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과 열 살 반 초등학생의 유쾌 발랄한 여름 방학 《할머니들의 비키니 여행》은 매일같이 초등학교 앞에서 손주들의 하교를 기다리다 친분을 쌓게 된 네 명의 할머니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할머니들의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름방학 첫날 집단으로 실종되기로 한다. 실종이라고는 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가출을 하게 되는 할머니들과 그 가운데 할머니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던 손녀 린카이팅이 합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별명인 '아주'를 붙여 아주 할머니라고 불리는 리슈주. 몇십 년간 받지 않던 건강검진을 받고 암일지도 모를 일에 대비하여 가슴 절제 수술을 받게 된 아주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위해 타이둥으로 떠나기로 계획을 세운다. 우유부단하고 마음 약한 카이팅의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여행이야기를 꺼내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신다. 그 얘기에 귀 기울이던 카이팅은 할머니의 여행 시작이 여름방학 첫날임을 기억하고 할머니의 여행에 따라나선다. 아무런 짐도 챙기지 않고 따라나서는 열 살 반의 초등학생. 그리고 예상치 못한 장수뉘 할머니까지 합류한다. 그렇게 할머니 넷과 초등학생 카이팅의 여행은 시작되었지만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타이둥으로 가려는 기차표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카이팅의 할머니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는다. 타이둥으로 가는 기차표를 역장을 통해 받게 된 할머니들과 떠나게 되는 기차 안에서도 할머니 폰으로 걸려온 할아버지의 전화는 무섭기만 하다. 목적지가 타이둥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타이둥에 살았었다는 십원 할머니는 오래전 첫사랑인 '장푸싱'을 찾는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첫사랑과의 만남으로 십원 할머니는 그에 대한 미안함이 줄어들었지만 그 모습을 본 수뉘 할머니는 아내가 있는 남편을 뺏으려는 거냐고 오해하고 다투게 된다. 다투고 다른 쪽으로 가버린 수뉘 할머니가 걱정되어 찾으러 다니는 십원 할머니와 카이팅. 화해를 하고 돌아와 다시 돌아가기 전에 가슴과의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카이팅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냈다. 카이팅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가슴과의 작별하기는 책을 읽으면서 할머니들의 비키니 여행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카이팅과 네 명의 할머니들의 유쾌한 전개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가슴이 없지, 친구가 없니?라는 뒤표지의 문구처럼 할머니들의 우정을 보면서 너무나도 부러웠다. 서로를 걱정해 주고 함께 하는 모습, 그리고 그 여행으로 항상 우유부단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다니기 바빴던 카이팅 할머니의 변화까지,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네 명의 할머니의 우정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응원해 본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귀여운 야옹이의 희망 구슬 세 개! 과연 어떤 바람을 이루어줄까요? 처음 하게 되는 일은 언제나 낯설고 두려워요. 그런 순간을 피하고 싶어지죠. 해보고 싶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순간, 그런 순간에 실패를 맛보게 된다는 건 너무나도 슬픈 일이니까요. 《희망 구슬》의 혜리도 그랬어요. 줄넘기를 연습을 하고 있지만 계속 발에 줄이 걸리고, 예쁜 사과를 그리고 싶지만 이상하게 삐뚤빼뚤 그려져요. 혜리는 너무 속상했어요. 친구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혼자만 못하는 것 같다며 야옹이에게 울면서 이야기해요. 그런 혜리에게 야옹이는 희망 구슬 세 개를 주고 항상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혜리는 야옹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구슬이 있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이야기하죠."그렇지 않아. 희망 구슬을 품고 꾸준히 노력하면 구슬 속의 씨앗이 싹을 튀울때쯤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거야." 야옹이는 그렇게 헤리에게 희망 구슬을 선물하면서 희망 구슬이 필요한 친구를 찾아보자고 해요. 혜리와 야옹이가 문을 열고 간 곳에는 예쁜 꽃이 피어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울고 있는 씨앗을 발견해요. 꽃씨를 만난 후에는 애벌레도 만나게 되지요. 헤리는 씨앗과 애벌레에게 희망 구슬을 선물해요.희망 구슬을 갖게 된 혜리, 꽃씨, 애벌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희망 구슬》을 읽으면서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어요. 