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는 중학교에서 끝난다 - 일타맘 SKY 대입 성공 전략
오대교 지음, tvN STORY & LG 헬로비전 〈일타맘〉 제작팀 기획 / 타인의취향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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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입시라는 단어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 처음에는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직은 책 한 권 더 읽고 친구들과 실컷 뛰어노는 일이 더 중요한 나이인데도 사람들은 벌써 고등학교를 이야기하고 대학을 이야기한다. 그런 시기에 만난 책이 「입시는 중학교에서 끝난다」였다.


 제목은 조금 무서웠다. 정말 중학교에서 끝난다는 뜻일까. 혹시 이미 늦었다는 이야기일까. 그러나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저자가 말하는 '끝'은 조급함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지를 먼저 살펴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성적보다 관심사를, 선행학습보다 문해력을, 스펙보다 탐구의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고등학교가 아니라 중학교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관심 분야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아이에게 종종 장래희망을 묻는다. 하지만 중학생에게 평생의 꿈을 정하라고 하는 일은 생각보다 가혹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하겠다면 싫어하는 것부터 지워 나가라고 조언한다. 그 말이 이상하리만큼 현실적으로 들렸다. 그렇게 하나씩 길을 좁혀 가다 보면 결국 아이만의 방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 마음에 남았던 것은 독서와 문해력에 대한 강조였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해 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글을 읽고 이해하고 자기 생각으로 연결하는 힘만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읽은 책 한 권, 수업 시간에 품은 작은 의문 하나가 탐구가 되고 학생부가 되고, 훗날 면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재료가 된다는 설명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부모를 조급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둔 부모로서, 오늘부터 아이의 말을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펴보며 함께 길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며 늘 공부를 걱정했지만, 책을 덮고 나니 성적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지를 아는 일이 어쩌면 입시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어머니는 이미 기차에 올라탄 사람입니다. 목적지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같은 기차에 탔습니다. 목적지를 아는 사람은 어느 역에서 내릴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은 기차가 역에서 멈출 때마다 불안합니다. 이 책은 어머니에게 그 목적지를 알려줍니다. 



 책 속 이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좋은 대학이 목적지가 아니라, 아이가 자기만의 방향을 찾는 과정이 먼저라는 뜻으로 읽혔다. 부모가 할 일은 길을 대신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헤매지 않도록 곁에서 함께 걸어주는 일일 것이다.


 입시를 앞둔 학부모는 물론이고, 중학교 진학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불안만 키우는 입시 정보 대신 아이를 이해하는 방법과 방향을 찾는 과정을 차분히 들려주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무엇을 더 시켜야 할지 알려주는 책은 아니지만, 무엇을 먼저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아이의 미래가 궁금한 부모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미자모#입시는중학교에서끝난다#오대교#tvNSTORY&LG헬로비전#일타맘제작진#타인의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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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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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었을 때는 인생이 어딘가에 도착하는 일인 줄 알았다.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목적지에 닿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인생은 도착보다 항해에 가까웠다. 잠시 숨을 돌릴 만하면 또 다른 파도가 왔고, 어렵사리 고개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났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내가 바랐던 것은 평온한 항구였는데, 정작 내게 주어진 것은 늘 바다였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도 그것이었다. 왜 하필 지금, 오디세우스인가.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십 년을 더 헤매야 했던 남자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알게 되었다.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신화 속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저자는 끊임없이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의 이타카는 어디인가." 처음에는 철학적인 질문 같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외로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살고 있을까. 매일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사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정해 놓은 길을 부지런히 따라가면서 그것이 내 선택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아무도 대신 노를 저어주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누군가는 조언을 해줄 수 있고, 누군가는 위로를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내 삶은 내가 살아야 한다. 누구도 내 몫의 결정을 대신할 수 없고, 누구도 내 시간의 책임을 대신 져주지 않는다.


