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알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지식 세계라고 생각했다. ㅡ 프랜시스 베이컨(1605) - P5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 학문의 구획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그때그때 편의대로 만든 것일 뿐이다. - P7
진리는 때로 직선으로 또 때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학문의 경계를 관통하거나 넘나드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앉아 진리의 한 부분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다. - P7
(윌리엄)휴얼이 처음으로 사용한 ‘consilience‘라는 용어는 아마 라틴어 ‘consiliere‘에서 온 것 같은데, 여기서 ‘con‘은 영어로 ‘with‘, 즉 ‘함께‘라는 뜻을 갖고 있고 ‘salire‘는 ‘to leap‘, 즉 ‘뛰어오르다‘ 또는 ‘뛰어넘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휴얼은 consilience를 한마디로 jumping together‘, 즉 ‘더불어 넘나듦‘으로 정의했다. - P10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휴얼은 우리에게 ‘scientist‘. 즉 ‘과학자‘라는 용어를 선사한 사람이기도 하다. - P10
통섭은 ...(중략)... ‘큰 줄기‘ 또는 ‘실마리‘라는 뜻의 통(統)과 ‘잡다‘ 또는 ‘쥐다‘라는 뜻의 섭(攝)을 합쳐 만든 말로서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 P13
사실 윌슨은 "사물에 널리 통하는 원리로 학문의 큰 줄기를 잡고자" 이 책을 저술한 것 - P13
Consilience는 한마디로 ‘지식의 통일성‘을 뜻한다. 이것은 옛날 어느 교수가 과학과 그 방법론에 관하여 가졌던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그는 그의 동료들이 과학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지극히 작은 단위들로 쪼개는 데 여념이 없어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걱정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어 있으며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을 분리하면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의 이유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이 같은 관점을 잃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래야 모든 과학이 개념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14
계몽사상은 흔히 "18세기 프랑스 사상의 주류를 이루며 프랑스 혁명에 원리를 제공한 사상"으로 알려져 있다. - P15
프랑스의 계몽사상은 볼테르의『철학서간』(1734년),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1748년),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1784년) 등을 통해 정립된 사상 - P15
나는 뿌리와 가지를 연결하는 줄기가 통섭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줄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물관과 체관은 돌아오지 않는 강이 아니다. 나는 통섭이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 영향적이기를 바란다. 통섭은 분석과 종합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윌슨이 그리고자 한 통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 P17
뇌의 진화는 대개 ‘생존의 뇌(survival brain)‘, ‘감정의 뇌(feeling brain)‘, ‘사고의 뇌 (thinking brain)‘의 세 단계로 나뉜다. - P18
나는 여기에 네 번째 단계로 ‘설명의 뇌 (explaining brain)‘ 를 제안하려고 한다. 다른 많은 동물들도 생각하는 뇌는 갖고 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설명하고 구연할 줄 모를 뿐이다. - P18
우리 인간은 모든 현상을 독립적으로 경험하며 그 인과관계를 익히지 않는다. 서로 다른 현상들의 귀납들을 한데 묶어 의미를 추출한다. 신화를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 P19
피카소는 예술을 가리켜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거짓말"이라 했다. 예술과 종교를 창조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또 우리 인간이다. - P19
그래서 나는 데카르트의 언명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의 대안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Enarro, Ergo Sum)"를 제안하려고 한다. - P19
‘설명하는 뇌‘는 아마 ‘생각하는 뇌‘와 ‘느끼는 뇌‘가 보다 긴밀하게 협조하는 관계 속에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통섭은 바로 이 ‘설명하는 뇌‘의 작용이다. - P19
‘설명하는 뇌‘, 즉 ‘통섭의 뇌‘는 인문학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학문이란 어차피 인문학으로 시작하여 인문학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분석은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하여 할 수 있지만 통섭은 결국 언어로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 P19
말과 글을 갖고 있지 않은 동물들도 발견과 분석은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에게는 그들의 발견을 꿸 실이 없을 뿐이다. - P19
나는 이제 우리가 진리의 행보를 따라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학문의 국경을 넘을 때마다 여권을 검사하는 불편한 과정을 생략할 때가 되었다. 진정한 세계화는 진리를 추적하는 학문의 영역들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 P20
인간정신의 가장 위대한 과업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성공적인 만남은 결국 모든 학문의 통합으로 이어질 것이다. - P22
나는 인문학이 모든 배움에 기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적 소양이 결여된 자연과학은 결코 통섭의 경지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바탕 위에 수학과 자연과학으로 무장한 다음에야 자신이 전공할 학문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학제를 개편해야 한다. - P22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 신을 통해 앎을 얻는다고 했지만 과학은 우리에게 앎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신도 영접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나는 기독교 신화 역시 이런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 P22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자유 의지의 몸부림과 다시 신에게 돌아가려는 운명적인 믿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사시다. - P22
