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출판사의 젊은 사장이 영화에손을 댄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고참 능구렁이들은 위험하다는 둥어떻다는 둥 그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를 죽 늘어놓는 모양인데,
그들에게는 신참을 비웃을 자격이 없다. 나 같은 영화팬으로서는차제에 어떤 세계에 있는 사람이고를 막론하고 영화 만들기에 힘을 쏟는 자가 있다면 박수를 보내고 싶고 기대를 걸고 싶다. 실패와 성공을 문제삼기 전에, 그런 계기로 우리나라 영화계가 재기해주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상정하고 0246〈댈린저〉는 좋았다. 그런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다.

겨울밤, 이불 속에서 이 책을 펼치면 나는 아주 행복했다. 피가요동쳤다. 그런 나머지 어른이 되면 바다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선박 통신사를 양성하는 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백경』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들어도 멜빌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웬일인지 작가한테는 전혀 흥미가 일지않았다. 그런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소설 같은 것을 쓰는 타입의 인간을 이리저리 들쑤셔보았자 어차피 별 재미도 없는에피소드가 몇 가지 드러날 뿐인데 그것을 억지로 작품세계에 끼워맞추는 그럴싸한 해설 따위는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하얗고 거대한 고래가 과연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운운하는 억지 평론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저 가만히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 느닷없이 엉뚱한질문을 퍼부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시골길에서 버스를 기다리고있는 모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쓴 작품이 「버스 정거장이고, 질문을 잔뜩 퍼부은 일로 태어난 작품이 「늦은 오후의 거짓말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두 편의 중편소설과 한 편의 전작 장편소설이 자리하고 있다. 일인칭을 위한 열두 편이 다 끝나면 비교적 쉽사리 그 작품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듯하다.

시사회에 참석하여 완성된 작품을 보았다. 감독에게 감상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어중간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찍으면 이렇게 되리란 예상이 적중했다.
나는 화면이 아름다웠다고 느낌을 말했다. 그러자 젊은 감독은갑자기 침묵하더니 혼자 도로를 건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로서는 자신이 있었으리라. 굉장히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칭찬을 해줬어야 했나,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적절한 기회를 만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재능을 잠재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적절한 기회라고 해서 딱히 선생에게 돈을주고 배우는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 같은 사람은 문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궁지에 몰려 사면초가가 되자 소설을 썼다. 하기야 운도 재능의 일부분이라는 일설이 있으니 뭐라 단언할 수는 없다. 나는 앞으로도 아마 그림은 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란 것은 자유와 변화였을 것이다. 넘쳐흐를 정도의 자유와 격렬한 변화, 이를테면 그림으로 그린 듯 반듯한 정의의 깃발아래, 마음에 들지 않는 치들을-그게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는 짐작도 못 했지만-전부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증오의 대상인 가상의 적이 필요했는데, 행동 범위가 극단적으로 좁은아이였던 나로서는 아무리 찾아도 그 대상을 설정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손에 넣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과연 있을까. 그것을 잃으면 끝장이라고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있다. 그것도 하나나 둘도 아니라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나 둘을 잃었다고 해서, 손에 넣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뭐 그리 대수로운가.

나는 문학 팬 대부분이 좋아하는 소설들이 형편없이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당신들 멋대로 몸부림쳐봐라‘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자신을 단련하지 않고 감수성에 휘말린 채,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이에 작가는 여장 남자가 되고 말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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