잘 안된다고 포기하기보다는 다시 도전에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노력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도 깨우칠 수 있게 해준 그림동화였답니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정영욱 작가님이 건네는 위로와 응원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제목만으로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마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너를 사랑할게 같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하듯, 언제 어느 때건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듯하다. 살아가면서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처받았다며 도리어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나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아 답답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삶에서 주저앉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그런 순간들을 매번 주저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때로는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훌훌 털어버리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른 삶, 그 순간에서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누군가를 만날 때면 다시 일어설 힘조차 생기지 않는다. 그런 누군가가 내게 던진 불안과 고통의 씨앗이 쉴 새 없이 자라나는 동안 행복과 기쁨의 씨앗은 제대로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마주할 때면 더 나아갈 힘조차 없다. 마치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지쳐버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나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건네던 위로들이 나를 다시금 일어서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렇게 그 순간을 지나쳐온 내게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라는 책의 제목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는 것은 그런 공감이 담겨있어서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계시지만 그 속에는 그와 다르지 않은 우리의 삶도 엿볼 수 있어서 더욱 위로받는다.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가 결국 작가님 본인에게 전하는 위로이기도 할 것이다. 응원했고 응원하고 있고 응원할 것이다함께했고 함께하고 있고 함께일 것이다사랑했고 사랑하고 있고 사랑일 것이다이겨냈고 이겨내고 있고 이겨 낼 것이다 힘들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힘듦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들. 그런 말들보다 나의 힘듦을 알아봐 주고 이해해 주는 공감이야말로 최고의 위로로 다가온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나의 존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기라도 한듯한 이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책 속에서 와닿는 문자들이 너무나도 많았던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책이었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잠시 고난을 겪더라도 다시 행복한 페이지가 이어지는 인생이기를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탄하기만 할까.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좌절하고 그러다가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나가는 우리의 삶. 마치 우리의 삶을 응원하기라도 하듯, 오뚝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등장은 너무나도 귀엽다. 때로는 쓰러지듯 누워있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그런 오뚝이 정신을 본받고 싶어지는 마음이 커져간다. 《오뚝이, 가끔 누워있어도 괜찮아 2》에 등장하는 오뚝이 트라에게는 소중한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새싹이다. 귀엽게 돋아 있는 새싹처럼 귀여운 새싹이와 오뚝이 트라가 걷는 모습을 보니 '귀여운 애 옆에 귀여운 애'를 연상케한다. 새싹이가 없었다면 외로웠을 오뚝이 트라, 그리고 오뚝이 트라 집 근처로 이사 온 새로운 이웃을 보면서 새싹이와 자신이 친해진 것처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다가간다. 하지만 그 이웃의 마음을 열기란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쓰러져 있는 이웃을 발견하게 된 새싹이와 트라. 이웃은 왜 쓰러졌던 것일까? 새 이웃인 오몽이는 요리를 하지 못해서 제대로 먹지 못해서 쓰러졌던 거라는 사실에 놀라던 트라는 새싹이의 조언을 듣고 오몽이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기로 한다. 그렇게 도움을 주면서 어느새 셋은 친한 사이가 되고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여행을 가고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로 변해간다. 빽빽하게 찬 스케줄 속에서 트라와 새싹이와 함께 하고 싶었던 오몽이의 일탈과도 같았던 여행. 그 첫 여행의 좋았던 기억은 또 다른 여행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셋은 많은 추억을 공유하게 된다. 