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획일성을 특징으로 하는 ‘국제주의 양식‘ 이라는 것에 대해 잠시 봤었는데, 이 양식이 유행했던 20세기 후반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명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시대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전통 성당 건축에서 보여지는 높은 층고 같은 것들이 특별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평가절하되는 시기였는데, 이러한 흐름에 역행한 건축가가 바로 루이스 칸Louis I. Kahn이었다.

루이스 칸에 대한 얘기 다음에는 일본의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에 관한 얘기가 이어진다.

본문을 읽다보면 안도 다다오만의 의 독특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물의 교회‘ 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볼 수 있는데,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공간처럼 보이는 것도 저자의 글을 통해 좀 더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는 마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갔을 때 다양한 전시물 혹은 작품들을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감상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 책에서는 직접 음성으로 얘기를 들을 수 없으니 지면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와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바람의 교회‘ 역시 관련 사진과 함께 저자의 설명을 따라 읽다보면 마치 그 현장을 직접 견학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읽는 내내 흥미진진해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전통적인 성당에서 볼 수 있는 높은 천장고를 가진 아름다운 돔 공간은 낭비되는 공간으로 치부되었다. 과거에는 100미터 높이의 돔을 가진 성당을 지었다면 지금은 엘리베이터와 형광등의 도움으로 같은 볼륨의 공간에 25층짜리 사무실을 꽉 차게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 P278

그런데 이러한 국제주의 양식에 염증을 느낀 사람이 있었다. 루이스 칸Louis I. Kahn (1901~1974)이라는 건축가다. 칸은 모던하기만 했던 건축에 기능이 없는 빈 공간을 재도입함으로써 국제주의 양식에서 탈피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 P278

칸이 디자인한 대부분의 건축물은 서양 전통 건축의 특징인 기하학적 형태를 띠는 동시에 중앙에는 높은 빈 공간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는 여타 국제주의 양식 건물처럼 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만, 동시에 서양 전통 건축에서 사용했던 상하좌우 대칭의 기하학적 공간을 만들고, 특별한 기능이 없는 큰 부피의 빈 공간을 만든다. 그는 근대 건축에서 사라졌던 서양의 전통 문화 유전자와 콘크리트 기술을 융합시켜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것이다. - P278

칸이 디자인한 공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 채광을 실내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인공조명을 할 수 있는 형광등의 발전으로 현대 건축은 더 이상 자연 채광을 받아들이기 위한 높은 천장고에 세로로 긴 창이나 천창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건물은 천장고가 2.4미터 정도로 낮게 디자인된다. 루이스 칸이 디자인한 공간은 천장이 높고 다채로운 모습을 띠는데, 그 이유는 자연 채광을 건물 내부로 들이려 하다 보니 나온 디자인이다. 이때 건물이 위치한 위도에 따라서 채광창의 모습도 각기 다르게 적용된다. - P278

근대 이전의 모든 건축물은 자연 채광을 도입하려고 노력했지만 형광등 보급 이후 기술에 의존하면서 자연과 분리된 건축을 하게 되어 왔는데, 칸은 과거의 전통을 현대 건축에 재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통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고, 새롭게 진화시켰다. - P279

‘킴벨 미술관‘은 외부에서 보면 텍사스에 있는 곡물 창고인 ‘사일로silo‘를 눕혀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이 사일로 혹은 격납고처럼 보이는 이유는 지붕이 둥그런 형태를 띠어서인데, 볼트 구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트란 반원형의 아치 구조를 한쪽 방향으로 쭉 늘린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 P283

‘킴벨 미술관‘은 이렇듯 평범하고 단조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내부로 들어가 보면 아주 놀라운 공간이 연출된다. 그 이유는 일반적인 볼트와는 다르게 볼트 천정면의 가장 높은 정수리 부분이 천창으로 되어 있어서 강렬한 텍사스의 빛을 유입하기 때문이다. 천창으로 들어온 햇빛은 곡면 금속판에 반사되어 다시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곡면 천장을 비춘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실내에서 가장 어두워 보이는 천장면이 달 표면처럼 빛을 낸다. 자연 채광 빛뿐만 아니라 재료가 가진 고유의 질감과 색감을 극대화한 실내 공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 P283

구조적으로 보면 볼트 구조 천장의 가장 높은 부분은 가장 많은 압축력을 받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은 예부터 가장 단단한 돌로 만들었다. 그 단단한 돌을 ‘키스톤‘이라 부르는데, 중요한 부분을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쓰기도 한다. - P283

하지만 칸은 이러한 전통을 거꾸로 뒤집어서 구조적으로 가장 필요한 키스톤을 빼내고 그 빈자리를 통해 빛이 들어오게 했다. 이것이 전통을 해석하는 칸의 방식이다. 아치를 쓰더라도 그냥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치를 밑으로 180도 회전해서 두 개의 아치가 위아래로 대칭된 모양을 만들어 벽에 동그란 구멍을 낸다든지, 건물의 입구를 정면 가운데에 위치시키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건물의 모서리 부분에 배치하는 식이다. 얼핏 보면 전통적으로 보이나 자세히 보면 근본적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전통의 재해석을 추구해 왔다. - P284

오래되었다고 낡고 버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오래된 것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 P284

루이스 칸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건축가다. 옛 전통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새로움을 창조해 냈다. 루이스 칸은 킴벨 미술관에서 과거의 볼트 구조를 사용했지만 새로운 기술인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철근콘크리트는 내부에 철골이 보강되어서 고전적인 돌로 만든 볼트 천장보다 구조적으로 더 단단하기 때문에 볼트 천정의 꼭데기의 키스톤 자리에 부분적으로 구멍을 뚫어도 압력을 견딜 수 있어서 천창을 뚫을 수 있었다. - P284

새로운 창조를 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 유전자를 섞어야 한다. 가장 손쉽게 새로운 문화 유전자를 만드는 방법은 다른 지역의 문화에서 찾는 것이다. 동서양이 다르게 발전하였고 이 둘은 융합되면서 2차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지리적 발견이 끝난 20세기 후반에는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 유전자를 찾기 힘들게되었다. 그래서 루이스 칸이 찾은 방식은 과거의 문화에서 필요한 유전자의 다양성을 찾는 것이었다. - P284

유대인들은 특정 기하학의 조합이 영적인 힘을 갖는다고 믿었고, - P285

원에 삼각형이 내접하는 모습들은 기존의 서양 건축에서는찾아보기 힘든 기하학의 조합이다. 이러한 독특한 디자인은 유대의 전통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 P285

