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과학의 한계 중 하나로, 물질적 기술이 주관적 경험을 설명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과학과 예술의 역할 차이가 있음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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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에서는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AI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본문에 따르면 AI가 처음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대략 반세기 전부터 라고 한다. 이것을 알고 난 뒤 독자인 나는 최근에 들어 이 연구들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은 이《통섭》이 처음 한국어 판으로 번역되어 쓰인지도 어느덧 햇수로 20년이 되었으니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사람들에게는 최근의 현상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읽은 챕터는 6장 ‘마음‘ 이라는 것인데, 우리의 뇌에서부터 시작해 의식이 형성되는 과정, 그러한 의식들이 모여 마음이 되는 과정을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알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과학자들의 사고방식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면서 조금씩 진화해나가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게 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과인과 이과인이 어떤 문제를 대하는 접근 방법 또는 사고방식이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작년에 개인적으로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라는 책에서도 한 번 접해서 머릿속으로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 《통섭》을 읽으면서 그 사실을 좀 더 깊이있게 느낄 수 있었다. 좋게 생각해보자면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을 갖게 되어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너무 많은 걸 알게 되다보면 머릿속이 뒤죽박죽될 수도 있기에 약간은 조심스럽기도 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어느정도 선을 넘지는 않는 게 내 신상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드는데는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잠시 얘기가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흐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흐름에 반드시 올라타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냥 휩쓸려 사라지고 말 것이다. 파도의 흐름을 잘 타면서 즐기는 바다의 서퍼들처럼, AI라는 바다에서 다가오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나 또한 능수능란한 서퍼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책에서는 과학 기술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조금이라도 얻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듯 싶다. 솔직히 본문 내용이 무슨 소설책처럼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한문장 한문장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나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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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힘겨웠지만 6장을 다 읽고 다음에 나오는 7장에서는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 챕터의 초반부에서 저자는 문화라는 것이 크게 과학적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 이렇게 2가지로 쪼개져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독자인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짓는 행태가 불현듯 떠올랐다. 본문의 내용을 읽다보면 이렇게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나누는 행태는 비단 대한민국의 교실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근데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 이렇게 나뉘어지고 나서 자기가 속해있는 분야에만 집중하다보니 상대방이 속한 분야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도 모른다는데 있다. 애초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알고 싶지만 알기 힘든 여건들로 인해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쭉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굉장히 안타까워 하는 듯 보인다.

내용이 좀 길어지는 관계로 이와 관련된 추가적인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좀 더 다뤄보겠다.

주관적 경험을 명백히 해 주는 구분은 사실 다른 곳, 즉 과학과 예술의 역할 차이에 있다. 과학은 누가 파란색 같은 감각들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누가 느낄 수 없는지를 가려내고 왜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설명한다. 반면 예술은 동일한 능력을 가진 개인들 사이에서 느낌을 전달한다. 다른 말로 하면 과학은 느낌을 설명하는 반면 예술은 그것을 전달한다. - P216

대부분의 인간은 색의 전체 스펙트럼을 보고 전뇌를 통해 반사적으로 그 산물을 느낀다. 정상적인 색지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본 패턴들은 명백히 유사하다. 물론 개인적 기억과 문화적 편향에서 비롯된 추억들 때문에 변이들이 존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이런 변이들도 그들의 뇌 활동 패턴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 P216

예술은 비슷하게 인지한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의존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예술이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의사소통되고 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예술 앞에서 정말로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많은 예술 매체들에서 우리가 드러낸 반응들의 축적을 통해 그사실을 직관적으로 안다. 또한 비판적 분석에 의한 감정의 언어적 기술을 통해서, 그리고 방대하지만 미묘한 차이를 갖고 있는 인류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통해 그 사실을 안다. - P217

느낌의 전달을 통해 문화가 공유된다는 사실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보는 공통적으로 공유된 느낌이 예술을 통해 환기되고 경험될 때 발생하는 감각과 뇌 체계의 역동적 패턴들을 연구하는 과학으로부터 올 것이다. - P217

어떤 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과학적 사실과 예술은 결코 서로 번역될 수 없다고 말이다. 사실 이러한 반응은 전통적인 지혜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믿는다. 결정적인 연결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과학과 예술의 공통 속성은 정보의 전달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과 예술의 전달 양식이 논리적으로는 동등할 수 있다. - P217

뇌 활동의 시각 패턴으로부터 그림 모양의 언어를 만든다. 그 결과는 한자(漢字) 같은 기호가 늘어서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각각의 기호는 존재자, 과정, 혹은 개념을 표상한다. 그리고 "마음 대본"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새로운 기록이 다른 언어들로 번역된다. 이것을 유창하게 읽어 낼수록 마음 대본은 뇌 영상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읽혀질 수 있다. - P217

청정한 마음 상태에서 자발적인 피험자들이 일화를 이야기하고 꿈속의 모험을 회상하고 시를 암송하고 방정식을 풀며 멜로디를 떠올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 그들의 신경 회로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신경과학 기술에 의해서 시각화된다. 관찰자는 종이 위에 잉크로 씌어진 대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조직의 전기 패턴으로 기록된 대본을 읽고 있다. 적어도 피험자의 주관적 경험(느낌)들 중 일부는 틀림없이 전달된다. 관찰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 웃거나 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마음 패턴으로부터 주관적 반응들을 상대방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뇌는 상대방의 뇌 활동을 직접 지각함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 P218

이것이 가능하다면 의사소통을 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이 같은 식탁에 함께 앉아 있건 아니면 다른 방에 따로 있건 아니면 심지어 다른 도시에 있건 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초감각 감지와도 유사하지만 단지 피상적으로만 그렇다. 첫 번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린 자기 패를 보고 있다. 신경 심상만으로도 두 번째 사람은 그 사람의 패를 정확히 읽어 낸다. 첫 번째 사람이 소설을 읽으면 두 번째 사람은 그 속의 이야기를 뒤따라 갈 수 있다. - P218

마음 대본의 전달은 사용자들의 문화가 얼마나 공통적인지에 따라 정확도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언어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공통된 부분이 적다면 그 대본은 수백 가지 특성들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테지만 그 부분이 광범위하다면그 어휘 목록들은 수천 가지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가장 효과적인 경우에 마음 대본은 특정한 문화와 각 개인의 마음의 독특한 억양과 꾸밈도 전달하게 될 것이다. - P218

마음 대본은 중국의 서예와 비슷할 것이다. 사실적 · 개념적 정보의 소통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동양 문명의 위대한 예술 형태중의 하나인 서예 말이다. 표의문자에는 글쓴이와 글을 읽는 이들이 공유하는 주관적 경험들에 따라 미묘한 변이들을 줄 수 있는 미학적 다양성이 숨쉬고 있다. - P218

"서예에 사용되는 비단이나 종이는 흡수성을 가진다. 서예가는 붓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놀리지만 한번 쓰면 지우거나 되돌릴 수 없다. 붓은 마치 마음의 지진계와도 같다. 압력과 손목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예는 마치 그림처럼 공간의 예술이면서 음악과도 같이 시간에 따라 펼쳐진다. 또한 마치 춤처럼 역동적인 리듬을 탄다." - P2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난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일 마음이 물리 법칙들에 묶여 있다면 그리고 마음이 서예처럼 해독될 수 있다면 자유 의지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여기서 나는 자유 의지의 일상적인 의미, 즉 다른 이들과 세계의 다른 부분들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대신 자신의 몸과 마음의 물리학·화학적 상태가 부과하는 제약들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P219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자유의지란 의식적 마음을 구성하는 시나리오들 간의 경쟁에서 비롯된 결과일 뿐이다. - P219

