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집은 작가가 과거 문학잡지에 발표했던 작품들을 한데 묶어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긴 내용이 챕터별로 연결되어 구성된 것이 아닌, 각각의 작품들이 각자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듯하다.

다만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의 소재만큼은 다소 평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냥 일상이나 가정 또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토대로 거기에서 파생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쓰고보니 약간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딱히 그런 것은 아니고 작품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중간중간 말하는 문장들이라든지 소설 속 화자가 내뱉는 의미심장한 문구들은 독자인 나의 눈길을 끌었기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도 개인적으로는 의미있게 다가온 내용 중 하나였다.

내 얇은 마음 한 겹, 누덕누덕 기워진 죄와 후회들을 짊어진 채로는 더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나는 알았다. 그것들이 쇠로 만든 추처럼 내 몸에 올라타고 있었다. 내 허리를 굽게 하고 허파를 쭈그러들게 하고 등짝을 식은땀으로 적셨다. - P157

생각을 하지 마라.
아무 생각도 하지 마. - P158

생각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않으리라는 단순한 다짐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단순하게 살아갈 것이다, 라고 나는 다짐했다.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밥 먹고 작업에 몰입하며 감정의 기복 없이 살아갈 것이다. - P158

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 목련(木蓮)이지. - P164

통증을 달래기보다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여기도록 나는 길러졌다. 어머니의 두꺼운 손바닥 세례를 피하기 위해, 울지도 않고 어떤 허튼소리도 뱉지 않도록 길들여졌다. 어린 딸에게 그만큼 엄정했던 대신, 어머니는 언제나 내 말을 마치 성인의 그것처럼 존중해주었다. - P169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뭘 알겠느냐" - P169

그렇게 약한 마음으로는 세상을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어. - P170

살다 보면 너한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있을 거다...... 수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후회되는 날이. 그날이 빨리 오면 좋은거고, 너무 늦게 오면 후회해도 늦은 거고. - P170

자기가 느끼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걸. - P171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 - P174

애초에 길이라는 것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으며 ‘끝‘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지어낸 생각일 뿐이라는 것 - P182

끝이라는 것이 지어낸 생각일 뿐이라면 길이라는 것 역시 지어낸 생각일 뿐일까? 아마 그럴 것이라고 그는 짐작한다. - P182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법을 사장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책을 많이 읽으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런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하곤 했다. - P189

계단을 오르는 것이 그 순간 그가 해야 할 일이다. 그 이외의 것은 없다. - P194

낯선 사람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데에는 잠깐의 시간이 소요될 뿐이라는 것을 그는 처음 알았다. - P197

그에게 책이란 무게나 크기, 행선지 따위로 분별되는 짐일 뿐, 그 안의 내용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었다. - P199

욕망이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 - P201

달려 나가고 싶을 때가 있어.
민화는 특유의 나지막하고 강인한 어조로 말했다.
언젠가, 반드시 달려 나가버리고 말 거야. - P205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모든 길들의 끝에는 죽음과도 같이 격렬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 P206

그렇게 다들 없어지는 거구나. - P207

사랑이라는 게 만약 존재하는 거라면, 그 순간순간의 진실일 거야. 순간의 진실에 대해서 물은 거라면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영원을 믿어? 있지도 않은 영원이라는 걸 당신 힘으로 버텨내려고? 버텨내볼 생각이야? - P208

아름답게 느꼈던 것들이 어느 날 보면 전혀 아름답지가 않아. - P209

.....사람도 그렇잖아.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좋아지지만, 그순간에는 그것만이 가장 크고 중요한 진실이지만...... 상황이 바뀌거나, 시간이 지나거나 하면 모든 것이 함께 바뀌어버리잖아. - P210

결국 영원한 건 없는 거야, 그렇지?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살기가 훨씬 쉬워질지도 몰라. - P210

사랑이란 대체로 집착을 통해 지속되는 것이므로, - P211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희망하고 상상한다는 것은 기대 이상으로 달콤한 것이었다. - P211

당신 얼굴, 당신 얼굴이 어떤지 당신은 보지 못하니까, 그게얼마나 추하게 일그러져 있는지 보지 못하니까. 그 눈..... 그입술, 그 이빨에서 뚝뚝 흘러넘치는 증오가 얼마나 당신을 남처럼 만드는지, 당신은 모르니까. - P231

그의 눈에는 어떤 기억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다. 오로지 그 찰나 눈에 비치는 것들만이 그의 텅 빈 눈동자에 들어와 담길 뿐이다. 마치 공기가 새어 나오듯이 그는 웃으며, 자신이 웃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 P234

거봐, 내가 뭐랬어? 무서운 놈이라고 했잖어? - P234

오늘도 무사히. - P235

재미있는 책을 읽다 보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책과 읽는 사람만 남듯이, 그는 오로지 혼자서 세계와 마주해 있다. 그순간 세계는 광활하지도 복잡하지도 불가해하지도 않다. 손아귀에 잡히는 말랑말랑한 육체처럼 세계는 그를 응시하고있다. - P236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이 또다른 사람은 누구인지 그는 모른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그는 그들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렇게 묵묵히 바라보는 그 사람을 다시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본다. 그, 다시 바라보는 그 사람을 더 물러서서 바라본다. - P236

마침내 양파 껍질을 다 벗기고 나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더 이상 벗길 것이 없는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창을 열고 뛰어내릴 것이다. 살아오면서 줄곧 그래왔듯이, 그는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 P237