‘알함브라궁전‘은 스페인을 정복한 이슬람인들이 만든 궁전이다. 사막에서 살았던 이슬람인들에게 천국은 물이 풍부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슬람인들은 ‘알함브라궁전‘을 디자인할 때 물을 여러 가지 형태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분수와 수水공간을 디자인하였다. - P288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 - P290

바라간은 캘리포니아 라호이아에 있는 ‘소크 연구소‘ 현장에서 "이 공간에 나무나 잔디 대신에 돌로 포장된 중정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소크 연구소‘의 입면으로 하늘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바라간은 칸에게 비움을 통해서 진정한 자연을 얻으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칸이 만들려고 했던 나무가 심긴 정원은 인공의 자연인 반면, 바라간이 이야기한 비워진 중정을 통해 얻는 하늘은 진정한 자연이다. 칸은 바라간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 유명한 나무 한 그루 없이 비워진 ‘소크 연구소‘ 중정을 만들었다. - P290

마치 료안지龍安寺의 ‘선의 정원‘에서 나무를 없애고 모래와 돌로만 구성된 명상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듯이, 칸 역시 ‘소크 연구소‘에 빈 공간을 만듦으로써 도가식 정원이 주는 침묵을 얻을 수 있었다. - P290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불변永遠不變의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노자 도덕경」 1장, 남만성 역) - P290

나는 위대한 건물은 ‘잴 수 없는 것unmeasurable‘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며, 디자인 과정에서 ‘잴 수 있는 것measurable‘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에는 ‘잴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
(루이스 칸) - P293

루이스 칸은 건축의 본질상 물질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잴 수 있는 것‘을 통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는 하지만 건축의 처음과 끝은 결국 ‘잴 수 없는 것‘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 P293

칸이 말하는 ‘잴 수 없는 것‘ 은 노자가 말하는 ‘이름 없는 것‘ 즉 말로 표현할수 없는 도道를 말하는 것이고, ‘잴 수 있는 것‘은 ‘이름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높은 가치는 측량하거나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라 믿고 그곳에 가기 위해서 측량할 수 있는 형이하학적인 건축을 통하는 것이라는 루이스 칸의 생각은 다분히 노자스럽다. - P293

칸은 침묵하는 동양의 보이드 공간을 서양의 기하학적인 틀에 성공적으로 맞춰 넣은 건축가다. 루이스 칸은 20세기 후반 최고의 건축가로 추앙받는다. 그가 그렇게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융합하는 능력에 있다. - P293

코르뷔지에와 미스가 서양 건축가로서 근대의 새로운 기술에 동양의 문화 유전자를 융합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면, 루이스 칸은 현대식 건축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서양 전통 건축, 도가 사상, 유대 민족 문화까지 자신이 접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유전자를 섞어서 융합시킨 건축가였다. - P293

미스나 코르뷔지에가 한 융합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의 문화 유전자를 빌려 쓰는 ‘공간을 뛰어넘는 융합 능력‘이라면, 루이스 칸은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문화 유전자를 도입하는 ‘시간을 뛰어넘는 융합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간을 초월한 융합 능력‘이 칸을 위대한 건축가로 만든 것이다. - P294

나는《드래곤 볼》의 스토리가 동서양 종교 문화의 융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동서양에 걸쳐서 대중이 열광하는 콘텐츠가 된 거라 생각한다. - P295

서양의 전통 종교 패러다임은 기독교다. 기독교의 핵심 스토리는 ‘메시아 사상‘이다. 메시아 사상은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의 끝에 구세주인 메시아가 나타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이야기 구조다. 동양의 대표적 종교 중 하나인 불교의 핵심 스토리는 뭘까? 부처가 자기계발을 통해서 각성하여 열반에 이르고 초월적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 두 이야기를 섞은 것이 「드래곤 볼」만화의 골자다. - P295

「드래곤 볼」이야기 초반에 우주의 절대 강자인 ‘초사이어인‘이라는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신화를 복선으로 깐다. ‘초사이어인‘이란 ‘사이어‘라는 외계 종족이 있는데, 그 종족 중에서 초인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프리저라는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막강한 악당이 나타난다. 주인공 손오공이 끝없는 수련과 자기계발을 통해서 계속 성장하다가 마지막에 각성하여 초사이어인이 되고 프리저를 무찔러 우주에 평화를 가져온다. 초사이어인이 올 것이라는 메시아 스토리 라인에 주인공이 수련을 통해 각성하여 부처 같은 초인이 되는 이야기 구조다. 「드래곤 볼」은 동서양에서잘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 P295

1868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서양 문화를 적극 수용한다. 일본은 오랫동안 봉건 사회였다. 이 기간 중 봉건 영주들 간의 전쟁이 있었고 일본 문화는 항상 정복을 당하면 강한 지배자에게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승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전쟁이 많은 봉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에 원자폭탄으로 패전한 이후 맥아더 사령관과 미국 문화도 저항 없이 일본 사회에 수용되었다. 일본은 문화에서도 승자인 미국의 문화를 적극 수용하였다. - P296

1952년부터 1968년까지 일본에서 연재된 만화《우주소년 아톰》이라는만화 캐릭터는 미국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슈퍼맨과 미키 마우스를 합쳐 놓은 캐릭터다. 슈퍼맨은 바지 위에 삼각팬티를 입고 빨간 장화를 신고 하늘을 난다. 미키 마우스는 검정색 머리에 두 개의 큰 귀가 달려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톰 역시 팬티를 입고 빨간 장화를 신고 하늘을 날며, 머리는 검정색인데 미키 마우스의 둥그런 귀 대신에 뾰쪽한 귀를 가지고 있는 차이밖에 없다. 이름이 아톰Atom인 이유는 원자폭탄을 뜻하는 Atomic Bomb을 애칭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 P296

1980년대 일본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대등하게 융합됐다. 그 결정체가 만화에서는《드래곤 볼》이고 건축에서는 안도 다다오라고 할 수 있다. - P297

