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터 - 나는 AI로 인생을 바꿨다
비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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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어디를 가나 AI 이야기다. 마치 AI를 모르면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솔직히 그런 분위기에 조금은 피로감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나 역시 이 새로운 도구를 내 일에 어떻게 써야 할지, 또 어디까지 믿고 맡겨도 될지 궁금하다.


 이 책은 그런 사람을 위한 책이다. AI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거창하게 예언하지도 않고, 어려운 기술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사람이 AI라는 도구를 손에 쥐고 자기 일을 조금 더 잘해보려 애쓴 기록에 가깝다.


 저자는 2년 가까이 AI를 매일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쌓인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결과를 바꾸는 것은 AI의 성능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라는 것. 


 우리는 흔히 AI에게 "해줘"라고 말한다. 그러면 AI는 그 정도 수준의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왜 필요한지 알려주고,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이야기하면 답은 완전히 달라진다. 생각해보면 사람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내 사정을 모르는데 어떻게 정확한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CRAFTER라는 틀도 결국 같은 이야기다.


 겉으로 보면 프롬프트 작성 공식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좋은 질문을 만드는 습관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 메일 하나 써줘." 보다 "나는 SCM 담당자이고, 공급 지연 이슈로 글로벌 팀에 메일을 보내야 한다. 정중하지만 분명하게 액션을 요청하는 메일을 작성해줘."가 더 좋은 답을 얻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AI를 잘 쓴다는 것은 결국 AI를 조종하는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아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AI가 인생을 바꿔주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말이었다. AI는 알아서 길을 만들어주는 마법이 아니다. 다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알고 있을 때 훨씬 빠르게 데려다주는 도구다. 그 방향은 결국 사람이 정해야 한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는 일까지 AI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계속 이야기한다. AI를 배우려고만 하지 말고 써보라고. 잘 몰라도 먼저 질문해보고, 틀리면 다시 물어보고, 고쳐보고, 또 시도해보라고. 수백 번의 시도 끝에 쌓이는 것은 지식보다 감각이다. 어떤 맥락을 줘야 하는지,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 어떤 답이 좋은 답인지 알아보는 눈 말이다. 


 책을 덮고 나니 결국 AI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책처럼 느껴졌다. 도구는 계속 바뀔 것이다. AI 다음에 또 다른 무언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도구를 만나면 일단 써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사람의 태도만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AI 시대의 경쟁력도 기술이 아니라 그런 태도인지 모른다.


 책을 읽고 나서 AI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은 편안해졌다. AI를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내가 해온 일, 쌓아온 경험, 수없이 고민하며 내린 판단들은 여전히 내 몫이다. AI는 그것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멀리 펼쳐주는 도구일 뿐이다.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내일도 한번 더 질문해보려 한다. 어쩌면 변화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질문 하나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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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모#크래프터#비기#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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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7 - 2027 대한민국 소비트렌드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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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올지 모르는 태풍을 대비하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풍의 눈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이름은 AI. 예전에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신기해했다. 이제는 다르다.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다. 메일을 쓰고, 회의를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까지도 AI는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AI가 시간을 절약해주고 효율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도 생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일까?"


 책은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휴먼 엣지라고 말한다. 질문을 던지는 능력, 맥락을 읽는 능력, 사람을 설득하고 관계를 만드는 능력.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사람이라는 문장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요즘 들어 부쩍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 책 속 '하프 시그널'이라는 키워드가 묘하게 와닿은 이유다. 갱년기를 질병이 아니라 인생 후반전의 신호로 바라보자는 시각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는 처음으로 늙어감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세대인지도 모른다. 피부를 관리하고 운동을 하고, 때로는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돌아본다. 예전 같으면 감추었을 이야기들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꺼낸다. 나 역시 그 변화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오래 남은 키워드는 단연 '해봄경제'였다. 완벽하게 준비한 뒤 시작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책은 말한다. 대신 작게라도 먼저 해보라고 한다.



Done is better than perfect.



 생각해보니 최근 몇 년간의 내 삶도 그랬다. Copilot을 써보기 전에는 과연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써보면서 배웠고, 머릿속 설계보다 부딪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백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것이 낫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반대로 요즘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키워드는 '권태사회'인지도 모르겠다. 짧고 강한 콘텐츠가 넘쳐나고,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쉼 없이 추천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새로운 자극은 끊임없이 밀려오지만 마음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여백 없이 살아왔다. 퇴근 후에도 무언가를 보고, 듣고, 배우고, 정리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정작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휴양림의 숲길을 걷던 시간, 아들과 미술학원 작품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같은 것들이었다.