우세한 시나리오들은 감정 회로들을 환기시킴으로써 공상이 일어나는 동안에 그 회로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 시나리오들은 마음 전반을 활기차게 만들고 집중시키며 몸이 특정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자아는 그런 선택을 하는 듯이 보이는 존재자이다. - P219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는 뇌로부터 독립된 존재자가 아니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기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나리오들의 극 중 주인공이다. 자아는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중심 무대에서 활동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감각들은 몸속에 위치해 있고 그 몸은 모든 의식적 행동들의 통치를 표상하도록 마음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와 몸은 분리될 수 없도록 융합되어 있다. - P219

자아를 시나리오와 독립적으로 창조된 무엇으로 보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자아는 몸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몸도 자아 없이는 오랫동안 생존하기 힘들다. - P220

몸과 자아의 연합은 너무 강해서 물질적 대응물이 없이 영혼만이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배워 왔듯이 심지어 예수와 마리아까지도 몸을 가지고 천국으로 올라갔다. 물론 천상의 속성을 가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몸은 몸이었다. - P220

만일 자연주의적인 마음 이론이 모든 경험적 증거들이 보여 주듯이 정말 옳다면, 그리고 전통 신학에서 말하는 영혼 같은 것도 실제로 존재한다면 신학은 해결되어야 할 새로운 신비를 갖게 될 것이다. 비물질적인 영혼이 마음으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지만 몸에서는 분리될 수 없다는 신비를 도대체 어떻게 풀 것인가? - P220

끊임없이 변화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자아는 자신의 행동들을 완벽하게 조종하지는 못한다. 자아는 의식적인 순수 이성적인 선택만으로 의사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20

의사 결정을 위한 많은 계산들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꼭두각시 자아를 춤추게 할 수 있는 끈이 존재한다. 예컨대 신경 회로와 분자적 과정은 의식적 사고 밖에 존재한다. 그것들은 어떤 기억들을 합병하고 다른 것들을 삭제하고 연결과 유추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며 이어서 일어나는 감정적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 호르몬의 영향력을 강화한다. - P220

커튼이 걷히고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 장치는 이미 부분적으로 마련되었고 대본들도 많이 씌어진 상태이다. 정신 활동의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이뤄지는 이러한 준비 덕분에 우리는 자유 의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양 착각한다. - P220

우리는 그저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이성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물론 드물게나마 모든 것을 이해하고 결정하기도 한다. 의식적 마음은 이런 종류의 무지를 해결해야 할 불확실성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 P221

순수 이성과 고정된 목표들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 전지의 마음은 자유 의지가 부족할 것이다. 그러한 자유를 인간에게 허락하고 인간이 바보 같은 선택을 할 때마다 불쾌감을 드러내는 신들조차도 그런 끔찍한 능력은 갖지 않으려 한다. - P221

맨 정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정합적인 패턴들을 미시적으로 전이시켜 가는 몸과 마음은 엄청난 수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세포들은 매 순간 인간 지능이 미리 알 수 없는 외부 자극들의 포격을 당한다. 그 사건들은 순차적 정보 전달 방식을 통해 새로운 미세 에피소드, 즉 새로운 신경 패턴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우리가 이 결과를 추적하려면 생각하는 뇌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작동 방식을 채택한 엄청나게 큰 컴퓨터가 필요하다. 게다가 마음 대본들은 거의 무한정하며 그것들의 내용은 개인의 고유한 역사와 생리에 따라 진화한다. 도대체 이것을 무슨 수로 컴퓨터로 구현할 것인가? - P222

인간 사고에 대한 단순한 결정론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명확한 인과 관계를 통해 몸과 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물리 법칙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개인의 마음을 완전히 파악하고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자유 의지에 관한 우리의 확신은 생물학적 측면에서 적응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없다면 마음은 숙명론에 옥죄어 퇴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체의 시공간에서, 그리고 인식할 수 있는 자아에 실제로 적용되는 면에서 마음은 자유 의지를 가진다. - P222

기계는 "면전에서 듣는 말들의 의미에 따라 자신의 어법을 결코 바꾸지 못하는 반면 인간의 경우에는 가장 멍청한 사람조차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기계는 "인생의 모든 사건들에서 이성이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만들 듯이 행동할 수는 없다." - P223

과학자들은 무언가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 한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그런 실험을 통해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는 게 결코 아니다. 우주적 질문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당신의 질문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요?" - P223

오히려 그들(과학자들)의 직업은 구체적인 개별 단계에서 한번에 하나씩 우주를 탐구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최고의 보상은 존 키츠(John Keats)의 시에서 코르테스가 다리엔 산의 정상에서 처음으로 광대한 태평양을 바라보았던 것과 같이 저 너머의 광대함에 관한 "무모한 추측"을 한번 해 보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인 키츠의 「처음으로 채프먼의 호머를 읽고」 라는 시에 나오는 광경.) 그들의 지적 풍토에서는 위대한 여행을 멈추는 것보다는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낫고 이론에 대해 몇 마디 첨언하는 것보다는 중대한 발견에 천착하는 편이 더 가치 있다. - P224

흔히 "AI"라 불리는 인공 지능 분야는 전자 컴퓨터가 처음으로 발명된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인공 지능 연구자들은 인공 지능 연구를 지적 행동에 필요한 계산에 관한 연구와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 행동을 복제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한다. - P224

몇몇 선택된 모양을 상이한 방향에서 바라보게 했을 때 어떤 프로그램은 물체와 얼굴을 구별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인간이 기하학적 대칭성의 규칙에 따라 무언가를 인지하는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또한 어떤 프로그램은 비록 조악하기는 하지만 언어를 번역하기도 하고 축적된 경험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대상들을 일반화하고 분류하는 일도 수행한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 마음의 작동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 P224

어떤 프로그램은 미리 선택된 목표들에 따라 특정한 행동 절차를 검토하고 선택할 수 있다. - P224

체스 컴퓨터로 유명한 딥 블루(Deep Blue)는 32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하여 1초에 2억 개의 수를 무작위적으로 조사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 P224

현재는 인간의 모든 사고 능력을 더 높은 수준에서 시뮬레이션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 지능 프로그래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른바 진화론적 계산 기법을 사용해 왔다. 그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여러 개의 선택지를 준 후에 그 프로그램으로 하여금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그에 따르는 가용한 절차들을 수정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그 프로그램은 박테리아와 다른 단세포 개체들을 닮아 가게 된다. 왜냐하면 프로그램이 무작위적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가용한 절차들을 변화시킴으로써 결국 해답의 범위를 좁혀 가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그 프로그램들은 마치 먹이와 공간을 확보하는 생물처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한다. 이 기법을 "진화론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225

어떤 변이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그중 어떤 놈이 성공할 것인지는 늘 예측할 수는 없다. 전체 프로그램으로서 ‘종‘은 인간 설계자가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다. - P225

실험실을 돌아다니고 학습하며 실제 자원들을 분류하는 로봇을 만들어 내는 일은 컴퓨터 과학자들의 몫이다. 심지어 그들은 특정 목표를 놓고 경쟁하는 로봇들도 창조해 내야 한다.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 프로그램은 박테리아보다는 편형동물이나 달팽이와 같은 단순 다세포 동물의 본능 레퍼토리와 더 유사할 것이다. 컴퓨터 과학자들이 몇십억 년의 생명 진화 역사와 동일한 시간을 횡단하게 될 날이 향후 50년 내로 가능할 것이다. - P225

MIT의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로 대표되는 한 진영은 상향식 접근을 취한다. 즉 설계자들은 다윈적 로봇 모형을 따라 하위 수준에서 상위수준들로 올라간다. 이 방식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통찰을 얻고 기술을 발전시킨다. 때가 되면 휴머노이드가 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226

