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얇은 마음 한 겹, 누덕누덕 기워진 죄와 후회들을 짊어진 채로는 더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나는 알았다. 그것들이 쇠로 만든 추처럼 내 몸에 올라타고 있었다. 내 허리를 굽게 하고 허파를 쭈그러들게 하고 등짝을 식은땀으로 적셨다. - P157
생각을 하지 마라. 아무 생각도 하지 마. - P158
생각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않으리라는 단순한 다짐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단순하게 살아갈 것이다, 라고 나는 다짐했다.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밥 먹고 작업에 몰입하며 감정의 기복 없이 살아갈 것이다. - P158
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 목련(木蓮)이지. - P164
통증을 달래기보다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여기도록 나는 길러졌다. 어머니의 두꺼운 손바닥 세례를 피하기 위해, 울지도 않고 어떤 허튼소리도 뱉지 않도록 길들여졌다. 어린 딸에게 그만큼 엄정했던 대신, 어머니는 언제나 내 말을 마치 성인의 그것처럼 존중해주었다. - P169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뭘 알겠느냐" - P169
그렇게 약한 마음으로는 세상을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어. - P170
살다 보면 너한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있을 거다...... 수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후회되는 날이. 그날이 빨리 오면 좋은거고, 너무 늦게 오면 후회해도 늦은 거고. - P170
자기가 느끼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걸. - P171
애초에 길이라는 것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으며 ‘끝‘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지어낸 생각일 뿐이라는 것 - P182
끝이라는 것이 지어낸 생각일 뿐이라면 길이라는 것 역시 지어낸 생각일 뿐일까? 아마 그럴 것이라고 그는 짐작한다. - P182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법을 사장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책을 많이 읽으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런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하곤 했다. - P189
계단을 오르는 것이 그 순간 그가 해야 할 일이다. 그 이외의 것은 없다. - P194
낯선 사람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데에는 잠깐의 시간이 소요될 뿐이라는 것을 그는 처음 알았다. - P197
그에게 책이란 무게나 크기, 행선지 따위로 분별되는 짐일 뿐, 그 안의 내용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었다. - P199
욕망이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 - P201
달려 나가고 싶을 때가 있어. 민화는 특유의 나지막하고 강인한 어조로 말했다. 언젠가, 반드시 달려 나가버리고 말 거야. - P205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모든 길들의 끝에는 죽음과도 같이 격렬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 P206
사랑이라는 게 만약 존재하는 거라면, 그 순간순간의 진실일 거야. 순간의 진실에 대해서 물은 거라면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영원을 믿어? 있지도 않은 영원이라는 걸 당신 힘으로 버텨내려고? 버텨내볼 생각이야? - P208
아름답게 느꼈던 것들이 어느 날 보면 전혀 아름답지가 않아. - P209
.....사람도 그렇잖아.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좋아지지만, 그순간에는 그것만이 가장 크고 중요한 진실이지만...... 상황이 바뀌거나, 시간이 지나거나 하면 모든 것이 함께 바뀌어버리잖아. - P210
결국 영원한 건 없는 거야, 그렇지?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살기가 훨씬 쉬워질지도 몰라. - P210
사랑이란 대체로 집착을 통해 지속되는 것이므로, - P211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희망하고 상상한다는 것은 기대 이상으로 달콤한 것이었다. - P211
당신 얼굴, 당신 얼굴이 어떤지 당신은 보지 못하니까, 그게얼마나 추하게 일그러져 있는지 보지 못하니까. 그 눈..... 그입술, 그 이빨에서 뚝뚝 흘러넘치는 증오가 얼마나 당신을 남처럼 만드는지, 당신은 모르니까. - P231
그의 눈에는 어떤 기억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다. 오로지 그 찰나 눈에 비치는 것들만이 그의 텅 빈 눈동자에 들어와 담길 뿐이다. 마치 공기가 새어 나오듯이 그는 웃으며, 자신이 웃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 P234
거봐, 내가 뭐랬어? 무서운 놈이라고 했잖어? - P234
재미있는 책을 읽다 보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책과 읽는 사람만 남듯이, 그는 오로지 혼자서 세계와 마주해 있다. 그순간 세계는 광활하지도 복잡하지도 불가해하지도 않다. 손아귀에 잡히는 말랑말랑한 육체처럼 세계는 그를 응시하고있다. - P236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이 또다른 사람은 누구인지 그는 모른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그는 그들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렇게 묵묵히 바라보는 그 사람을 다시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본다. 그, 다시 바라보는 그 사람을 더 물러서서 바라본다. - P236
마침내 양파 껍질을 다 벗기고 나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더 이상 벗길 것이 없는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창을 열고 뛰어내릴 것이다. 살아오면서 줄곧 그래왔듯이, 그는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 P237
그는 눈을 감았다. 델 것 같은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입술과 턱을 적신 그 눈물은 억센 힘줄이 드러난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 러닝셔츠로 번졌다. 바로 그 순간으로 인하여 그의 삶이 바뀌었으나, 그는 아직까지 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 채 무수한 그림자들의 춤추는 곡선 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 P239
떠난 사람 욕만 했지, 정작 나헌테 있는 생명은 지킬 줄 몰랐어요. - P255
맵싸한 감각이 그의 목구멍 안쪽에 느껴졌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겠지만, 그 스님이 눈물을 흘린 까닭을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다면 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더 이상 연등회를 보지 못하는 때, 그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말할 수 없다면. - P262
그냥 앞으로 가.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를 그는 등 뒤에서 들었다. 괜찮아, 그냥 앞으로 걸어가. - P264
나무들이 바라보는 쪽은 언제나 햇빛이 드는 쪽이다. - P266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해도 이 몸은 부서질 것이요 부드러운 옷으로 감싸도 목숨은 끝이 있는 것 - P279
젊었을 때 분심들을 내라구. 늙어 힘 없으면 공부도 안 돼. - P281
잘 기억해두라구. 행자 때 발심, 행자 때 공덕으루다 평생을파먹고 살 테니. - P281
살아서는 속가의 반연을 끊고, 죽어서는 육신도 태워 산중에 뿌리는 게 중이다. - P282
그게 싫으면 언제라도 돌아가거라. - P283
논두렁을 베고 죽을 각오가 돼 있어야 진짜 중이야. - P283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동안 그는 그의 몸속에 미처 상상못 했던 많은 기억들이 들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감정에 육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후회나 슬픔, 분노는 물론 사소하고 자질구레해 보이는 감정들에까지 구체적인 생김새와 감각이 있었다. - P284
신기한 것은, 순서 없이 떠오르는 그 기억들 속에서 어떤 감정이 솟아났을 때 그것을 잠자코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래서 그 감각과 생김새를 찬찬히 헤아리고 나면 어느 사이 그것이 사라져 있곤 한다는 것이었다. 사라지고 난 밝고 빈 마음속에서 그는 잠시 쉬었다. 다시 기억이나 감정이 솟으면 그것을 들여다보았고, 사라지고 나면 다시 쉬었다. 선방에서 나와 잠시 경내를 걸을 때면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폭우에 씻긴 듯 또렷해져 있곤 했다. - P284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 P300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남자는 들었다. 볼 수도 냄새 맡을 수도 고통을 느낄 수도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승의 소리들은 귓전에 머물 것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태중에서 소리부터 듣게 되는 것과 같이. - P303
바다는 참 무섭다・・・・・・ 아무도 없고. 안경 쓴 아이가 속삭이듯 상고머리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난 그런 게 좋다. - P324
난 말야, 살다 보면 결국은 나밖에 안 남을 것 같거든.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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