는 풍경이란 단순히 회화적인 광경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몸담고있는 확고한 ‘장소‘ 이다. 또 그 장소란 실재하는 도시나 동네가 아니고, 줄거리와 직접 관계가 있든 없든 등장인물이 유형 무형의 영향을 받는 ‘공간‘이다. 일본 문학에서는 ‘공간‘이 별 대접을 못 받아왔다. 필연성이야 있든 말든, 시각적으로 묘사하기 어려운 토지라는 변변치 않은 변명을 하거나 말거나, ‘공간‘은 늘 거기에 무표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않은 우연으로 바라던 바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공간‘도 물론 없지는 않지만, 로케이션의 경우 있는 그대로의 공간이 감독의 이미지에 충실한 경우는 드물다. 전봇대 하나나 둘쯤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 테지만, 소설과 달라서 날씨나 지형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다. 감독들은 ‘공간‘에 대해 어쩔 수 없는 타협을강요당하는 것이다.

한 작품이 완성될 무렵, 나는 이렇게 천연덕스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일 이 작품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다면 어떤 생활을 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만원 전철 속에서나 독신자 기숙사에서나 전신실에서나 그 생각은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복권을한꺼번에 천 장이나 산 듯한 기분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처럼 신나는 일이 달리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빠져나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니, 당시의 나로서는 그야말로살아 있는 동안 천국에 가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취하도록 술을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수많은 여자들과 친분을 맺고 싶다는생각도 없었지만, 성가신 일 없이 혼자 살아보고 싶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조직의 목적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인 이상, 집단이란 형태를 취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는 이상, 나는 그런 마찰을 추악한 현상으로 파악하여 실망하지않는다. 마음 한구석에 커다란 결함을 지니고 있는 나와는 다른사람들이 굳세게 살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오히려 바람직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울기

나는 지금 자유롭다. 내 주변은 자유로 가득하다. 오로지 좋아하는 일에만 눈길을 돌릴 수 있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접하면 당장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불행한 입장이다. 제어 장치가 극단적으로 적은 이 생활이, 세상을 그저 바라볼 뿐인이 생활이,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나날을거듭할 뿐인 이 생활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그리고 그안에서 과연 어떤 소설이 태어날 것인지.

그건 그렇고, 귀찮은 일을 맡아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왜 좋은가, 왜 싫은가 그 이유를 기술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냥 좋다라든가그냥 싫다는 말뿐이라면 아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과연 그랬다. 나는 깜박 잊고 있었다. 그 일에 돈이 지불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함정에 걸려들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두 가지 인생길을 생각해본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이 시점에서는 시도를 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샐러리맨을계속하였다면 지금 어떤 사나이가 되어 있을까, 하고, 내가 친구에게서 느꼈던 늠름함을 과연 나 자신한테서도 느낄 수 있을까. 현실사회에 무수히 존재하는 벽과 충돌하는 사이에 눈매가 점점 더 날카로워졌을까. 아니면 반대로 타협만 배워가지고 별볼일 없는 사나이로 전락해 있을까. 아니면 또 지금의 나와 다름없는 인간이 되어있을까. 역시 어리석은 상상이다.

영화의 원작자란 입장이 되었을 때를 대비한 각오는 이미 되어있다고 나 자신은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두세 번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진짜 영상보다 강렬하고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해왔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나의 소설과 영화를 대결시켜보는 것은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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