 말랑이와 왁뿌볼, 키캡 같은 촉감 완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아들을 보며 유행의 속도를 배운다. 두쫀쿠와 버터떡 같은 낯선 단어도 아이를 통해 알게 된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유행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를 그리워하는 '아네모이아'라는 단어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속도가 중요한가, 깊이가 중요한가. 시대는 끊임없이 속도를 요구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깊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트렌드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AI는 계속 발전할 것이다. 조직은 변할 것이고 직무는 재편될 것이다.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바이브 워킹의 시대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사람을 엮어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특히 직장인으로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 바로 '바이브 워킹'이었다. AI를 잘 쓰는 사람보다 AI가 일할 수 있도록 맥락을 설계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배치라는 말. 권한을 얼마나 주는지가 아니라 어디까지 위임할 것인지를 설계하는 것이 경쟁력이라는 말. 결국 앞으로의 리더십은 지휘력에 가까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의외로 아주 느리고 인간적인 이야기였다. 알고리즘이 정교해질수록 우연은 희소해진다. 캘린더에 일정을 박제하고 AI가 다음 날 아침을 브리핑해주는 세상에서 우연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그러나 내 삶의 소중한 기억들은 대부분 계획하지 않았던 순간에 찾아왔다. 그래서 준비에는 최선을 다하되 우연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싶다. AI가 기억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무엇을 기억할지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AI가 추천하는 시대에도 무엇을 선택할지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AI가 결과를 만들더라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트렌드코리아 2027」은 미래를 예언하는 책이라기보다 변화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트렌드의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 속에서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만 살 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이 책은 오히려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가,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가.


 AI와 함께 일하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그 속에서 앞으로의 시장도, 사회도 발견하겠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당신 역시 작은 것이라도 먼저 해보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Alpha Sheep, 불확실한 시대를 가장 자기답게 건너가는 사람의 첫걸음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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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 한국 시 필사 - 마음에 스며드는 명시 100
한용운 외 지음 / 시대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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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한국 시 필사」는 한국 현대시인 김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돌담에 조용히 말을 걸 듯 내려앉는 햇살의 모습은 그 표현만으로도 따뜻함과 평온함, 섬세한 감성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표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열한 명의 시인이 조용히 곁에 앉아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 대표 시인 11명의 작품 100편을 모은 필사집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나룻배와 행인>,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엄마야 누나야>, 정지용의 <향수>,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 이상의 <오감도>, 이육사의 <청포도>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이 한 권 가득 담겨 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공부를 위해 외우고 해석하던 시들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이 책은 단순한 필사집이 아니다. 시와 명화를 함께 감상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시를 읽고, 그림을 바라보고, 한 글자씩 천천히 따라 쓰게 만든다. 그래서 읽고 지나가는 책이 아니라 오래 머물게 하는 책이다. 특히 김영랑의 시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도 절묘하다. 맑고 아름다운 언어로 유명한 시인의 분위기가 책 전체에 은은하게 스며 있다.


 책장을 넘기며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시어머니였다. 꽃을 무척 좋아하시는 분이다. 지금은 곡기를 끊으신 지 한 달이 넘어가고 말씀은 거의 하지 못하신다. 깨어 계신 시간보다 주무시는 시간이 더 길어졌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병실에서 시를 읽어드리기 시작했다.


 가을이 막 시작되던 날이었다. 손주가 먼저 김영랑의 <오-매 단풍 들것네>를 읽어드렸다. 전라도 해남이 고향인 어머니께는 그 사투리가 얼마나 정겨웠을까. “오-매, 단풍 들것네.” 아이는 일부러 맛을 살려 읽었다. 마치 시골집 장독대 곁으로 붉어진 감잎 하나가 날아와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이어 정지용의 <홍시>를 읽어드리고,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도 읽어드렸다.


 나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어드렸다. 시 옆에 실린 모란 그림을 보여드리며 말했다. “어머니, 꽃 참 예쁘죠?”  한용운의 <해당화>를 읽을 때는 해당화 그림을,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을 때는 진달래 그림을 함께 보여드렸다. “어머니, 이게 해당화예요.” “모란이 이렇게 생겼네요.” “진달래 참 곱죠?” 어머니는 말씀을 못 하셨지만 조용히 눈을 뜨고 듣고 계셨다. 그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을 읽으며 오래도록 목이 메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한다.