 특히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서 뗏목을 만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뗏목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나무를 자르고 묶고 또 묶어야 한다. 고단하고 지루한 노동이다. 우리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인생을 바꾸는 것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들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노를 젓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근육"이라고 말한다. 참 맞는 말이다. 살다 보면 의욕이 넘치는 날보다 의욕이 바닥인 날이 더 많다. 그래도 출근하고, 밥을 하고, 가족을 챙기고, 맡은 일을 해낸다. 결국 우리를 앞으로 움직이는 것은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오래 길들여진 생활의 힘이다.


 읽는 내내 여러 장면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로토파고스의 열매를 먹고 목적을 잊어버린 사람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보였고, 세이렌의 노래에서는 남들의 성공과 비교하며 흔들리는 마음이 보였다. 키르케의 섬에서는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삶을 열심히 흉내 내고 있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도 이 질문이 더 어려워진다. 젊을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무엇이 내 욕망이고 무엇이 남의 욕망인지 구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몰리'라는 약초가 마음에 남았다. 눈앞의 달콤함에 취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묻는 힘.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이성.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은 거창한 지혜가 아니라 이런 정신의 맑음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책이 위로를 쉽게 팔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요즘은 괜찮다는 말이 너무 흔하다. 힘들었지, 잘하고 있어, 곧 좋아질 거야. 듣기 좋은 말들이 넘친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파도는 없앨 수 없다. 상처도 피할 수 없다. 인간은 늙고, 소모되고, 결국 죽는다. 그런데도 노를 저어야 한다고. 오히려 그 냉정함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살다 보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고, 끝내 받아들여야 하는 상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특히 하데스 장면을 읽으며 나의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시간은 죽음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실감나게 하며 요즘 그 슬픔에 가슴이 져미는 중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 슬픔은 단순히 견뎌야 하는 고통만은 아니라는 것을. 무엇이 소중한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어떤 슬픔은 흘려보내야 하지만 어떤 슬픔은 벼려두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대신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 어떤 섬에 머물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해 움직이지 못하는가. 나는 정말 내 삶의 키를 쥐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오늘 나의 이타카를 향해 단 한 걸음이라도 나아갔는가. 오디세우스는 십 년의 전쟁과 십 년의 귀환 끝에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길이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그렇다. 도착은 없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마침표를 찍어주는 책이 아니라 쉼표를 건네는 책이어서. 아직도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모를 때가 많고,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자신 없는 날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려 한다. 오디세우스가 그랬듯, 우리도 완벽해서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없기에 노를 젓는다.


언젠가 이타카에 닿을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오늘도 자기 몫의 노를 놓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미 길 위에 있는 것 아닐까.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오래 망설여본 사람, 그리고 지금도 묵묵히 자기 몫의 노를 젓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조용히 권하고 싶다. 오래된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놀랍게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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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모#우리는매일각자의오디세이아를쓴다#호메로스#클래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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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 김상근 교수가 전하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
김상근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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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오디세이」를 읽겠다고 도서관에서 몇 번이나 책을 펼친 적이 있다. 그러나 늘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이름은 왜 그리 어려운지, 신들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전은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하고 포기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난 오디세우스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번에 읽은 청년을 위한 「오디세이」는 나를 고대 그리스로 데려가기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로 데려왔다. 책 속의 이야기는 3천 년 전 바다 위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오늘 아침 출근길에 느꼈던 불안과 닮아 있었다. 내가 최근 겪은 상실과도 닮아 있었고,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걱정과도 닮아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이라기보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읽혔다. 저자는 청년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청년만 읽기에는 아까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살아오며 몇 번쯤 길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모습 하나쯤은 이 긴 항해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 같다.


 오디세우스는 흔히 영웅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만난 그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실수도 많았고 자만도 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를 속여 탈출하는 기지를 발휘했지만,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바람에 포세이돈의 분노를 샀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호기심을 참지 못했고, 유혹 앞에서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인간다웠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넘어지지 않아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기 때문에 성장한다.