안도 다다오의 건축 공간은 서양의 기하학과 동양의 상대적 관계성을 융합시킨 건축이다. - P298

안도는 "나는 내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조용히 감동을 받고, 본인이 받은 감동을 떠들어 대지 않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건축에는 마치 칸의 건축이나 일본 전통 건축에서 보이는 침묵의 빈 공간이 항상 존재한다. - P298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한 안도가 칸과 코르뷔지에를 그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 건축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가 코르뷔지에에게 건축을 배우고자 유럽에 건너갔을 때, 코르뷔지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래서 안도는 일본으로 돌아온 후 코르뷔지에의 모든 건축 도면을 반투명한 트레이싱 페이퍼에 여러 번 베끼면서 독학으로 건축 공부를 했다고 한다. - P299

칸과 코르뷔지에를 모델 삼아 건축을 공부했으니, 동서양 문화 유전자가 융합된 건축을 체득했을 것은 유전적 계보에 따른 당연한 일이다. - P299

안도의 건축은 진입로를 따라서 경험하게 되는 연속적인 투시도 장면들에 의해서 인식되는 건축이다. 그리고 이 같은 진입로는 수평적 혹은 수직적으로 꺾이고, 비틀어져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진입로 위의 사람은 다양한 각도에서의 투시도들을 수집할 수 있게 된다. - P299

여러 지점에서 다른 데이터를 수집해서 3차원 공간을 측량한다는 점은 토목 기사가 땅의 모양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삼각법‘과 같은 원리다. 토목 기사들은 땅의 고저차를 측정할 때 수평자를 이용하여 눈금을 읽어 그 차이를 아는데, 안도의 경우에는 계단의 수나 간간이 있는 단의 차이를 이용해서 본인이 수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정도를 사용자가 몸으로 인지하게 한다. - P300

지형을 측량하는 측량 기사는 한 지점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한 후 다른 지점으로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와 같이 관찰자의 위치를 변화시키면서 얻은 데이터와 자신이 얼마나 멀리 어떠한 각도로 이동했는가에 따른 데이터를 종합하여 이차원도면 위에 작도하여 삼차원 지형을 알아내는 것이 삼각법이다. - P301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물의 교회 Chapel on the Water‘ (1985-1988)에서는 관찰자가 교회의 후면부에서 출발해 교회 건물로 접근하면서 건물과 주변 공간을 인식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 P301

방문객은 건물의 제일 높은 부분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주변 경관과 건물을 바라본 후 계단을 통해서 내려간다. 이 부분은 곧 맞이하게 될 클라이맥스 순간이 오기 전에 다시금 암흑의 ‘시각적 정적‘의 순간을 경험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이는 중요한 클라이맥스 순간을 더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비슷한 기법이 작곡가 헨델의 성가극「메시아」 중 「아멘」 마지막 부분에서 보이는데, 클라이맥스 부분에 1초 정도의 정적을 넣음으로써 직후의 클라이맥스를 극대화했다. - P306

성가극: 16세기 무렵에 로마에서 시작한 종교 음악. 성경의 장면을 음악과 함께 연출한 교회에서 발달하여 오페라의 요소를 가미한 영창, 중창, 합창, 관현악으로 연주한다. ‘오라토리오‘라고도 한다. 헨델의「메시아」는 유명한 성가극으로, 마지막 제3부 끝부분에「아멘 코러스」를 거쳐 네 개의 성부가 동시에「아멘」을 부르며 감동적으로 끝맺는다. - P405

‘물의 교회‘에는 자연과 건축의 각기 다른 관계를 보여 주는 순간들이 있다. 이 같은 순간들은 벽을 따라 걷는다든지, 계단을 오르내리는 식의 건축적인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벽을 따라 걷는 것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주요 장면의 데이터를 실측하기 위한 수평 이동이다.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가는 것은 실측을 위한 수직 이동이다. 이 같은 변화들은 계단의 개수나 발자국 숫자 같은 식으로 관찰자의 몸을 통해서 인지하게 되어 있다. 이는 변화의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에만 차이가 있을 뿐, 기본 원리는 측량 기법과 흡사하다. - P307

측량 기사들은 수직적, 수평적인 변화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지도상에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다. ‘물의 교회‘ 에서는 측량 기사들이 종이 위에 작도하는 작업들이 방문객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 P307

안도는 "건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존재감을 느끼게끔 해 주는 중간 장치다. 중정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자연은 매일 매일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중정은 집 안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핵이며 빛, 바람, 비와 같은 자연의 현상을 전달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 P307

‘물의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방문객으로 하여금 마치 영화를 찍는 카메라처럼 계속해서 멋진 장면을 캡처하게 하는 도구다. 그리고 그 장면들 속에 있는 요소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관계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일련의 경험을 통해서 방문객에게 깨달음을 주게 하는 것이 안도가 추구하는 건축이다. - P308

귄터 니츠케 Gunter Nitschke의 ‘시간이 돈이고, 공간이 돈Time is Money - Space is Money‘ 이라는 글 - P310

그(귄터 니츠케)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발전한 건축 시스템이다. - P310

이와는 반대로 일본 같은 섬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은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 P310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인식되게 하려고 분절되고, 회전하고, 돌아가는 식의 장치를 만들어서 시간을 지연시켰고 그렇게 함으로써 같은 공간이라도 실제보다 더 넓게 인식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 P310

‘물의 교회‘는 복잡한 진입 시퀀스를 통해서 단순한 상자형 본당이지만 마지막에 그장면이 주는 느낌은 그냥 본당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첫 장면 보고 엔딩을 본다고 해서 영화를 다 봤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의 감동을 위해서 보통 두 시간 정도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주요 장면 이전에 이야기의 전개가 중요한데, 그것을 가장 잘하는 공간 이야기꾼이 안도 다다오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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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광대함과 더불어 인류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ㅡ적어도 가장 최근에 부활한 우주가ㅡ약 150억~200억 년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대폭발‘ 또는 ‘빅뱅‘이라고 불리는 시점에서부터 계산한 우주의 나이다. - P60

최근에 알려진 우주의 가장 정확한 나이는 137억년이다. - P60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은하도 별도 행성도 없었다. 생명도 문명도 없이, 그저 휘황한 불덩이가 우주공간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대폭발의 혼돈으로부터 이제막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 조화의 코스모스로 이어지기까지 우주가 밟아 온 진화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 P60

우리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 P61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신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분은 먼지에서 너희 모두를 창조하셨다. - 《코란》40장 - P63

지상의 생물들은 모두 유기 화합물, 즉 탄소 원자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복잡한 미세 구조의 유기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 P64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 P65

