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각하는 열(따뜻함과 실제 열의 차이는 우리가 지각하는 무게(묵직함)와 실제 무게의 차이보다도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감각 모두 물질에 의해 좌우되지만, 열에 대한 지각은 물질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무게에 대한 지각보다 훨씬 더 크다. 예를 들어, 같은 무게의알루미늄과 코르크를 들어올리면 부피가 작은 알루미늄이 (부피가 큰 코르크보다 더 묵직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렇다고 알루미늄을 못 들어올릴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열은 다르다. 100도의 코르크는 만질 수 있지만 같은 온도의 알루미늄을 만진다면 바로 화상을 입을 것이다."
이러한 진화론적 추측은 영장류가 물체에 대해 가지는 개념과 일치한다. 영아들과 마찬가지로 원숭이와 유인원은 고형성, 연속성 및 응집성에 대한 강한 예측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탱에 대한 이해는 취약하다." 다 자란 침팬지도 5개월 된 인간 영아처럼 사물들이 서로 접촉하고 있는지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그 접촉이 아래에 있는지 옆에 있는지는 무시한다. 이를테면 공중에 떠 있는 바나나를 보고는 놀라도, 바나나가 공중에 떠 있되 상자 가장자리에 조금이라도 닿아 있으면 놀라지 않는다." 영장류는 지탱에 대해 본능보다는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진화한것으로 보이나, 이 배움에 있어서 인간은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묘사들에 대해 놀라기는커녕 오류라고 인식하지도 않는다. 기하학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태양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크기와 구조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지구를 직접 탐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 현상은 우리의제한된 시각에서 완전히 올바르게 인식될 수 없기 때문에 아이와 어른상관없이 모두에게 어렵다. 이러한 개념적 오류에 대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는 NASA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간 화성의 해돋이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화성에도 태양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이런 댓글에 코페르니쿠스는 관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 같다!
이 같은 사고방식에 있어서의 예외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도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도시 아이들에 비해서 생물학적 특성들을 인간이 아닌 다른 유기체에 더 많이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고, 다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같은 생물학적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고 여긴다. 도시 아이들이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면서도 자연을 접할수 있게 하는 해결 방안이 바로 애완동물인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때론애완동물에게 요리를 해주거나 스파에 데려가는 등 애완동물을 너무 인간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애완동물들은 인간 또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죽음을 이해하기 한참 전부터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다. 처음에는 죽음을 삶의 변형된 형태로 여긴다. 계속해서 음식과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땅에 묻는다거나, 여전히 생각하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을 화장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소름 끼치는 짓이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죽음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고릴라는전혀 겪지 않겠지만) 아이들이 겪게 되는 이러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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