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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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문과 출신 사람들에게 과학이라는 분야는 뭔가 나와는 거리가 먼 분야 혹은 나랑은 관련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거라고 본다. 지금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나 또한 그랬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여타 다른 과목들과는 다르게 과학은 과목자체에 대한 어떤 호기심이나 탐구심보다는 그저 시험을 봐야하니까 그리고 전체 평균점수를 깎아 먹지 않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과학이라는 과목은 그저 시험 때만 바짝 외웠다가 시험 끝나면 머릿속에서 다 휘발되고 사라지는 그런 과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바보같고 어리석은 생각과 태도였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우주에 갈 일도 없는데 왜 우주에 대해 알아야 하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은 도대체 왜 외워야 하는지 그리고 각종 물리공식들은 실생활에서 과연 필요가 있긴 한건가 하는 회의감, 마지막으로 생물학 용어들은 왜 그리 난해하게만 느껴지는지 등등 진짜 과학의 세부분야들에 대해 필요성과 흥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게 과거의 나였다. 한마디로 그냥 바보 중의 바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지금도 중학교에서 과학고로 진학하는 과학에 재능이 있는 똑똑한 학생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 였는데,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가 우연히 지난 5월경에《최재천의 곤충사회》라는 책을 읽고 과학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샘솟아서 연관된 책을 찾다가 알게 되어 읽게 된 책이 바로《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다.


이 책이 다른 과학 책들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로 저자가 문과 출신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여타의 과학 교양서들은 과학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이과 출신의 과학 전공자들이 저자인 경우들이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문과 출신이다보니 일반적으로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문과 출신의 독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쓰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은 전혀 근거없는 느낌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과학 교양서들을 닥치는대로 읽고 공부하며 자신이 느끼거나 생각했던 것들을 서술하면서 문과 출신 사람들이 과학을 접하기 좋은 순서대로 책의 내용을 배치하였다고 말한다.

목차를 보면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뇌과학부터 시작하여 여기서 파생되는 생물학, 생물학을 이해하기 위한 화학, 화학을 이해하기 위한 물리학, 마지막에는 우주의 언어로 대변되는 수학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호기심을 심화시키는 형태로 목차를 구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 나왔던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저자는 이 책이 철저히 문과 출신 독자들을 주요 타겟으로 했음을 밝히는데, 자신이 본문에 썼던 내용들 중에 이과출신들이 보면 오류라고 생각할만한 것들이 있을까 두렵다는 고백도 한다. 솔직히 문과 사람인 나의 입장에서는 저자가 본문에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 각종 과학지식들만 소화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간혹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비교적 풍부하신 분들이 이 책을 리뷰한 글들을 보다보면 자신이 이미 거의 다 알고 있는 것들이 나와서 이 책 내용의 깊이가 얕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들을 보며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같은 사람과는 달리 과학에 관심있고 깊이가 어느정도 있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저자는 이 책을 문과 출신 사람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설정하고 썼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혹여나 저자는 딱히 원치는 않지만 만약 이과출신의 독자들 중에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과학 교양서를 쓰는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책을 쓸 때 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이 책을 활용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덧붙인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길었고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독자인 내가 느꼈던 내용들 중 핵심적인 것들 위주로 리뷰를 시작해보겠다.

가장 먼저 저자는 과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해왔던 인문학의 토대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자아를 두가지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물질로 존재하는 ‘나‘ , 다른 하나는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 이다. 전자의 ‘나‘는 과학의 영역이고, 후자의 ‘나‘는 인문학의 영역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물질로 존재하는 ‘나‘ 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했다. 독자인 나는 이것을 물질로 이루어진 외형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툭 튀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는데, 저자께서도 이러한 내 생각에 동의하실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러한 생각들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러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심오한 영역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읽으면서 때론 머리가 지끈지끈해지기도 했는데 여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보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예 이런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텐데, 생각의 폭을 조금이라도 확장시켜보는 시도를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저자는 ‘공부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다. 공부를 온전하게 하려면 당연히 과학을 알아야 한다‘(p.8) 라는 말을 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한 문과 출신들의 경우 앞에 나온 두 가지인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것에는 익숙할지 몰라도 뒤에 나온 두 가지인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우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을 공부한다면 뒤의 두 가지인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시각까지 갖추게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이 더 크게 확장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p.8) 는 문장도 나오는데, 지극히 문과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나를 이루는 것이 단지 어떤 생각이나 관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리적인 몸뚱아리(?)도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해준 문장이었다. 문과 출신이라면 상대적으로 어떤 물리적인 실체보다는 관념적인 철학 같은 것에 집중할 때가 많은데, 본문에 나온 이 문장을 곱씹어 읽으면서 인문학과 과학이 따로 별개의 것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이 ‘나‘라는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두 축 혹은 두 날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을 읽다보면 저자가 읽었던 과학 교양서 중 리처드 파인만이 쓴 책에 나왔던 용어가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거만한 바보‘(p.18) 라는 말이었다. 독자에 따라 이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말은 인문학과 과학 중에 어느 한 쪽은 정말 심도있게 알지만 다른 한 쪽 분야에는 무지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관계로 ‘야, 나 이정도 알아.‘ 같은 태도를 보이지만 자신이 아는 분야 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내가 공부 좀 했다고 혹은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거들먹거리는 모든 인간들을 지칭하는 말인 것이다. 뭐 딱히 내세울 것도 없긴하지만 독자인 나는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지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보고 만약 있었다면 반성하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인문학이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p.27)이라는 말과 함께 이것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가 인문학의 위기의 때라는 점을 지적하는데, 과학이 최신 지식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에 비해 인문학은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 갇힌채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사실을 지속적으로 찾아내려는 과학과 소통하고 교류하려는 노력만이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p.29).

