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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하면 보인다
신기율 지음, 전동화 그림 / 쌤앤파커스 / 2015년 5월
평점 :

『직관은 '과정'이라는 말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필터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닿는'것이다. /누군가로 인해 몸과 마음이 크게 진동하면 그 울림은 몸이라는 공간의 구석구석에 기억된다. 그렇게 한 번 기억된 울림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그 울림을 주었던 누군가가 다시 나타나면 몸은 내 의식의 속도를 넘어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서로에게 반응하고 공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공명이 바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인연은 우연히 일어난 것 같은 특별한 사건들을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의 일들로 만들어낸다. 어쩌면 우리들의 일상은 수많은 인연들이 벌이고 있는 공명의 장일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곳에서도 쉽게 친한 사람이나 가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것도 역시 서로 친밀한 감정과 공명을 나눠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가능한 이야기인 거 같다. 책 내용 중 저자가 운전하고 가던 중 젊은 시절 짝사랑했던 여성을 우연히 횡단보도에서 발견하게 된다. 뜻밖에 그녀는 비구니가 되었다. 달라진 모습과 지난 세월에 그냥 스쳐 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알아본다. 서로가 공유했던 공명이 다시 작용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직관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집중된 정신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때문에 작가의 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물건 중 하나다. 어떤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로 마음이 편해지는데, 어떤 책은 아무리 위로와 치유를 말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가슴 밑바닥에서 들어 올린 말인지, 머리 꼭대기에서 툭툭 던진 말인지도 선명히 쓰여 있는 것이다. 아무리 중간에 편집자가 개입하고, 컴퓨터로 수정하고, 인쇄해서 찍어내도 작가 고유의 그것은 바코드처럼 찍힌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사람에게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
정말 크게 공감한 대목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가슴에 진심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훌륭한 문장임에 틀림없는데 이상하게 아무 감흥이 오지 않는 책이 있다. 책을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에 200% 공감한다. 책은 단지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읽고 난 후의 그 사람이 가까운 친구나 주변인들에게 릴레이로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DNA로만 따지면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얽혀'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지어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우주가 탄생 한 시점인 '빅뱅'의 순간에는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었다. 그러니 우주의 모든 존재는 서로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독립적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서로 소통과 공존을 이어가는 존재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한민족 한 뿌리"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쓰여야 하는 말인가 보다. 파리의 연인 드라마 대사 중 "이 안에 너 있다."라는 말이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차는 단순히 나뭇잎을 우려낸 물이 아니에요. 태양, 풀, 흙이라는 자연의 기운을 가득 담은 물이죠. 자연이 마시는 물들은 그냥 빗물이 아니라 찻물인 셈이에요.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온갖 나무와 잎과 초목을 적시고, 그 물들이 다시 땅으로 스며들어 생명을 키워나가니까요."』
이 대목에서 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했다. 우리가 마시는 차는 그냥 차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의 기운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마시는 차와 그냥 마시는 차는 분명 큰 차이가 있으리라... 내가 차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잠깐이라도 생각해 주는 것과 그냥 후후 불며 마실 때는 차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말과 생각의 힘에 대한 실험 중 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사람의 말과 생각은 '물'의 모양을 결정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긍정적인 상태로 마시는 사람이 차를 마시면 "내가 차라도" 몸속에 더 좋은 작용을 해 줄 것 같다.
『몸과 내가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때, 내 몸 안의 명당은 비로소 나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간은 일종의 '분노 조절장치' 우리가 화가 났을 때 본능적으로 술을 찾는 것은, 강한 알코올로 간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간이 너무 무력해지면 분노조절이 안 되면서 오히려 화가 폭발하는 이런 이치를 안 뒤부터 나는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됐다. '저 사람은 지금 간이 아프구나. 불쌍한 간.' 그러면 훨씬 덜 미워진다. 실제 그런 사람은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간도 함께 치유해야 분노 저절이 가능해진다.』
여담이지만 혹시 개그맨 박명수도 간이 안 좋아서 '버럭 개그'가 유머로서 탄생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우연일 수 있지만 실제 박명수는 간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어쨌든 책의 저자는 버럭 화를 내는 사람을 '간이 아프구나...'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는데 아직까지 나는 그런 경지는 아닌 거 같다. 누군가 내게 버럭이면 나도 바로 버럭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께 동의를 구하고 싶어진다.
《도로시 마무리》
한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하거나 읽은 후에 책을 쓴 저자를 소개하는 글을 보게 된다. 이 저자의 소개 글은 왠지 신선했다. 저자 스펙을 나열하기 보다, 은은한 차 향기 같은 저자의 소개 글이었다. 영화 같은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재야의 고수가 누군가를 구해주고 나서, 도움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범상치 않으신 분 같은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럼 고수는 이렇게 나지막이 말한다 ."나는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오. 도움이 됐다 하니 나 도한 기쁘오."라고 말하며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이 연상됐다.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지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