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저자를 통해 데이터의 본질과 그 속성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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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반적인 다른 책들의 구성과는 조금 다르게 맨 앞부분에서 본문에 나오는 핵심 메시지들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시작한다. 이러한 구성 덕분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들어갔을 때 접하는 내용들이 좀 더 익숙하게 느껴졌다.

맨 처음 본문에 나오는 내용은 데이터 분석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필요한 정보들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데이터 분석의 목적을 크게 4가지 정도로 나눠서 독자들에게 말해주는데 단순히 목적에 따른 역할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역량들이 무엇인지 까지도 간단명료하게 알려주어서 독자들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그러한 역량들을 준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데이터를 측정하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리가 데이터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것은 단순히 그 행위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그 측정한 데이터에 기반하여 우리가 해결하고자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함이다.

이러한 데이터 분석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과학 분야의 마케팅 뿐만아니라 자연과학분야의 실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최대한 잘 풀어내기 위해서는 측정하려는 데이터의 속성이 문제해결에 목적적합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 측정값 또한 가급적 정확해야 한다.

오늘 포스팅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포스팅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좀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데이터를 세상에 있는 존재, 일어난 사건, 어떤 순간의 상태,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지 않도록 해석을 고정하려고 애쓴 정보라고 정의할 때, 결국 데이터는 세상에 관한 것이므로 데이터 과학자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 P2

어려운 내용을 어려운 언어로 말하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어려운 내용을 쉬운 언어로 풀어쓰는 것은 전체를 조망하는 혜안과 긴 시간에 쌓인 내공을 필요로 한다. - P2

가장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선택하는 능력이며, 이는 그 무엇도 넘볼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 P3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데이터의 역할을 정의하자. 즉, 데이터와 관련해서 나의 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데이터에 관한 공부의 목적성이 분명해진다. - P10

내가 데이터 수집 전문가인지, 수집된 데이터를 갖고서 분석을 하는 전문가인지, 마케터로서 분석된 데이터를 갖고서업무에 활용하려는 사람인지 이를 분명히 할 때, 데이터 사이언스와 관련해서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가 결정된다. - P10

빅데이터든 스몰데이터든 얼마나 양질의 정제된 데이터를 갖고서 분석하느냐가 더 좋은 결과를 담보한다. 양질의 데이터 100개가 이것저것 섞인 데이터 100만 개보다 더 낫다. - P11

분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데이터의 수집이다. 수집이 잘못되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서 뛰어난 대가가 와서 분석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쓸모가 없어진다. - P11

데이터 분석은 어쨌든 모집단의 일부를 갖고서 분석하는 것으로 아무리 양질의 데이터이고, 많은 양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에 가까운 추정치일 뿐이다. 그래서 데이터 없이 분석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 P12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데이터 분석 여부와 분석 방법 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양의 데이터 다룰 줄 아는 능력보다 언제 써야 하는지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능력이다. - P12

데이터 분석이 어려운 항목은 대체 지표를 개발해서 분석을 할 때가 있다. 학습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대체 지표로 시험 성적을 활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시험 성적이 학습 능력을 100% 반영한 진실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 또한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데이터 사이언스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은 관둬야 한다. 의사결정을 돕는 도구일 뿐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12

데이터 분석을 할 때 자주하는 실수 중 하나가 ‘나의 데이터‘ ‘남의 데이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온갖 데이터(결과적으로 빅데이터)를 갖고 오다 보니 문제 해결에 전혀 상관없는 ‘남의 데이터‘가 마치 ‘나의 데이터‘처럼 취급될 때가 있다. 쓰지 않아도 될 시간과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다. - P13

‘나의 데이터‘인지, ‘남의 데이터‘인지를 잘 구분하기 위해서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정의를 잘 내려야 하고 문제 안의 변수들 사이의 관계 파악도 잘해야 한다. 결국 비즈니스 경험에 바탕을 둔 판단이 중요하다. - P13