이 부분을 보면서 어떤 학문이라도 화석처럼 굳어지기보다는 역동적으로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지속적으로 최신 지식들을 업데이트하면서 진화해나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모든 건 다 변한다.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그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을 저자가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느냐‘(p.30) 는 말을 하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p.8) 는 문장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고 느껴졌다. 저자는 인문학의 익숙한 질문 형식은 ‘나는 누구인가‘ 인 반면 과학의 질문 형식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말을 한다. p.30에 나온 문장을 좀 더 알기 쉽게 풀어보자면 ‘내가 물리적으로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를 알고난 뒤에 내가 누구인지, 즉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자아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문장 하나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p.32)

어쨌든 이 얘기를 통해 과학적인 시각과 인문학적인 시각 두 가지 모두가 있어야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는 과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로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나 자신‘에 대해 반쪽만 알고 나머지 반쪽은 전혀 모른채 살아왔다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괜시리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뒤이어 읽다가 문득 자존감이 높아지게 만드는 문장 하나가 나왔는데 간단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p.32)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문장처럼 느껴졌을수도 있지만 독자인 나는 이 문장을 통해 넓디넓은 우주에서 고유한 존재가 바로 ‘나‘ 라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며 ‘나‘ 라는 사람이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표현 방식이 문학적이기보다는 과학적이다보니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의미만 놓고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통일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문장들도 있는데 몇 가지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p.32)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있다.‘(p.32)

이 두 문장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어떤 하나의 물체에서 모든 것이 진화했다는 일원론의 생각에 기반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각기 다를 수 있어도 속에 내재된 근원의 물질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통해 우주를 뜻하는 단어 중 하나인 universe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universal이 ‘보편적인‘ , ‘일반적인‘ 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과학은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p.32) 는 말을 하는데, 이는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인문학의 성격이 다소 주관적인 반면 과학은 지극히 사실에 입각하여 말하는 객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떤 추론이나 추측보다는 명백하고 확실하게 드러난 증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설령 인문학자라 하더라도 과학이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인문학자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순순히 물러서지만은 않는 듯하다. 저자는 과학이 객관성이라는 측면에서 힘이 센 것은 맞지만, ‘원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자의 집합인 인간은 생각한다‘는 점을 근거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인문학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p.37). 이는 마치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말이 생각나게 한다. 어느 한 쪽이 힘이 쎄더라도 힘이 약한 쪽도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 관계의 모습과 과학과 인문학 간의 관계의 모습이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인간의 뇌를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p.38)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뇌는 단지 기계일뿐 이 기계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앞에서 언급했던 과학에서 말하는 물리적인 ‘나‘ 와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사고를 하는 ‘나‘ 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p.39)는 얘기로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뒤이어 저자는 앞서 언급했던 과학적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는 뇌다‘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대답을 사실을 기술한 문장이 아닌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p.47)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p.48) 였다고 말한다. 또한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독자인 나는 물질인 뇌와 물질이 아닌 철학적 자아가 서로 얽히고 설켜서 나온 대답인 ‘나는 뇌다‘ 라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 깊이 와닿게 느껴졌다. 얼핏 보면 단순한 대답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면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뇌와 관련된 다소 디테일한 내용들이 쭉 나오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들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저자가 본문에 정리해놓은 뇌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직접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시길 추천드린다.

추가로 저자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경제학에 나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든지 한계생산력분배이론 등과 같은 것들을 사용하여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들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뇌에 있는 신경세포의 성질이 경제학에 나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유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것은 문과출신(경제학과 출신)인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추가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 중에서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으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부분이 있었다. 먼저 과학자는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만 인문학자는 잘 몰라도 일단 아는 것처럼 둘러댄다는 것이었다(p.68).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저자는 이렇게 둘러대는 것도 인문학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독자인 나는 이러한 비교를 보면서 위에서 언급했던 과학과 인문학의 특성들이 문득 생각났다. 과학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기에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인 반면에, 인문학은 주관적인 생각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이기에 잘 몰라도 일단 그럴싸하게만 떠들어놓고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또한 그 주관적인 생각이 논리적으로만 들어맞는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더 이상 방해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이후에 칸트의 불가지론, 거울신경세포 등을 비롯한 각종 다양한 과학 지식들을 접하고 배울 수 있었는데, 낯설게만 느껴졌던 과학 개념이나 관련 지식들을 저자가 나같은 일반인들에게 잘 풀어서 설명해 주어서 해당 내용을 이해하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했다. 마치 저자가 공부했던 과학이라는 재료를 독자들이 먹기 좋게 제공한 ‘요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또한 저자가 인문학자이다보니 맹자, 묵가, 양주학파 등 다양한 철학 사상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되면서 과학의 내용과 비교분석해볼 수 있었는데, 이를 보면서 독자인 나는 문과 출신 독자들이 과학에 접근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수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자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그냥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맨 앞에서 저자가 문과인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겨냥하면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뇌과학 부터 접근했다는 얘기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딱히 근거없는 느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뒤이어 읽다가 ‘사람은 변한다‘ 라는 말과 함께 ‘전향‘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전향이라고 하면 ‘무슨 사상을 전향했다‘ 뭐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전향이라는 행동을 인문학과 과학 이렇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인문학에서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에서는 이러한 ‘자유의지‘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되는 것(p.94)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좀 더 설명하자면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로 생긴 현상(p.96)을 전향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인문학과 과학이 세상을 보는 관점 혹은 패러다임이 아예 뿌리부터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학이 참으로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한다면 인문학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것에 좀 더 가깝다고나 할까. 다만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과학과 인문학의 특성이 그렇다는 것일뿐 어느 것이 더 좋고 다른 것은 더 안 좋고 이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과학과 인문학의 성격은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들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선 내용들에선 이러한 것들을 그냥 머리로만 이해했다면 지금 이 ‘전향‘ 이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면서는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마음속 깊이,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추가로 위에서 언급했던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에 대한 내용들도 본문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도파민으로도 인간의 행동을 일정부분 설명할 수 있음을 보면서 과학의 힘이라는 게 과연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감탄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특별히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는 마약 같은 것도 결국에는 도파민 분비에 혼란을 일으켜 야기되는 문제이기에 과학이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상당부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마약이외에도 사람들의 소비행동패턴 등을 연구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 중에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패턴에 영향을 준다‘(p.99) 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어 쓰자면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p.99)는 말인데, 이 글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과학에서 말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우리의 자아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우리의 생각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왜 그토록 많은 자기계발서 같은 것들에서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야 신경전달물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자기계발서가 얼마나 있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독자인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의 과학적 근거를 알고나자 그동안 알고 있던 생각들에 대한 믿음이 좀 더 확고해졌다.