 시를 읽다가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잘난 자식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족한 모습도, 실수하는 모습도, 힘들어하는 모습도 있는 그대로 품어주셨다. 기쁠 때만 곁에 있는 사랑이 아니라 슬플 때도 함께 있어 주는 사랑. 좋은 모습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픔까지 끌어안는 사랑.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시를 읽는 내내 마치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가끔은 창밖 이야기도 해드렸다. “어머니, 오늘은 바람이 제법 차네요.” “이제 완연한 가을이에요.” 그리고 다시 김영랑의 <오-매 단풍 들것네>를 읽었다. 작은 감잎 하나에서 계절의 변화를 발견하는 시인의 눈이 좋았다. 삶에는 걱정할 일이 많지만 시인은 먼저 가을의 아름다움을 본다. 붉게 물든 감잎 하나를 보며 “벌써 가을이 왔구나” 하고 설레어한다. 그 짧은 한마디에 시골집 풍경도 있고, 계절의 냄새도 있고, 사람 사는 정겨움도 담겨 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짧은 문장이지만 오래 입안에 맴돈다.


 한국 시라고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위해 외웠던 작품들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시집이 아니다. 하루에 한 편씩 펼쳐 읽고, 그림을 함께 바라보고, 천천히 한 글자씩 따라 쓰며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는 책이다. 기다림, 상실, 그리움, 사랑, 아름다움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감정들이 담긴 시들이 조용히 마음을 두드린다.


 나 역시 필사를 하며 시인의 문장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국 근현대의 아름다운 시와 그림을 함께 음미하며 마음을 천천히 정돈하게 만드는 책. 어쩌면 이 책은 시를 필사하는 책이라기보다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어드린다고 해서 어머니의 병세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를 읽는 동안만큼은 병실이 병실 같지 않았다. 장독대에 감잎이 떨어지고, 모란꽃이 피고, 별이 뜨고,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시는 누워 계신 어머니와 우리를 잠시 다른 세계로 데려다 놓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단순한 필사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를 따라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읽으며 추억을 쌓게 하는 책이다. 어쩌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은 필사한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을 읽어드리던 순간들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병실에서 시를 읽어드리던 이 가을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어머니 곁에서 가장 많이 읽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처럼.


“오-매, 단풍 들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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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태주 지음, 나난 그림 / OTD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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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달 한 번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 미술치료 시간에 특별한 미션이 주어졌다. "집에서의 나를 가면에 그려보기." 처음에는 조금 막막했다. 회사에서의 나는 꽤 분명하다. 숫자를 보고 계획을 세우고, 끊임없이 우선순위를 정한다. 효율을 따지고 ROI를 계산하는 일에 익숙하다. 감정보다는 데이터를 믿고, 직감보다는 근거를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집에서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한참 생각하다 보니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남편과 아들, 두 남자 사이에서 꽃처럼 지내고 싶었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가끔은 그림을 그리고,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줄 아는 사람.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지냈지만 사실은 그런 삶을 오래 꿈꿔왔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의 흐름 속에서 가면 위에 내가 좋아하는 동백꽃을 그리고 있는데 문득 이 책 「오래 머무는 마음」 속 꽃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책에서 만난 꽃들을 나의 가면 위에도 함께 옮겨 놓았다.


 꽃을 그리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꽃이 내가 되고, 내가 꽃이 되는 것 같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오래 머무는 마음」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도.


 아이가 가장 먼저 펼쳐 읽어준 시는 <꽃다발>이었다.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 꽃을 보여주고 마음을 줄 수 없어 꽃다발을 드리니 부디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의 목소리로 시를 듣고 있으니 정말 꽃다발 하나를 선물받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시어머님을 자주 찾아뵌다. 가족실에서 아이는 우쿨렐레 연주를 해드리고, 나는 「오래 머무는 마음」을 들고 가 시를 읽어드리며 안부를 묻는다. 숨쉬기는 어떠신지, 오늘은 조금 덜 힘드신지,  마음에 걸리는 일은 없는지. 


 꽃 그림을 함께 바라보고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대화가 된다. 말보다 시가 더 다정할 때가 있고, 꽃 한 송이가 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꽃을 보며 감사했고, 시를 읽으며 감격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꽃인데 그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장을 넘길수록 꽃들은 자꾸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도 꽃을 피워."


 몽글몽글한 분홍 꽃송이들을 바라보다 보니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너를 생각하는 내가 좋고, 너와 함께 숨 쉬는 내가 좋고, 오늘 하루 살아 있다는 것이 좋았다. 쾌청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꽃들에게 하나씩 인사를 건넸다. 꽃 하나하나가 작은 세상 같았다. 푸른 지구 위에 피어난 꽃이 아름답듯, 바람 부는 세상 속에서도 살아가는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팝아트 꽃이 이렇게 장엄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꽃나무 아래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나도 꽃이고, 너도 꽃이고, 우리 모두 꽃이었다. 문득 아이가 유치원 발표회에서 불렀던 <모두가 꽃이야>가 떠올랐다.