반면 인공 지능의 창시자이며 브룩스의 동료인 MIT의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처럼 하향식 접근을 추구하는 진영도 있다. 하향식 접근을 추구하는 이들은 진화론적 시각은 적용하지 않은 채 학습과 지능의 상위 현상들을 직접적으로 연구한다. - P226

가까운 장래에 인간의 마음에 대한 조잡한 시뮬레이션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뇌과학은 마음의 기본 작동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세련될 것이고 컴퓨터과학은 그 기본 작동을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226

기능적 장애물은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가거나 마음을 통해 나오는 정보 입력의 엄청난 복잡성을 말한다. - P226

합리적 사고는 몸과 뇌 사이의 계속적인 교환이 신경의 방전과 호르몬의 흐름을 통해 일어남으로써 생겨난다. 이때 호르몬의 흐름은 정신 태도, 주의, 목표 선정을 조절하는 감정적 통제의 영향을 받는다. - P226

기계 속에 마음을 복제해 넣기 위해서는 뇌과학과 인공 지능 기술을 완성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뮬레이션의 선구자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계산, 예컨대 인공 감정(AE)도 발명하고 설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27

휴머노이드 마음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두 번째 장애물은 인류의 고유한 유전적 역사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진화론적 난관이다. 보편적인 인간 본성ㅡ인류의 심리적 통일성ㅡ은 잊혀진 과거 환경에서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 역사를 통해 생겨난 산물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의 유전적 설계도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는다면 시뮬레이션된 마음이 능력 면에서는 대단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인간의 마음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 될 수도 있다. - P227

설상가상으로 비록 그 설계도가 밝혀지고 우리가 그것을 따라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인공 마음이 인간이 되려면 각 개인의 고유함도 흉내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일생 동안 겪는 수많은 경험들ㅡ미묘한 감정들과 버무려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운동 감각들ㅡ로 채워진 기억 은행이 마련되어야 한다. - P227

게다가 인공 마음은 사회적일 때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수많은 접촉들을 통해 지성과 감정을 노출한다. 그리고 이런 노출에서 얻은 기억들에는 의미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수많은 연결들이 모든 단어들에 일일이 부착되고 그것들이 감각 정보로서 그 프로그램에 주어진다. 이 모든 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공마음은 튜링 시험에서 계속 낙방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인간 배심원도 인간으로 가장한 인공 마음을 몇 분 내로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P227

자연과학은 양자물리학에서 시작하여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을 아우르는 인과적 설명의 직조물을 짜 왔다. 그 직조물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가닥들은 거미줄처럼 섬세하게 얽혀 있으나 아직도 여기저기 구멍이 보인다. 과학의 궁극적 목표인 예측적 종합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 P229

대부분의 학자들은 흔히 문화가 두 문화, 즉 과학적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으로 쪼개져 있는 것을 고정된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두 영역들, 즉 아폴론적 법칙과 디오니소스적 정신, 산문과 시, 좌뇌 피질 반구와 우뇌 피질 반구는 쉽게 연결될 수 있지만 한쪽 언어를 다른 쪽 언어로 번역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도라도 해야 하는가? 나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요한 목표일 뿐만 아니라 달성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학문의 경계 자체를 재평가해 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 P230

두 문화(과학적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간의 분리가 오해와 충돌의 영구적인 원천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 P230

C. P. 스노는 1959년에 쓴 『두 문화 (The Two Cultures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라는 중요한 에세이에서 "이런 양극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실제적인 손해이고 지적인 손실이며 창조성의 말살이다."라고 말했다. - P230

교육받은 엘리트의 과도한 분화가 바로 문제의 주원인이다. 대중 지식인들과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대중 매체의 전문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사회과학과 인문학 전통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를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 왔으며 자연과학과 사회 행동이나 정체성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거의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 P230

자연과학자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은 인간사와는 동떨어진 좁은 칸막이에만 갇혀 지냈기 때문에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는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생화학자가 법이론과 대(對)중국 통상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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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이 책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독서노트 기록을 보니까 거의 2달만이다. 기억을 더듬기 위해 2달 전 포스팅을 잠깐 살펴봤는데, 지구인이 만든 로봇들이 화성을 테라포밍하기 위한 작업들을 단계별로 하는 과정이 나왔었다. 여기서 잠시 ‘테라포밍‘이라는 것은 지구 외의 행성을 사람이 살기 적합한 환경으로 변형하는 작업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아무튼 오늘은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4번째 단계로 산소를 생산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본문에는 화성의 테라포밍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서 과학자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연구 결과들에 기반하여 지구와는 상당히 다른 화성이라는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시도들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들도 결코 적진 않지만, 이런저런 생각들과 시도들을 끊임없이 해 봄으로써 자신들이 의도했던 결과물을 내고자하는 그 과정자체가 상당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과학적 호기심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진정한 과학자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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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에서는 테라포밍 5단계로 화성의 대기를 데우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얘기들이 나온다. 이 또한 위의 4단계에서 언급했던 것과 비슷하게 다양한 시도들이 나오는데, 각각의 과학적 아이디어들이 참으로 신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전공자인 분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쉬운 내용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나같은 비전공자들에게는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많았기에 상식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다음 챕터에서는 범고래와 바다표범, 펭귄의 관점으로 서술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생태계라는 것이 정말로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동식물들이 각각의 개체들과 지구의 전반적인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요즘 날씨가 굉장히 더워지고 있는데, 당장 나부터라도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환경을 아끼는 마음없이 무심코 행동하다가는 어느 한 유명한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러다 우리 다 죽어‘ 라는 대사처럼 지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당장 내일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추가적인 요인들로 인해 가속된다면 우리가 발디디고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소멸할 날을 하루하루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지구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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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이 오스트레일리아 연안에 있는 산호초를 방문했던 이야기가 간략히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다윈하면 그냥 진화론의 창시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외에도 지질학자로써도 유명했다는 사실을 오늘 독서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다윈이 관찰했던 산호초 중에서도 특별히 오늘 읽은 부분에선 환초라는 것이 나오는데,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지구 생명체는 산소가 있어야 호흡할 수 있다. 하지만 화성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다. 96퍼센트가 이산화탄소이고 아르곤과 질소가 각각 1.9퍼센트를 차지한다. 산소는 고작 0.15퍼센트에 불과하다. - P52

물만 충분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된다. 다만 순수한 물은 전기분해되지 않는다. 나트륨, 염소, 칼륨, 칼슘 같은 전해질이 녹아 있어야 한다. 다행히 화성 토양의 염류가 녹아 있는 물에는 전해질이 충분했다. - P52

화성의 토양에는 산화물과 중금속이 많아서 식량 안전성을 보장하기 힘들었다. - P52

로봇 3원칙이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로봇 안전 준칙이다. - P52

화성의 얼음층과 지하층에서 끌어온 물을 이용해 작물을 수경 재배했다. 깨끗하고 안전했다. 물론 수염뿌리로 되어 있는 외떡잎 식물만 수경 재배할 수 있어서 파인애플, 토란, 고구마, 양파, 콩나물, 감자, 토마토, 딸기, 수박 같은 채소류를 주로 키웠지만 영양을 공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참, 아보카도도 잘 자란다. 하지만 물을 너무 사용하는 문제가 있어서 추천하지 않는다. - P53

작물마다 자라는 온도가 다르다. - P53

지구인은 항상 쉽게 생각한다. - P53

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기 전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0.02~0.03퍼센트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인류가 등장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수치는 1억 6000만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단 100년 만에 이 수치를 0.04퍼센트로 변화시켰다. 0.02퍼센트에서 0.04퍼센트로 겨우 0.02퍼센트 올랐을 뿐이지만 두 배가 된 것이다. - P54

