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의 시간 - 문득 멈춰선 그곳에 잠시 나를 내려놓다
이효석 외 지음, 임현영 엮음 / 홍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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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 36도를 넘나드는 푹푹찌는 날들을 지내다 보니 시원한 곳에 달려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여름 휴가가는 일이 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늘어지는 마음으론 무슨 책을 읽을면 좋을까 둘러보다가 우연히 바닷가 배경을 표지로 한 이 책이 눈에 띄였다.

'성찰의 시간'은 10년동안 국어 선생님이였던 저자가 우리 문학을 사로잡은 큰 별들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피서를 하며 그것들을 작품에 담았는지 안내하며 문인들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례를 살펴보니, '쪽빛 바다에서 나를 만나다'와 '푸른 솔숲에서 나를 만나다'로 바다와 숲 파트로 나눠있다.

나는 매년 여름 휴가는 바다를 향해 떠나곤 했었지만, 이상하게 읽는동안 가장 마음을 끌었던 부분은 산촌여정 이 상의 글이였다.

 

지난밤의 체온을 방 안에 내던진 채 마당으로 나갑니다. 마당 한 모퉁이에는 화단이 있습니다. 불타오르는 듯한 맨드라미꽃 그리고 봉선화, 지하에서 빨아올리는 이 화초들의 정열에 호흡이 부쩍 더워집니다. 여기 처녀들 손톱끝에 물들일 봉선화 중에는 흰 것도 섞여 있습니다. 흰 봉선화도 불게 물들까?─ 조금도 이상스러울 것 없이 흰 봉선화는 꼭두서니 빛으로 곱게 물들 것입니다.

...

근심이 나를 제외한 세상보다도 훨씬 큽니다. 갑문을 열면 폐허가 된 이 육신으로 근심의 조수가 스며들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메소이스트' 병마개를 아직 뽑지 않으렵니다. 근심은 나를 싸고들며, 그러는 동안 이 육신은 풍마우세로 저절로 다 말라 없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밤의 슬픈 공기를 원고지 위에 깔고 얼굴 창백한 친구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속에 내 부고도 동봉하였습니다.

 

이 상의 글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혔다는 <산촌여정> 속 이 글은 폐병으로 몸이 쇠약해진 그가 요양차 친구의 고향에서 한 달동안 머물며 적었다 한다. 이상하게 마지막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돈다. 아름다운 산촌의 모습을 담은 글과는 반대로 같은 곳에서 지내며 느꼈던 지독한 허무와 우울, 권태, 도피등의 감정을 담은 <권태>라는 작품이 따로 있다니 좋은 곳에 머물고 있어도 병마로 힘들었을 그의 괴로움이 어쩐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책 속에서 명사들의 뒷 이야기는 저자가 단락이 끝날때마다 짧게 적어주었는데 이것을 읽으면 그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이 더 잘 이해되는 것같아 좋았다.

 

바다로 떠난 동무에게 보내는 이효석의 글도 재미있게 읽었다. '가을일을 위하여 부디 남은 여름 햇발을 알뜰히 몸에 받아 인도사람 처럼 새까맣게 타 오십시오.'라는 그의 말은 어쩐지 떠난 이를 위한 질투섞은 농담이 아니였을까 싶은데 바다에 계신 까닭에 자신이 지내고 있는 뜰이야기를 많이 적었다는 부분에서는 배려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주변을 보면 일년에 책 한 권은 커녕 긴 글을 읽는 것도 힘들어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때문에 그림으로 간략히 그려진 웹툰이나 말장난 같은 짧은 글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명사들이 적어둔 멋진 글을 읽고 있자니 어떻게 넓은 바다, 푸른 숲, 뜨거운 태양처럼 같은 풍경을 보면서 이렇게 표현 할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좋은 곳에 놀러가 바람을 쐬고 오는것이 몸의 휴식이라면 좋은 글을 읽는 것도 마음의 휴식을 위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올 여름은 이 책 한 권과 시원한 음료 한 잔이면 어디든 휴가지가 될것만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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