난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 이유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 책을 통해 과학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다보니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나 생각들에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재천 교수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지식의 영토‘ 가 확장됨에 따라 넓어지는 지식들과 파생되는 생각들이 내가하는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데이터도 자아에 영향을 준다(p.97) 는 말과 함께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p.100) 는 말도 덧붙인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자아에 데이터를 공급함으로써 자아가 어리석어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자 애쓰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저자가 과학 공부를 하면서 몸소 느꼈던 것들을 단지 깨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을 통해 실천하며 살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멋지게 느껴졌다.

저자는 뇌과학 파트를 마무리하면서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자신의 행동이 변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닌 단지 뇌라는 하드웨어가 퇴화된 것이라 여겨달라(p.100) 는 말과 함께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p.101) 는 말이었다. 독자인 나는 저자의 이 말을 보면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었다. 또한 뇌라는 하드웨어의 퇴화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일단은 악과 누추함을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자(p.101) 는 저자의 말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와 뇌과학 파트를 읽으며 느꼈던 생각들을 쭉 적어봤는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길어져서 이어지는 생물학 파트부터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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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에어비앤비 사례가 나왔었는데 오늘은 이에 관한 얘기가 좀 더 이어진다.

이후에 저자는 비즈니스의 본질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컨셉 만들기의 의미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사람은 어떤 시대든 여행을 하고 누군가와 만나고 연결되기를 바라지요. 전 세계적으로 인간관계가 약해지고 많은 선진국에서 1인 가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내가 속할 곳이 있다는 느낌은 앞으로도 점점 더 귀해질 겁니다.

에어비앤비는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새로운 기업이지만, 컨셉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에 뿌리를 두었습니다. 그렇기에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하는 브랜드가 된 것이 아닐까요?

현대의 비즈니스에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을 통해 그 비즈니스가 무엇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기의 시대에 왜 초가 존재하는가. 왜 우주로 향하려 하는가. 왜 커피를 마시는가. 왜 음악을 듣는가. 왜 그 옷을 입는가. 왜 그 책을 읽는가. 왜 타인의 집에 묵는가. 즉, 컨셉 만들기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뜻이지요.

누구나 각각의 범주 안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는 규칙 아래 경쟁한다면, 오직 차별화만이 쟁점이 됩니다.

겉모습을 꾸미거나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발상 자체를 거부하며 평범함을 사랑하는 ‘놈코어Normcore‘ 스타일

일부러 술을 멀리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는 라이프 스타일

사람들은 ‘무엇을 살 것인가‘에 앞서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비즈니스 또한 ‘그것은 무엇인가what‘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why‘ , 다시 말해 존재의 의미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컨셉은 비즈니스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명확한 판단 기준을 부여합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무수한 의사 결정의 연속이지요. 그럴 때 컨셉은 독자적인 판단 기준이 됩니다. 컨셉이 없다면 일반적인 합리성이나 비용같은 수치에만 기대어 결정을 내리게 되겠지요.

컨셉의 두 번째 역할은 만드는 대상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컨셉이 없으면 큰 방향성부터 세세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적합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컨셉은 고객이 지불하는 ‘대가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소비자는 4분의 1인치 드릴을 원하는 게 아니라, 4분의 1인치 구멍을 바라는 것이다." 라는 경영학자 시어도어 래빗Theodore Levitt의 말

사물 자체가 아닌 사물이 존재하는 의미를 포착한 컨셉은 고객이 돈을 지불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컨셉은 의사 결정의 판단 기준이 되고,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하며, 대가의 이유가 됩니다. 건물을 짓기 전에 그리는 도면처럼 근거가 되어주지요.

만드는 사람에게 컨셉이란 ‘가치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컨셉을 설명할 때 ‘의미‘와 ‘가치‘라는 단어는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의미는 가치에 앞선다‘

색을 겹쳐 윤곽을 부드럽게 흐리는 스푸마토 기법

<모나리자>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11년에 일어난 도난 사건이었습니다.

‘도둑맞은 명화‘라는 의미는 곧 가치로 되돌아왔습니다.

사람은 사물에서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가치를 느끼는 존재 - P41

컨셉 만들기란 의미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일 - P41

전체와 부분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컨셉과 구성요소가 ‘왜‘Why‘와 ‘무엇‘what‘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P44

초보자에게 컨셉을 써보라고 하면 대부분 ‘무엇을 what‘과 ‘어떻게how‘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스타벅스를 ‘여유로운 공간에서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장소‘라고 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부분적인 설명은 가능하더라도 고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음악을 틀어야 하는지 등 다른 요소를 판단하는 기준은 되어 주지 못합니다. 모든 요소를 결정하는 것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니까요. - P45

흔들림 없는 ‘왜‘ 컨셉으로서 경영의 중심에 자리해야만 ‘무엇을‘, ‘어떻게‘와 같은 구성 요소를 각기 다른 시대에 걸맞게 다시 해석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 P45

효과적인 컨셉의 4가지 조건

1. ‘고객의 눈높이‘에서 썼는가
2.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디어가 있는가
3. ‘규모‘를 예측할수 있는가
4. ‘심플한‘ 말로 썼는가 - P50

컨셉은 ‘누구‘를 ‘어떻게 행복하게 할 것인가‘가 명확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뻐하는 고객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는 말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기술을 먼저 말할 것인가, 고객의 입장에서 말할 것인가. 이 2개의 문구를 나누는 것은 관점입니다.

