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맘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적나라한 현실 앞에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함.
평상시 내가 품고 있던 문제의식을 어쩌면 이렇게 글로 잘 표현했을까,
어쩌면 이렇게 잘 정리했을까 감탄하면서 읽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학위를,
조지타운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특히 러시아 문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2013년 어느날, 본인의 블로그에
'전문지식의 죽음'이라는 짧은 글을 올리게 된다.
그 포스팅은 참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으며
공감하는 메일,전화,연락을 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그 주제로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결국 블로그의 포스팅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많은 변화를 이끌어,
지구 건너편에 있는 내 책장에 이 책이 꽂히게 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예전처럼 원칙과 객관적인 정보에 기초한 주장들을
우리는 만나기 힘들어졌다.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의 지식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내려왔는가 하면,
'아는 게 별로 없는 상태'를 넘어 '잘못 알고' 있기까지 하는데다,
심지어 '잘못된 지식을 대놓고 우기는' 지경에까지 온 것이다.
어리석고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믿음을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더 배우기를 거부하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미국의 현재 상황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대한민국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니 우리는 좀더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판단에 반대하는 일반인들의 막무가내를 기어이 반박하려 하기보다,
서로 간의 의견 차이를 솔직하게 표현한 것쯤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전부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동의하지 않음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문구는 이제 의미있는 대화의 불씨마저 꺼버리는 소화기의 역할을 대변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답답함을 넘어서 안타까움이 가득한 현 상황을 저자는 그냥 포기하자고 하지 않았다.
좀더 냉정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며,
해결책에 대해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7개 Part로 구성되어 있다.
Part. 1 가짜 전문가가 판치는 세상
미국인들은 더 이상 '당신 말이 틀렸어'라는 말을
'당신은 바보야'라는 말과 구별해서 쓰지 않는다.
반대는 무례한 행위가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의견을 제시하고, 나누고, 토의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점차 그 과정 속에서 큰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전문가들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사이 가짜 전문가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Part.2 확증편향, 속설, 미신, 그리고 음모론
사실상 전혀 똑똑하지 않은데도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지고 있다.
자신은 평균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
그들은 확증편향,속설,미신,음모론에 너무 약하다.
아니 이를 너무 좋아한다. 헛똑똑이가 넘쳐나는 세상은 결국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Part.3 대학 교육, 학생은 고객이고 고객이 왕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나이기에
이 부분은 정말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너무 학생들의 입맛만 맞추려고 노력하는 대학들.
단순히 고등교육 기관에 다닌 경험을 지닌 이들과
'대학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이들을 구분하기 힘든 시대가 되어 버렸다.
대학 학위를 지닌 이들은 스스로를 '지적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중 다수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학교 교실 비슷한 데를 좀 더 오래 드나들었다는 사실일 뿐,
그 결과는 정말 천차만별이다.
미국 대학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대한민국 대학도 똑같다.
아니 더 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었다.
Part.4 검색해 봐야지
사실은 지식이나 능력과는 다르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사실'이라고 알려진 것들도 실은 사실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색'이라는 편리한 도구는
많은 일반인들이 전문가를 불신하게 만드는, 더 나아가 저항하게 만드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무한정 쏟아지는 정보가 우리를 더 바보로 만들어 가고 있다.
대중이 내놓은 지혜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인터넷은 다수의 의견이 '사실'과 마찬가지라는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 낸다.
Part.5 신저널리즘의 폐해
21세기 새로운 언론 생태계에서, 언론은 이미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모든 것을 속도 기준으로, 모든 것을 돈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24시간 내내 지속적으로 정보를 솓아내는 세상에서,
이제 언론은 전문지식의 죽음이라는 현상의 방어막 역할 못지않게,
이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공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의제설정권을 독자에게, 고객에게 건네주고 있다.
그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수 없다는 말로 자신들의 잘못을 부정하고 있다.
Part.6 전문가가 틀렸을 때
물론 전문가가 틀릴 수도 있다.
사기에 가까운 일을 저지르며 전문가가 타락할 때도 있다.
이는 전문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평범한 대중이 주장하고, 예측하는 것보다 전문가의 예측이 더 예리함을.
기본적인 지적영역에서조차 대중의 지혜를 논하는 어리석음은
결국 우리들 스스로를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 것이다.
Part.7 결론. 전문가 살리기
결국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주제를 명확하게 설득하기 위해 앞의 6개 Part를 이야기 한 것이다.
'전문가 죽이기'가 결국 민주주의를 죽음의 소용돌이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는 미국에서 현실로 드러났고,
영국에서는 브랙시티 투표를 통해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시민은 정책입안자, 행정집행자를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이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입법 및 통치행위를 하게 된다.
이때 전문가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민주주의 공화국. 미국도 한국도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우리는 이 단어에서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나눠 볼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주창하지만, 결국 우리는 '공화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도리어 결론을 먼저 읽고,
앞쪽에서는 본인에게 관심이 있는 Part를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귀납법으로 전개된 메시지의 흐름은 독자들에게 한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전문가가 살아있는 공동체가,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갈 것이다.
투표권을 갖고 있는 이 땅의 시민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초강력긍정주의자
가장 실력이 없는 사람이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 혹은 다른 사람이 옳다는 사실을 가장 알기 어렵고, 따라서 짐짓 잘 아는 척 꾸며낼 가능성이 가장 많으며, 그렇기에 뭔가를 배우게 될 가능성도 가장 적다는 말이다.
-"전문가와 강적들",톰 니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