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기독교의 유신론은 지식의 두 원천이 될 수 있는 이성과 계시 모두에 뿌리를 둔다. - P79
이와는 반대로 이신론은 이성을 맨 끝에 놓고 유신론자들에게 그것을 사용해 계시를 정당화해 보라고 요구한다. - P79
계몽사상의 도전에 직면한 18세기의 전통적인 신학자들은 한치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합리성의 시험대 위에 올려 놓을 수 없다고 되받아쳤다.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심오한 진리가 존재하며 신은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자신이 택한 수단을 통해 그 진리를 계시할 것이다. - P79
이신론의 결정적 단점은 이성적인 측면이 아니라 감성적인 측면에 있었다. 순수 이성은 냉혹하기 때문에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신성한 비밀을 벗어 버린 의례에는 아무런 감성적인 힘이 없다. 왜냐하면 의례 참석자들이 자신의 충성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높은 힘에 복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험과 비극의 시기에는 비이성적인 의례가 더욱 강한 힘을 가지기 마련이다. 자비롭고 무오류적인 존재에 대한 복종, 즉 구원을 위한 봉헌을 대신할 것은 없다. - P80
내세에 대한 공식적 인정, 즉 초월을 향한 믿음의 도약을 대신할 것은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과학은 매우 좋아하지만 과학으로 신의 능력을 재려 하지는 않는다. - P80
일찍이 그리스 인문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계몽사상의 취지는 프로메테우스적인 것이었다. 계몽사상이 만들어 낸 지식은 인류를 미개한 세계에서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려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 P81
하드리아누스 방벽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년)가 픽트 족을 몰아내고 국경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쌓은 고대의 방벽, 영국 잉글랜드 북부의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걸쳐 있으며, 약 120킬로미터에 달한다.) - P81
너무 많은 권위가 주어진 과학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불경스러운 힘으로 돌변할 우려가 있다. - P81
신의 개입이 없는 과학과 기술의 창조는 사실 엄청나게 강력하며 근대 문명의 이미지를 지배하고 있다. - P81
국가들은 세계를 파괴할 기술로 서로를 협박한다. - P82
오래전부터 과학을 프로메테우스적인 것이 아니라 파우스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두려워한 사람들은 계몽사상의 프로그램을 정신의 자유와 생명 자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보았다. - P82
위협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가? 경멸하는 것이다!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개인적 상상력의 탁월함과 불멸에 대한 자신감을 다시 주장하는 것이다. 예술을 통하여 더욱 고차원적인 영역으로 탈출하여 낭만주의 혁명을 진행시키는 것이다. - P82
워즈워스의 "말로 할 수 없는 힘의 호흡"을 통해서 눈은 감기고 마음은 높이 치솟으며 중력에 대한 거리의 역제곱 법칙은 날아가 버린다. 정신은 무게와 측정 단위가 미치지 않는 또 다른 실재로 들어가 버린다. 물질과 에너지에 속박된 우주를 부정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당당히 경멸하며 무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 P83
철학에 꽃핀 낭만주의는 반란, 자발성, 열정, 영웅적 비전 등을 높이 평가했다. 낭만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가슴으로만 느끼는 열망을 추구하며 인간이 무한한 자연의 일부이기를 꿈꾸었다. - P83
계몽사상가 목록에 종종 등장하는 장자크 루소는 실제로는 낭만주의 철학사조의 창시자이자 극단적인 공상가였다. 그에게 있어서 학습과 사회 질서는 인류의 적이었다. - P83
1749년(『과학과 예술에 대한 논의 (Discourseon the Sciences and the Arts)』)에서 1762년(「에밀 (Émile)』)까지의 작품에서 그(루소)는 "잠자는 이성"을 크게 칭찬했다. - P83
그(루소)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사람들이 책을 포함한 지적 도구를 버리고 감각과 건강을 즐기는 최소주의적 세계였다. - P83
루소는 인류가 본래 평화로운 자연 상태의 고귀한 야성을 지녔는데 문명과 학문이 이들을 타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종교, 결혼, 법률, 정부는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권력자들의 속임수이다. 이러한 상류 계급의 속임수를 위해 일반인이 지급하는 대가는 해악과 불행일 뿐이다. - P83
루소가 매우 부정확한 인류학을 고안한 반면, 괴테, 게오르크 헤겔(Georg Hegel), 요한 헤르더 (Johan Herder),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Schelling)이 이끄는 독일 낭만주의는 과학과 철학에 형이상학을 재도입했다. 그 성과물인 ‘자연철학(Naturphilosophie)‘은 감성과 신비주의 그리고 과학적 가설의 혼합물이었다. - P83
그들 가운데 가장 걸출했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무엇보다도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는 문학에서 불멸의 공헌을 세웠지만, 본인은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야망을 문학가의 그것보다 위에 두었다. - P84