자기만족으로 끝나느냐, 고객의 말로 바꿀 수 있느냐. 바로 여기서 컨셉을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드러납니다.

나 또는 내가 속한 팀만의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디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에는 의미가 없다

브랜드의 고유한 의미를 파악했다

모든 면에 능한 사람은 컨셉을 쓰기 어렵다

상식이나 절대 선을 컨셉으로 삼고 싶어 하는 이유는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기 위해서는 때로는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에어비앤비의 ‘전 세계 어디든 내 집처럼‘도, 스타벅스의 ‘제3의 장소‘도,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결정하는 동시에 어떤 사람이 대상에서 제외되는지를 명확히 드러내지요.

"모두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면 결국 아무도 기쁘게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큰 사랑을 받으려면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컨셉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각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즈니스의 컨셉은 어느 정도 규모가 보여야 합니다.

해당 컨셉으로 비즈니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규모가 보장되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몰두해야 할 지점은 감동을 극대화하는 것

시장의 성장이 더딜 때는 더 많은 고객이 있는 시장으로 이동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됩니다.

타깃 고객이 바뀔 때, 바로 그때가 컨셉을 대대적으로 바꿀 타이밍입니다.

컨셉은 자기 혼자 읽고 만족하는 시詩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비즈니스의 목표와 대조하며 검증해야만 좋은 컨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객의 눈높이에서 쓰였고, 아무리 독자적이며, 아무리 규모를 예측할 수 있다 해도 말이 쉽고 간결하지 않으면 컨셉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컨셉은 쉽게 이해되고 기억할 수 있으며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짧고 쓰기 쉬운 문장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기호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면 당연히 조직 내에서도 원활하게 공유되지 않습니다. 말이 복잡하면 애써 만든 컨셉일지라도 제안한 사람을 넘어 널리 퍼져나가지 못하지요.

군더더기를 버리면 ..(중략)..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체온을 뜨겁게 만드는 말인가‘

제안자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잔뜩 들뜬 모습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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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천문학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이 나왔었는데 오늘은 이에 더해 점성술에 관한 내용들도 나온다.

해와 별은 계절, 식량, 기후를 다스리고 달은 바다의 조수간만과 여러 동물의 생활 주기 그리고 인간의 월경 주기를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자손의 번성에 목말라 하던 종種에게는 월경의 주기성이 아주 중요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 P112

월경의 영어 표현인 ‘menstruation‘의 어원은 달을 뜻하는 ‘moon‘ 에 닿아 있다. 순수 우리말 표현인 달거리 에서도 우리는 ‘달을 볼 수 있고, ‘월경月經의 ‘월月‘ 역시 달을 뜻한다. - P111

하늘에 해, 달, 별 말고 또 다른 종류의 천체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들을 ‘떠돌아다니는 별‘이라는 뜻에서 통틀어 행성行星, planet이라고 불렀다. - P112

행성들은 우리에게 멀리 있는 별들이 이루는 고정된 별자리를 배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달에 걸쳐 행성의 겉보기 운동을 관찰해 보면이 별자리에 들어 있던 행성이 저 별자리로 이동하고 가끔은 느릿느릿
‘공중제비‘를 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하늘의 여러 천체들이 모두 인간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여겼다. 해와 달은 물론 별 또한 계절의 오고 감을 알려주지 않는가? 그렇다면 행성들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점성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P112

점성술에 따르면 사람의 운명은 그가 태어날 때 어느 행성이 어느 별자리에 들어 있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수천 년 전부터 행성의 움직임이 국왕과 왕조와 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 P113

점성술사는 행성의 운동을 연구한다. 예를 들자면 지난번에 금성이 염소자리에 들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나 보고 기억해둔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도 그런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겠는가를 점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미묘한 일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신이 아주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 P113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성술사는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정식 점성술사가 아닌 사람이 함부로 하늘의 뜻을 읽는 일은 중죄로 다스리는 나라가 많아졌다. 왜냐하면 현 체제를 전복시키려면 국왕의 몰락을 예언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황실 점성술사가 틀린 예언을 한죄로 사형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실제 사건과 딱 맞아 떨어지도록 사건이 벌어진 뒤에 아예 기록을 뜯어 고친 경우도 있었다. 그리하여 점성술은 관찰과 수학, 철저한 기록과 엉성한 생각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이 묘하게 뒤섞이는 가운데 발달했다. - P113

점성술의 역사가 얼마나 긴지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여러 단어의 어원에서 알아볼 수 있다. 재해를 뜻하는 ‘disaster‘는 그리스어로 ‘나쁜 별‘이란 뜻이고, 유행성 감기를 뜻하는 ‘influenza‘는 이탈리아어로 별의 ‘영향‘을 뜻하는 ‘influence‘에서 온 말이고, 건배를 뜻하는 ‘mazeltov‘는 히브리어(본질적으로는 바빌로니아어)로 ‘좋은 별자리‘ 다. ‘shlamazel‘ 이라는 이디시 어는 악운이 끊이지 않고 겹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 역시 바빌론의 천문학 용어에서 나왔다. - P114

플리니우스Plinius의 주장에 따르면 로마에는 ‘sideratio‘ 라 하여 ‘행성에 얻어맞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 인들은 행성을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여겼던 것이다. 여기에서 ‘고려하다‘는 뜻의 ‘consider‘를 살펴보는 일도 유익할 것이다. 이 단어는 ‘행성과 함께‘라는 뜻인데, 진지하게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행성을 함께 고려했어야 했나 보다. - P115

국가 단위의 점성술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개인의 운수를 가늠하는 점성술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횡행한다. - P115