분석 결과가 만능일 수는 없다. - P13

가능성의 오차 범위 - P13

확률이란 ‘예측‘이 아니라 ‘관리‘의 의미가 있다. ...(중략)... 확률에 따라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이다. - P14

데이터는 과거의 발자취일 뿐이다. 예측할 수 없다. 빅데이터를 분석한다는 것은 예측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패턴을 찾기 위한 것이다. - P14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나오는 결과는 변수들 사이에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것이지, 인과관계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 P14

데이터 분석에만 치중하다 보면, 상식적인 판단이 헷갈려 엉뚱한 진단을 하는 수가 있다. 그래서 풀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통찰을 선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 P14

통찰은 결국 비즈니스 경험에서 나온다. 그리고 통찰이라는 것 역시도 조건과 경험에 따라 내용은 달라진다. 절대 진리는 없다. - P14

데이터 리터러시는 "데이터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무수한 문제들에 우리는 감정적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데이터 리터러시가 부족해서 그렇다. - P15

리터러시 역량을 키우는 방법은 해결하려는 문제의 주어진 상황이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는 것이다. - P15

필요한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상황을 이해하고, 맥락을 유추하는 과학적 사고를 포함한 인문학(리버럴 아트)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 P15

기술의 진보는 생각 이상으로 빠르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빅데이터는 향후 몇 년 뒤에는 스몰 데이터 수준이 될 수도있다. 그러니 빅데이터를 만능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P15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이 반드시 진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 말은 집단 지성이 언제나 진리는 아니라는 말과 같다. 지금의 여러 데이터가 편향된 것이라면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 또한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 P15

인공지능은 주어진 데이터의 학습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알고리즘일 뿐이다. - P15

데이터 분석 모델링(시스템 설계)을 할 때는 필요로 하는 데이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측정하기 쉬운 데이터를 선택해야 한다. - P16

시스템 설계의 핵심은 시간을 줄이고, 비용을 줄이고, 품질을 높이는 것이다. 다만, 이 셋을 동시에 해결하려다 보면 추후 결과 값 분석에서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가리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동시보다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다. - P16

무조건 데이터 사이언스 기법만이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P16

데이터 분석이 보장하는 것은 답의 진실성이 아니라, 데이터의 대표성임을 잊지 말자. - P16

분석 이전의 문제의 본질을 봐야 - P17

기술에만 빠져서 문제의 본질 읽기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 P17

문제의 본질을 읽는 것. 그래서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도구를 쓸지 결정하는 능력. 그것이 곧 인문학(리버럴 아트)적 능력이다. - P17

데이터 분석을 배우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가 어떤 상황 때문인지를(어떤 필요가 있는지)파악하는 것부터다. 왜냐면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의 데이터 사이언스의 목적에 따라 필요로 하는 요소들(분야나 익혀야 할 기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P25

데이터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사람

데이터로만 문제 해결이 가능한 분야와 이를 해결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즉, 데이터 분석을 해야만 문제가 풀리는 경우이다. 국가의 인구나 주식, 경상수지 같은 각종 경제 지표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통계청이라든가,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물질의 성질을 정의하는 실험 물리학자들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부류에 있는 분들의 1차 목적은 "분석 그 자체"이다. - P27

데이터 사이언스를 다루는 이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속담(?)이 "Garbage In, Garbage Out" 이다. 아무리 분석 방법을 잘 알고 분석 실력도 출중하더라도 분석 데이터의 질이 좋지 않으면, 좋은 분석이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분석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데이터의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석하려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고 기초적인 통계 지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통계 패키지(분석 프로그램) 사용 능력까지도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 P28

데이터로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통계 패키지를 사용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R(통계 계산과 그래픽을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오픈 소스이며 무료로 사용 가능)도 괜찮고, 누구나 쓸 줄 아는 엑셀도 괜찮다. 충분히 좋은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가공할 수 있는 익숙한 툴만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분석을 할 수 있다. 연장을 탓할 필요는 없다. - P28