 저자님은 「오디세이」를 두 사람의 성장 이야기라고 말한다.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텔레마코스의 여정과 집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 나는 이상하게 텔레마코스보다 오디세우스 쪽에 더 마음이 갔다. 젊을 때는 세상에 나가는 일이 성장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진짜 어려운 일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이라는 것을.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저자님이 말하는 노스토스는 단순한 귀향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살다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붙잡으려 한다. 좋은 직장, 더 큰 집,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이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 머물렀던 것처럼. 영원히 늙지 않아도 되고, 고통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곳.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에게도 칼립소는 너무 많다.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게 만드는 화면들. 잠시 현실을 잊게 만드는 자극들.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결국 나를 멈춰 세우는 것들. 오디세우스가 끝내 칼립소를 떠난 것은 고통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진짜 삶을 선택한 것이었다.  불완전한 아내 페넬로페. 늙어가는 시간. 언젠가 끝날 생. 그 유한함 자체를 사랑한 것이다. 그 대목을 읽으며 문득 떠난 사람들을 생각했다.


 최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중이다. 죽음은 아무리 준비해도 낯설고 잔인하다. 오디세우스 역시 저승에서 어머니의 혼령을 만난다. 그는 어머니를 안아보려 하지만 품에 안을 수 없다. 몇 번을 시도해도 손끝은 허공을 가른다. 그 장면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다시는 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는 이름을 부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책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말한다. 슬픔에 머물지 말고 빛을 향해 돌아가라고. 남아 있는 사람의 곁으로 가라고. 살아 있는 사람답게 살아가라고. 그 말이 위로처럼 다가왔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오늘의 삶과 연결해주는 저자님의 시선이었다. 세이렌을 유튜브와 숏폼 중독으로 읽어내고, 칼립소를 안락함과 현실 도피로 읽어내고, 폴리페모스를 자만과 절제의 결여로 읽어낸다. 억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고전이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좋은 고전은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읽게 만드는 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책을 덮은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마지막 장이었다.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에게 또 다른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 처음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20년을 떠돌았는데 또 떠나야 한다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삶도 그렇다. 어느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는다. 입시가 끝나면 취업이 오고, 취업이 끝나면 결혼이 오고, 결혼이 끝나면 또 다른 책임과 선택이 기다린다. 인생은 종착역이 아니라 기착지의 연속이다. 그래서 저자는 노를 창고에 넣어두지 말라고 말한다. 다시 들고 길을 나서라고.


 그 대목을 읽으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지금 자신의 노를 메고 걷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상실이라는 노를, 누군가는 불안이라는 노를,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노를. 중요한 것은 그 무게를 짐처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든 채 앞으로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3천 년 전 눈먼 시인이 남긴 이야기가 오늘의 나를 위로할 줄은 몰랐다. 《오디세이》는 결국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긴 이야기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문장은 이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타카를 향해 노를 젓는 그 여정 속에 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어쩌면 각자의 이타카를 향해 항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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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필사북 - 이동진 평론가 추천!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역사, 건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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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옥 작가님의 작품 가운데 제목 하나만 기억하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무진기행」을 떠올릴 것이다. 「서울, 1964년 겨울」, 「역사」, 「건」 역시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이지만, 「무진기행」은 유독 하나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아마도 안개 때문일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안개 속에 감춰진 인간의 마음 때문이다.


 젊은 시절 처음 읽었을 때의 「무진기행」은 단순했다. 고향에 내려간 한 남자가 옛 여인을 만나 흔들리다가 결국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 솔직히 말하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다시 읽은 「무진기행」은 전혀 다른 소설이었다.