화성 대기 중 96퍼센트가 이산화탄소인데 왜 이렇게 추운가? 대기 구성만으로 행성의 온도가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화성은 태양에서 워낙 멀기도 하거니와 대기 자체가 극히 적다. 대기의 96퍼센트가 이산화탄소면 무슨 소용인가? 대기 자체가 지구의 2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데 말이다. 온실효과가 일어날 방법이 없었다. - P54

대기에 메탄과 수증기, 암모니아, 프레온 가스 같은 온실기체를 살포해 대기의 온도를 높일 궁리를 했다. - P54

혜성에는 온실가스 가운데 하나인 암모니아가 많이 들어 있다. 혜성이 화성 근처를 지날 때 경로를 바꿔서 화성 대기로 진입시키면 마찰열로 혜성이 분해되면서 수증기와 암모니아가 대기로 방출되었다. 화성 대기가 점차 데워졌고 암모니아에는 질소가 들어 있어서 식물을 키우는 데도 유리했다. - P55

화성에는 바다가 없다. 바다가 없으면 생명도 없는 것이다. - P56

지구와 화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구의 구조는 양파처럼 여러 겹으로 되어 있다. 중심부터 내핵, 외핵, 맨틀, 지각으로 구분된다. - P56

내핵과 외핵은 철과 니켈 같은 무거운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랫동안 식지 않고 용융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무거운 원소들이 아래쪽으로 내려간 것이다. 외핵은 아직도 액체 형태로 내핵을 돌고 있다. 금속 둘레를 금속이 돌면 자기장이 생긴다. 내핵 주변을 외핵이 돌면서 자기장이 만들어졌다. 지구는 거대한 자석이 되었다. 물과 DNA, RNA 같은 생명의 분자를 쪼개는 우주 입자인 태양풍을 지구 자기장이 막아주고 있다. 자기장 덕분에 지구에는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이다. - P57

화성은 일찌감치 식는 바람에 지구와 같은 내부 구조가 형성되지 않았고 자기장도 생기지 않았다. 자기장이 없으니 태양풍을 막을 수도 없다. 태양풍은 화성의 바다를 없애 버렸다. - P57

과학자들은 내 정체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다. 내(범고래) 학명 오르키누스 오르카Orcinus orca를 지은 사람이 바로 이명법(생물의 이름을 나타낼 때, 속의 이름 다음에 종의 이름을 써서 한 종을 나타내는 방법)을 발명한 칼 폰 린네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P59

내(범고래) 속명 오르키누스는 로마 신화의 ‘오르쿠스‘에서 왔는데, 오르쿠스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데스‘라고 불린다. 바로 저승의 신이다. 서양 사람들은 나를 ‘죽음을 부르는 고래 killer whale‘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무서운 놈이다. 죽음을 부른다. - P59

범고래는 이빨고래다. 이빨고래는 원래 육식이다. 뭔가를 잡아먹어야 한다. 북아메리카에 자리를 잡고 사는 정주성 범고래들은 물고기와 오징어를 주로 먹는다. 어부들이 싫어하기는 해도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알래스카와 노르웨이의 범고래도 일정한 곳에 머무는 정주성이다. 물고기를 주로 먹지만 가끔 먼바다에 나와 상어와 바다거북을 잡아먹는다. - P59

정주성 범고래와 이주성 범고래의 성향은 200만 년 전부터갈라서기 시작했다. 최근 1만 년 동안에는 유전자도 거의 섞이지 않았다. - P59

남극 범고래도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보통 정주성 범고래처럼 생긴 A형이다. 주로 밍크고래를 사냥해서 먹고 산다. 그렇다. 우리는 수염고래를 잡아먹는 이빨고래다. - P60

B형 범고래는 몸집이 A형보다는 조금 작고 눈 주변의 무늬가 훨씬 크다. 그리고 등이 하얗지 않고 살짝 누런빛이 돈다. 주로 바다표범과 펭귄을 사냥하면서 살아간다. - P60

C형은 B형보다도 작으며 큰 무리를 형성해 남극대구만 먹고 산다. 눈 주변 무늬가 기울어져 있고 등에 누런빛이 돈다. B형과 C형의 누런빛의 착색 원인은 갈색을 띠는 규조류 때문이다. - P60

1820년 바다표범잡이 선장 제임스 웨들이 인간으로서는 처음 진입한 남극해의 어느 바다에서 나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 지역을 웨들해라고 부르고 내 이름도 웨들바다표범이 되었다. - P64

바다는 풍족한 사냥터지만 위험한 전장이기도 하다. - P65

우리의 사냥은 목숨을 건 투쟁이다. - P66

우리(턱끈펭귄) 똥이 줄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바다로 들어가는 철분이 줄었다는 뜻이다. 우리 똥 1그램에는 3밀리그램의 철분이 들어 있다. 예전에는 우리가 매년 521톤의 철분을 남극해에 공급했다. 그러나 이제 절반으로 줄었다. 기후변화의 결과로 펭귄이 바다에 공급하는 철분이 반으로 줄었다는 말이다. - P68

남극의 식물성 플랑크톤은 펭귄 똥이 공급하는 철분을 먹고 성장한다. 플랑크톤이 늘어나면 크릴과 작은 생선에서부터 펭귄, 바다표범, 고래까지 번성할 수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펭귄 똥의 철분은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펭귄 똥의 철분으로 성장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하기 때문이다. - P68

광합성을 하면 산소가 발생하고 이산화탄소가 감소한다. 이게 엄청난 양이다. 원래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산소의 절반 이상이 바다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대부분을 식물성 플랑크톤이 담당하고 있다. - P68

식물성 플랑크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광합성을 하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채 잡아먹히거나 바다 밑으로 가라앉든 모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전 세계 바다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매년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30퍼센트를 흡수한다. 우리 펭귄이 줄어들면 플랑크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이산화탄소 흡수도 감소한다. - P68

모든 생명은 먹이 피라미드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있고 - P69

수염고래는 크릴을 먹고 산다. 사람들이 포경을 통해서 수염고래를 많이 잡아먹었다. 그러면 크릴이 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크릴 양도 줄어들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포식자가 없는데 왜 줄어들까? 고래가 놀라운 일을 하고 있었던 거다. 수염고래는 바다 밑바닥에서 크릴을 먹고 수면으로 올라와서 똥을 눈다. 이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바다 밑바닥에 있던 철분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거다. 그러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하고 크릴, 작은 물고기, 펭귄, 바다표범, 범고래까지 먹이사슬이 또 이어지겠지? 포경으로 고래가 사라지자 철분을 이동시키는 펌프도 망가진 셈이 된 것이다. - P70

고래 똥이 사라지면 바다의 생산력이 감소한다. 수염고래는 매년 똥을 통해 약 1200톤의 철분을 바다에 공급했다. 이건 펭귄이 공급하는 521톤의 두 배가 넘는 양이다. 수염고래와 펭귄의 똥이 사라지면 결국 식물성 플랑크톤도 급격히 줄어든다.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어질 뿐만 아니라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량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 P70

모든 물질은 고체보다 액체의 부피가 크고, 액체보다 기체의 부피가 더 크다. (고체<액체<<기체) 분자 운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것은 바로 H2O라는 물질이다. 그렇다. 얼음, 물, 수증기를 이루는 바로 그 물질이다. 역시 기체인 수증기는 액체인 물보다 부피가 훨씬 더 크다. 그런데 액체인 물보다 고체인 얼음의 부피가 더 크다. (액체<고체<<기체) - P71