서양 점성술에서는 사람이 출생할 당시 각 별자리의 위치를 그 사람의 천궁도天宮圖, 즉 호로스코프horoscope라고 한다. - P115

이런 ‘예언‘은 예언이라기보다 충고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라."라는 식이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 것이다."는 아니다. 그리고 일부러 일반적이고 아주 모호한 표현을 써서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게 한다. - P115

점성술의 실효성 여부는 쌍둥이의 삶을 조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 P116

점성술사들이 내리는 예언을 잘 조사해 봤더니, 사람의 태어난 시간과 장소만 가지고는 그의 성격이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 P116

지구라는 행성 위에 있는 국가들의 국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 P116

모든 국기 중 거의 절반 정도에 천문학적 상징물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것은 문화권을 초월하고 사상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볼 수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 P117

저마다 하늘의 힘과 영원무변함을 현 국가 체제에 빗대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간은 코스모스에 연줄을 대고자 안달을 하며 산다. 우리도 그 큰 그림의 틀 속에 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말‘ 연줄이 닿아 있었다. 그 연줄은 점성술이 둘러대는 식의 개인적이고 자잘하며 상상력이 결여된 그런 수준의 관계가 아니었다. 인간과 코스모스의 관계는 물질의 기원을 통한 관계이다. 그것은 생명을잉태할 수 있는 지구, 인류의 진화 그리고 우리의 운명이 걸린 지극히 심오한 연줄인 것이다. 
- P117

현대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점성술도 따지고 보면 그 기원이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 Claudius Ptolemaeus에까지 올라간다. - P117

프톨레마이오스는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서 일하던 대학자였다. 이러저러한 행성이 여차저차한 해의, 또는 달의 "집"에 올라섰다는 둥, "물병자리의 시대"라는 둥의 난해한 점성술 풀이들이 다 프톨레마이오스로부터 나왔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내려온 점성술 전통을 체계화했다. - P118

프톨레마이오스는 사람의 언행이 행성과 별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키, 얼굴색, 성격, 게다가 선천적인 장애도 별의 다스림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 P118

천문학은 과학이고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는 학문이다. 점성술은 사이비 과학으로 확고한 근거 없이 여러 행성이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 P119

천문학자로서 프톨레마이오스가 이룩한 업적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별들에게 이름을 붙여 줬고 그들의 밝기를 기록하여 목록을 만들었고 지구가 왜 구형인지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했으며 일식이나 월식을 예측하는 공식을 확립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아마도 행성들의 이상한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우주의 모형을 제시한 것이리라. 그는 행성 운동의 모형을 개발하여 하늘의 신호를 해독하고자했다. - P119

프톨레마이오스는 하늘을 연구하면서 일종의 희열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는 그것을 "나는 한갓 인간으로서 하루 살고 곧 죽을 목숨임을 잘 안다. 그러나 빽빽이 들어찬 저 무수한 별들의 둥근 궤도를 즐겁게 따라 가노라면, 어느새 나의 두 발은 땅을 딛지 않게 된다."라는 기록으로 표현해 놓았다. - P119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과 달과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지구 중심의 우주관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땅은 안정되어 있고 단단하고 고정적인 데 반하여 그 외의 천체들은 매일같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지구 중심 우주관이 하나의 보편타당한 자연 진리로 서슴없이 받아들여졌다. - P119

이 시점에서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가 남겼다.는 기록을 다시 읽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따라서 달리 교육을 받지 않는 한 누구나 ‘지구는 커다란 집과 같다. 그 위를 덮고 있는 둥근 천장이 하늘이고 집과 천장은 고정되어 있다. 천장 안에서 매우 작은 태양이 새가 허공을 누비며 날아다니듯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지나가는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P120

고대 이집트인들이 화성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이름들 중에는 "세크데드 에프 엠 케트케트sekded-ef em khetkhet"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거꾸로 가는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거꾸로 가거나 공중제비를 넘는 듯한, 화성의 겉보기 운동이 갖는 특성을 의식해서 붙인 이름이 틀림없다. - P120

가뭄, 역병, 사상 간의 무서운 대립 속에서 허덕이던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만병통치약은 미신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오로지 변함없어 보이는 것은 별들뿐이었다. 그래서 공포에 질린 유럽 인들의 집 안뜰과 선술집에서는 고대의 점성술이 번성했다. - P126

정다면체는 다른 정다면체 안에 꼭 맞게 들어갈 수 있다. 정다면체들의 이러한 관계가 태양과 행성들 사이의 거리를 결정한다면 완전한 형상인 정다면체를 통해서 행성의 상대 배치에 숨겨진 근본 원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 P128

"이 지루한 과정에 진력이 나시거든, 이런 계산을 적어도 70번 해본 저를 생각하시고 참아 주십시오." - P137

기원전 6세기의 피타고라스로부터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 케플러 이전까지 살던 기독교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모두 원이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이므로, 행성들은 마땅히 원 궤도를 따라 돌아야 한다고 믿었다. 행성들은 하늘 높이 자리 잡고 있어, 이 땅의 ‘부패‘로부터 거리가 먼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신비와 ‘완벽‘을 겸비한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P137

갈릴레오, 튀코 브라헤, 코페르니쿠스도 행성이 운동하는 길은 원이라고 못박아 두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원형이 아닌 궤도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라고까지 단언했는데, 왜냐하면 "최상의 모습으로 창조된 신의 피조물을 감히 불완전하다고 여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 P137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케플러도 지구와 화성이 태양 주위를 원 궤도를 따라 돈다고 간주하고 튀코 브라헤의 관측 결과를 이해하고자 고심했던 것이다. - P137

거룩한 분의 섭리로 우리는 튀코 브라헤라는 성실한 관측자를 가질 수 있었다. 그의 관측 결과는 …………… 이 계산의 오차가 8분이라고 판단해 줬다. 하늘이 주시는 선물은 감사히 받아들여야 마땅하거늘. 내가 8분의 오차를 모른 체할 수 있었다면 나는 내 가설을 땜질하는 식으로 적당히 고쳤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시될 수 없는 성질의 오차였다. 바로 이 8분이 천문학의 완전 개혁으로 이르는 새로운 길을 내게 가르쳐줬던 것이다. - P138