일만 하느라 지쳐있던 오몽이의 일상에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싫지 않은 오몽이의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완벽하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마정답이 아니라고 실망하지 마시도한 우리는 완벽에 좀 더 가까워졌고정답에 좀 더 가까워졌으니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던 삶에 친구라는 존재가 다가오면서 그들은 점점 완벽해진다. 때로는 다투게 될지라도 그들이 함께했던 추억으로 다시 화해할 테니까 아무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오뚝이, 가끔 누워있어도 괜찮아 2》를 읽으면서 나도 때로는 잠시 앉아서 숨 고르기를 하고 걸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쉬었다가 갈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만 같아지게 만든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내돈내산 등골이 오싹, 심장 쫄깃한 무섭고 이상한 학교 이야기 학교 괴담이라는 주제로 한 권의 앤솔러지 소설을 완성하신 정명섭, 김여진, 홍정기 작가님의 《학교 괴담 도서관의 유령》을 만났다. 다양한 분야의 소설을 써오신 정명섭 작가님이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궁금한 가운데, 홍정기 작가님의 첫 청소년 소설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었다. 김여진 작가님이 쓰신 작품 중에서 떡상의 세계를 읽어보았던지라 작가님이 보여주실 학교 괴담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정명섭 작가님이 쓰신 <도서관의 유령>은 이전에 읽었던 《내 인생의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창작의 신>과 조금은 비슷했다. 두 작품 모두 도서관에서 신비로운 존재를 만난다는 것과 그 존재를 만나기 위해서는 코끼리 코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도서관의 유령>은 괴담을, <창작의 신>은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던 아이들의 이야기라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폐쇄된 구관의 도서관에 전해지는 도서관의 유령에 대한 괴담을 들은 민철에게 전해 듣게 되는 성욱과 주혁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민철은 자신과 같은 학교를 졸업한 아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구관의 도서관에 있는 26번 서가 제일 위족에 있는 즐거운 학교생활을 펼치면 학교 성적이 올라간다는 이야기, 단 몇 가지 조건이 덧붙여진다. 성적에 관심이 없었지만 얼마 뒤 시험 기간이었던 이들은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누구를 만나게 될까? 학교에서의 우정은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일까? <너에게 칸타빌레> 속 리연과 미수의 우정은 처음에는 서로를 아끼는 돈독함으로 가득했다. 음악가 집안인 리연과 달리 '블라인드 특별 전형'을 통해 합격하여 들어온 미수였기에 두 사람이 단짝이 된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악보조차 읽을 수 없는 미수를 놀려대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 속에서 미수를 감싸는 리연. 그런 리연의 모습을 보고 미수는 악보 읽는 공부부터 시작한다. 출발선은 달랐지만 어느새 리연을 따라잡은 듯한 미수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끼는 리연. 그리고 누군가 크게 다치면 입시 초대박이 나온다는 학교 괴담은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놓는다. 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친구로 남을 수 있을까? 예상치 못한 반전과 엽기스러운 공포를 가져다주시던 홍정기 작가님의 청소년 소설은 어떨지 기대하면 읽었던 <홀리는 옥상>에서는 SF 적인 면과 함께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학교 폭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출간하신 《초소년》에 등장했던 은기와 충호의 등장이 반가웠다. 학교 옥상에서 자신의 첫 실패를 이겨내지 못하고 뛰어내린 선배, 그 선배가 뛰어내린 자리에 붉은 얼룩이 져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것을 쳐다보다 보면 어느새 홀려 옥상 난간에 서있다는 이야기하는 충호와 은기의 대화. 그리고 등장하는 김이선이 등교를 하지 않아 치료를 받고 있는 드림센터에서 이선의 꿈을 볼 수 있게 해주고 그 꿈을 본 이선의 부모는 더 이상의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이선의 꿈속에서의 영상이 실제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성공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이선을 치료하려는 의사. 의사는 결국 이선을 완벽하게 치료하는 데 성공하지만 뒤늦게 마주하게 된 진실 앞에 의사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 진실을 보고 난 뒤에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갈 줄 몰랐던 나 또한 당황스러웠다. 학교 괴담은 진짜일까? 학교가 존재하는 한 괴담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정명섭 작가님의 말처럼 학교 괴담은 괴담으로만 존재하기를 바라본다. 그 괴담이 현실로 드러나지 않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