 이제 나는 윤희중을 비난할 수 없다. 오히려 그를 이해하게 된다. 좋은 직장, 사회적 성공, 안정된 생활을 얻었음에도 어딘가 공허한 사람.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 현실을 버릴 용기는 없지만 현실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어느 나이가 지나고 나면 삶은 더 이상 무한한 가능성의 이름이 아니다. 직장생활의 시간, 가족에 대한 책임, 경제적 현실, 사회적 위치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삶은 점점 단단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의 나는 정말 내가 선택한 결과인가.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무진기행」은 바로 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그래서 놀랍다. 스물세 살의 저자님이 어떻게 중년의 권태와 타협, 욕망과 자기기만을 그렇게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었을까? 나는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이 소설이 보이는 부분이 있다.


 소설 속 윤희중은 "한적이 그리울 때 무진을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한적함이 그리울 때 말도를 떠올린다고. 좋은 독서란 아마 이런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 같다. 작품 속 무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기만의 무진을 발견하는 순간 말이다. 누군가에게 무진은 고향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바다일 수 있다. 잊고 지냈지만 문득 돌아가고 싶은 시간일 수도 있다. 윤희중에게 무진이 과거와 욕망, 회피와 그리움이 뒤섞인 공간이었다면, 나에게 말도는 삶을 잠시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진기행」은 공간을 다룬 소설인 동시에 내면을 다룬 소설이다. 안개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인물의 마음을 대신 말하는 거대한 은유다. 무엇 하나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안개 속 풍경처럼, 윤희중 역시 자기 마음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지만 끝내 자기 자신에게조차 솔직해지지 못한다. 그 모습은 어쩐지 현대인의 자화상 같다.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자신의 삶을 확신하지는 못하는 사람. 현실에 적응했지만 내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을 품고 있는 사람. 그래서 「무진기행」은 읽을수록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내 삶과 나 자신 사이에도 틈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 김승옥저자님의 소설들을 다시 읽으며 필사의 매력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김승옥 저자님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건조하고 절제되어 있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 반복되는 표현,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풍경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 읽을 때는 스쳐 지나가지만 손으로 직접 따라 쓰면 문장의 구조가 보인다. 왜 이 단어를 선택했을까. 왜 여기서 문장을 멈췄을까. 왜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안개를 보여주었을까. 한 번 읽어서는 보이지 않던 문장의 이음새가 드러난다. 그래서 필사는 단순히 글씨를 베끼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정중한 독서" 다. 독자가 작가를 따라 읽는 것을 넘어, 작가의 어깨너머에서 문장이 탄생하는 순간을 들여다보는 경험이다.


 「서울, 1964년 겨울」을 초등학교 6학년 아이와 함께 읽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이의 질문이 오히려 작품의 핵심을 건드렸다. "이 사람들은 왜 친하지도 않은데 같이 있어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작품 속 세 남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깊은 관계도 아니다. 그럼에도 함께 걷고, 술을 마시고, 밤을 보낸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 사람들은 꼭 친해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외로워서 함께 있기도 하고, 누군가가 필요해서 함께 있기도 하다. 때로는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함께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서울, 1964년 겨울」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낯설지 않다.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 회식 자리에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대인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결국 김승옥저자님의 소설들을 읽고 필사하는 일은 한 작가를 읽는 일이 아니라 자기 삶을 읽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인물과 사건을 따라가게 되지만, 지천명의 나이에 다시 읽으면 소설 속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가지 않은 길, 선택하지 못한 삶,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독서는 안개가 아름다운 소설을 읽은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 를 조용히 되묻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무진기행」이 반세기가 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안개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길을 잃었던 인간의 질문은 아직도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김승옥 작가님의 문장을 천천히 필사해 보려 한다. 한 줄 한 줄 따라 쓰다 보면 언젠가는 문장 속에 숨어 있던 작가의 마음뿐 아니라,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내 마음도 만나게 될 것 같다. 좋은 문학은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으로 걸어 나오는 것임을, 저자님은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하지만 가끔은 선택하지 않은 길들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무진기행」은 바로 그런 순간에 읽게 되는 소설이다.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질문도 남아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일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만난 「무진기행 필사북」은 단순히 읽는 소설이 아니라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다. 한 줄 한 줄 필사하며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를 조용히 묻게 된다. 문장이 아름답다기보다 인간의 마음속 모순과 허무를 섬세하게 비춰주는,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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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모#무진기행필사북#김승옥#스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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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방학에 자란다 - 현직 초등교사가 만든 하루 15분 빙고혁명
김양희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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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이 시작되면 부모들은 늘 마음이 바빠진다. 학원을 더 보내야 할지, 문제집을 몇 권 더 풀려야 할지,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불안이 먼저 고개를 든다. 나 역시 방학 계획표를 들여다보며 아이의 시간을 빈틈없이 채워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방학에 자란다』는 내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이에게 무엇을 시킬 것인가?" 가 아니라 "아이는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였다.


