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백의 그림자-

               -황정은-

 

​이 소설을 알게 된것은 비밀독서단 프로그램에서이다. 8회에 '한국 문학 안 읽은지 오래된 사람들'편에 나와서 최종 해결책으로 선정되었는데 나는 '퀴르발 남작의 성'을 재밌게 읽었던 지라 이 소설이 뽑힌것에 대해서 의아했다. 퀴르발 남작의 성 보다 더 재밌어서 뽑혔나? 하는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었다.  결론은... 뽑힐만하다. 예상보다 여운이 깊게 남는다!

 

한 여자가 숲으로 무엇에 이끌려 계속해서 들어간다. 뒤에서 한 남자가 여자를 불러 세운다.

어딜 가느냐고 묻는 남자에게 여자는 누군가 따라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누구를? 인상착의를 말하다 보니 자신이다. 본인의 그림자였다.​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말라고 남자가 말한다.

소설의 초반부터 '그림자'가 마치 사람인양 이야기들을 한다. 그림자가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읽다 보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사실 그림자만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갔다.

그림자가 자주 등장한다. 단골손님이다. 서서히 이 책에서 말하는 그림자의 의미가 어렴풋이 안 좋은 느낌임을 짐작하며 여주인공 은교와 남자 주인공 무재의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순수하게 '썸 타는'대화를 즐기며 읽었다.  도시에 오래된 전자 상가가 있다. 곧 철거된단다. 그 전자상가 안의 사람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그들은 나름대로 한 번씩 그림자들을 만난다. 은교가 전자상가의 한 수리점에 있는 여씨 아저씨와의 대화가 인상 깊었다. 그림자가 일어났다고 여씨 아저씨에게 말하자 아저씨가 은교에게 묻는다.

『 그래서 그림자를 따라가는 기분이 어땠나.

나쁘지 않았어요. 자꾸 따라가게 되던데요,라고 말하자 그렇지,라는 듯 여씨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서운 거지, 그림자가 당기는 대로 맥없이 따라가다 보면 왠지 홀가분하고, 맹하니 좋거든, 좋아서 자꾸 따라가다가 당하는 거야, 사람이 자꾸 맥을 놓고 있다 보면 맹추가 되니까, 가장 맹추일 때를 노려 덮치는 거야.. 』​

그리고 어느 날 다시 여씨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아저씨의 그림자가 일어섰을 때 어땠는지를 말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그림자'가 힘들게 살아가며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그림자가 일어선다는 뜻이구나 해석했다. 내 해석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나름의 판단은 그렇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 거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림자'를 한 번씩 만나게 되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읽고 있는 나는 좀 오싹했다. 무거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등장인물의 대화들에서 무서움을 느꼈달까...

무재가 은교에게 이런 말을 한다. 간밤에 자신이 그림자에 걸려 넘어졌었노라고... 그 말 안에 어떤 의미들이 있는 것일까... 무재의 그날은 유독 힘든 하루였던 것일까...

『 그림자 같은 것은 완전히 잊은 채로 한동안 누워 있었다, 바닥이 차갑고, 무언가가 묵직하게 등을 당기는 듯해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때 뭔가 들러붙었다, 등 쪽으로 빈틈없이 붙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대단히 힘이 셌다, 엎드리지도 못하고 돌아눕지도 못한 채로 밀착되어 있었다, 밀면 미는 만큼 등 뒤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힘을 느끼며 애를 쓰는 와중에, 차피,차피, 라고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자세히 듣고 보니 어차피, 어차히, 라고 말하고 있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이 밀어붙이는 대로 몸이 뒤집히면 만사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다해 버텼다...... 』

무재의 그날 밤... 그림자에 걸려 넘어져버린 밤. 새벽에 깼을 때 강하게 느껴지는 그림자의 존재.. 그리고 들려오는 말. '어차피...어차피...'​ 이 말에 무서움을 느꼈다.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이 자포자기할 수도 있는 순간이라고 느껴서 일까... 이 소설은 마치 한편의 짧은 독립영화를 본 거 같은 기분이 든다. 2시간 정도면 다 볼 수 있는 짧은 장편소설이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그림자'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은 더 길었다. 잔잔하게 내 머릿속에 맴돈다.  지금 그림자를 따라가려는 사람은 무재가 말한다.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마세요." 라고 말이다. ​ 아무리 길을 잃어도 말이다... 우리는 그림자를 따라가지 말자! 그림자는 그저 우리를 따라 오게해야 하는 존재이지 우리가 따라가는 존재가 되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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