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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내 가여운 개미
류소영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소설을 보았을 때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 위의 개미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그럴것이다.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개미에 책에 올라가 있는게 아니냐고 착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개미는 그 곳에서 무엇을 하는걸까? 괜시리 개미만 노려보게 되는 나를 발견하다 책을 펼쳤다. 책을 읽으면서 빠져들어서인지 내 마음 속 우울한 기분이 샘솟는 듯 했다. 마치 아이스크림 속을 허우적 거리는 개미가 된듯한 기분이랄까.
「그 오후에, 저어, 나이, 어린, 사람, 하고는, 연애, 안, 합니까....... 라고 그는 말했고 나는 그저 얼어 붙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무관심했다면 상황은 단순했으리라. p.28 '물소리' 중에서」
전라북도 J군, 수몰예정지역으로 답사를 가게 된 나와 박교수 그리고 최.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나.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공부를 한다며 주위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해 공부를 시작하여 알게 된 최는 팀내 엘리트로 나와는 반대였다. 그런 그가 어리숙하게 했던 그 말. 나는 최를 좋아했기에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그녀를 삼킬때, 나는 몇 십여 년간 그래왔듯이, 우적우적 내 몫이라 하기에는 아무래도 과한 '먹을거리'를 감흥없이 삼켰던 것이다. p.40 '개미, 내 가여운 개미' 중에서」
형수와 너무도 닮은 신주연, 나는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를 더 많이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결혼한 형집에 얹혀 살면서 사돈지간이던 신주연과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처음엔 너무나 낯을 가리는 듯 보이던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들킨후에야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였다.
「세상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철저히 무색무취하고자 했으며, 언제나 묵묵하게 자기 속도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그녀는 한 마리 개미처럼 느껴졌다. p.59」
그녀의 비밀, 그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탓일까. 그녀가 개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의 비밀은 가족들과 나만이 아는 숨기고픈 일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그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를 화장했노라며 내게는 더 좋을것이라고 얘기하는 형. 형은 알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내 엄아. 엄마도 그저 이유 없이 사는 게 꽉 막힌 것 같았을 때가 있었구나. p.86 '또 밤이 오면' 중에서」
갑작스런 시어머니의 가출은 평범하던 일상을 흔들어 놓았다. 남편은 나의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보라며 얘기했고 시아버지는 돌아왔을때 아무런 걱정없이 보이는 것에 대해서 맘이 쓰였는지 식사도 조금 하시고 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무심한게 지나치기만 했는데 나의 엄마도 어머님과 같은 선택을 하고 픈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를 기다리면 휴대폰을 항상 옆에 두고 행여 연락이 올까 깊은 잠에 빠지지도 못하는 나. 그녀가 없음에도, 잠잠하던 내 인생을 흔들어 놓았음에도 밤은 오고 있다.
「세연 씨, 세여언, 윤세연, 세연 씨이. 미친 듯이 계속 불렀고, 사람들은, 그녀가 아닌 그 모든 사람들은 의아하게 돌아보기 시작했다. 돌아보는 사람마다 세연이 아니었다. 그러곤 곧 돌아보는 사람마다 세연이었다. 이럴 수가. 그라, 순간 모두 다 그녀, 세연이었다. 언제나 저들 속에 편안하게 묻힐 수 있기를 바랐던 그녀 말이다. p.122 ~ 123 '옷 잘 입는 여자' 중에서」
무역회사라 일반적인 회사원들과는 일과 자체가 다른 사람들. 남들 기분좋게 퇴근하는 시간에 차려입고 출근을 하고 출근 전쟁인 지하철속에서 퇴근하는 사람. 그 중에서도 세연은 패션에 민감한듯 하면서도 둔한거같다. 젤 먼저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 스타일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에 보면 세연 혼자 끝까지 그 패션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는듯 하면서도 뒤쳐지는 느낌에 자주 쇼핑을 가지만 매번 반복인 그녀의 삶. 그런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는 퇴근하고 빈둥거리는 모습이 싫어 공부를 하고 있지만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다른 일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으나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 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내 입도, 이 웃긴 대화도, 이 잘난 모멸감도, ......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p.145 '기록' 중에서」
취업준비를 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그는 엄마의 사소한 얘기에 싸움까지 가게 되고 치기어린 마음에 가출까지 감행한다. 그러나 가진 돈으로 놀고 먹기에는 아르바이트 했던 고생이 생각났는지 쉽게 돈을 벌고자 참여한 이벤트에서 자신의 입이 크다고 광고라도 하듯 빨대를 하나씩 입에 집어넣고 있다. 그 기록이 무엇이길래, 그 아무것도 아닌 기록에 매달리는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자신의 여동생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오빠. 그런 오빠이기에 자신의 동생에 대한 탐구를 친구를 통해서 하려고 한다.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시켜준다면서 나누는 허황된 대화들의 향연. 윤미는 어떤 사람일까?
「사랑이 색이 바래는 것, 아니 아니, 색만 바래면 쓸쓸한 미소를 교환한 채 서로 위안하는 힘으로 살겠지만, 사랑이 때때로 정반대의 색깔로 옷을 갈아입는 것,그리고 감옥이 되는 것이. 뻔한 얘기다. 뻔해서 지겹고 뻔해서 슬픈 얘기다. p.178 '꽃마차는 달려갑니다' 중에서」
매맞는 엄마와 변심한 애인앞에 손목을 그은 언니를 본 '뷰'는 선량한 눈빛의 소유자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런 '뷰'앞에 나타난 '부'는 자신을 웃게 만든 그와 결혼했다. '수' 와 '슈'는 두달전에 만나 결혼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지탱해주던 이가 아닌 서로의 부모가 알고 지내면서 소개를해서 결혼한 '슈'. 서로 다른 사랑. 그 사랑의 결말은 어떠할까? 사랑은 얼마나 견고할 수 있을까?
「강미현에게로 또 나에게로, 너는 호출받지 못하는 존재야,라는 쓸쓸한 호출을. p.206 '기억할 만한 지나침'」
휴대폰 번호가 바뀌면서 걸려온 강미현을 찾는 전화와 음성메시지, 그리고 강미현이 가입했던 곳에서 오는 문자들.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면서도 바꾸지 않아서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나의 기록이나 정보들이 흘러 들어간다. 처음에는 귀찮다가 그 귀찮음이 호기심으로 바뀌어 점차 강미현이라는 여자가 궁금해지다 결국에는 자신도 그 번호를 버리고 만다. 우리의 정보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채, 그리고 알면서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마는 우리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평범한 일상을 꿈꾼다. 남들처럼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를 위해서 희생하기도 하면서 뒷바라지 한다. 다 큰 아이를 결혼시키고 손주를 보게 되고 그렇게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 너무나 평범해서 그 평범함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지만 넓게 보면 자신이 가진 부의 정도나 경험의 정도가 다를 뿐 그러한 평범함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신의 인생이 남들보다 더 멋지고 화려하기를 바라지만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남들 인생에서 화려한 빛에 가려진 그림자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생각에서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우울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가여운 것은 개미가 아니라 내 인생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 탓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