별들 사이의 광대한 암흑 속에는 기체, 티끌 그리고 유기 분자로 이루어진 성간 구름, 즉 성간운星間雲이 떠돌아다닌다. 성간운을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그 안에서 수십 가지의 유기 분자를 쉽게 발견할수 있다. 성간운에 유기 분자가 풍부하다는 사실은 생물의 기본 물질이 우주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하나의 우주적 필연인 것이다. - P65

지상의 모든 생물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같은 유기화학적 원리가 지상의 생물들을 지배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진화의 코드를 통해서 변신해 왔다. 따라서 지구의 생물학은 철저하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구 생물에게는 단 한 가지의 생물학만으로 충분하다. 생물학을 음악에 비유해 볼 때, 지구 생물학은 단성부單聲部, 단일 주제 형식의 음악만을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말이다. - P67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릿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우주 음악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교차하는 다성부多聲部 대위법 양식의 둔주곡을 기대한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 P67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어떤 종의 식물과 동물은 잘 키우고, 또 어떤 것들은 죽여야 할지를 신중하게 선별해 왔다. - P71

인간은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특정 형질의 품종들만을 선택적으로 번식시켰다. 예를 들어 목양견牧羊犬이 필요하면 똑똑하고 충성스러우며 양떼를 잘 지킬 줄 아는 개를 골라 양치기에 필요한 유전 형질을 조장하는 쪽으로 키웠다. 떼를 지어 사냥하는 개는 양 몰이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엄청나게 커진 젖소의 젖은 우유와 치즈에 대한 인간 욕심의 반영이다. - P71

현재 우리가 즐기는 알이 굵은 옥수수의 조상도 터무니없이 왜소했을 것이다. 현대 옥수수의 왜소했던 조상은 수만 세대를 거치는 동안에 사람의 입맛에 맞도록 그리고 사람에게필요한 영양분을 많이 갖추도록, 인간에 의해서 번식이 조절되어 왔다. 그 결과 이제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번식할 수 없는 처지로까지 옥수수의 유전 형질이 변형돼 버렸다. - P71

헤이케게, 목양견, 젖소, 옥수수 등에서 볼 수 있는 인위 도태의 핵심은 식물과 동물의 외형적 특성과 행동 형질 들이 그대로 유전된다는 점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인간은 특정 변종의 번식을 조장하고 다른 변종의 번식을 억제해 왔다. 전자는 우점종이 되어 마침내 크게 번성했지만 후자는 그 수가 크게 줄거나 혹은 멸종에 이르렀다. - P72

인간이 동식물의 새로운 품종을 만들 수 있을진대, 자연이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자연적으로 유전 형질이 변하는 과정을 우리는 자연 도태natural selection 혹은 자연 선택이라고 한다. - P72

화석에 남겨진 생명 진화의 기록에서 우리는 한때 번성했던 종들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를 허다하게 보게 된다. - P72

진화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 P73

시계가 있으면 그 시계를 만든 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 P76

오히려 화석 기록들은 위대한 설계자가 저지른 시행착오의 과거와 그의 미래 예측 능력에 숨어 있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위대한 설계자에게 결코 어울리는 속성이 아니다. (냉정하고 변덕스러운 기질의 설계자라면 괜찮겠지만 말이다.) - P77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의 학명에는 검은색 몸체에 이슬을 좋아하는 생물이라는 뜻이 있다.) - P77

진화의 비밀은 죽음과 시간에 있다. 환경에 불완전하게 적응한 수많은 생물들의 죽음과 우연히 적응하게 된 조그마한 돌연변이를 유지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 말이다. 유리한 돌연변이 형태들이 서서히 축적되기 위한 긴 시간이 바로 진화의 비밀이다. - P79

단지 70년밖에 살지 못하는 생물에게 7000만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그것은 100만분의 1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하루 종일 날갯짓을 하다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알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식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 P79

지구는 대략 46억 년 전에 성간 기체와 티끌이 응축된 구름 속에서 만들어졌다. 화석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최초의 생명이 대략 40억 년 전 원시 지구의 바다나 연못에서 태어났다고 알고 있다. 최초의 생물은 오늘날의 단세포 생물만도 못한 것이었다. 단세포 생물은 고도로 정교한 형태를 구비한 어엿한 생물이다. 생명의 첫 걸음은 이보다 훨씬 보잘것없는 수준에서 시작했다. - P80

원시 지구 대기의 주성분은 수소 원자를 여러 개 가진 간단한 구조의 분자들이었다. 이 분자들은 태양에서 복사된 자외선과 번개의 전기 방전을 통해서 쉽게 해리되었다. 분자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원자와 분자들이 우연히 재결합하면서 더 복잡한 물질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생성된 화학 반응의 부산물들은 바다나 연못에 용해됐으며, 거기에서 점진적으로 더 복잡한 일종의 ‘유기물 수프‘와 같은 물질로 서서히 변해 갔다. 마침내 수프에 들어 있던 다른 종류의 분자들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를 비슷하게 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분자가 아주 우연하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서 앞으로 모든 지상 생명 현상의 주인공 구실을 하게 될 디옥시리보핵산 doomyribonucleic acid 분자, 다시 말해 DNA의 원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P80

DNA는 나선형으로 꼬인 긴 사다리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사다리의 가로대는 각각 서로 다른 네 종류의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이 바로 유전자 코드를 기술하는 네 가지 부호이다. 사다리의 가로대를 뉴클레오티드 nucleotide 라고 부르며 그 가로대들이 모여서 주어진 생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설계도, 즉 유전 설계도를 이룬다. - P81

지구상 모든 형태의 생물들은 각각 그 형태에 맞는 설계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설계도들은 모두 앞에서 이야기한 네 개의 문자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같은 언어로 씌어 있다. 유기체의 종류마다 유전 형질이 다른 이유는, 유전 설계도가 비록 같은 언어로 씌어 있지만 그 내용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 P81

돌연변이는 뉴클레오티드의 변화에서 초래되고 변화된 형질은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해진다. 즉 돌연변이는 순종을 생산한다. 뉴클레오티드에 일어나는 변화는 무작위적이다. 그래서 태어난 돌연변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비기능성 효소들을 만들게 되므로, 돌연변이는 대부분의 경우 결과적으로 해롭거나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이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려면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 P81

뉴클레오티드는 폭이 겨우 1센티미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지극히 작은 물질이다. 이렇게 작은 물질에서 일어난 변화들 중에서 지극히 일부의 경우가 이로운 돌연변이를 유발하고 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 P81

