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자들은 악인 중에서도 가장 악한 사람ㅡ"혐오스러운, 추악한,
똥 무더기"으로 책망받았다. 그러나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잔인함, 이기심, 또는 방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반대로, 인간의 존재를 소중하고 경이로운 선물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위해서 이 선물을 최대한 알차게 활용하는 쪽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우리의 지식은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생각들과 진화로 얻은 인지능력으로 인해제한되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 이렇게 추상적으로질문하면, 문제는 실제보다 더 어렵게 들리기 마련이다. 어차피 지식의재구축은 추상적인 단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의 지식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지식 자체의 세부사항들을 수정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념들을 새로 구분하고 있던 구분들은 무너뜨리고, 재분석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다.

현대의 삶의 방식은 과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 즉, 우리 자신의 직관적 이론들에 대해 진지하게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 직관들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을 구성하고 교실 안팎에서 그 직관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설계해야 한다. 직관적 이론은 각 세대에서 각각의 어린이들이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 구축한 이 이론들이 어른이 되어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가능성들을 가로막도록 놔두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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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보다 유전자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이를테면 수학 성취도의 경우, 선천적인 성별에 따라 수학 성취도에 차이가 생긴다는 증거는 약하나,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성별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는 증거는 강하다.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것도 밝혀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전의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는 인식 자체가우리를 운명론자로 이끈다.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지않으나, 유전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이를 허용한다면, 우리의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 중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얻게 된 선천적 지식이있다면 그것은 질병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 병균과 기생충은 생존과 번식을 위협하기 때문에 병을 피하는 것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명히 이로운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전 세계 공통적으로 인류는 병균과 기생충을 포함하고 있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가진다. 신체 분비물(토사물, 배설물), 신체 분비액(침, 땀), 신체를 감싸는 표면의 침입(신체의 훼손과 피), 눈에 띄는 감염의 증상살이 붓고, 색이 변하는 것), 기생충(진드기, 구더기), 그리고 부패한 유기물(썩은 고기, 상한우유)이 그것이다.

왜 생명체들이 그들의 환경에 그토록 정교하게 적응할 수 있었는지대한 이유로 진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진화된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나라별 신앙심의 정도 역시 진화에 대한 수용을 예측한다. 터키나 이집트와 같이 신앙심이 깊은 나라는 진화를 덜 받아들이는 반면, 프랑스와 덴마크처럼 신앙심의 정도가 낮은 나라는 진화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전체 인구의 60퍼센트가 진화를 받아들이는 반면 40퍼센트는 그렇지 않은데, 모든 주를 비교해보면 신앙심과 진화에 대한 수용이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앨라배마와 미시시피와 같이 신앙심이 높은 주들은 진화에 대한 수용도가 낮은 반면, 버몬트와 뉴햄프셔 등 신앙심이 낮은 주들은 진화에대한 수용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결과는 고등학교 졸업률,
대학 진학률, 교사들의 월급, 일반적인 과학 지식정도, 그리고 일인당국내 총생산을 모두 고려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종교와 진화를 꼭 양립하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종교적인이유로 진화를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종교적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른 과학적 사실들(한때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었다는 사실, 지진과 홍수가 자연적 힘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 그리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받아들인다. 한때는 이러한 사실들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화형에처해졌으나 오늘날에는 종교인과 세속인들 모두가 이를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진화 역시 사회정치적인 양상을 띄게 된 많은 과학적 사실들 중하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양상은사라질 수 있다. 설령 신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여기면서진화를 받아들인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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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각하는 열(따뜻함과 실제 열의 차이는 우리가 지각하는 무게(묵직함)와 실제 무게의 차이보다도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감각 모두 물질에 의해 좌우되지만, 열에 대한 지각은 물질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무게에 대한 지각보다 훨씬 더 크다. 예를 들어, 같은 무게의알루미늄과 코르크를 들어올리면 부피가 작은 알루미늄이 (부피가 큰 코르크보다 더 묵직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렇다고 알루미늄을 못 들어올릴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열은 다르다. 100도의 코르크는 만질 수 있지만 같은 온도의 알루미늄을 만진다면 바로 화상을 입을 것이다."

이러한 진화론적 추측은 영장류가 물체에 대해 가지는 개념과 일치한다. 영아들과 마찬가지로 원숭이와 유인원은 고형성, 연속성 및 응집성에 대한 강한 예측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탱에 대한 이해는 취약하다." 다 자란 침팬지도 5개월 된 인간 영아처럼 사물들이 서로 접촉하고 있는지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그 접촉이 아래에 있는지 옆에 있는지는 무시한다. 이를테면 공중에 떠 있는 바나나를 보고는 놀라도, 바나나가 공중에 떠 있되 상자 가장자리에 조금이라도 닿아 있으면 놀라지 않는다." 영장류는 지탱에 대해 본능보다는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진화한것으로 보이나, 이 배움에 있어서 인간은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묘사들에 대해 놀라기는커녕 오류라고 인식하지도 않는다. 기하학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태양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크기와 구조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지구를 직접 탐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 현상은 우리의제한된 시각에서 완전히 올바르게 인식될 수 없기 때문에 아이와 어른상관없이 모두에게 어렵다. 이러한 개념적 오류에 대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는 NASA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간 화성의 해돋이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화성에도 태양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이런 댓글에 코페르니쿠스는 관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 같다!

