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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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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구멍만이 있을 뿐이야. 지독하게 깊은 구멍. 바닥이 없어 끝없이 추락하는 시커먼 구멍만이"
무저갱.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사전의 뜻을 검색해봤다.
무저갱(無底坑) <기독교> 악마가 벌을 받아 한번 떨어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는 영원한 구렁텅이.
설명이 아주 기가막힌다. 소설속에서 가르키고 있는 그곳과 아주 딱 떨어지는 이름이다.
사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갈망하는 쪽에 가깝다.
무저갱 속 악마 노남용은 10년 전에 자신의 피가 아닌 깔고 앉은 30대의 남성의 피가 범벅이 된 채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현장은 '숨이 막힐 정도의 광기'와 '바닥에는 발목이 잠길정도의 액체가 흥건했다'고 묘사되는데. 10년 형을 받고 복역하게 된 명분은 그 살인 사건이였지만, 사실 그는 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범죄계의 슈퍼스타였다. 노남용은 세 명의 여자를 강간했고 개중에는 이제 열 두살 먹은 여자애도 있었다. 그 아이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미친 스토리가 비단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도 종종 아니 자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 책을 읽는내내 속이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네 시간동안 그가 어떤 미친 짓을 했었는지 책에서 자세히 적어주지 않아서 오히려 고마울정도였다. 요즘은 신문 기사가 스릴러 소설보다 더 잔인하다. 아무튼 열 명도 더 넘은 여자를 강강한 사실도 있고 폭력 전과도 있지만 그간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돈이였다. 빵빵한 집안, 보호라는 이름하에 자식을 감싸는 부모 덕에 잘 먹고 잘살다가 재수없게 살인죄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복역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곧 출소한다. 여기까지 읽고 있자니 자연스레 2020년 출소일을 앞둔 그 사람이 떠올랐다. 아마 나 이외의 많은 독자들이 떠올렸을 그 충격적인 사건의 가해자말이다.
법은 공정하다. 그러나 내가 그 반대의 생각으로 돌아선 것은 그 사건부터였다. 엄연히 사건의 피해자가 충격과 고통에서 헤메고 있는데 제3의 누군가가 범죄의 무게를 달고 형량을 결정해서 벌을 주고 끝낸다는 게 과연 정당한 것인지 자꾸 내 속에서 되묻게 된다.
소설에는 이런 사람들의 정당한(!) 처벌을 위한 특별한 회사가 등장한다. 범죄자가 버젓이 법망을 피하거나 잠시 법에 발목을 잡혔다가 자유의 몸이 되는 말도 안되는 현실에서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할 피해자를 위한 이 회사는 피해자만의 의뢰를 받아 그들이 원하는대로 형벌을 준다.
이 부분은 영화 '회사원'이 떠올랐다. 물론 소설 속 회사 직원들은 돈 그 자체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철저한 조사를 동반하며 고통을 가하는 순간 그들에게 자신의 죄를 직접 찾아내도록 이렇게 묻는다.
"네가 지은 죄를 말해"
매일 귀를 막고 눈을 돌려도 들리는 끔찍한 사건뉴스를 보다보면 어쩌면 진짜 현실속에서 필요한 회사가 아닌가 싶을정도로 방법이 명쾌하다. 그런데 .. 그런데 이상하게도 뒷맛이 쓰다.
이에는 이. 귀에는 귀. 그것으론 한번 베인 상처는 완전히 낫지는 못하는 법인걸까.
법은 질서와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그냥, 처맞아야 할 새끼들이 처맞지 않고 처맞을 짓을 하기 위해 있는 거야. 절대로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지. 억울해서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확실하고 진솔한 의사표현이 필요해. 그게 바로 나야.
주 내용은 10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출소해 이제는 조용히 살아가려는 노남용과 그를 죄값에 맞게 처벌해 회사에 들어 가려하는 사내의 사투가 펼쳐지는데 결과는 생각하지 못한 반전으로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그리고 중간에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선물하는 선생님 이야기가 함께해 죄와 벌, 죽음에 대하여 깊게 생각 해보게 만든다. 멘탈 약한 나에게 조금 버거운 장면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꽤 열심히 고심하고 다듬어 소설을 만들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