원 궤도와 실제 궤도를 분간하는 일은 우선 측정값이 정확해야 가능했고 비록 자신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 측정값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 P138

원 궤도와 실제 궤도를 분간하는 일은 우선 측정값이 정확해야 가능했고 비록 자신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 측정값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 P138

"어디나 조화로운 비율이 장식처럼 박혀 빛나는 이 우주이지만, 그러한 조화의 비율도 경험적 사실에 반드시 부합해야 한다." 케플러는 여기서 원 궤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신성한 기하학에 대한 그의 신앙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영혼에 가해진 충격을 감수해야만 했다. - P138

케플러는, 천문학이라는 마구간에서 원형과 나선형을 쓸어 치우자, "손수레 한가득 말똥"만 남았다고 했다. 원을 길게 늘인 달걀의 모습(타원)을 그는 이렇게 말똥에 비유했던 것이다. - P138

결국 케플러는 원에 대한 동경이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구도 코페르니쿠스가 말한 대로 과연 하나의 행성이었다. 그리고 케플러가 보기에 지구는, 전쟁, 질병, 굶주림과 온갖 불행으로 망가진, 확실히 완벽과는 아주 먼 존재였다. 이런 지구를 완벽하다고 믿었다면 나머지 행성들도 완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행성들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케플러는 고대 이래 행성이 지구처럼 불완전한 것들로 구성된 물체라고 이야기한 몇 안 되는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만일 행성이 ‘불완전‘하다면, 그 궤도 역시 불완전하지 않겠는가? - P139

케플러는 달걀 모양 곡선을 여럿 시험해 보았다. 열심히 계산해 내려가다 산술적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옳은 답인데 틀린 것으로 여겨 버렸고) 몇 달 뒤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타원의 공식을 이용하여 분석을 다시 시도했다. 그 공식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페르가의 아폴로니우스가 처음 만들어 낸 식이었다. 결과는 튀코 브라헤의 관측값과 완전히 일치했다. - P139

"자연의 진리가, 나의 거부로 쫓겨났었지만, 인정을 받고자 겉모습을 바꾸고 슬그머니 뒷문으로 들어왔으니・・・・・・ 아, 나야말로 참으로 멍청이였구나!" - P139

케플러는 이렇게 해서 화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할 때 원 궤도가 아니라 타원 궤도를 따라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행성들의 궤도도 타원이기는 하지만 화성의 궤도보다 훨씬 더 원에 가깝다. 튀코 브라혜가 화성이 아니라, 예를 들어 금성의 움직임을 연구해 보라고 부추겼다면 케플러는 영영 행성의 진짜 궤도 모양을 발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 P139

태양은 타원 궤도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조금 비껴나간 초점에 자리한다.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행성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행성이 태양에서 가장 먼 곳에 이르렀을 때 궤도 속도가 가장 느려진다. 이러한 운동 때문에 행성이 태양을 향해 떨어지는 중이지만, 절대로 태양으로 곤두박질하지는 않는다. - P139

행성의 운동을 규정한 케플러의 첫 번째 법칙을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제1법칙, 행성은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태양은 그 타원의 초점에 있다. - P140

일정한 속도로 원 운동을 하는 행성이라면 중심각이 같은 부채꼴의 호로 또는 그 부분의 원둘레를 도는 데 같은 시간이 걸린다. - P140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행성과 태양을 이은 선은 타원 내부에서 부채꼴 형태의 영역을 쓸고 지나간다. - P141

행성이 태양 가까이 있을 때 주어진 시간 동안 행성과 태양을 이은 선은 호의 길이가 길어 넓적한 모양의 부채꼴을 그리며 간다. 그러나 부채꼴의 넓이는 호의 길이만큼 크지는 않은데 이것은 행성이 태양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행성이 태양과 멀리 떨어져 있을때에는 행성과 태양을 이은 선이 역시 같은 시간 동안에 훨씬 짧은 호와 뾰쪽한 모양의 부채꼴을 그리지만 부채꼴은 더 넓게 펴진다.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케플러는 궤도가 아무리 심하게 찌그러진 타원이라도 이 두 넓이가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P141

행성이 태양과 멀리 있을 때의 길고 뾰족한 부채꼴의 넓이는 행성이 태양과 가까이 있을 때의 짧고 넓적한 부채꼴의 넓이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것이 행성의 운동을 규정한 케플러의 두 번째 법칙이다.

제2법칙,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동경은 같은 시간 동안에 같은 넓이를 휩쓴다. - P141

우리는 중력이란 힘으로 지구 표면에 붙어서 우주 공간을 날아다닌다. - P141

행성 탐사를 목적으로 우주라는 이름의 바다에 진수시킨 인공위성들의 궤도 운동, 쌍성계를 이루는 두 별의 상호 궤도 운동 그리고 외부 은하들의 운동 등을 살펴보면 케플러의 법칙이 어디에서나 성립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온 우주 어디에서나 천체들은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 P142

