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악마와 함께 춤을 -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크리스타 K. 토마슨 지음, 한재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세상에 부대끼며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적 경험을 엄청나게 많이 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 나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비법을 알려주고 싶어 이 책을 손에 들었다.

감정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갑자기 "베토벤 현악 사중주는 사실... 고양이 창자에 말총을 긁는 것"이라는 언급을 하신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있어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되었는데 감정을 고양이 창자 이야기와 연결시키며 단순한 환원적 설명으로는 감정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서 '철학'을 소환하신다.
죽은 사람과 교감하며 철학사를 연구하는 인문학자이신 저자님은 감정은 우리의 일부로 우리는 감정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저자님은 나쁜 감정이 좋은 것이라고 믿게 할 작정으로 그리고 감정을 실천적 문제로 만들고자 이 책을 집필하셨는데 철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쁜 감정에 대한 변명(apology)들이 이 책에 가득 담겨있다.

'감정 통제형 성인'인 간디와 스토아학파 그리고 '감정 수양형 성인'인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를 하시며 감정은 통제해서도 안되고 감정은 길들이려해서도 안된다며 나쁜 감정을 느낄 때마다 그냥 내버려두고 느끼라고 제안하신다.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면 열까지 세거나 심호흡하거나 긍정 심리학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감사연습'을 해보라거나 나쁜 감정은 비생산적이고 건강하지 않으니 마음을 넓게 가지고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밝은 면을 보라는 식으로 말씀하실줄 알았는데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고, 그걸 원해서도 안되며 설령 감정을 길들일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야생의 감정을 선호해야 한단다. 성인의 삶이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은 인간성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며 왜 인간 삶의 최고 형태가 성인이라고 가정해야 하냐는 저자님의 반론에 마음이 끌린다.
진정한 의미는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끊임없이 흡수하고 그 안에 흠뻑 젖어 드는 것'에 있다.
삶을 잘 살려면 아니 그저 살아가려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감정을 행복과 성공을 달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취급하거나 행복과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취급하는 건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하는 짓이다. 감정은 도구가 아니다. 감정은 에너지를 주는 연료가 아니다. 감정은 당신을 섬겨야 하는 머릿속의 작은 집사가 아니다. 감정은 마음의 벽장에서 치워야 할 잡동사니가 아니다. 지렁이가 정원의 일부인 것처럼 감정은 내 삶의 일부다.
인간성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때로는 충성을 위해 기꺼이 죄를 지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까지 고행을 강요하지 않고, 개인의 사랑을 다른 개인에게 종속시키는 행위의 필연적인 대가로, 결국 삶에 의해 패배하고 깨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니체, 몽테뉴, 다윈, 헨리 데이비드 소로까지 모든 철학자의 이야기가 다 좋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자신을 지키며 사는 법을 알려주는 몽테뉴의 '골방' 이야기였다.
사람은 공식에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복잡성을 편한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몽테뉴는 그 방법을 보여 주는 데 달인이다. 몽테뉴에게 자기 이해란 자신을 잘 다듬어 장식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의 광야를 탐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골방'을 따로 마련하고, 그곳을 완전히 자유롭게 유지하며 그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확립해야 한다. 머릿속이나 영혼에 자신과 단둘이 지낼 장소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앙심을 품게 되는 건 내 골방에 누군가가 불쑥 들어오려고 할 때다.
현명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는 것이 내겐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 결정하는 건 나 자신임을 주장하는 한 방식이 앙심이다.
리처드 스캐리가 창조한 가상 세계 북적북적 바쁜 마을의 유일한 무척추 동물인 모범시민 지렁이 로리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지렁이에 대한 다윈의 재평가가 신선한다.
지렁이는 해충이 아니며, 단순히 흙을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환경을 풍요롭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쁜 감정을 정원에 있는 지렁이로 보아야 한다. 겉모습이 하찮아 보이더라도 진심으로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 보라. 그것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살펴보라. 다윈주의적 태도를 가지면 감정 성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버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최대한 성인에서 멀어져야 한다. 이제 악마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할 때다.
저자님은 나쁜 감정은 좋은 삶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마치 지렁이가 정원의 일부인 것처럼 나쁜 감정도 좋은 삶의 일부라고. 그렇다. 완벽한 매너와 깔끔한 나비넥타이를 갖춘 지렁이 로리는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저녁 식사 손님이지만 지렁이를 지렁이답게 해주는 모든 요소를 잃어버렸다. 지렁이다움을 모두 벗어 던져야만 녀석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지렁이를 사랑하는게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등 모든 세대의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중대한 질문에 직면한다. "좋은 삶과 나쁜 감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며 감정과 함께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방법을 알려주는 훌륭한 철학책이 발간되었다. 나의 감정에 대한 주체성을 갖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하는 멋진 철학책이다.

감정이 우리말을 듣도록 훈련시키기보다는 우리가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도록 허용해주어야 겠다. 나의 정원의 지렁이를 너그럽고 솔직하게 마주보며, 지렁이가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보련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미자모#악마와함께춤을#크리스타K토마슨#한재호#흐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