데이터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이미 어떤 형태로든 데이터화 된 정보를 다루는 사람을 뜻한다. 이미 자료는 데이터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데이터가 어디서 왔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 데이터를 구조화(DB화) 하느냐?"와 "어떻게 원하는 유효한 값들을 신속하게 계산할 것인가?" 이다. - P29

사실상, 이 영역(데이터의 문제를 해결하는 영역)은 데이터 과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영역에 가깝다. 특히 데이터 분석을 다루는 범용 패키지나 커스터마이징 된 모듈을 다루는 분들이 이런 일을 한다. 그래서 이쪽 분야에서는 당연히 전산학computer Sciences 관련 기술을 필수적으로 본다. 여기에는 데이터베이스 Database, 분산 컴퓨팅 Distributed Computing, 데이터 마이닝 Data Mining과 같은 데이터 처리 관련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기술들은 데이터를 현란하게 다룰 줄 아는 프로그래밍 기술(코딩 능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분야도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통계 이론을 알면 좋다. 정리하면, 통계학적 이론과 이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최고 능력자로 대우받을 수 있다. - P29

데이터로 설득하려는 사람

(중략) 쉽게 이야기해 장사하려는 사람들이다. 즉,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맨이거나 마케팅 담당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다룰 줄은 알지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보여주는 것, 시각화visualization 능력이다. 보통 데이터의 시각화를 이야기하면, 연관 검색어 보여주기 혹은 시각화 기능이 뛰어난 R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보다 범용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인포그래픽스 Infographics이다. - P30

이분들(데이터로 설득하려는 사람)에게는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보편적인 지식도 필요하겠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예술적 감각이다. 한 때는 인포그래픽스나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와 같은 용어가 빅데이터와 함께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산업디자인 쪽에서는 오래전부터 다뤄왔던 주제이다. 그래서 산업디자인 관련 지식을 갖고 있다면 큰 도움이 되고, 데이터를 갖고서 시각화하는 소프트웨어까지도 쓸 줄 안다면 능력자라봐도 된다. 참고로 엑셀도 괜찮은 데이터 시각화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엑셀은 정말 못하는 게 없다). - P30

데이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

(중략) 데이터를 다루는 전공자는 아니지만, 데이터 사이언스에 관심을 갖고서 이를 자신의 영역에 적극 사용하고자 하는 분들이다. 이분들은 데이터 사이언스 내지는 데이터 분석까지 자신의 영역에서 사용하고자 한다. 전산학이나 통계학이 아닌 분야에서 말하는 데이터 관련 이야기들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 P32

이분들(데이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이나 통계학적 지식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문제란 데이터를 통해 밝히고자(풀고자) 하는 어떤 사안을 말하며, 이를 위해서는 통계적 가설을 설정하고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설에 따라 수집해야 할 데이터가 결정되고, 이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과정에 해당한다. - P32

데이터 사이언스를 사용한다(혹은 학습한다)는 것은 데이터를 이용해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발생한 특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이다. 문제의 본질은 데이터 사이언스를 통해 알려고 하는 것, 데이터 사이언스를 통해서 하려는 정확한 의사결정이 무엇인가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에 따라 해야 하는 일(나아가 내가 해야 하는 공부)이 달라진다. 그것은 데이터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통계 처리가 될 수도 있고, 데이터 처리와 관련된 컴퓨터 기술 습득이 될 수도 있다. - P33

데이터 사이언스를 업으로 하는 이들 대부분은 "데이터로문제 해결을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퉁쳐서 말하지만, 사실상 대부분은 "데이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에 해당한다. 즉,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데이터 관련 문제들은 분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를 이용한다 정도로 보아야 한다. - P34