 틀려도 괜찮고,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나태주 시인의 시도 참 다정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좋고, 사랑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 좋고,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어 좋다. 행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오늘 하루 무사한 것, 아무 일 없이 하루를 건너온 것, 그 평안이 행복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늘 짧고 담백하다. 그런데 그 짧은 문장 안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두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나난 작가의 꽃들이 있다. 그 꽃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다. 사랑이고, 기억이고, 위로이고, 감사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꽃이 되어 피어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시와 그림은 서로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이해한다.


 독자는 시를 읽다가 그림 앞에 머물고, 그림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책을 덮고 나니 제목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오래 머무는 마음」, 아마도 시가 오래 머물고, 꽃이 오래 머물고, 그 시와 꽃을 바라보던 나의 마음 또한 오래 머무는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천천히 읽고 그림 앞에 오래 머물렀던 시간, 그것은 독서라기보다 작은 치유에 가까웠다.


 꽃이 웃게 하고, 꽃이 위로하고, 꽃이 사랑을 전한다. 이 책은 마치 시들지 않는 꽃 한 다발을 선물받는 기분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꽃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조용히 피어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무엇보다 바쁘게 살아오느라 가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가면 위에 그렸던 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꽃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이 책은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던 나에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은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언어와 나난 작가의 아름다운 꽃이 만나 우리 삶의 평범한 순간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준다. 책을 읽는 내내 꽃을 선물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도, 그 꽃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싶은 분, 시 한 줄과 꽃 한 송이로 위로받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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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 - 노인정신의학 전문의가 발견한 마음 노화의 비밀
와다 히데키 지음, 김세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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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봄,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다. 치매와 우울증이 함께 찾아온 뒤였다.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서 가족은 당황했고, 나 역시 많은 것을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노년과 돌봄, 인간의 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나 또한 반백의 나이를 지나며 예전 같지 않은 몸과 기억력을 실감한다. 지천명을 넘긴 동갑내기 남편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단순히 나이 탓으로 넘기지 않고 가족과 나 자신을 위해 마음의 노화를 조금 더 이해해 보고 싶었다.


 「치매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은 제목만 보면 치매를 다룬 의학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가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치매보다 우울증, 그리고 마음의 노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30여 년 동안 노년정신의학 분야에서 환자들을 만나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오랜 진료 경험을 통해 그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정말 치매일까?"


 우리는 기억력이 떨어지면 쉽게 치매를 떠올린다. 하지만 노년기의 우울증 또한 기억력 저하, 집중력 감소, 무기력, 말수 감소 같은 증상을 만든다. 그래서 치매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치매라고 생각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노년기 우울증의 원인을 단순히 마음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시선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여러 상실을 경험한다. 배우자와의 이별, 사회적 역할의 축소, 건강의 변화, 인간관계의 단절,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까지. 저자는 이런 상실과 불안이 마음뿐 아니라 뇌에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상실은 불안을 부르고, 불안은 세로토닌을 감소시키며, 부족해진 세로토닌은 사고를 더욱 경직되게 만든다. 결국 우울과 무기력이 깊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들어서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의욕도 없었다.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말수도 줄었다. 당시 우리는 치매만 걱정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우울증의 신호 역시 분명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말한다.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모두 치매인 것은 아니라고. 무기력하고, 즐겁던 일에 흥미를 잃고, 표정이 어두워지며, 잠과 식욕에 변화가 생겼다면 우울증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무엇보다 우울증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며, 세로토닌의 농도를 높여주는 항우울제와 인지치료 등 다양한 치료 방법도 함께 소개한다. 하지만 저자가 정말 강조하는 것은 약 그 자체보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인 듯하다.


 나이가 들면 예전처럼 살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예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한다. "왜 예전 같지 않을까?" 저자는 그 질문 대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정도면 괜찮다."


 이 문장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아이에게는 자주 해주는 말이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쉽게 해주지 못했던 말이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고, 예전만 못해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자기 비난보다 자기 수용인지도 모른다.


 책 후반부에서는 세로토닌을 늘리는 생활 습관도 소개한다. 아침 햇빛 쬐기, 가벼운 산책, 충분한 수면, 사람과의 대화, 스트레스 관리 같은 방법들이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대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습관들이다.


 특히 좋았던 것은 '운동'보다 '산책'을 권하는 대목이었다.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걷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시간. 어쩌면 마음을 돌보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작은 여유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으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치매를 두려워하지만 정작 우울증의 신호는 놓치고 있지 않을까? 부모님의 깜빡함과 무기력함을 나이 탓으로 넘기고, 나 자신의 지침과 우울감도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치매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마음의 노화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그 노화는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돌본다면 충분히 늦추고 회복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기억력이 조금 떨어졌다고 겁먹지 말아요. 먼저 마음부터 살펴보세요.

그리고 오늘도, 이 정도면 괜찮아요.



 부모님의 변화가 걱정되는 사람, 중년 이후 자신의 마음 건강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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