그(괴테)는 과학을 아이디어와 구체적 실재에 대한 접근으로 보았고 그것을 진정으로 존중했다. 그는 과학의 기본 교의를 이해하고 있었다. 예컨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분석과 종합이 자연스럽게 번갈아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P84
한편 그(괴테)는 뉴턴 과학의 수학적 추상화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물리학이 우주를 설명한다면서 너무 멀리 나아가 버렸다고 불평했으며 실험 과학이 채용하는 "기술적 조작"을 경멸했다. 사실 그는 뉴턴의 광학 실험을 반복하려 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 P84
인류의 영혼과 과학의 엔진을 결합하려는 숭고한 목적 - P84
그(괴테)는 심원한 정신적 감각으로 자연을 사랑했으며 누구나 자연에 대한 친근감과 심오한 감정을 양성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 P84
"자연은 환상(illusion)을 사랑한다. 자연은 사람들을 안개로 감싸고 빛을 향해 밀고 간다. 자연의 환상과 함께하지 않는 자에게 자연은 폭군과 같은 엄벌을 내린다. 그 환상을 받아들이는 자를 마음으로 감싼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만이 자연에게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 P84
사실들 자체는 부분적인 진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우주적 흐름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P85
독일 낭만주의의 선도적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셸링은 과학적 프로메테우스의 무력함을 시가 아닌 추론으로 보여 주려 했다. 그는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모든 것의 우주적 통일성을 제안했다. - P85
셸링은 자연이 살아있다고 결론지었다. 그에 따르면 자연은 완벽한 자기실현의 궁극적 상태를 향한 느낌과 더 큰 이해를 통해 진보하며 탐구자와 알려진 것을 통합하는 창조 정신이다. - P85
독일의 철학적 낭만주의는 미국의 뉴잉글랜드 초월주의(New England transcendentalism)에 반영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뉴잉글랜드 초월주의의 제안자는 랠프 월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이다. - P85
초월주의자들은 급진적인 개인주의자들로서 잭슨 시대에 미국 사회를 압도했던 과도한 상업주의를 거부했다. 그들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풍 속에 만들어지는 정신적 우주를 상상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유럽 낭만주의보다는 과학을 잘 받아들였다. 이것은 『씨앗 속의 신념(Faith in a Seed)』을 필두로 한 소로의 작품들에 나타난 정확한 자연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다. - P85
(미국의 제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은 서민과 서부인들을 위한 강력한 정책을 폈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잭슨 시대‘라고 불렀으며, 그가 정치적으로 확립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개념은 ‘잭슨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지배적인 이념이 되어 훗날까지 영향을 미쳤다.) - P85
그들(초월주의자들) 가운데에는 완전히 과학자라 할 수 있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컨대 하버드 대학교 비교동물학 박물관 관장이자 미국 과학 아카데미의 창립 위원이었던 루이스 애거시즈(Louis Agassiz)는 지질학자이자 동물학자였으며 최고의 재능을 지닌 강사였다. 이 위대한 사람은 우주가 신의 마음속에 있는 비전이라고 생각했다. 셸링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 탈선을 한 것이다. 루이스 애거시즈의 우주에서 과학의 신성은 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필수적이었다. - P86
계몽사상에 대한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대부분의 자연과학자들은 인간 정신세계에 관한 탐구를 포기했고 철학자와 시인은 한 세기 동안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양보는 뜻하지 않게 과학 전문가들을 이롭게 만들었다. 이로써 연구자들이 형이상학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86
19세기를 거치면서 물리학과 생물학 지식은 급격히 성장했다. 동시에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 이론 등의 사회과학은 기초 과학과 인문학 사이에서 만들어진 영지를 장악하며 새로 등장한 고위 귀족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지식의 거대한 가지들은 17세기와 18세기에 생성된 통일된 계몽사상의 비전에서부터 나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으로 갈라져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 P86
신학의 빚을 지기는 했지만 거만하게도 비종교적인 방향으로 흘렀던 계몽사상은 서양 정신에 새로운 자유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모든 형태의 종교적 권력이나 세속 권력을 포함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두려움을 뿌리쳤고 자유로운 연구 윤리를 도입했다. 또한 인간을 우주 속에서 끊임없이 모험하는 존재로 그렸다. - P87
두 세기 동안 신이 인간에게 새로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목소리는 일찍이 르네상스 시대에 계몽사상의 선각자로 활동했던 조반니 피코델라 미란돌라 (Giovanni Pico della Mirandola)가 1486 년에 썼던 다음 축도문에 잘 드러나 있다. - P87