이즈음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이 "과연, 내가 갖고 있는 문제는 꼭 데이터로만 해결이 가능한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데이터 사이언스가 반드시 필요한가?" 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데이터 분석이든 뭐든 시작하기에 앞서, 문제의 본질부터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단추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위의 질문 "꼭 데이터로만 해결이 가능한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 P34

데이터 분석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분석(혹은 측정)‘ 자체가 목적인 경우, 또 하나는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인 경우이다. - P35

수요 예측은 사실 예측을 하는 것 자체에 목적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공급망 운용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수요 예측은 원래 문제를 풀기 위한 준비 작업에 해당한다. - P36

소셜 마케팅에서의 데이터 분석 또한 마찬가지다. 연관 검색어를 분석하고 사용자가 몇 번 클릭했는지 집계하는 이유는 데이터 분석으로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자 함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고객 확보가 원래의 목적이다. 즉, 데이터 분석 과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공적인 마케팅 전략 수립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문제는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데이터를 잘 분석하느냐가 아니라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고객의 어떤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 수집해서 분석하는가?" 이다. - P36

어떤 식으로든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읽을(측정)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데이터 사이언스는 과학이나 공학실험에서 말하는 "측정"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 P36

대부분의 물리실험은 자연 현상을 측정하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실험에서 이러한 측정은 측정 자체가 목적인 것보다 원래 가지고 있던 문제 해결을 위한 선작업일 때가 훨씬 많다. 그래서 이쪽 연구를 하는 많은 공학도들은 어떻게 하면 정확한 측정값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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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 이어서 ‘근친상간‘에 대한 얘기가 계속 나온다. 지난번 포스팅에선 유전적인 문제를 주로 다뤘다면 오늘은 문화적으로도 금기시되어 있는 ‘근친상간‘에 대한 얘기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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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근친상간과 관련하여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두 가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혔다. 하나는 앞선 포스팅에서도 잠깐 나왔던 웨스터마크 가설이다. 쉽게 말해 이것은 유전적인 원인으로 인해 근친상간을 피하라고 하는 가설이다. 한편 이에 반하는 가설은 바로 정신분석학으로 유명한 프로이트의 가설이다. 프로이트는 앞서 언급한 가설인 웨스터마크 가설과는 달리 유전적인 본능(성욕 또는 욕정)으로는 근친상간을 하려는 본능이 사람들 안에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러한 본능을 억제시키기 위해 사회문화적인 금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본다.

프로이트의 이런 생각은 영국의 고전학자인 ‘제임스 프레이저‘ 라는 사람의 생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유전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피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굳이 인위적인 법 등을 만들어서 금기시할 필요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독자인 나도 이러한 논리에는 상당부분 수긍이 되었기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판단은 조금은 섣불렀던 것 같다. 이어지는 글에서 프로이트 계열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론체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웨스터마크 효과의 논리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참 이런 걸 보면서 단순히 논리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현실에서는 외적인 세력의 힘을 결코 간과할 수 없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는 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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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상간과 관련된 논의가 담긴 8장이 끝나고, 이어지는 9장에서는 사회과학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저자가 자연과학자라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으나 자연과학이 사회과학에 비해 우월하다는 뉘앙스가 많이 느껴졌다. 만약 사회과학분야의 관계자들이 이 파트를 읽는다면 저자에 대한 반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자의 얘기가 딱히 틀리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독자인 나야 관련 학계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하니 저자와 같은 자연과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이 서로 자신이 옳으네 그르네 혹은 우월하네 열등하네 하면서 왈가왈부하는 것에 딱히 관심은 없지만 말이다.

