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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태주 지음, 나난 그림 / OTD / 2026년 9월
평점 :

매달 한 번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 미술치료 시간에 특별한 미션이 주어졌다. "집에서의 나를 가면에 그려보기." 처음에는 조금 막막했다. 회사에서의 나는 꽤 분명하다. 숫자를 보고 계획을 세우고, 끊임없이 우선순위를 정한다. 효율을 따지고 ROI를 계산하는 일에 익숙하다. 감정보다는 데이터를 믿고, 직감보다는 근거를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집에서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한참 생각하다 보니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남편과 아들, 두 남자 사이에서 꽃처럼 지내고 싶었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가끔은 그림을 그리고,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줄 아는 사람.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지냈지만 사실은 그런 삶을 오래 꿈꿔왔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의 흐름 속에서 가면 위에 내가 좋아하는 동백꽃을 그리고 있는데 문득 이 책 「오래 머무는 마음」 속 꽃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책에서 만난 꽃들을 나의 가면 위에도 함께 옮겨 놓았다.

꽃을 그리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꽃이 내가 되고, 내가 꽃이 되는 것 같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오래 머무는 마음」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도.

아이가 가장 먼저 펼쳐 읽어준 시는 <꽃다발>이었다.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 꽃을 보여주고 마음을 줄 수 없어 꽃다발을 드리니 부디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의 목소리로 시를 듣고 있으니 정말 꽃다발 하나를 선물받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시어머님을 자주 찾아뵌다. 가족실에서 아이는 우쿨렐레 연주를 해드리고, 나는 「오래 머무는 마음」을 들고 가 시를 읽어드리며 안부를 묻는다. 숨쉬기는 어떠신지, 오늘은 조금 덜 힘드신지, 마음에 걸리는 일은 없는지.

꽃 그림을 함께 바라보고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대화가 된다. 말보다 시가 더 다정할 때가 있고, 꽃 한 송이가 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꽃을 보며 감사했고, 시를 읽으며 감격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꽃인데 그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장을 넘길수록 꽃들은 자꾸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도 꽃을 피워."

몽글몽글한 분홍 꽃송이들을 바라보다 보니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너를 생각하는 내가 좋고, 너와 함께 숨 쉬는 내가 좋고, 오늘 하루 살아 있다는 것이 좋았다. 쾌청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꽃들에게 하나씩 인사를 건넸다. 꽃 하나하나가 작은 세상 같았다. 푸른 지구 위에 피어난 꽃이 아름답듯, 바람 부는 세상 속에서도 살아가는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팝아트 꽃이 이렇게 장엄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꽃나무 아래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나도 꽃이고, 너도 꽃이고, 우리 모두 꽃이었다. 문득 아이가 유치원 발표회에서 불렀던 <모두가 꽃이야>가 떠올랐다.

틀려도 괜찮고,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나태주 시인의 시도 참 다정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좋고, 사랑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 좋고,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어 좋다. 행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오늘 하루 무사한 것, 아무 일 없이 하루를 건너온 것, 그 평안이 행복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늘 짧고 담백하다. 그런데 그 짧은 문장 안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두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나난 작가의 꽃들이 있다. 그 꽃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다. 사랑이고, 기억이고, 위로이고, 감사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꽃이 되어 피어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시와 그림은 서로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이해한다.
독자는 시를 읽다가 그림 앞에 머물고, 그림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책을 덮고 나니 제목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오래 머무는 마음」, 아마도 시가 오래 머물고, 꽃이 오래 머물고, 그 시와 꽃을 바라보던 나의 마음 또한 오래 머무는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천천히 읽고 그림 앞에 오래 머물렀던 시간, 그것은 독서라기보다 작은 치유에 가까웠다.

꽃이 웃게 하고, 꽃이 위로하고, 꽃이 사랑을 전한다. 이 책은 마치 시들지 않는 꽃 한 다발을 선물받는 기분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꽃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조용히 피어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무엇보다 바쁘게 살아오느라 가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가면 위에 그렸던 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꽃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이 책은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던 나에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은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언어와 나난 작가의 아름다운 꽃이 만나 우리 삶의 평범한 순간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준다. 책을 읽는 내내 꽃을 선물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도, 그 꽃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싶은 분, 시 한 줄과 꽃 한 송이로 위로받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한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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