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끝에 서 있는 한 사람. 신 씨는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칠판에 적힌 글씨를 지우개로 닦아내는 것처럼, 그렇게하면 기억이 지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 걸까. 신 씨는 들고 있던 고구마 한 조각을 접시에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절벽 위 커다란 범선 모양의 도서관. 먼 옛날 그 자리엔 등대가 있었다. 평생 수평선과 하늘만 바라보던 등대지기. 그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려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선생님. 만약 선생님이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 뜻대로 해줘야 할까요. 아니면 설득해서 완벽한꿈의 세계에 순응하며 살도록 한 번 더 도와줘야 할까요." P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굳게 다문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J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 앉아 차분하게 대답을기다렸다. 너무 아름다운 날이었다.
왜 한계 앞에 무너진 사람의 등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커지는 걸까.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헛된 꿈을꾸는 사람의 손은 왜 잡아주고 싶은 걸까. 왜 나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마음으로는 그것이 진정한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에게 진심을 담아 당신은 멋졌고 나는 그런 사람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밥을 사주고 싶다고 했고 당신의 말과 노래를 더 들어주고싶다고 했다. 허락해준다면 당신의 매니저를 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레릭이라고 하는 거야. 가치 있는 유물이라는 뜻이지. 쉽게 말해 레릭은 망가트리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악기를가치 있는 유물로 만드는 과정인 거야. 고귀하게 재탄생시키는 거지.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에이징된 악기는 소리부터 다르거든."
실패한 가수는 왼쪽 어깨엔 멀쩡한 기타를 오른쪽 어깨엔 내가 사준 망가진 기타를 메고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미안하다고 했다가 고마워라고 했다가 마지막엔 너무한다고 했다. 그가 떠난 침대엔 그의 실패의 기록을 담은 얇디얇은 노트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해가 지는 군청색 해변,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사라지며서서히 물드는 저녁. 수상한 자가 겨울 바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 시간이 묘한 시간이라는 걸 안다. 어떤 이는 ‘매직아워‘라 부르고 어떤 이는 저것이 내 개인지 내 개를 물어 죽일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하여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부른다.
소년은 장작 하나를 벽난로에 집어넣고 창가에 서서 밝아오는 바다를 바라봤다. 소년의 몸을 통과한 흰빛이 식탁을 환하게만들었다. 나무를 먹은 불꽃이 몸을 키우며 힘차게 흔들리면서 사방으로 온기가 퍼지는 새벽. 빵은 맛있고 커피는끝내줍니다, 라고 후기에 남겨야 할 것 같다.
서서히 미소가 사라지고 있다. 단정하지만 단호한 음성의 닥터. 자, 이제 이야기를 나눕시다. 간밤엔 왜 그러셨나요? 그제야 난 이마와 왼쪽 눈을 덮고 있는 붕대를 감각한다. 따뜻하다. 부드러운 젤리처럼 따뜻한 것이 안에 둥지를틀고 있는 것 같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구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그의 입에서 당나귀, 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가족들은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더 이상은 안 돼. 이건 불가능해. 가족들의 힘으론 그를 도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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