케플러는 "조화 harmony" 라는 한마디 말로 그가 알고 있던 많은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행성 운동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기술할 수 있는 수학적 공식의 존재, 게다가 음악에서의 화성음 등을 "조화"라는 개념 속에 포함시켰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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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은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읽었던 저자의 전작인《최재천의 공부》에서 만나봤던 부분들이 나와서 내용을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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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계속 읽다보니 이전 저작에서 못봤던 내용들도 일정부분 수록되어 있어서 저자가 살아왔던 인생과 그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여기 별도로 자세하게 밑줄치진 않았지만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것 중 하나로 저자가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 라는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제돌이는 돌고래의 이름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 돌고래를 야생으로 방류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었는데 p.130에 밑줄 친 문장에서 단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를 선택하겠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가 자유라는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더 덧붙이자면,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목숨이 붙어있더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과 단지 생계만을 목적으로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사는 것은 그 삶의 만족도 같은 질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 혹은 꿈꾸던 일을 하지 못하고 생을 살아간다면 마음 한켠에 늘 아쉬움이 상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위에 나온 돌고래 사례에서도 결국 돌고래가 있어야 할 곳은 담장 안에 갖힌 동물원보다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야생 바다가 아닐까 싶다. 물론 돌고래의 머릿속에 들어가 본 게 아니라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돌고래든 사람이든 관계없이 타자에게 속박되어 있기보다는 자기자신에게 선택권이 있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좀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임과 동시에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도 그저 저자나 나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나처럼 생각할 줄 알았다‘(p.129)고. 어떤 이들은 자유보다는 그냥 누군가에게 소속되어서 그들의 지시에 따라 시키는대로 일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에 가치를 얼마나 두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향이나 취향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에 각자 자기의 성향에 맞게 스스로의 포지션을 잘 선택하면 될 듯하다. 단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기가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만일 뿐 타인이 왈가왈부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게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또한 이 돌고래 방류 사례의 뒷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숙론‘ 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p.137에서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은 대책을 만든다.˝ 는 말을 하는데, 애초에 정책 따로 대책 따로 만들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시민과 단체의 대표들이 마주 앉아 격렬한 숙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덜하다(p.137)고 저자는 말한다. 독자인 나는 이런 생각을 미처 해보지 못했었는데, 저자의 얘기를 듣고나니 그 의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개인적인 창의성은 주로 홀로 있으며 몰입할 때 나타난다. - P75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과 ‘홀로움‘을 구별한다. 그는 ‘홀로움‘ 을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은 사무치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만한 ‘홀로움‘이다. ‘홀로움‘은 말하자면 ‘자발적 외로움‘이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자기 시간 확보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한다. - P75

매사를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나의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이 정해준 일정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끌고 갈 수 있어 나는 늘 여유롭다. - P76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자는 우선 말을 잘해야 한다. - P77

자연계에서 가장 탁월한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인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서 리더는 무엇보다 먼저 말을 조리 있게 할 줄 알아야 한다. - P77

우리는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문자를 개발해 사용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서는 말하기 못지않게 글쓰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나는 침팬지와 달리 우리 삶에는 모든 갈래마다 그 끝에 결국 글쓰기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글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면면에 어김없이 중요하다. - P78

말하기와 글쓰기는 성공적인 삶의 조건이다. - P79

말과 글의 재료는 어디에서 오나? 살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게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말하기와 글쓰기에 가장 훌륭한 자료는 읽기가 제공한다. - P79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기 마련이다. 많이 읽는 사람의 말과 글이 훨씬 풍성하고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 P79

‘배운지 모르게 배운다‘를 뒤집으면 ‘왜 배우는지 알면 스스로 익힌다‘가 된다. - P82

다윈 이래 가장 탁월한 생물학자로 칭송받던 윌리엄 해밀턴 William Donald Hamilton은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Nature abhors pure stands." 순수하다고 배웠는데 순수를 혐오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말인가? 자연은 결코 순수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은 끊임없이 다양화한다. - P83

하버드대에서 고생물학을 연구했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진화를 다른 말로 ‘다양화‘라고 불렀다. 이처럼 자연은 끊임없이 다양화하는데, 그 속에서 그 일부로 살아 마땅한 호모 사피엔스는 악착같이 다양성을 파괴하며 산다. 나는 인간 불행의 근원이 어쩌면 거대한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려는 무모함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P83

섞여야 새롭고 아름다워진다. - P85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의 시 <결혼에 대하여>는 자연과 우리의 삶을 적절하게 묘사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P87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뭔가 중요한 질문을 할때 바로 들이대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고 알려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지극히 단순한, 그래서 별 준비 없이 편안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먼저 던져준다. 그 사람이 답변하는 동안 할 얘기를 충분히 준비할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매우 현명한 기법이다. - P99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대담을 담당하는 우리나라 진행자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해서 후보자를 궁지에 빠뜨려야 훌륭한 진행자로 평가받는다. 이럴 때마다 나는 도대체 우리가 뽑으려는 대통령이 과연 어떤 대통령인지 묻고 싶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 얼마나 잘 대처하는가를 평가하는 게 목적인 듯 보이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얼마나 공정하게 국정을 운영할지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임기응변에 능한 미꾸라지 혹은 기름장어를 뽑으려는 것인가? - P100

대담이나 인터뷰가 너무나 긴장감 없이 흘러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이나 보는 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건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하는 짓이다. - P100

브라운 백 런치 미팅Brown bag lunch meeting은 누런 종이봉투에 샌드위치 같은 점심을 싸 와 누군가의 발제를 듣고 숙론을 이어가는 편안한 공부 모임을 일컫는다. - P102

또래들 앞에서 면박당하거나 흠을 잡히고 싶지 않단다. - P103

때로 스스로 정상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남의 눈을 더 심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음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 P103

자존심 pride과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은 동전의 앞뒤이거나 기껏해야 종이 한 장 차이다. - P103

하버드대 경영대에는 사례연구법 case method이라는 학습법을 개발해 유명해진 롤런드 크리스튼슨C. Roland Christensen 교수가 있었다. 사례연구법은 제한된 정보와 제약 조건을 안고 있는 실제 비즈니스 케이스를 두고 학생들 스스로 숙론을 통해 사업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연습하는 학습법인데, 지금까지도 세계 많은 경영대에서 수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 P104

학자에게 자유를 허하면 어떤 위대한 선물이 되돌아오는지 - P106

"이번 학기에 나는 여러분을 모두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선출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지요. 그런데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줄 수는 있는데 보좌관을 붙여줄 여력은 없습니다. 국회의원도 하고 보좌관도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덴마크의 국회의원들은 대충 그렇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회적 이슈도 스스로 발굴하고 조사도 직접 해야 합니다." - P113