자기 복제 기술을 완전히 터득한 분자들이라야 생명 현상이란 건물을 구축하는 데 쓰일 벽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 P81

특정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는 분자들이 한데 모여서, 일종의 분자 집합체인 최초의 세포가 만들어졌다. - P82

오늘날 식물 세포는 엽록체라고 불리는 분자들로 이뤄진 아주 작은 공장들을 갖고 있다. 엽록체 공장은 햇빛, 물, 이산화탄소를 탄수화물과 산소로 바꾸는 광합성 작용을 한다. - P82

혈액 속에는 미토콘드리아 mitochondria라 불리는 또 다른 종류의 분자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서는 주어진 생물이 섭취한 음식물에 산소를 첨가하여 에너지를 추출하는 작업을 한다. 현재는 이 공장이 식물과 동물의 세포 안에 존재하지만, 한때 독립된 세포로 독자 활동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믿어진다. - P82

약 30억 년 전 단세포 생물이 세포 분열 후 두 개의 독립된 세포로 되지 못하고 그대로 붙어 있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유는 돌연변이때문이었으리라. 이것이 최초의 다세포 생물이 태어나는 과정이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모듬살이를 하는 일종의 생활 공동체인 셈이다. 이 공동체는 한때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부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은 100조 개가량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사람 한 명 한 명은 수많은 생활 공동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거대한 군집인 셈이다. - P82

성性은 대략 20억 년 전부터 생긴 듯하다. 그 전에는 새로운 종의 출현이 무작위적 돌연변이의 축적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유전 설계도의 글자를 한 글자씩 바꾸어 돌연변이를 만들고 그것을 또 시험해야 했으므로, 진화는 고통스러우리만큼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의 출현과 함께 두 개의 생물은 자신들이 가진 유전 설계도를 문단씩, 혹은 여러 쪽씩, 심지어는 몇 권씩 통째로 서로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은 이렇게 해서 생긴 새로운 종을 선택이라는 체로 다시 걸러냈다. 결국 성적 결합에 관여할 줄 아는 생물들은 선택되었고 반면에 성에 무관심한 것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이것은 20억 년 전 미생물들에게만 주어졌던 선택 사항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도 DNA 조각들을서로 교환하는 일에 온 정성을 쏟으며 살아간다. - P83

10억 년 전쯤부터 식물들이 협동 작업을 통해 지구 환경을 엄청나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시절 바다를 가득 메운 단순한 녹색 식물들이 산소 분자를 생산하자마자 자연히 산소가 지구 대기의 가장 흔한 구성 물질 중 하나가 되었다. 원래 원시 지구의 대기는 수소로 가득했다. 이렇게 해서 지구 대기의 성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생명 현상에 필요한 물질이 그때까지는 비생물학적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으나, 산소 대기의 출현으로 지구 생명사의 신기원이 세워진 것이다. - P83

산소는 유기 물질을 잘 분해한다. 사람은 산소를 좋아하지만, 산소는 무방비의 유기물에게는 근본적으로 독이나 다름없다. 지구 대기가 산화력이 강한 대기로 성격이 바뀌자, 생물의 역사상 최대의 위기가 당시 생물들에게 닥쳐왔다. 산소의 분해력에 대처할 수 없던 생물들은 무더기로 사라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 P83

지구 대기의 질소는 산소보다 화학적 활성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훨씬 무해한 분자이다. 그렇지만 지구 대기에 질소가 유지되는 과정에도 생물이 크게 간여하고 있다. 지구 대기의 99퍼센트가 생물 활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파란 하늘은 생물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 P84

생명의 탄생 이후 40억 년의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 지구의 생명계는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던 청록색의 조류藻類 들이 지배했다. 대략 6억 년 전부터 조류의 독과점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폭발적으로 지구에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캄브리아기 대폭발 Cambrian Great Explosion 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 P84

지구가 만들어지자마자 생명이 탄생했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출현은 지구와 같은 행성의 환경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화학 반응들의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 P84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초의 생물이 지구상에 출현한 시기는 37억 년 전이라고 한다. 태양계의 나이가 46억 년이므로 태양계가 형성되고 9억 년 후에 생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9억 년은 태양계 나이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짧은 기간이다. - P84

그러나 생물은 30억 년이나 되는 긴긴 세월을 녹조류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지구 생명이 특화된 기관들을 갖추고 체구가 큰 유기체로 진화하기가 생명의 출현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계 행성들을 탐사하다 보면 동물이나 식물이 서식하는 곳보다 미생물의 세상을 더 흔하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84

지금으로부터 5억 년 전쯤 지구에는 삼엽충이 엄청나게 많이 살고 있었다. 오늘날의 곤충과 비슷한 그들은 아름다운 동물이었다. 그중에는 해저에서 무리를 지어 사냥하면서 살아가는 종들도 있었다. 삼엽충들은 편광을 감지할 수 있는 수정체의 겹눈을 가지고 있었다. - P85

오늘날 지구에서는 살아 있는 삼엽충을 찾아볼 수 없다. 이미 2억 년 전에 모두 멸종한 것 같다. 한때 지구상에 번성했던 동식물들 중에는 이렇게 완전히 사라진 예가 많이 있으며, 현재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생물들이 물론 과거에 모두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오래된 암석과 화석 가운데 우리와 같은 동물들은 눈을 씻고봐도 찾을 수가 없다. 종들은 잠깐 나타나 그럭저럭 살다가 완전히 멸종하고는 한다. - P85

세포의 구조나 생화학적 특성 등에서 달성될 수 있는 굉장히 어려운 진화가 외적 형태에까지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화석은 우리에게 외적 형태만 보여 준다. - P86

1000만 년 전에 인간과 아주 비슷한 생물이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그들이 진화함에 따라 뇌의 크기도 현저하게 커졌다. 그리고 그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겨우 수백만 년 전에 최초의 인간이 나타났다. - P86

나무는 햇빛을 생존의 동력으로 삼는 아름답고 위대한 기계이다. 땅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자신에게 필요한 음식물을 합성할 줄 안다. 그 음식의 일부는 물론 우리 인간이 탐내는 것이기도 하다. 합성한 탄수화물은 식물 자신의 일들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 P87