물에 떠 있는 빙산이 다 녹았다고 해보자. 수면 위에 있는 얼음이 녹아 바다로 들어갔으니 해수면 상승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수면 아래 있는 얼음이 녹으면 어떤 효과가 일어날까? 얼음이 차지하는 부피가 물이 차지하는 부피보다 크므로 빙산의 수면 아래 부분이 녹으면 해수면 하강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될까? - P71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이 있다. 전 세계가 사용하는 표현이다. 영어로는 "It‘s just the tip of the iceberg"라고 한다. 실제로 빙산은 전체의 10~20퍼센트만 해수면 위에 있다. 수면 윗부분이 일정하지 않은 까닭은 빙산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주변 바닷물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 P72

바다에 떠 있는 빙산만 녹으면 해수면은 절대로 높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빙산이 녹는 상황이라면 육지 위에 있는 얼음도 녹는다.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얼음은 육지에 있다. 남극대륙, 그린란드,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빙하 그리고 러시아와 캐나다 북부의 툰드라, 안데스, 알프스, 로키, 히말라야산맥의 만년설도 녹는다. 육지 얼음이 녹으면 그대로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 빙하가 모두 녹을 정도로 기온이 오르면 바닷물 자체도 열팽창을 해서 해수면이 높아진다. - P72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 지구 온난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몇 가지 이유만 들어보자. 햇빛의 상당 부분은 눈과 얼음에 반사되어 다시 우주 바깥으로 돌아간다. 지구 온난화로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던 지역의 온도가 높아져 눈과 얼음이 녹으면 지구 표면의 반사율은 감소하고 더 많은 햇빛이 땅과 물에 흡수되어 지구 온도는 더 올라간다. - P72

온대지방의 눈 덮인 겨울 숲에서 겨울을 나는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지혜가 있다. 나뭇잎이 많이 쌓인 지역의 눈에 구멍을 파면 땅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는데 여기에 불을 붙이면 마치 가스레인지처럼 불이 계속 탄다. 땅 위에 쌓인 낙엽이 썩어서 생긴 메탄이 눈과 얼음에 막혀서 배출되지 못하고 고여 있는 걸 사용하는 방법이다. - P73

오랜 기간 얼어 있는 툰드라 지역은 어떨까? 어마어마한 양의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토양에 갇혀 있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이 메탄이 쏟아져 나온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수십 배나 강력한 온실가스다. 지구 온난화는 더욱 가속된다. - P73

빙하가 녹으면 전 세계 사람은 물 부족 현상을 겪을 것이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빙하를 주요 담수원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빙하가 녹으면 사용할 수 있는 담수원이 줄어들어서 먹고 농사에 사용할 물이 부족해진다.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난다. 동시에 산사태, 돌발 홍수가 빈번해지고 새로운 빙하 호수가 형성된다. 빙하호수가 생기는 곳은 대개 인간이 살기 좋은 곳이다. 인간의 서식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 P73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인간 세상은 공평한 적이 없었다. 기후변화의 충격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해 더워지는 곳이 많지만 오히려 추워지는 곳도 있고,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받는 충격이 다르다. 한 나라 안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다른 경험을 한다. - P74

인간 세상은 정말 공평하지 않다. 자연도 그렇다. 야생 생태계도 공평하지 않다. 충격을 더 많이 받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같이 먹이 피라미드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생명들이 그렇다. 펭귄보다는 바다표범이 더 큰 충격을 받고 바다표범보다는 우리 범고래가 받는 충격이 더 크다. 더 먼저 멸종하게 된다. - P75

2024년 4~5월 브라질에 잇따른 폭우가 내려 영국 면적과 맞먹는 브라질 남부의 90퍼센트가 황폐해졌다. 인간이 화석연료와 삼림을 무분별하게 태우는 바람에 폭우 가능성을 두 배 이상 높인 결과였다. - P74

인간은 조금은 별난 존재다. 최고 포식자이면서도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명. 자연사에서 유일한 존재다. - P75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자연경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세계 최대의 산호초 군락) - P76

환초(고리 모양으로 배열된 산호초) - P77

코코스제도는 인도양에 있는 2개의 환초와 27개의 산호섬으로 구성된 제도로 킬링제도라고도 한다. - P78

코코스제도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들다. 오스트레일리아 영토이지만 인도네시아에 훨씬 가까운 인도양에 위치한다. - P79

찰스 다윈, 생물진화론을 발전시킨 생물학자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지질학자이기도 하다. - P79

고리 모양의 환초는 화산섬에 산호가 자란 뒤 섬이 침강하면서 고리 모양만 남은 산호초다. 주로 열대 지방에 많다. 사람들이 환초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환초 주변의 물결이 잔잔해서 해상 교통과 군사 기지로써 유용하기 때문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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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내용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일깨울지 조그마한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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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투데이‘라는 말(馬)과 ‘콜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수(騎手)가 등장한다. 전반적인 서술의 관점은 국어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중간중간 휴머노이드 로봇인 ‘콜리‘의 시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솔직히 맨 처음에 특정한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이게 무슨 얘기지 하면서 의아해 하기만 했었는데, 뒤에 나오는 이야기 퍼즐들을 맞추어 나가면서 맨 앞에 나왔던 이야기의 상황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요즘 AI니 뭐니 하면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 로봇도 AI기술과 적접적으로 관련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소설에 나온 ‘콜리‘는 제작과정에서 특정한 칩이 잘못 삽입되어 일반적인 휴머노이드 로봇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일례로 자신이 타는 말인 ‘투데이‘와 교감을 하고자 한다거나, 언어 학습 분야에 있어서 다른 로봇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어휘를 알고 있다는 등의 특징이 있다.

아무튼 평범하지 않은 휴머노이드 로봇이지만 어찌됐든 ‘콜리‘는 인간의 기술에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투데이라는 말의 기수로 경마장에서 경주를 이기기 위한 역할에 충실하도록 교육받고 훈련받았다. 물론 이로 인한 성과도 있었다. 투데이가 신기록을 세우면서 경주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이런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내던 투데이는 어느 순간 이러한 생활이 반복됨에 따른 반작용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이상이 왔고, 심지어는 걷기조차 힘든 상황까지 맞이하게 된다. 매경기 진통제를 맞고 뛰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콜리는 투데이와의 교감을 통해 투데이의 이런 상태를 파악한다. 그리고 스스로 결단한다. 자기가 낙마해서라도 투데이를 살려야겠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인 내 머릿속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말(馬)인 ‘투데이‘에게서는 과중한 업무에 치여서 치열하게 살던 인간이 어느순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갈되어버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소설 속에는 비록 말로 나오지만, 어쩌면 투데이는 이 시대를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참 기묘하게도 이름이 ‘투데이‘인데 이것의 영어 뜻처럼 오늘 하루를 열심히 일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파도 참고 버티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말이다. 소설에 나온 캐릭터를 통해 뭔가 공감과 위로를 얻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어서 휴머노이드 로봇인 ‘콜리‘를 보면서는 비록 진짜 사람은 아니지만 웬만한 사람보다도 더 인간적인 면이 느껴졌다. 자신이 타는 말인 투데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교감으로 느끼고 스스로 낙마해서 투데이가 조금이라도 편안했으면 하는 그 마음은 자신을 희생해 상대방을 살리려고 했던 예수님의 사랑과도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여기 일일이 적진 않았지만 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들은 그저 투데이와 콜리를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그저 이용해먹으려는 생각뿐인데, 오히려 로봇인 콜리가 인간이 가져야할 법한 마음과 생각을 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이는 어쩌면 요즘 사람들이 점점 더 인간성이라는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나타낸 건지도 모르겠다.

고통은 생명체만이 지닌 최고의 방어 프로그램이다. 고통이 인간을 살게 했고, 고통이 인간을 성장시켰다.

투데이는 흑마다. 빛이 반사되는 수면처럼 검은 털이 아름다운 암말이다.