 생각해보니 내 어린 시절의 방학은 계획표보다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친구들과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고, 동네를 뛰어다니고, 매미 소리가 쏟아지는 오후를 보내던 시간들 말이다. 무엇을 배웠는지보다 어떻게 놀았는지가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이야기한다. 방학을 공부의 공백기로 보지 말고 아이의 강점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보자고 말한다. 부모가 짜준 계획표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만든 빙고판 안에서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해내는 기쁨을 배우고, 자기 삶의 작은 주인이 되어 간다.


 책을 읽으며 우리 집 방학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이번 여름방학 동안 우리 아이는 정말 많이 놀았다. 아니, 어쩌면 많이 자랐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른다. 은어축제에 가서 아빠와 함께 은어를 잡아 바로 튀겨 먹었고, 캠핑장에서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계곡에서는 물놀이를 하고 작은 민물고기를 잡으며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가 집에 와 슬립오버를 하며 밤늦도록 웃고 떠들었고, 마당에 만든 작은 수영장에서는 함께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친구와 함께 전복 요리를 만들었고, 미술학원 방학특강에서는 버터떡도 만들어 보았다. 꿈나무아동센터에서 노만바스 물놀이에도 참여했고,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가 죽을 떠먹여 드렸다. 공예체험장에서는 팔찌와 복조리를 만들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그 사이 공부를 완전히 놓은 것도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 8품사를 공부하고 문장의 구조를 익혔다. 책도 읽었다. 특히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며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만났다.


 신기한 것은 아이가 가장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이 공부 시간이 아니라 이런 경험들이라는 점이다. 은어를 처음 잡았던 순간, 친구와 함께 요리했던 시간, 할머니에게 죽을 떠먹여 드렸던 기억, 어려운 복조리를 만들며 집중했던 오전, 이런 경험들이 아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우리아이는 방학에 자란다」의 저자님은 방학 빙고의 목적이 빙고를 완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책을 덮으며 나는 깨달았다. 우리 아이는 이번 여름방학에 많은 칸을 채운 것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채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의 칸이 채워질 때 부모의 칸도 함께 채워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부모 역시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함께 웃는 법을 배우고, 아이를 믿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방학이 끝나면 남는 것은 문제집 몇 쪽을 더 풀었는지가 아닐지 모른다. 대신 아이는 말할 것이다. "나 이번 여름방학에 은어도 잡아 봤어." "친구랑 전복요리도 만들어 봤어." "할머니께 죽도 떠먹여 드렸어." 그리고 그 한마디들이야말로 아이가 만든 가장 빛나는 자랑거리가 아닐까.


 「우리아이는 방학에 자란다」는 결국 이렇게 말하는 책이다. 방학은 성적을 올리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을 발견하고 부모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라고.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이번 여름방학을 아이에게 참 잘 선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을 잘 보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발간되었다. 방학을 성적표가 아닌 추억과 경험으로 채우고 싶은 부모라면,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보다 스스로 자랄 기회를 선물하고 싶은 부모라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미자모#우리아이는방학에자란다#김양희#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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