궁극적으로 식물에 기생해서 사는 우리 같은 동물은 식물이 합성해 놓은 탄수화물을 훔쳐서 자기 일을 수행하는 데 이용한다. 우리는 식물을 먹음으로써 탄수화물을 섭취한 다음 호흡으로 혈액 속에 불러들인 산소와 결합시켜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뽑아낸다. 그리고 우리가 호흡 과정에서 뱉은 이산화탄소는 다시 식물에게 흡수돼 탄수화물 합성에 재활용된다. - P87

동물과 식물이 각각 상대가 토해 내는 것을 다시 들이마신다니, 이것이야말로 환상적인 협력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지구 차원에서 실현되는 일종의 구강口腔 대 기공氣孔의 인공 호흡인 것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순환 작용의 원동력이 무려 1억 5000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태양에서 오는 빛이라니! 자연이 이루는 협력이 그저 놀랍기만하다. - P87

알려진 유기 분자의 수는 100억 개가 넘지만, 이 중에서 생명 현상의 필수 요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약 50종뿐이다. 동일한 조합의 분자들이 여러 가지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 반복해서 사용된다. 분자들의 조합이 하나의 모듈 module로 쓰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 생명은 주어진 기능을 수행하는 데 최대의 경제성을 유지하는 아주 영리한 존재이다. - P88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생명 현상의 뿌리에는 세포의 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 분자와 유전 설계도를 간직한 핵산이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본질적으로 같은 단백질 분자와 핵산 분자가 모든 동물과 식물에 공통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생명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참나무와 나는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좀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동물인 나와 식물인 참나무의 조상은 같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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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와 이기주의라는 상반되는 두 개념이 어떻게 얽히고 설켜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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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나오는 내용에서 집단선택설과 개체선택설 이라는 두 가지 학설이 나온다. 여기서 특별히 개체선택설과 관련된 내용을 통해 사람들이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근원의 동기 혹은 본능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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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오류로 인한 진화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자세한 얘기를 일일이 다 하기는 힘들지만 오류라는 것이 변화의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유전자로 이루어진 우리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개인적으로 올해 7월경에 읽었던 유시민 작가가 쓴《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라는 책에서 접했던 표현이라 반가웠다. 오늘 이《이기적 유전자》독서를 통해 유시민 작가의 책에서 봤던 용어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었고, 리처드 도킨스의 주석 설명을 통해 그 의미를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정의가 주관이 아닌 행동에 근거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P50

이 행위가 이타 행위자의 생존 가능성과 이타 행동의 수혜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내는지 아니면 낮추는 효과를 내는지만 중요할 뿐이다. - P50

겉보기에 이타적 행위는, 표면적으로 이타주의자의 죽을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높이고, 동시에 수혜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보기에 이타적인 행위는 실제로는 이기주의가 둔갑한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기저에 깔린 동기가 이기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생존 가능성에 미치는 실제 영향이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라는 뜻이다. - P51

일반적인 경우에 이기적인 행동은 단순히 먹이나 영역, 또는 교미 상대와 같은 가치 있는 자원을 공유하기를 거부하는 행위로 볼수도 있다. - P52

일벌이 침을 쏘는 행동은 꿀 도둑에 대한 아주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다. 그러나 침을 쏘는 벌은 가미가제 특공대다. 침을 쏘는 것과 동시에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내장이 보통 침과 함께 빠져 버리기 때문에 그 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된다. 벌의 자살 행위가 집단의 생존에 필요한 먹이 저장고를 지켜냈을지 몰라도 일벌 자신은 그 이익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의 정의에 따르면 이것은 이타적인 행동이다. - P53

진화는 자연선택을 거쳐 진행되고 자연선택은 ‘최적자the fittest‘의 차등적 생존을 의미한다. - P55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개체들로 구성된 종 내지는 종 내 개체군과 같은 집단은, 각 개체가 자기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다른 경쟁자 집단보다 절멸의 위험이 적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세상은 자기희생을 치르는 개체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가득 찬다. 이것이 ‘집단선택설 Theory of group selection‘이다. - P55

이와 반대로 정통 학설은 ‘개체선택설 Theory of individual selection‘이라고 불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전자 선택설 Theory of gene selection‘이라 부르는 것을 더 선호한다. - P55

‘개체선택론자‘의 답은 간단히 말해서 다음과 같다. 이타주의자의 집단 내에 희생을 눈곱만치도 하지 않으려는 소수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다른 이타주의자를 이용하려는 이런 이기적인 반역자가 한 개체라도 있으면, 정의에 따르자면 그 개체는 아마도 다른 개체보다 더 잘 살아남고 자손도 더 많이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손은 그의 이기적인 특성을 이어받을 것이다. 여러 세대의 자연선택을 거치고 나면, 이 ‘이타적 집단‘에는 이기적인 개체가 만연해 이기적 집단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 P56

있을 수 없는일이지만 처음부터 반역자가 전혀 없는 순수한 이타적 집단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웃의 이기적 집단에서 이기적인 개체가 이주해 와서 교배를 하여 이타적 집단의 순수 혈통을 오염시키는 것을 막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 P56

집단이 실제로 절멸하는지의 여부가 그 집단에 속한 개체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 P56

집단의 절멸은 개체 간에 치고받는 경쟁에 비해 느린 과정이다. 집단이 느리게 그리고 확실히 쇠퇴해 가는 중에도 이기적인 개체는 이타주의자의 희생을 발판 삼아 짧은 시간 안에 그 수가 불어난다. - P56

세상 사람들이 선견지명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진화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 P56

"고등 동물에서는 개체가 종의 생존을 위해 자살이라는 행동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 P56

로렌츠는《공격성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공격 행동의 ‘종 보존‘기능에 관해 말하면서, 그 기능 중 하나는 최적 개체만이 번식하도록 보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P57

종의 유지를 위해서는 극소수가 살아남더라도 충분 - P57

개인으로서 우리는 종종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이상적으로는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칭찬한다. - P57

집단 내 이타주의는 집단 간의 이기주의를 동반할 때가 많다. 이것이 노동조합의 기본 원리다. 또 다른 수준에서 보면 국가는 우리의 이타적 자기희생에서 이익을 얻는 집단이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한다. 또한 그들은 타국인이라는 것 외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살상하도록 훈련받는다(이상하게도 개개인에게 생활 소비를 좀 줄여 달라는 평상시의 호소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라는 전시의 호소만큼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 - P58

좋은 속屬에 속하고 속은 목目에, 목은 강綱에 속한다. - P59

진화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는 나의 신념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 P60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 P60