국회의원이 되면 각종 위원회에 소속되어 일한다. 나는 학생들 스스로 위원회를 구성하게 한다. 누군가가 특정 주제의 위원회를 제안하고 동조하는 학생이 많으면 위원회로 채택된다. - P113

일단 위원회가 구성되면 자체적으로 위원장과 사관史官을 선출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조선시대처럼 사관을 정해 활동 기록을 꼼꼼히 남기도록 권고한다. 각 위원회는 위원장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끊임없는 숙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 - P114

자신들이 해온 일을 보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경험을 하는 것 - P114

나는 오래전부터 경협競協, coopetition 개념을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경협은 보다시피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다. - P114

자연계에서 종 간에 벌어지는 관계로 경쟁 competition, 포식 predation, 기생parasitism, 공생 mutualism, 네 가지가 있다.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해가 되는 관계가 경쟁이고 서로에게 득이 되는 관계는 공생이다. 한편 한 종은 이득을 보고 다른 종은 손해를 보는 관계로 포식 또는 기생이 있다. - P115

나는 경쟁을 다른 관계들과 동일한 차원에서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게 평면적인 분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걸 원하는 존재들은 늘 넘쳐나는 상황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이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은 맞붙어 상대를 제압하는 것 외에도 포식, 기생, 공생 등을 고안해냈다. - P115

자연계에서 가장 무거운 생물 집단이 무엇일까? 그건 고래나 코끼리가 아니라 꽃을 피우는 식물, 즉 현화식물 flowering plants이다. 이 세상 모든 동물을 다 합쳐도 식물 전체의 무게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지구는 누가 뭐라 해도 식물의 행성이다. - P115

자연계에서 수적으로 가장 성공한 집단은 누구일까? 단연 곤충이다. - P115

한곳에 뿌리를 내리는 바람에 움직여 다닐 수 없는 식물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애써 꿀까지 제공하며 ‘날아다니는 음경‘을 고용하여 공생 사업을 벌였다. - P116

곤충과 식물은 결코 호시탐탐 서로를 제거하려는 무차별적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게 아니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살아남았다. 평생 생물학자로 살며 깨달은 결론은 자연이란 손잡은 생물이 미처 손잡지 못한 것들을 물리치고 사는 곳이라는 점이다. - P116

원고지 10매는 얼추 일간신문 시론의 길이로서 대중을 설득하는 데 가장 적절한 분량이다. - P117

"살아보니 이 세상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짓밟고 제거하며 올라서는 게 아니라 그들과 돕고 사는 가운데 내가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려면 그들이 잠잘 때 나는 일어나 조금 더 일하고, 그들이 휴식을 취할 때 나는 조금 더 노력해서 한 발짝이라도 앞서 나가는 것임을 터득했습니다." - P119

소통이 당연히 잘되리라 착각하기 때문에 불통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 해도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우리를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했다. 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 P122

돌고래 야생 방류의 찬반을 묻는 설문이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나처럼 생각할 줄 알았다. 불법으로 붙들려 와 쇼에 동원됐던 돌고래를 고향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었는데 결과는 놀랍게도 반대가 찬성보다 많았다. - P129

단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를 선택할 겁니다. 이 세상에 대가 없이 얻어지는 자유는 없습니다. - P130

석사 박사 학위는 그 분야에서 대가가 되었다고 수여하는 훈장이 아니다. 이제 홀로 설 수 있는 학자가 되었다는 뜻으로 주는 일종의 자격증일 뿐이다. - P131

우리에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음을 곧바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일 야생 방류 과정에서 어떤 작은 실수라도 일어나면 앞으로 이 땅에서 동물생태 복원 사업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는 엄중한 현실을 직감했다. 그래서 나는 오롯이 과학을 강조하기로 했다. - P131

‘배냇주름 fetal folds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몸통의 줄무늬 자국)‘ - P132

우리 사회에 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중에서 내가 가장 절묘하다고 생각하는 말이 있다.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은 대책을 만든다." - P137

정부가 무슨 정책을 내놓든 그저 30분이면 초토화된다. 인터넷에는 비판이 넘쳐나고 정책의 영향을 입을 당사자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처음부터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시민과 단체의 대표들이 마주 앉아야 한다. 비록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덜하다. - P137

우리 사회의 모든 일이 전부 다 대의민주제 방식을 따를 필요도 없고 그게제나 효율적이지도 않다. 큰 틀에서는 대의민주제를 행하지만 그때그때 적절하게 직접민주제를 가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P137

4차산업혁명이 몰고 올격변이 두려운 이유는 바로 연결성 connectivity에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개발해온 거의 모든 기술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떤 변화가 어떤 분야로부터 촉발될지, 그리고 그 영향이 어디로 번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통섭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 P139

그동안 우리 정부가 늘 추구해온 지나친 ‘선택과 집중‘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균형 잡힌 평가가 절실합니다. - P139

바하마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하다 2014년에 돌아가신 마일스 먼로 Myles Munroe 목사님은 비전vision을 "Foresight with Insight based on Hindsight"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분석한 다음 거기에 통찰력을 발휘하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겁니다. - P140

예전의 ‘hindsight(사후 자각, 사후 진단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기르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대개 어느 현자의 주관적 관찰이었겠지만 지금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분석 위에 놓입니다. 정확한 상황 파악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의 명석한 두뇌와 열정을 모으면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집단 지능 collective intelligence을 믿습니다. - P140

이미 짜여 있는 판에서 전술을 세우고 열심히 일하는 ‘전술국가가 있는가 하면 새로 판을 짜는 ‘전략국가‘가 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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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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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들에서 접했던 내용들이 일부 겹친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 제목에 나온 단어인 ‘미래‘ 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저자가 생각하는 미래의 공간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변화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새로운 뼈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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