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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들
카린 슬로터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최근 국내외 영화계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성추행.성폭행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폭로되고 있다. 이제는 일상적으로 듣게 되는 사건들에 점점 무뎌지는 나를 보며 이 시대에서 여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고 느끼게 되는 날이 많다. 이 책은 딸을 잃은 한 아버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게다가 <예쁜 여자들> 이라는 노골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독백을 시작한 아버지는 문제 많은 가출 청소년 취급을 받는 주변 시선에도 불구하고 딸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그저그런 사건으로 잊혀져 갔다.
사실 실종된 줄리아에게는 클레어와 리디아라는 여동생들이 있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와 남겨진 가족의 고통은 그 깊이가 얼마나 될지 상상 할 수가 없다. 다시는 그 집에서 사람이 웃는 소리를 기대 할 수 없을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시간은 20여년이 흘러 10대였던 소녀들이 30대가 되었고, 뉴스에서 또다른 소녀의 실종 사건으로 떠들석하다. 애나 킬패트릭. 16살. 백인. 중산층, 매우 예쁜 외모 이런 조건 때문에 티비와 사람들은 계속 그녀의 실종이야기를 듣게된다.
지금은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리디아와 클레어도 사건을 애써 외면하려 해도 저절로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 클레어는 레스토랑에서 남편을 만났고 가볍게 한잔하고 나오는 길에 생각치 못한 사고로 남편이 죽게된다.
"당신이 지금까지 내가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라는 건 당신도 알고 있을거야." "당신은 내 일생의 사랑이야."
이렇게 달콤한 말로 항상 다정다감했던 남편을 잃은 클레어는 슬픔에 잠기고 남편을 묻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는 집 안에 강도가 침입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집 안에 강도가 침입하여 출장 뷔페를 준비하던 바텐더가 다쳐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이다. 남편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상심했던 그때 애덤 퀸의 전화가 온다. 남편의 오랜 친구이자 사업동반자인 애덤은 남편 폴의 노트북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 파일을 메일로 보내달라는 부탁이였다.
클레어는 노트북을 켜고 파일을 찾던 중 뜻밖의 동영상 파일을 보게 되는데 그냥 포르노가 아니였다. 변태 성향의 영화였다.
이게 실제일까? 어떻게 이게 실제일 수 있지?
한편 리디아는 폴의 죽음으로 이제 더는 폴 스콧에 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하고 그의 묘지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막내 동생 클레어를 만나게 된다. 줄리아를 찾으러 다니면서 어떻게서든 마약에 찌든 리디아를 살게 하려고 보석 보증인과 변호사 비용등을 대느라 힘들었고 아버지 샘이 자살했을 즈음엔 그들은 거의 파산하고 말았다. 그 죗값으로 클레어는 리디아를 그녀의 인생에서 잘라버리고 싶었는데 되려 리디아는 폴이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리디아를 가족과 멀어지게 한 것이였다. 그런데 18년만에 폴의 묘지에서 만나게 되었다.
리디아가 클레이에게 자신은 아이가 없다고 거짓말 할 때 이상한 촉이 오긴했는데.. 남편 폴의 비밀은 무엇일까 너무 궁금해서 책을 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게다가 자상하고 부유하기까지한 완벽한 남편 폴을 클레어는 여러번 '안전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남편과 과거 줄리아의 실종 그리고 강도사건, 포르노 이 모든것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것인지!
아마 노트북의 동영상 파일을 보지 못했더라면 클레어도 당시 리디아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했을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남편의 노트북 폴더를 뒤지기 시작하고 최근 실종된 소녀 애나 킬패트릭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파일을 복사해 경찰서로 향한다.
하지만 경찰 서장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일명 '스너프 포르노'라는 가짜 영화라는 것이였다.
그렇지만 남편의 사망사건보다 집 안 강도 사건이 경찰서장과 FBI 놀란요원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 너무 수상하다. 결국 클레어는 리디아에게 손을 내밀게 되고 둘은 함께 완벽했던 남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 그런지 조금 답답스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하나씩 밝혀지는 완벽한 남편의 감춰진 추악한 비밀에 경악하게 된다. 반전이 하나 나오면 또하나의 큰 반전이 있어서 이 책을 덮을때까지 긴장을 놓칠수가 없었다.
또 이야기는 단순히 범죄스릴러가 아닌,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의 뒷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너무 짠하기도하고 여자로서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리디아가 클레어에게 자신이 폴에게 당한 이야기를 할때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당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히 폴이 동생 클레어에게 떨어져준다면 이런 일은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한것이다. 그래도 피해자인 그녀에게 꼭 필요한 것은 가족, 나를 다독여주고 힘을 주는 사람들이였는데, 아마도 리디아는 그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고 무시한 가족들이 그날의 기억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왜 난 폴이 도둑이라는 말은 믿지 못하면서 그가 강간범이라는 사실은 믿는 걸까?"
"내 말은 믿는구나."
"오래전에 믿었어야 했어."
어떤 순간에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일어날 힘도 생긴다. 예상하지 못하는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웠고 정신적으로 힘들고 긴박한 순간들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자매의 이야기가 눈에 띄였던 소설이였다.
제발 이런 일은 소설 속에서만 일어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