그는 눈을 감았다. 델 것 같은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입술과 턱을 적신 그 눈물은 억센 힘줄이 드러난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 러닝셔츠로 번졌다. 바로 그 순간으로 인하여 그의 삶이 바뀌었으나, 그는 아직까지 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 채 무수한 그림자들의 춤추는 곡선 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 P239

떠난 사람 욕만 했지, 정작 나헌테 있는 생명은 지킬 줄 몰랐어요. - P255

맵싸한 감각이 그의 목구멍 안쪽에 느껴졌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겠지만, 그 스님이 눈물을 흘린 까닭을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다면 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더 이상 연등회를 보지 못하는 때, 그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말할 수 없다면. - P262

그냥 앞으로 가.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를 그는 등 뒤에서 들었다.
괜찮아, 그냥 앞으로 걸어가. - P264

나무들이 바라보는 쪽은 언제나 햇빛이 드는 쪽이다. - P266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해도 이 몸은 부서질 것이요 부드러운 옷으로 감싸도 목숨은 끝이 있는 것 - P279

젊었을 때 분심들을 내라구. 늙어 힘 없으면 공부도 안 돼. - P281

잘 기억해두라구. 행자 때 발심, 행자 때 공덕으루다 평생을파먹고 살 테니. - P281

살아서는 속가의 반연을 끊고, 죽어서는 육신도 태워 산중에 뿌리는 게 중이다. - P282

그게 싫으면 언제라도 돌아가거라. - P283

논두렁을 베고 죽을 각오가 돼 있어야 진짜 중이야. - P283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동안 그는 그의 몸속에 미처 상상못 했던 많은 기억들이 들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감정에 육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후회나 슬픔, 분노는 물론 사소하고 자질구레해 보이는 감정들에까지 구체적인 생김새와 감각이 있었다. - P284

신기한 것은, 순서 없이 떠오르는 그 기억들 속에서 어떤 감정이 솟아났을 때 그것을 잠자코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래서 그 감각과 생김새를 찬찬히 헤아리고 나면 어느 사이 그것이 사라져 있곤 한다는 것이었다. 사라지고 난 밝고 빈 마음속에서 그는 잠시 쉬었다. 다시 기억이나 감정이 솟으면 그것을 들여다보았고, 사라지고 나면 다시 쉬었다. 선방에서 나와 잠시 경내를 걸을 때면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폭우에 씻긴 듯 또렷해져 있곤 했다. - P284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 P300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남자는 들었다. 볼 수도 냄새 맡을 수도 고통을 느낄 수도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승의 소리들은 귓전에 머물 것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태중에서 소리부터 듣게 되는 것과 같이. - P303

바다는 참 무섭다・・・・・・ 아무도 없고.
안경 쓴 아이가 속삭이듯 상고머리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난 그런 게 좋다. - P324

난 말야, 살다 보면 결국은 나밖에 안 남을 것 같거든. - P3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권에서는 전국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가 작년 전국대회 4강에 들었던 능남고 농구부와 연습경기를 하기 위해 능남고를 방문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처음 밑줄친 문장은 이와는 별개로 나온 것이긴 하지만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어서 적어보았다. 아마도 싸움은 덩치보다는 기술이 좀 더 중요하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싸움은 덩치로 하는 게 아냐. - P7

자네는 비밀무기니까, 스타팅 멤버가 아니라네. - P44

비밀무기는 감춰두지 않으면 안 되네. - P45

당당하게 말하니 화도 못 내겠네. - P54

정신적으로 져버리면 방법이 없는데... - P86

<3초 룰> 공격측이 페인트존 안에서 3초 이상 머물 수 없다. - P154

네가 나갈 때가 된 거야!! - P191

빠뜨린 볼은 끝까지 따라가!! - P231

해이한 녀석은 빼버릴 테야!! - P231

너희도 명심해 둬라!! 볼에 대한 집념이 없는 녀석은 시합에 내보내지 않을 테니까!! - P231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볼을 쫓는다!! - P2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램덩크 신장재편판 2 - 풋내기 슛
이노우에 타케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권에서는 강백호의 탁월한 운동신경을 알아본 유도부 주장이 강백호가 짝사랑하는 소연이의 사진으로 강백호를 유도부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강백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농구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농구부로 돌아온 강백호는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일명 ‘풋내기 슛‘이라 불리는 레이업 슛을 연습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부분에는 농구부 주장 채치수가 강백호에게 리바운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명언 하나를 남긴다.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시합을 제압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통해 고통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물리적인 상처로 인한 고통, 마음에 상처를 주는 고통, 그리고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 등이다. 이 중 무엇이 더 고통스러운지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어쩌면 고통이라는 건 그 경중을 떠나서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늘 따라다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도 독자들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 경우엔 ‘고통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렇게만 쓰고보니 너무 어두운 느낌만 드는 것 같아, 몇 달전에 읽었던 천선란 작가님의《천 개의 파랑》에서 만났던 고통 극복과 관련된 메시지 하나를 덧붙이면서 이 짧막한 리뷰를 마무리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 고통을 이긴다.‘ 는 것이다. 고통이 없을 순 없지만 행복으로 고통을 이겨내자는 말이다. 힘든 인생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주 4.3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일지라도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상처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제주 4.3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알았을 뿐 세부적인 것들까지는 몰랐던지라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기게 된 책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