사촌 간의 결혼은 많은 사회에서 허용되거나 심지어 장려된다. 특히 그런 결혼이 집단의 응집성에 도움을 주고 부를 굳건히 해 줄 때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형제자매 간의 결혼과 이복 형제자매 간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다. 이 금기는 의식적인 고안물이다. 단지 본능적인 반응이 아니며 세부 사항들은 사회마다 상당히 다르다. 많은 문화에서 이 금기는 친족분류와 족외혼 계약과 뒤섞여 있다. - P311

선사 시대의 사회에서는 근친상간이 식인 풍습, 흡혈귀에 대한 믿음, 악한 마녀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 P311

근대 사회는 근친상간을 막는 법을 제정한다. 1650년부터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1660년까지 호민관 시대에 영국에서는 근친상간의 당사자들이 사형에 처해졌다. 1887년까지 스코틀랜드에서는 실제로 무기 징역에 처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명목상으로는 사형에 처해진 것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벌금이나 징역으로 처벌될 수 있는 중죄로 취급되어 왔다. 성적인 아동 학대가 만일 근친상간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용서 받기 힘들었다. - P311

근친상간 금기는 우리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간의 경계 지역으로 다시 한 번 인도한다. 그 금기가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생물학적인 웨스터마크 효과와 문화적인 근친상간 금기는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가? - P312

프로이트에 따르면 친족 이성 간의 욕정은 근본적이고 강제적인 것으로서 그 어떤 억제 본능보다 강하다. 그러한 근친상간과 그로 인해 가정을 풍비박산 나게 하는 재앙을 막기 위해 사회는 금기라는 것을 고안해 냈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거대 심리학 체계의 일부로서 발전시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는 그런 욕망들 중 하나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어머니와의 성관계를 통해 쾌락을 느끼기를 열망하면서 자신의 경쟁자인 아버지를 미워하는 아들의 해결될 수 없는 욕망이다. - P313

그(프로이트)는 1917년에 "남성은 어머니와 누이를 향해 정기적으로 근친상간적인 선택을 한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나서 최초로 하는 선택이다. 그리고 이런 끈질긴 유아기적 성향이 실행되는 것을 막으려면 가장 엄중한 금기가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P313

프로이트는 웨스터마크 효과를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일축해버렸다. 그는 정신 분석의 결과들이 그런 현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이런 비판은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의 저자이며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고전학자인 제임스 프레이저(James Frazer)의 생각에 상당히 기대어 있었다. - P313

프레이저는 만일 웨스터마크 효과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금기는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뿌리 깊은 인간의 본능이 왜 법을 통해 강화될 필요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 P313

프레이저에 대한 웨스터마크의 대응은 단순했지만 동등하게 논리적이었으며 많은 후속 증거들을 통해 지지되었다. 하지만 정신 분석이론의 위세에 눌려 무시되고 말았다. - P313

웨스터마크는 개인들이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 부모와 형제자매에 대해 성적으로 무관심하다. 하지만 종종 그들과의 성관계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은 구역질이 난다! 근친상간은 일종의 억지이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함께했으며 내 자신의 복지를 위해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결속들을 변화시키거나 파괴해 버린다. 이것을 확장하면 다른 사람이 근친상간을 범하는 것도 나는 역겹다. 물론 그들도 나와 같은 입장이다. 그래서 드물게 일어나는 그러한 사건들은 비도덕적이라고 비난받아야 한다. - P314

프로이트를 비롯한 일군의 영향력 있는 사회 이론가들은 왜 그 효과를 그토록 무시했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웨스터마크 효과가 사회 이론 분야의 주요 진보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것이었고 근대 사상의 토대를 위태롭게 했기 때문이다. - P314

"프로이트는 만일 웨스터마크가 옳다면 그 자신은 틀렸음을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초기 유아기의 관계로 인해 서로 간의 성적 관심이 억눌린다는 견해 (웨스터마크 효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기초, 성격 역동성(personality dynamics) 개념, 신경증에 대한 설명 그리고 법, 예술, 문명의 기원에 관한 그의 거대 이론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거부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_아서 울프 - P314

웨스터마크 효과는 다른 배들도 위태롭게 만들었다. 사회 규범이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근친상간 금기는 도덕성의 진화에 대해 어떤 함의를 지니는가? 이것은 사소한 문제들이 아니다. - P314

