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들 때 눈이란 조건은 무진 애를 먹게 한 부분이라 눈감아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역시 주인공과 그의 친구였다. 배역이 결정되었을 때 나는 이 두 사람이면 메이크업과 여러 가지 속임수를구사하여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폭력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두 남자가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파 속을 걸으면 지나가던 대부분의 남자들이 길을 양보할 만큼 박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등장인물에 대해서 나는 가능하면 적은 편이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많은 인물들을 차례차례 등장시켜 스토리를 불려나가는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이상에서 쓴 내용은 절대로 불평이 아니다. 또 원작의 이미지를망가뜨렸다는 종류의 분노도 아니다. 하물며 내가 만들었다면 훨씬나은 작품으로 완성시켰을 것이라는 자만은 더욱 아니다.
작품을 하나 쓰고 아침에 눈을 떠, 마치 문을 열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듯 쉽게, 남이 질투를 해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이특수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으니 말이다. 그때까지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문학 청년이 아니라 통신사로 살았고, 다니던 회사가 도산할 지경에 이르러 할 수 없이 전직을 해야 하는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필시 한평생 원고지와는 무관한 인간으로 쾌적한 인생을즐기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은 때로 후회마저 하고 있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종류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그 이미지의 뒤를 살피면 무엇이 있을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매력적인 작품을 탄생시키고자 할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방해가 된다는 것을 터득한 터여서 그 부분에는 결코 손을 대지 않았다.
새로움이란 결코 독선적인 작품을 뜻하지 않는다. 새롭다고 여겨지는 작품이 이해되지 못하는 것은 독자가 게을러 불협화음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인가. 어떤 음악 관계자가 텔레비전에 출연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현대음악을 딱 한 번 들어보고 경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그들에게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는 데도 일 주일쯤 연습 기간이 필요한데, 한 번 들은것만으로 불쾌한 음악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이상하다. 모차르트나베토벤이 작곡한 음악만 해도 당시에는 난해하다는 둥 두통이 인다는 둥의 평가밖에 받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펜을 들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꼭 십 년 전의 일이다. 그 한 편의 작품으로 나는 아무 마음의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소설가‘란 직함을 얻게 되었고, 스스로도때로는 무턱대고 그렇게 생각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신인상 수상의변(辯)에다,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어쩌구저쩌구…………‘ 라고거창한 소리를 써서 잘난 척하기도 했다.
곰곰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 전부터 국어 교과서에 그 일부가 실리는 소위 명작에 싫증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덕분에 집에는 정말 문학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래서 할 일이 없어 따분하기 짝이 없을 때면 한 권씩 훑어보았는데 마지막까지 제대로 읽은 작품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재미가 없어서 못 읽겠다"고 하면, 아버지는 "너 같은 나이에는 아직 인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학이란 재미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새로운 문학을 생산한다는 것은 자신의 체질에 적합한 새로운문체를 개발하여 체득하는 일이며, 새로운 문체는 곧 인간을 새로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오 년에 승부를 내리란 생각은 옳지 않았다. 오 년이 지나도 새롭고, 재미있는 소설‘은 멀기만 했다.
기성의 문학에 염증을 내고 있는 필자들이 더없이 독선적이고색다른 발상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다 치고, 그들의 최대 약점은 뭐니뭐니해도 새로운 효과를 노리기에 적합한문체를 자신의 체질에 적합한 형태로 체득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않았다는 것이었다. 난해함을 오히려 고마워하는 일부 독자들이 있다는 것에 힘입어 씨름을 하는 사이에 하루하루 쇠퇴를 거듭한 나머지 새로움은커녕 낡아빠지고 만 것이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화산의 정상에 서서 사방을 바라다보니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자들이 거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눈에 보이지않아, 절반은 의아스러웠고 절반은 만족했다. 그리고 문학을 하면서무언가에 대해 새삼 골똘히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새로움을 찾아돌진하는 것이 여러 의미에서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다.
십여 년 전 텔렉스 오퍼레이터로 모 회사의 통신과에 근무하던시절, 나는 어떤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흠칫 놀란 일이 있다. "그럼, 자네한테 무슨 다른 재주라도 있단 말이야?" 그야말로 선배의 말씀 그대로였다. 당시 나는 간신히 텔렉스로송수신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밖에 없었고, 세상이 인정해줄 만한 특기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별의미도 없이, 하품을 하듯 "이런 일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중얼거린 내게 선배가 그런 말을한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고, 그 다음부터는 그런 류의 불평을 두 번 다시 늘어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말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내 인생은 별볼일 없이 끝나고 말것이란 초조함을 느꼈다.
반면에 소설이나 영화, 레코드는 좋았다. 세상에 선을 보이기 전에 결정적인 실수가 수정되거나 삭제되므로, 안심하고 읽을 수도있고 보고 듣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소설의 경우에는 등장인물의 모습이 직접 눈에 보이지않는다는 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기 취향의 이미지를 적용할 수도 있다. 영화라면 적어도 배우를 흥분시키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고 분노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 레코드는 생음악보다 질좋은 음을 들려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