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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위 - 꿈에서 달아나다 ㅣ 모노클 시리즈
온다 리쿠 지음, 양윤옥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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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하고 섬세한 표현도 좋고 따뜻한 정서가 비슷한 탓에 일본 소설을 좋아한다.
'온다 리쿠'라는 작가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작가이기에 오래전 그녀의 작품, '여섯번째 사요코'를 찾아 읽긴 했었는데.. 아,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을 다 읽고, 이것을 내가 다 이해 한 것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렸던 기억이 있다.
딱히 등장하는 용어가 어려운것도 아니고 줄거리가 복잡한 것도 아닌데 왠지 ... 읽기 어려웠다고나 할까.
헌데 이번 책에서는 조금 더 난해한 주제, '꿈'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몽위'를 읽게 되었다.
어쩐지 꿈인듯 아닌듯 몽환적인 그녀의 작법 스타일과 맞아 떨어지는 주제인것 같아서 흥미가 생겼다.
하루의 1/3을 잠을 보내니, 잠이 일생에서 차지하는 시간도 1/3.
하지만 잠을 자며 꾸는 꿈은 그에 대한 해석을 아직 누구도 명확하게 내린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인데 온다 리쿠는 그것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무척 궁금했다.
꿈의 해석.
그게 '가마타'와 '히로아키' 그들의 직업이였다.
현재는 꿈 자체를 영상 데이터로 보존 할 수 있게 된 것이 20년 가까이 된 시대로 눈으로 '꿈'을 보고 진짜로 꿈의 해석을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였다.
꿈해석자 12년차인 이야기의 주인공 히로아키는 사실 이 길로 들어서게 된 이유에 형의 약혼자였던 '고토 유이코'가 있었다.
예지몽을 꾸는 것으로 인정받은 일본 최초의 인물이였던 고토 유이코는 슬프게도 항상 불길한 내용의 예지몽을 꿨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자신이 예지몽에서 보았던 화재 현장에서 사라져 버리고, 사건은 그녀가 화재현장의 피해자들과 함께 희생되었을거라 생각하여 그녀를 사망으로 결론지어 버린다.
고토 유이코가 죽은 후,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어뗐을까.
불길한 꿈만 꾸고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사람과 함께 지내던 사람들은 적지않은 불안감과 주변의 부담스런 관심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녀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은 없었겠지만, 주변 사람들도 힘들었던건 매한가지 였을것이다. 헌데 그런 원인이 사라졌으니 조금은 안심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히로아키는 그녀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주변인들을 위해 그녀가 사건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길을 선택 했을거라 믿는다. 그 근거로 그녀의 장례식에 찾아왔던 의문의 남자를 떠올린다.
개개인의 의식 외부에 인류 전체가 공유한 거대한 무의식이 있고 거기에서 다양한 것이 나온다. 꿈도 그중 하나여서 문자 그대로 '외부에서' 찾아와 인간의 뇌에 침입하는 것이다. 히로아키는 수없이 들어온 가마타의 주장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문득 그런 거대한 무의식이 의지를 가졌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했다. 인류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무의식. 그것이 일정한 의지를 갖고 인간의 꿈에 침입한다면? -p.50
꿈을 바꿀 수 있다면 좋을 텐데. -p.51
아무튼 시간이 흘러, 그녀의 영향을 받은 히로아키는 꿈 해석사로 활약하게 되었는데, 이상한 사건을 접수 받는다.
G현 산기슭의 초등학교에서 한 반 학생들이 모두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며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도망쳐야한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무엇인지 왜 무서운지 아무도 답하지 못했지만 '뭔가 교실에 들어왔다'고만 한 여학생이 증언했다.
뭔가 무서운 것이 교실에 들어왔다.
그것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게 확실한데도 정작 무엇이 들어왔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아이들은 그것을 꿈꾸는 것조차 피하고 있다.
그토록 무서운 것인가.
히로아키는 아이들의 무의식이 너무도 강하게 억압된 것에 오싹했다. -p.117
이런 과학적으로 설명 할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한 것은 이 학교 한 곳에서만 유일한 것이 아니였다.
알고보니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삼족오 (고대 신화에 나온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 꿈을 백주 대낮에 교실에 꾸었다는 것이고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알 수 없다는게 현실이였다.
몽찰을 통해 이 사건의 원인을 밝히려 조사에 착수한 히로아키와 동료는 조사를 하면 할 수록 의문 투성이만 쌓여간다.
하지만, 최근 그의 눈앞에 나타나는 묘령의 인물과 자신의 꿈, 그리고 이번 사건의 조사 내용 중심에는 고토 유이코가 있다는 직감이 들고 사건은 또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
계속 당신과 함께 있는 꿈을 꾸는 거예요. -p.535
꿈은 깨고 나면 까마득하게 잊는 일이 흔하고, 일상 생활의 잔상일 뿐이라고 생각 되기도 하지만 가끔 주변에서 매번 태몽을 딱딱 맞춰 꾸는 사람이나 복권 당첨 예지몽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꿈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곤 한다. 헌데 꿈에 '어떠한 존재가 일정한 의지를 갖고 사람들의 무의식에 파고들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라니 참 섬뜩한 이야기다.
이런 상상만해도 소름돋는 이 이야기를 온다 리쿠는 몽환적인 특유의 작법으로 은근한 공포를 선사한다.
그래서 사건의 진상이 궁금해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한 문장 한문장 곱씹으며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여유를 두고 읽으면 더 재미나다. 물론 이야기의 끝을 마주했을때 신의 계획이랄지, 외계인이나 정부의 음모같은 조금 황당무게해도 큰 재앙이나 사건이 등장하는 내용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기대 혹은 예상 했었는데 그게 아니여서 힘이 탁 풀리는 감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었다던 온다 리쿠의 세계를 이번에 나도 충분히 즐기고 느낀 책이 아니였나 싶었다. 꽤 신선하고 재미있는 스토리였다.
아마도 여섯번째 사요코는 다시 읽어봐야하는 책 리스트로 옮겨질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