비누 거품은 구형이 되는 성질이 있는데, 이것은 기체가 차 있는 얇은 막의 안정한 형태가 구형이기 때문이다. - P64

소금의 결정은 입방체다. 왜냐하면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함께 담겨 있으려면 입방체가 안정하기 때문이다. - P64

다윈의 ‘최적자 생존 survival of the fittest‘은 실제로 안정자 생존survival of the stable이라는 보다 더 일반적인 법칙의 특수한 예다. 세상은 안정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안정한 것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지속적으로 존재하거나, 흔하게 존재하는 원자의 집단이다. - P63

태양에서는 모든 원자 중에서 가장 단순한 수소 원자가 융합하여 헬륨 원자를 만든다. 왜냐하면 태양의 환경에서는 헬륨의 상태가 더 안정하기 때문이다. - P64

우리 혈액 중의 헤모글로빈은 전형적인 단백질 분자다. 그것은 아미노산이라는 더 작은 분자의 사슬로 되어 있으며, 각 아미노산에는 정해진 패턴으로 배열된 수십 개의 원자가 담겨 있다. 헤모글로빈 한 분자에는 574개의 아미노산  분자가 있다. 이들 아미노산은 4개의 사슬을 만들며, 이 사슬들이 서로 맞물려 매우 복잡한 구형의 3차원 구조를 만들어 낸다. - P64

헤모글로빈 분자의 모형은 마치 빽빽한 가시나무 덤불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진짜 가시나무 덤불과 달리, 헤모글로빈 분자는 불규칙하고 어설픈 패턴이 아니라 삐져나오는 잔가지가 하나도 없는 일정하고 변함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 P65

인체 내에서는 헤모글로빈 분자가 평균 6×10^21개나 존재한다. 아미노산 서열이 같은 두 개의 단백질 사슬을 떼어 내면 마치 두 개의 용수철처럼 완전히 똑같은 3차원 구조로 돌아간다. 헤모글로빈과 같은 단백질 분자의 가시덤불 형태가 안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 P65

우리 체내에서 헤모글로빈의 가시덤불은 매초 4×10^14개가 ‘선호되는‘ 형태로 만들어지고, 다른 헤모글로빈 분자는 같은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 P65

에너지를 가진 한 무리의 원자가 안정한 패턴을 갖게 되면, 그 원자들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고 할 것이다. 최초의 자연선택은 단순히 안정한 것을 선택하고 불안정한 것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전혀 신비로울 것이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당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 P65

인간은 10^27개 이상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 P65

내가 독자에게 전하려고 늘 노력하는 것은 어떠한 행성에 존재하는 생명체건 그 기원에 대한 훌륭한 이론의 핵심에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근본적 성질에 대한 내용이며, 특히 자기 복제를 하는 유전적 실체에 대한 개념이다. - P501

지금은 아미노산의 존재가 증명된다고 해도 공기 중에 단순한 기체가 있다는 것과 화산이나 햇빛, 번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 P67

최근에는 생명 탄생 이전 지구의 화학적 상태를 본뜬 실내 실험에서 퓨린purine과 피리미딘pyrimidine이라는 유기물이 생성됐다. 이들은 유전 물질인 DNA의 구성 요소다. - P67

생물학적 자기 복제자의 복제 오류는 진정한 의미의 개량으로 이어지며, 몇몇 오류의 발생은 생명 진화가 진행되는 데 필수적이었다. - P70

현재의 DNA 분자는 인간의 정확한 복사기술에 견주어 보아도 놀랄 만큼 정확하지만, 그 DNA 분자도 때로는 오류를 일으킨다. 그리고 결국 진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와같은 오류다. 아마도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더 많은 오류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오류는 생겨났고, 이 같은 오류가 누적되어 왔다는 것은 확실하다. - P70

어떤 자기 복제자가 개체군 내에서 퍼져 나가는 데 보다 더 중요한 특성은 바로 복제의 속도, 즉 ‘다산성‘이었다. - P71

선택에서 살아남았을 자기 복제자 분자의 세 번째 특징은 복사의 정확성이다. 가령 X형 분자와 Y형 분자가 같은 시간동안 존재하고 같은 속도로 사본을 만들지만, X형 분자가 평균 열 번중 한 번 잘못된 사본을 만드는 데 비하여 Y형 분자는 백 번 중 한 번 밖에 잘못된 사본을 만들지 않는다면, 분명히 Y형 분자 쪽이 수적으로 많아질 것이다. 이 개체군 내의 X형 분자단은 잘못된 사본인 ‘자식‘ 그 자체를 잃을 뿐 아니라 현재의 자손 또는 가질 수 있었던 자손 모두를 잃는 것이다. - P71

진화란 자기 복제자(그리고 오늘날의 유전자)가 아무리 막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 P72

여러 종류의 안정한 분자, 즉 오랜 시간 존속하거나 복제 속도가 빠르거나 복제의 정확도가 높은 - P72

이들 세 종류의 안정성을 향한 진화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은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수프에서 두 번 샘플을 취할 경우, 두 번째 샘플에서는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 면에서 우수한 분자들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본질적으로 생물학자가 말하는 생물의 진화이며, 그 메커니즘도 바로 자연선택이다. - P72

요점은 우리 논쟁의 결론이 무엇이든 본질적인 결론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뉴턴이나 다윈을 ‘위대‘하다고 칭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의 생애와 업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 P72

말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가령 ‘살아 있다‘라는 말이 사전에 있다고 해도 그 말이 반드시 현실 세계에서 무엇인가 명확한 것을 지칭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고충이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초기의 자기 복제자를 ‘살아있다‘고 하든 하지 않든 그들은 생명의 조상이며, 우리의 선조다. - P73

개량 과정은 누적되는 것이다. - P74

어떤 자기 복제자는 화학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거나 둘레에 단백질 벽을 만들어 스스로 방어하는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하여 최초의 살아 있는 세포가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vehicle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한 것이다. - P74

최초의 생존 기계는 아마도 보호용 외피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 우수하고 효과적인 생존 기계를 갖춘 새로운 경쟁 상대가 나타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생존 기계는 더 커지고 더 정교해졌으며 이 과정은 누적되고 계속 진행되었다. - P74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 P75

우리는 전자공학의 황금시대에 살고 있으며, 로봇은 더 이상 융통성 없는 멍청한 존재가 아니라 학습하고 생각하며 창의력 있는 존재다. 얄궂게도 카렐 차페크Karel Capek가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1920년 그 옛날에도 ‘로봇‘은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되는 기계적인 존재였다. - P503