역사적인 날. 나는 오늘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날이란, 무언가를 처음 시작한 날을 의미할 때도 있었지만 기적이 일어난 날을 더 많이 칭했다. 기적. 오늘은 내 짧은 생애 두 번째로 기적이 일어난 날이었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등속운동을 유지하며 자신에게 다시 생긴 삶을 이어갈 것이다.

나는 정확한 수치와 계산에 의한 결괏값만을 산출한다. 내 미래에는 예측 오류란 없다.

약속은 참 편리했다. 약속 한 번으로 많은 소리가 낭비되지 않았다.

"한눈팔지 말고 앞에만 봐."

허벅지를 말 몸에 밀착시킨 후 상체를 앞으로 숙여 안장과 평형을 유지했다. 이를 ‘전경자세‘ 라고 한다

링크 구조 : 두 개 이상의 장치를 연결해 서로 상호작용하게 만든 구조. 링크구조를 사용하면 경량화가 가능하고 모터를 사용하지 않아 유격이 발생하지 않는다.

"고삐는 놓으면 안 돼."

규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질서는 모두가 약속된 규정을 어기지 않아야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늘은 매일, 매시간 색과 모양이 바뀌었다. 하늘은 파란 색이었지만 가끔 보라색이나 분홍색, 노란색, 회색이 섞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단어가 천 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해 보였다.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혹시 세상에 이미 그만큼의 단어가 있는데 자신이 모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단어들은 어디에서 알 수 있을까.

여기서 ‘좋아했다‘ 는 더 자주, 더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봤다는 뜻이다.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흐를 수 있는 물체라니.

콜리의 반응은 언제나 즉각적이었고 바라보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방에서는 하늘을 생각하지 않았고 경기장에서는 시간을 헤아리지 않았으며 말을 타고 있을 때에는 단어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재미있으니까."

몸이 공기와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무언가를 흡수하고, 분해하고, 배출하는 과정은 생명이 가진 특권이었다. 콜리의 몸은 그 어떤 것도 흡수하고, 분해하고, 배출하지 않는다. 콜리는 에너지를 몸에 쌓아두고, 형태를 전환하고, 소비하기를 반복한다.

호흡을 하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생명은 살아있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투데이도 달릴 때에만 살아 있다. 투데이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투데이는 채찍을 맞을 때마다 더 빠르게 달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투데이의 속은 고요해졌다. 콜리는 납득할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다니. 투데이는 달려야 살아 있음을 느꼈지만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

힘내, 조금만 더 가면 돼. 경기 도중 투데이에게 콜리가 속삭였다. 그럴 때마다 투데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파. 아파. 아파.

투데이는 그렇게 신기록을 경신한 지 3개월 만에 무너졌다. 속도는 막판에 떨어졌고 1등을 유지하던 투데이는 어느 순간부터 2등, 5등, 심지어 9등까지 밀려났다. 야유는 쏟아졌고 몸값은 떨어졌으며 관심은 사라졌다.

콜리는 뭐든 상관없었지만 관절이 아파 걷기 힘들어하는 투데이를 치료하지 않는 것은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콜리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투데이에게 적절한 치료와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투데이는 서있기 힘든 몸으로도 당근을 진통제처럼 씹어 먹으며 경기에 나가야 했다.

이대로는 죽어.
콜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관중석이 꽉 찬 늦여름의 경기에서 콜리는 스스로 낙마했다. 투데이가 콜리의 무게를 힘겨워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로에 선 이상 투데이는 멈추지 못할 것이며 이 상태로 완주했다가는 영영 다리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실격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콜리는 짧은 순간 완주해야 한다는 존재 이유와 투데이를 살려야 한다는 규칙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을 들여 후자를 선택했다. 투데이를 지켜야 한다.

투데이와 주로가 아닌 초원을 달릴 수 있다면 더 즐거웠을 텐데...

되도록 오랫동안 하늘만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쉬움과 형태가 같다고는 깨닫지 못한 채로 말이다.

"제 실수죠. 딴생각을 하면 안 됐는데 문득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날이 맑은 날 초원을 뛰고 있다는 상상을 했거든요. 스크린으로 보이는 가짜 말고 진짜요."

한 번 기회를 놓치니 두 번째는 영 쉽지 않았다.

간절하게 원했다면 진작 뛰어나갔어야 했다. 지금 이 생각이 들기도 전에 말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끊임없이 낯선 것에 도전하는 거잖아."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

결국 이 세상은 수지타산이 얼마만큼 맞느냐로 돌아가는 것인데,

오지랖부리며 생각하지 말자. 짜증 나면 짜증 나는 거지 초기 비용을 자신이 왜 따지고 있나 싶었다.

발붙여 사는 동안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거라면 계속 열심히 사는 수밖에. 이것도 짜증 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어쩐지 다시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바다를 보고 와서 마음이 후련해졌다

조금만 덜 근면 성실하고 겁이 없었으면 경마에 돈을 걸어보는 건데, 그 주위를 맴돌다 자라면서 보게 된 건 억만장자가 되어 나가는 이들보다 그나마 있던 돈까지 죄다 잃고 쫓기듯 나오는 이들이 더 많다는 현실이었다.

"언니는 왜 그렇게 유니폼을 좋아해요?" ...(중략)...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좋잖아.

시설을 빠르게 업그레이드시킨 경마장이었지만 그만큼 가장 기초적인 곳들이 허술했다.

모든 것은 상황이 맞아야 이뤄진다고,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초원과 비슷한 환경으로 꾸몄다고 할지라도 초원은 아니었다.

그리움을 느끼려면 그리워할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해야 했다.

갇혀 있지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 문명 사회 이후 쌓아온 말들의 기억 DNA는 초원보다 마방에 더 많을 것 같았다.

아픈 건 금방 치료될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아.

"여기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너무 많아. 그 관심을 다 돈으로 주면 얼마나 좋아."

"너 이 정도도 귀찮아했다가는 정말로 도태된다."

연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몸통의 반이 부서져 폐기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기수를 손에 넣어야만 했다. 밤잠까지 내쫓으며 머리에 꽉 들어찬 ‘존재‘를 어떻게 쉽게 보낼 수 있겠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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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뇌는 그저 존재할 뿐이고 의식과 마음은 뇌의 각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생겨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을 ‘신경 활동의 얽힘‘ 또는 ‘뇌 활동의 다중 흐름‘ 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의식과 마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과학자들만의 용어으로 나타낸 것인데, 일반 독자인 나조차도 그럭저럭 납득할수 있는 말로 표현되어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데카르트의 극장과 같은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뇌에는 그 시나리오들이 정합적인 형태로 출연하는 뇌 부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것은 하나도 아니다. 대신에 전뇌의 구석구석 ㅡ 대뇌 피질에서부터 시상, 편도체 그리고 해마와 같은 특수화된 인지 중추에 이르기까지 ㅡ 에서 벌어지는 신경 활동의 얽힘만이 존재할 뿐이다. - P205

하나의 집행 자아가 모든 정보를 수집 · 통제하는 것 같은 단일한 의식의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적 사고에 순간적으로 기여했다가 사라져 버리는 뇌 활동의 다중 흐름이 존재한다. - P205

의식은 정신 활동에 참여하는 회로가 대량으로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이다. 마음은 스스로 조직하는 시나리오들의 공화국이며 이 시나리오들은 개별적으로 생겨나고 자라고 진화하며 사라진다. 그리고 때로는 새로운 사고와 물리적 행동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 P205

신경 회로들은 전기 격자의 부분처럼 점멸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적어도 전뇌의 많은 부위들에서는 한 뉴런 수준에서 다른 뉴런 수준으로 이동하는 병렬적 중계 과정을 통해 각 단계에서 더 많은 정보들을 통합해 가면서 정돈된다. - P206