이 같은 사고방식에 있어서의 예외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도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도시 아이들에 비해서 생물학적 특성들을 인간이 아닌 다른 유기체에 더 많이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고,
다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같은 생물학적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고 여긴다. 도시 아이들이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면서도 자연을 접할수 있게 하는 해결 방안이 바로 애완동물인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때론애완동물에게 요리를 해주거나 스파에 데려가는 등 애완동물을 너무 인간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애완동물들은 인간 또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죽음을 이해하기 한참 전부터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다. 처음에는 죽음을 삶의 변형된 형태로 여긴다. 계속해서 음식과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땅에 묻는다거나, 여전히 생각하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을 화장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소름 끼치는 짓이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죽음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고릴라는전혀 겪지 않겠지만) 아이들이 겪게 되는 이러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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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 이론은 자연현상에 대한 오개념의 주요 원인이지만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대부분의 오개념은 단순한 사실적 오류, 즉 생각의 오타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뇌의 10퍼센트밖에 안 쓴다고 믿고 우리의 혀가 각자 다른 맛을 느끼는 구역들로 나누어져 있다고 믿지만, 둘 다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가 뇌와 혀에 대한 심각한 개념적 혼동을 의미하진 않는다. 단지 잘못된 정보로 인한 착각일 뿐이다.

모든 직관적 이론은 일관된 내부적 논리가있고, 세상에 널리 퍼져 있고, 그를 반박하는 증거 앞에서도 완고하다.
이 세 가지 주요 특징들은 직관적 이론을 놀라울 정도로 바꾸기 힘들게만든다. 새로운, 더욱 정확한 이론에 대해 우리가 배운다고 해도, 우리는우리의 직관적 이론들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가 없다. 직관적 이론은 우리가 더 선호하는 과학적 이론에 의해 대체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남아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미묘하지만 뚜렷한 영향을 미친다.

양초가 타는 것을 볼 때나 냄비 속 끓는 물을 볼 때, 우리는 물질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본다. 왁스는 양초로부터 그리고 물은 냄비로부터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무엇도 진정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왁스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산화탄소(그리고 수증기)로, 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증기로 상태를 바꾼 것이다. 물질의 생은 짧은 것 같지만, 사실 물질은 불멸한다. 화학자들은 물질이 생성될 수도 소멸될 수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에 따르면 물질은 있었다가 없어졌다가 하는 그런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물질을 전체론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우리는 물질을 미립자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물질은 입자로 구성되어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먼저, 전체론적 이론에서는 중요하지만 미립자이론에서는 의미 없는 개념적 구분을 무너뜨리고, 미립자이론을 따르는 새로운 구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응집력이 높은 물질과 낮은 물질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물질로서 받아들여야 하고, 자신이 느끼는 주관적 무게(묵직함)와 물리학적 정의에 따른 무게, 그리고 자신이 지각하는 부피(직함)와 물리학적 정의에 따른 부피를 구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밀도‘라는 것이 단위부피당 무게라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블랙의 발견은 열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으로 이어졌지만, 이 이론역시도 현대 열역학의 분자운동론은 아니었다. 블랙의 이론은 열과 온도를 구분했지만 여전히 열을 물질로 여겼다. ‘칼로릭caloric‘이라고 불렸던 이 물질은 어떤 물체의 녹는점이나 끓는점에 그 물체 안에 고여서 그물체의 온도가 아닌 화학적 상태를 바꾸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믿음은 100년쯤 더 지난 후에야 에너지에 기반한 분자운동론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여전히 칼로릭의 개념을 가지고있다. 비록 우리는 칼로릭의 원래의 이름을 잊어버린 채 간단히 열이라고 부르지만, 칼로릭은 여전히 열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과 추론의 기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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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중심‘으로, ‘상대방을 위해서‘ 열심히 해 보겠다고 선택했다가 자꾸 허무해지고 마음에 상처 입는 경험을 해오지 않았는가? 스스로 선택한 일과 남이 시켜서 한 일에 대한태도와 결과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달라진다. 그러니 위의 세 가지 방법을 꼭 사용해 보길 바란다.

현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 라이언 홀리데이의 말이 이 상황을 잘 표현한다. "그림 안에 머물러라 바쁜 사람들은 금세나를 잊을 것이다. 그러므로 관련성과 신선함을 유지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피를 계속 돌게 해야 하는 사람은 멘토가 아니라 나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나는 계속 발전할 수 있다‘
라고 믿는 반면,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나의 재능과능력은 불변하는 고정된 자질이다‘라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인생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현재를 온전히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혼자 설거지할 때를 생각해 보자. 갑자기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스트레스 받은 일, 설거지를 마치고 해야 할 일이나 내일 해야 할 일, 원하는 일이 내 생각대로 안되면 어쩌나 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 온갖 과거와 미래에관련된 생각들이 불쑥 올라와 머리가 혼란해진다. 부정적인생각은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고 긍정적인 생각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을 덮어씌우려고 애쓰기보다 더중요한 것은, 생각을 멈추고 오직 내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는 것이다. 어떤 생각이 몰려오더라도 그 생각들의 바탕에여여하게 있는 마음자리 잡다한 생각들을 다 치우고 나면드러나는 그 맑은 자리에 머물 때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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