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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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살아가면서 덩치가 큰 문제에는 더 무덤덤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쪽은 누군가 지켜보면 사소할만큼 작은 사건들이고 이것은 조미료처럼 아주 작은 한 스푼의 지혜만으로 해결 될 것 같은데 그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사는게 힘들다고 생각된다.

​이럴땐 내가 참 바보같다.

남들은 잘만 사는것같은데 나는 왜이렇게 힘들게 사는걸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등장하는 폴란드 헤움 마을 사람들은 이런 나보다 더 답답하게 살아간다.

사실 이 마을이 생겨난 시초부터 당황스럽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많아진 세상이 걱정된 신은 두 천사를 불러다가 한 천사에게는 지혜로운 영혼들을 모두 모아 마을과 도시들에 고루 떨어뜨리라 했으며 두번째 천사에게는 지상에 있는 어리석은 영혼들을 전부 자루에 담아 데려오라 했다.

그런데 두번째 천사의 자루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찢어져 버렸고, 그 순간 자루 안에 있던 어리석은 영혼들이 일제히 쏟아져 내리면서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한 장소에 모여 살게 된것이 바로 이 마을인 것이다.

어쩌면 그 한 영혼이 내가 아닐까 싶었는데 이건 내 수준을 더 넘어선다.

헤르셸이라는 빵장수는 내가 '나' 임을 증명하기 위해 해놓았던 표식이 사라지자 내가 빵장수 혜르셸이 아니라면 누구냐고 절규한다. 신발 수선공 슐로모는 다른 도시 다른 장소를 꿈꾸며 마을을 떠났다가 표식이 망가지는 바람에 자신의 집에 되돌아와놓고 자신이 살던 곳과 똑같은 '다른' 마을에 도착했다고 신기해한다.

정의와 자신들만의 진실을 ​사오기 위해 다른 마을에 가기도 하며, 전염병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를 전염병이 사라질때까지 무의미하게 거듭하거나 불을 끄기위해 짚을 계속 불이 난 곳에 넣기도한다.

헤움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들이 특별한 지혜 때문이었다. 헤움 사람들은 모두가 현자였다. 적어도 그들 자신은 그렇게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자부했으며,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보라 부르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그들의 행동에는 모두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할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다. 꺼내놓고 우화에 숨긴 이야기를 해설해주진 않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수긍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보인다.

똑같이 공부를 하고 똑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비슷한 시기에 취업하고 매일 아침 눈을 떠 지하철에 콩나물처럼 몸을 세워 실는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과연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하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헤르셸이 어리석다 말 할 수 있을까?

언젠간 찾아올 메시아를 그냥 보내버리지 않기위해 밤낮으로 새로운 방문자를 기다리다가 모든 낯선 방문객을 메시아처럼 따뜻하게 환영하기로 한 일화나 아들을 위해 마을을 떠나 길을 나섰다 다시 돌아온 부자의 이야기, 은행 이자를 갚지 못한 하야를 위해 은행가를 설득한 랍비등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인생의 진리는 가장 기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무엇이 하고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모르는채 그저 아침이니 눈뜨고 밤이니 잠드는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내가 자신들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헤움 사람들을 비웃을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한다. 딱 하나 있는 ​작은 방을 불평하다 작은 방에 사람이 (아니 동물도) 북적해지자 소중함을 알게되는 가족의 이야기처럼 행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는 것.

책을 읽으며, 내가 떠안고 있던 소소하고 지독했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조금은 힌트를 얻은 것 같아 즐거웠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학창시절부터 아직도 갖고 있는 유일한 시집인데, 류시화 시인의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고 재밌었다.

특히 책표지를 포함한 곳곳의 일러스트는 헤움마을의 분위기를 떠올리기 좋은 그림들이라 잘 어울렸다.

"아들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참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가진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가 가진 것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긴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 ​마침내 침묵을 깨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헤움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도움을 주되, 함부로 참견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도록 허용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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