우리는 천상의 것도 지상의 것도 아니며, 멸하지도 불멸하지도 않도록 창조되었다. 그리하여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훌륭히, 마치 그대 자신의 창조자가 된 것처럼 그대가 원하는 형태로 그대 자신을 만들 수 있으리라. - P87
그러나 1800년대 초반 이러한 멋진 이미지는 퇴색되고 있었다. 이성은 무시되고 지식인들은 과학의 지도력에 대한 신념을 잃었으며 지식의 통합에 대한 전망은 급속히 가라앉았다. - P87
계몽사상의 정신이 정치적 이상주의와 개별 사상가의 희망을 바탕으로 존속된 것은 사실이다. 이어지는 수십 년 동안 손상된 나무 밑동에서 솟아나오는 식물줄기처럼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과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의 공리주의,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역사적 유물론, 찰스 퍼스(Charles Peirce),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존 듀이(John Dewey)의 실용주의 같은 새로운 학파들이 등장했다. 그렇지만 핵심 의제는 만회될 가망 없이 포기된 것으로 보였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사상가들을 몰두하게 만들었던 거대 담론은 이제 거의 신빙성을 잃었다. - P88
과학은 제 갈 길로 갔다. 과학자, 과학적 발견 그리고 전문 학술지는 15년마다 두 배로 늘었다. 이것은 1700년대 초반부터 계속된 현상으로 1970년 무렵에야 주춤하기 시작했다. - P88
끊임없이 확대되는 과학의 성공은 우주가 질서 정연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견해에 다시 믿음을 실어 주기 시작했다. 계몽사상의 이러한 필수 전제는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최초로 생각해 낸 수학, 물리학, 생물학 분야 안에서 더 굳건히 자라났다. - P88
그렇지만 그 중심 방법인 환원주의의 화려한 성공은 계몽사상 프로그램 전체의 복구와는 정반대로 작용했다. 과학적 정보가 기하학적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개별연구자들은 지식의 통일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철학에 관심이 없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들은 그런 문제들에 대해 더욱 깊이 밝힐 것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들은 1700년대 후반 생물학에서 사회과학으로 가는 길목으로 여겨진 개념이자 금단의 영역인 마음의 물리적 토대를 밝히는 일에는 더욱 주저했다. - P88
큰 그림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데에는 더 소박한 이유가 있었다. 과학자들이 그 일을 할 만한 지적 에너지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대다수의 과학자는 장인(匠人)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전문 분야에만 집중한다. 그들의 교육 과정은 세계의 드넓은 윤곽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최첨단 분야에서 가능한 한 빨리 자신만의 발견을 하기에 필요한 훈련을 받는다. 왜냐하면 경계 부분의 연구는 비용도 많이 들고 위태롭기 때문이다. - P88
수백만 달러짜리 실험실에 소속된 생산성 있는 과학자들은큰 그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으며 그것에 이득이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 P88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에 선발된 2,000명의 과학자들이 자신의 업적에 대한 상징으로 옷깃에 달고 있는 장미 장식에는 과학을 뜻하는 금이 중앙에 있고 그 주위를 자연 철학을 뜻하는 보라색이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어쩌겠나! 대부분의 선도적 과학자들의 시선이 그 금에만 고정되어 있으니. - P89
유전자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물리학자나 ‘끈 이론(string theory)‘이 바이올린과 연관돼 있다고 추측하는 생물학자가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과학에서 연구비와 영예는 발견에 주어지는 것이지 학식이나 지혜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그래 왔다. - P89
정치적 노련함을 이용하여 대법관까지 올랐던 프랜시스 베이컨이 영국 국왕에게 지식을 통합하는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자금을 개인적으로 간청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 P89
인생의 절정기에 있었던 데카르트도 형식적으로 프랑스 궁정에서 생활비를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연구비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위와 얼음 틈의 곰들의 땅"인 더 관대한 스웨덴 궁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는 그곳에서 폐렴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 P89
이와 동일한 극단적 전문화는 사회과학과 인문학도 괴롭혔다. 전세계의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은 전문가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 속에서 독창적인 학자로 남는다는 것은 마치 다국어를 사용하는 다문화권 도시 캘커타에서 특정한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과 같다. - P89
(오늘날의)직업 학자들은 대개 그 집단 안에서 전문 지식과 연구주제를 가지고 경쟁하는 일 외에는 달리 무언가를 할 수조차 없다. 성공적인 학자가 된다는 것은 세포막의 생물물리학, 낭만주의 시대의 시, 초기 미국사 같은 다른 제한된 공식 연구 영역에 종사하며 일생을 보낸다는 것을 뜻한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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