망막을 때리는 빛 에너지는 뉴런 발화 패턴으로 변환된다. 이 패턴은 망막에서 출발하여 중간 신경계들의 연쇄를 통해 중계되는데 결국에는 시상의 외슬핵(外膝核, lateral geniculate nuclei)을 거쳐 뇌의 뒷부분에 있는 일차 시각 피질로 되돌아간다. 통합된 자극을 공급받은 시각 피질 속의 세포들은 망막의 상이한 부분들로부터 정보를 정리한다. 그 세포들은 자기 자신의 발화 패턴에 따라 점이나 선을 인식하고 구체화한다. 이런 상위 차원 세포의 후속 체계들은 다중 공급 세포의 정보를 통합하여 물체의 모양과 이동을 그려낸다. 작동 방식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패턴은 뇌의 다른 부분들에서 동시에 들어오는 입력과 맞물려서 의식의 완전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낸다. - P206

"나는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_생물학자 S. J. 싱어(S. J. Singer) - P206

의식을 산출하는 것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수의 세포가 필요하기 때문에 뇌는 복잡한 이동 영상을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 데 용량의 뚜렷한 한계를 나타낸다. 이런 용량을 측정하기 위해서 심리학자들은 기억을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으로 구분했다. - P206

단기 기억은 의식적 마음의 준비 상태이다. 그것은 가상 시나리오의 현재 부분과 기억된 부분으로 구성되며 한꺼번에 단 7개의 단어나 기호만을 다룰 수 있다. 뇌가 이런 기호들을 완전하게 훑으려면 대략 1초가 걸리며 이 정보의 대부분을 3초 내로 잊는다. - P206

장기 기억의 경우에는 끄집어내는 데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리지만 용량은 거의 제한이 없으며 그중 상당 부분은 평생 보존된다. - P206

확산 활성을 통해서 의식적 마음은 장기 기억 창고에서 정보를 소집하고 짧은 순간 동안 그것을 단기 기억 창고에 보관한다. 이 시간 동안에 의식적 마음은 하나의 기호(정보)를 대략 0.025초에 처리하는데 그 정보로부터 발생한 시나리오들은 서로 경쟁한다. - P207

장기 기억은 특정한 사람, 물체 그리고 행동을 시간 흐름에 따라 의식적 마음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특수한 사건들을 회상하게 한다. 예컨대 의식적 마음은 올림픽의 순간을 쉽게 재창조한다. 타오르는 횃불, 달리는 선수들, 금메달의 환호 등등. - P207

의식적 마음은 움직이는 영상과 소리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경험된 연관 개념들의 형태로 의미까지도 재창조할 수 있다. 예컨대 불은 뜨거움, 빨간색, 위험함, 요리, 열애 그리고 창조적 행동 등과 연관되어 있는데, 맥락에 따라 선택된 여러 항목의 하이퍼텍스트(hypertext) 경로들을 통해 어떤 때에는 기억에서 새로운 연상이 생기기도 한다. - P207

개념은 장기 기억에서 접속점 혹은 참고점이다. 많은 개념들이 일상 단어들로 식별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 P207

장기 기억 은행에서 영상을 회상할때 연관이 거의 없으면 그 회상은 기억일 뿐이다. 반면 연관이 있고 특히 감정 회로의 공명이 가미되었을 때에는 그 회상은 추억이 된다. - P207

기호를 조작함으로써 추억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생명 기계의 탁월한 업적이다. 그것이 모든 문화를 창조해 냈다. 하지만 몸이 신경계에 부과하는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 P207

수많은 기관들은 연속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조절되어야 한다. 심각한 교란이 생기면 질병이나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심장이 10초만 게으름을 피우면 당신은 돌덩이가 될 수도 있다. - P207

기관들의 적절한 기능은 뇌와 척수의 미리 배선된 자동 조종 장치의 통제 아래 있다. 이때 척수의 뉴런 회로들은 인간 의식의 기원보다 앞서서 수십억 년동안 진화한 척추동물의 유산이다. 자동 조종 장치 회로들은 상위의 대뇌 중추 회로들보다 더 짧고 단순하며 이 두 회로들 간에는 최소한의 소통만이 존재한다. 중재를 위한 강한 훈련이 있을 때에만 그 회로들은 간혹 의식의 통제 아래 놓일 수 있다. - P208

자동 통제의 사례들은 많다. 예컨대 동공이 수축되거나 팽창되고 타액이 분비되거나 고이고 위장이 요동치거나 조용해지고 심장이 박동하거나 잠잠해지는 등의 현상은 모두 자율 신경계의 길항적(拮抗的) 요소들의 균형을 통해서 가능하다. - P208

자율 신경계의 교감 신경은 어떤 행동을 위해 몸을 긴장하게 만든다. 교감 신경들은 연수의 중간 부위에서부터 비롯되며 신경 전달 물질인 부신 수질 호르몬의 분비를 통해 대상 기관을 조절한다. - P208

부교감 신경은 소화 과정을 격렬하게 만들면서 몸 전체를 이완시킨다. 이 신경은 뇌간과 연수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비롯되며 그 신경이 목표 기관을 향해 분비하는 신경 전달 물질은 잠을 유발하는 아세틸콜린이다. - P208

반사는 연수와 하부 뇌(lower brain)를 거치며 뉴런의 짧은 회로들을 통해 매개되는 신속한 자동 반응이다. - P208

놀람 반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데 의식적 마음이 생겨나는 시간보다 빠르며 심지어 오랜 훈련을 통한 의식적 노력으로 모방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빠르다. - P208

자동 반응은 의식적 의지에 상대적으로 둔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특성은 심지어 감정을 주고받는 안면표현(facial expression)에까지 확장된다.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진짜 미소는 변연계에서 비롯되며 감정에 추동된다. 그래서 훈련받은 관찰자를 잘 속일 수 없다. - P209

부자연스러운 미소는 대뇌의 의식적 절차로부터 구성되는데,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미묘한 차이 때문에 결국 들키고 만다. 즉 안면 근육이 다른 배열로 인해 약간 다르게 수축될 때와 위쪽으로 구부러진 입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일 때 미소는 이내 가짜로 평가된다. - P209

노련한 연기자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근사하게 모방할 수 있다. 또한 적절한 감정을 인공적으로 유도하면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빈정거림 (입을 삐쭉거리는 미소), 절제된 공손함(연한 미소), 위협적 미소 그리고 자기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때 사용되는 미소는 문화마다 조금씩 다르다. - P209

뇌로 들어가는 입력들 중에는 많은 경우 외부 세계보다는 호흡, 심박, 소화 그리고 다른 생리 활동들을 감시하는 내부 신체 감각들로부터 온다. 밀려오는 ‘육감(肉感, gut feeling)‘ 은 합리적 사고와 섞여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부양해 준다. 그리고 다시 내부 기관의 반사와 신경 호르몬 순환 고리를 통해 합리적 사고의 영향을 받는다. - P209

의식의 시나리오들이 자극에 의해서 추동되고 이전의 시나리오들에 관한 기억의 도움으로 떠다니는 동안 그것들은 감정에 의해서 강화되고 수정된다. - P209

감정이란 무엇인가? 신경 활동의 수정을 통해 정신 활동을 집중시키고 거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감정이다. - P209

감정은 정보의 특정 흐름들을 선택하는 생리 활동을 통해서창조되는데 이 과정에서 몸과 마음은 상위 혹은 하위 활동 수준으로 전이되고 시나리오들을 창조하는 회로들은 교란되며 결국 특정한 방식으로 끝나는 회로들이 선택된다. 이 선택받은 시나리오들은 본능에 따라서 미리 프로그램된 목표들에 부합하는 시나리오들이며 이전 경험의 만족들이다. - P210