나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고 그 속의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꿰뚫는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가는 노력 즉 통섭의 노력 역시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알면 사랑한다!"를 외치고 다닌다. - P22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지식이 갖고 있는 본유의 통일성이다. - P25
인간 조건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방법들을 한데 묶는 것뿐 - P26
지식의 통일은 서로 다른 학문 분과들을 넘나들며 인과 설명들을 아우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물리학과 화학, 화학과 생물학, 그리고 보다 어렵겠지만 생물학,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 P26
내 지적 세계의 틀은 근대 생물분류학을 창시한 18세기 스웨덴의 자연학자 카를 폰 린네 (Carl von Linné)에게서 빌려 온 것이었다. 린네의 분류 체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다. 일단 식물과 동물의 표본을 종(種)으로 분리한다. 그러고 나서 서로 닮은 종들을 속(屬)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다. - P32
좀 더 상위의 분류군으로 올라가 보자. 거기에서는 유사한 속들이 하나의 과(科)로 뭉치고 그 과는 목(目)으로, 목은 강(綱)으로 그리고 마침내 강은 분류군의 최정상에 있는 계(界)에 다다른다. 이 계는 다시 식물계, 동물계, 균계, 원생생물계, 모네라계(monerans) 그리고 시원세균계 (archaea)로 세분된다. - P32
이러한 생물분류학 체계는 군대와 매우 유사하다. 즉 병사들은 분대로, 분대는 소대로, 소대는 중대로, 중대는 대대로 편입되고 대대는 다시 합동 참모 본부의 지휘를 받는다. - P32
중국 격언에 있듯이 사물에 올바른 이름을 지어 주는 데에서부터 지혜가 싹트는 법이다. - P32
나는 이오니아의 마법 (lonian Enchantment)에 걸린 것이다. 이 표현은 물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제럴드 홀턴(Gerald Holton)이 처음으로 쓴 말로서 통합 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믿음을 뜻한다. 즉 세계는 질서 정연하며 몇몇 자연법칙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단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식의 가정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깊은 확신이다. 이런 확신의 뿌리는 기원전 6세기의 이오니아에 살았던 밀레투스의 탈레스(Thales of Miletus)로 거슬러 올라간다. - P34
탈레스는 모든 물질이 궁극적으로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비록 그의 생각이 종종 고대 그리스의 사유가 가진 소박함을 보여 주는 예로 인용되기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생각이 세계의 물질적 기초와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형이상학을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34
"직접적인 관찰로는 매우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현상들이 실제로는 통합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황홀함을 느낀다오." - P35
브라운 운동을 다루는 미시적인 물리학과 중력을 다루는 거시적인 물리학 - P35
아인슈타인은 말년에 모든 것을 단 하나의 검약적인 체계, 즉 공간을 시간과 운동에, 그리고 중력을 전자기력과 우주론에 묶어 보려고 했다. 그는 가까이 가기는 했지만 성배를 잡지는 못했다. - P35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모든 과학자들은 손에 닿을 것처럼 보이나 결국 잡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탄탈로스(Tantalos,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로 배가 고파 과일을 따먹으려고 손을 뻗으면 과일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 버리는 징벌을 받았다.)의 후예들이다. - P35
원자가 모든 운동을 멈추는 절대 0도에 근접하기 위해 지난 몇십 년간 온갖 노력을 다해 온 열역학자들 - P35
열역학자들은 1995년 절대 0도보다 몇십억 분의 1도 정도높은 온도까지 접근하여 보스아인슈타인 응집물 (Bose-Einstein condensate)을 만들어 냈다. 이 응집물은 기체, 액체, 고체를 넘어서는 새로운 물질 상태이다. 온도가 떨어지고 압력이 높아지면 기체는 액체로 응결되고 이내 고체가 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 보스아인슈타인 응집물이 나타난다. 많은 원자들이 마치 같은 양자 상태에 존재하는 하나의 원자처럼 행동하는 물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절대 0도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뿐 여전히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 P36
우리는 도대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뭔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P37
성경은 우주의 섭리를 설명하고 인간을 우주에서 중요한 존재로 부각시키려는 최초의 글쓰기였는지도 모른다. 아마 과학도 이와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장선 위에 있을 것이다. 다만 과학은 기존 종교와 달리 수많은 시험들을 견뎌낸 탄탄한 근거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해방되고 확장된 종교이다. - P37
계시보다 객관적 실재에 대한 탐구를 선호하는 것은 종교적 갈망을 만족시켜 주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런 방식은 거의 문명만큼이나 오래된 노력이며 전통적인 종교와도 서로 얽혀 있다. - P37
스토아 강령(자연법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상) - P37
이오니아의 마법은 인간의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킴으로써 영혼을 구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도 알았듯이 그것의 중심 주장은 지식의 통일이다. 우리가 만일 충분하게 통일된 어떤 지식을 가진다면 우리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 P38
길을 잃었다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인본주의의 도덕적명령은 오직 노력이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간에 그 노력은 존경 받을만하고 그 실패가 기억할 만한 것이라면 상관없다. - P38
나는 오히려 그(이카로스, Icaros)의 대담함이 인간의 고귀함을 구원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 P38
"태양이 우리 날개의 밀랍을 녹이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는지 알아 보자." - P38
인간 지성의 가장 위대한 과업은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해 보려는 노력이다. - P39
통섭(統攝, consilience)은 통일(統一, unification)의 열쇠이다. 나는 이 용어를 ‘정합(整合, coherence)‘보다 더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통섭은 정합의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하나만을 뜻할 뿐이기 때문이다. - P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