당신은 매우 복잡한 존재지만, 만약 로봇이 아니라면 당신 자신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P503

예수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어야만 했던 것이 신학적으로 필요했던 것처럼, ‘유전자 결정론자‘는 누구나 유전자가 우리 행동의 여러 측면을 ‘조종‘한다고 믿어야만 하는 것이 악마학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 P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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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50만부 돌파 초판 무삭제 완역본) 데일 카네기 초판 완역본 시리즈
데일 카네기 지음, 임상훈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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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암묵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을 본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체계적인 정리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는 다양한 노하우들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특별히 ‘상대방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줘야 한다‘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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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낯선 사람이든 가까운 사람이든 관계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예의를 차리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낯선 사람들에게는 예의를 차리면서 오히려 가족같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들을 보게 된다. 오늘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무례함은 사랑을 먹어치우는 암세포이다. 이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까운 가족보다 낯선 사람들에게 더욱 예의를 차린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낯선 사람들이 말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의 말허리를 자르며, "맙소사, 그 지겨운 이야기 또 하려고 그래?" 라고 묻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허락도 받지 않고 친구의 편지를 열어 본다든지, 그 친구의 개인적인 비밀을 꼬치꼬치 파고드는 것도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가족들에 대해서는 사소한 실수에도 모욕을 퍼붓는다.

"놀라운 사실을 말하자면, 사실상 비열하고, 모욕적이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유일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가족들이다."

헨리 클레이 리스너Henry Clay Risner는 말했다. "예의란 망가진 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문 뒤 정원에 핀 꽃에 관심을 갖는 마음 자세이다."

기름이 없으면 차가 움직일 수 없듯이 예의야말로 결혼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지이다." 손님에게는 물론, 사업장 파트너에게도 감히 소리 높여 이야기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많은 남편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별일 아니라고 여긴다. 하지만 개인적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일보다는 결혼이 훨씬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행복한 결혼을 누리는 평범한 사람은 홀로 사는 천재보다 훨씬 더 행복한 법이다.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Turgenev는 세계적인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어딘가에 내가 저녁 먹으러 집에 들어올지를 걱정해주는 여성만 있다면 이 모든 천재성, 이 모든 책들은 다 버려도 좋겠소."

"결혼과 비교하면, 탄생은 우리 삶의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합니다. 죽음도 사소한 일에 불과하죠."

남자들이 자신의 일과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쏟는 만큼의 노력을 왜 가정생활에서 성공하는 데에는 기울이지 않는지 여성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만족한 아내와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이 백만 달러를 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지만, 자신의 결혼을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진지한 생각과 노력을 하는 사람은 백 명 중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그저 운에만 맡기고, 운에 따라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얻기도 하는 거죠.

왜 남자들은 고압적인 태도보다는 부드러운 태도를 취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도 상황을 능란하게 처리하지 못하는지 우리 여자들은 이해가 안 됩니다.

모든 남편들은 아내를 즐겁게 만들면 어떤 일도 아무런 대가 없이 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몇 마디 돈 들지 않는 칭찬만 던져 주어도, 예를 들어 아내가 얼마나 살림을 잘하며, 얼마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이야기만 해도 아내는 한 푼도 함부로 쓰고 다니지 않을 겁니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작년에 산 옷을 입으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는지 이야기하면 그녀가 올해 나온 신상품에 눈도 돌리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내의 눈에 키스를 하면 아내의 눈을 감게 만들 수 있고, 입술에 키스만 하면 아내의 말을 멈추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아내들도 남편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남편들에게 자신들에 대한 완벽한 사용설명서를 주었기 때문이죠. 남편이 아내의 기분을 맞춰 주거나 칭찬해 주지 않고, 아내와 싸우고 나서 그 대가로 맛없는 음식을 먹고, 그녀에게 새 옷과 차와 진주를 사 주느라 돈을 낭비하는 것을 보면 아내들은 남편에 대해 화를 내야 할지, 역겨워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고 싶다면, 여섯 번째 비결은 다음과 같다.

비결 6 : 예의를 차려라.

Be courteous.

해밀턴 박사는 말한다. "편견에 가득 차 있고 주의력이 모자란 정신분석학자들은 결혼 생활에서 대부분 마찰의 원인이 성적 부적응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관계가 만족스럽다면 다른 문제에서 비롯되는 마찰을 무시해도 좋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포페노 박사(가정생활 분야 권위자)에 따르면 결혼 생활이 실패하는 이유는 주로 네 가지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그 원인을 정리했다.
1. 성적 부적응
2. 여가를 보내는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3. 재정 문제
4.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 이상

섹스가 가장 먼저 오는 데 주목하라. 돈 문제는 겨우 세 번째로 중요한 문제일 뿐이다.

모든 이혼 전문가들은 성적 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신시내티 가정 법원의 호프만Hoffman 판사는 가정에서 일어난 수천 건의 비극을 보고 들어 왔던 사람이다. 호프만 판사는 몇 년 전 이렇게 말했다. "이혼 열 건 중 아홉 건의 원인은 성적 문제이다."

존 B.왓슨John B. Watson이라는 저명한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섹스는 틀림없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남성과 여성의 행복을 산산조각 내는 대부분의 원인은 섹스이다."

20세기에, 이렇게 책이 많은 시대에, 우리가 이렇게 많은 교육을 받고도 결혼과 우리의 삶이 이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본능에 대한 무지 때문에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 한심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좋은 의도를 가지고 결혼하러 오지만 사실은 결혼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

"결혼이라는 대단히 어려운 조정과 적응 과정을 그저 운에 맡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혼율이 16퍼센트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남편과 아내들이 사실상 결혼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이혼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들은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버터필드 박사는 말한다. "행복한 결혼이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지적으로, 의도적으로 설계된다는 의미에서 건축물과 같다."

버터 필드 박사는 말한다. "섹스는 결혼 생활이 주는 많은 즐거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관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참고 침묵하려 들지 말고, 객관적으로, 초연한 태도와 실천으로 결혼 생활의 문제들을 논의해야 한다. 건전한 내용과 훌륭한 취향을 담고 있는 책은 이러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신의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곱 번째 비결은 다음과 같다.

비결 7 : 결혼의 성적 측면에 관한 좋은 책을 읽어라.

Read a good book on the sexual side of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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