현재 경험과 기억은 마음과 몸의 상태를 연속적으로 교란시킨다. 그런 후 그 상태들은 사고와 행위를 통해서 원래 조건으로 되돌아가거나 새로운 시나리오들에 포함된 조건들을 향해 이동한다. 이 절차의 역동성은 감정의 기본 범주들을 지칭하는 단어ㅡ분노, 역겨움, 공포, 기쁨 그리고 놀람ㅡ들을 불러일으킨다. 각 범주의 내부는 다시 정도에 따라 세분되어 있는데 범주 간의 혼합으로 미묘한 감정들이 수없이 많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강한 감정, 약한 감정, 혼합된 감정 그리고 새로운 감정 등과 같이 여러 차원의 감정을 경험한다. - P210

감정의 자극과 안내가 없다면 합리적 사고는 느려지고 붕괴된다. 합리적 마음은 비이성적 마음의 위에 떠다니지 않는다. 그것은 순수이성이 아니다. 수학에서는 순수 정리들이 있지만 그 정리들을 발견하는 것은 순수한 사고가 아니다. - P210

신경생물학 이론과 공상 과학 소설의 ‘통속의 뇌‘ 이야기에서는 영양물로 가득 찬 통 속에 있는 그 기관(뇌)이 신체적인 장애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마음의 내적 우주를 탐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실상과는 다르다. 뇌과학의 모든 증거는 오히려 그 반대를 이야기한다. - P210

휘몰아치는 감각의 중심에서 의식은 자기가 선택한 물리적 행동을 통해서 감정을 만족시킨다. - P210

시나리오 ㅡ미래를 추측하고 행동 과정을 선택하는 수단ㅡ 를 만들어 내고 분류하는 마음의 특화 영역이 바로 의식이다. 의식은 원격 통제소라기보다는 생리 작용을 조절하는 모든 신경 호르몬 회로들로 배선된 체계의 부분이다. - P210

의식은 역동적 안정 상태를 얻기 위해 행동하고 반응한다. 의식은 상황 변화에 민감한 방식으로 몸을 요동시킨다. 이는 기회에 대한 반응이며 몸의 복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도전과 기회가 충족되면 의식은 몸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일을 돕는다. - P211

마음과 몸의 호혜성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 속에서 시각화될 수 있다. ...(중략)... 당신이 밤에 황량한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의 몽상은 뒤에서 접근하는 빠른 발소리 때문에 중단된다. 당신의 뇌는 금세 긴장하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을 생산한다. 무시하기, 가만히 있기, 돌아보기, 혹은 도망가기. 마지막 시나리오가 우세한 상황에서 당신이 행동을 한다고 하면 당신은 불이 켜져 있는 가게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잠시 후면 의식적 반응은 자동적인 생리변화를 촉발시킨다. 카테콜아민 호르몬 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은 부신 수질에서 방출되어 혈류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몸의 모든 부분들로 이동하면서 기초 대사율을 높이고 간과 골근육에 있는 당원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빠르게 공급해 주는 포도당으로 전환시킨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허파의 세기관지(bronchioles)가 팽창하여 더 많은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게 되며 소화는 느려진다. 방광과 결장은 자신들의 내용물을 버리려고 준비하고 폭력 행위와 있을지도 모를 부상에 준비하도록 몸을 느슨하게 만들어 준다. - P211

위기 상황에서 시간은 느리게 간다.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진다. 변화에서 생긴 신호들은 신경 섬유들과 혈류 속의 호르몬 농도를 통해서 뇌에 다시 중계된다. 몇 초가 더 지나면 몸과 뇌는 정확하게 프로그램된 방식으로 함께 전이된다. 변연계의 감정 회로가 켜지고 마음에 몰아치는 새로운 시나리오들은 공포로 채워지고 그 다음에는 대뇌 피질에 집중된 노여움이 밀려오며 당장 생존과 관계가 없는 다른 모든 사고는 차단된다. - P212

의식적 뇌로부터 안심하라는 신호를 제공받은 신체 공화국은 활동을 서서히 줄이며 원래의 진정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 P212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Antonio R. Damasio)는 이러한 에피소드에서 전일론적으로 마음을 그려 내며 감정에 2개의 범주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중 하나는 선천적 혹은 본능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감정으로 일차 감정이라고 한다. - P212

일차 감정에는 특정한 기초 자극들에 대한 인식 외에는 의식적 활동이 거의 개입되지 않는다. 그것은 동물의 본능 행동을 연구하는 이들이 부르는 일종의 "해발인" 이다. 즉 이미 프로그램된 행동이 "해발" 하는 식으로 작동된다. 예를 들어 성적 유혹, 시끄러운 잡음, 커다란 물체의 갑작스러운 출현, 뱀이나 뱀 같은 모양을 한 기다란 물체의 꾸불거리는 움직임 등은 인간에게 일차 감정을 유발하는 자극들이다. 이 모든 자극이 심장마비와 연관되어 있다. - P212

일차 감정들은 인류의 척추동물 조상 때부터 시작되어 변화를 거의 겪지 않고 보존되어 온 형질들이다. 이것들은 변연계의 회로들을 통해서 활성화되는데 그 회로들 중에서 편도체가 통합 · 중계 중추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 P212

반면 이차 감정들은 개인적인 삶의 사건들에서 유발된다. 옛 친구를 만나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진급을 하거나 모욕감에 시달리는 것 등은 일차 감정의 변연 회로들을 발화시키기는 하지만 대뇌 피질에서 이뤄지는 최상의 통합 과정들이 개입된 후에라야 비로소 변연 회로들을 건드린다. 우리는 누가 친구인지 혹은 적인지를 알아야 하고 왜 그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면 황제의 격노와 시인의 환희가 인간 이전의 영장류를 추동한 감정 장치가 문화적으로 세련된 방식으로 작동한 결과일 뿐임을 알게 된다. - P213

다마시오는 "땜장이 자연은 일차 감정과 이차 감정들을 표현하는 기제를 독립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차 감정들은 일차 감정들의 감정 통로를 사용한다."라고 말한다. - P213

우리가 의미(meaning)라고 부르는 것은 심상(imagery)을 확장하고 감정을 개입시키며 확산되는 흥분을 통해서 창조된 신경망들 간의 연관이다. - P213

의사 결정(decision making)은 시나리오들 간의 경쟁적 선택을 지칭할 것이다. 승리한 시나리오는 그에 따른 감정의 종류와 강도를 결정한다. 감정의 일정 형태와 강도가 바로 기분(mood)이다. - P213

창조성(creativity)은 새로운 시나리오들을 생산하고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을 고르는 뇌의 능력이며 현실성과 생존 가치를 결여한 시나리오들을 계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망상(insanity)이다. - P213

"멀리서 들려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보에의 소리, 극심한 고통으로 인한 몸부림, 행복의 불꽃, 무아지경의 명상과 같은 경험 등이 내(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이것이야말로 마음의 진짜 신비를 구성하는 현상들이다." - P215

뇌의 물리적 기능에 관한 지식으로부터 결코 연역될 수 없는 의식적 경험의 질(質)이 존재한다 - P215

어떤 물질적 기술이 주관적 경험을 설명할 수 있을까? - P215

우리는 전자기 에너지를 시각과 청각 같은 감각으로 번역할 수 있다. 우리는 꿀벌과 물고기의 감각 기관과 뇌를 정밀하게 검사해 봄으로써 그들의 신경 회로들의 활성화 패턴을 읽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들이 느끼는 바를 느낄 수는 없다. 상상력이 아주 풍부한 전문 관찰자라도 동물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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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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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장강명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읽어보았는데, 저자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와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심도있게 고민하고 생각해본 흔적들을 작품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특별히 이 작품에선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지 않은 젊은 세대 혹은 사회초년생의 고뇌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잘 풀어낸 듯하다. 완독후에도 독자들이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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