정통 사회 이론에 따르면 도덕성은 대체로 양식과 관습으로부터 구성된 의무 규약이다. 하지만 웨스터마크는 기존의 윤리학에 대해 도덕 개념이 선천적인 감정에서 도출된다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 P314

근친상간 금기의 문제는 적어도 윤리 이론들이 충돌하는 대목에서는 경험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실제로 웨스터마크와 프로이트 중 한 사람만 옳았다. 현재의 증거들은 웨스터마크 쪽으로 강하게 기울고 있다. 근친상간 금기는 단순히 개인적 선호에 문화적 규약을 덧입히는 것 이상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근친 교배의 결과를 직접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자식들이 자주 결함을 가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식할 수 있다. - P315

웨스터마크 효과는 모든 영장류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성적 둔감 현상으로서 인간의 경우에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성적 성숙기로 접어든 젊은 개체들이 자신의 집단을 떠나는 현상도 영장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인간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청년기의 바람기나 족외혼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 P316

도대체 합리적 선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안적인 정신적 시나리오들을 궁리해 보다가 최강의 후성 규칙을 만족시키는 시나리오를 문득 찾게 되는 그런 것이리라! 인류가 수십만 년 동안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게 된것도 이런 규칙들 그리고 그 규칙들의 상대적 힘의 위계 때문이다. - P316

근친상간 회피 현상은 유전자 · 문화의 공진화의 한 가지 사례로만 국한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이 사례는 유전자 · 문화 공진화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 행동의 전반까지 엮어내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 P316

사람들은 사회과학ㅡ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그리고 정치과학ㅡ에서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미래를 통제할 지식을 기대한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건들의 예정된 전개가 아니라 우리가 특정한 행위 과정을 선택했을 때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하고자 한다. - P317

의학자들은 분자생물학과 세포생물학의 정합적 토대를 믿는다. 그들은 건강과 질병의 요소들을 생물학·물리학· 화학의 수준까지 내려가서 연구하고자 한다. 그들이 수행하는 개별 연구 프로젝트의 성패는 근본 원리들에 입각한 실험 설계를 얼마나 잘했느냐에 달려 있다. 즉 그들은 전체 유기체에서 분자까지 이르는 순차적인 생물 조직의 모든 수준들에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근본 원리들을 사용하고 있다. - P319

사회과학자들은 대체로 자연과학을 통일시키고 이끌어 가는 지식의 위계성 개념을 일축한다. 그들은 독립된 칸막이에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 놓고 각자의 방에서만 통하는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려고만 하지 그런 작업을 좀처럼 다른 방들로 확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당수의 학자들이 이런 전반적인 혼돈 상태를 즐기면서 그것을 창조적 효소쯤으로 착각하고 있다. - P319

어떤 이들은 당파적인 사회 운동을 추구하면서 개인적인 정치 철학에 이론을 복속시키고 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사회과학자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나 사회다윈주의의 극단적 형태를 수용해 왔다. 오늘날은 자유 방임형 자본주의에서부터 극단적 사회주의까지 이념의 시장이 매우 넓어졌으며, 소수의 입장이기는 하지만 객관적 지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문제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상대주의도 등장했다. - P319

그들(사회과학자들)은 부족적 충성심에 쉽게 속박된다. 사회과학 이론의 가르침 중 많은 것들은 아직도 창시자들에 얽매여 있다. 만일 과학의 진보를 그 창시자들이 얼마나 빨리 잊혀지는가로 측정한다면 이런 상황은 좋지 않은 징조이다. - P319

《옥스퍼드 철학 사전(The Oxford Dictionary of Philosophy)》에서 사이먼 블랙번(Simon Blackburn)은 교훈적인 사례를 하나 제시했다. "소쉬르를 따르는 기호론(semiotics) 전통은 가끔씩 기호학(semiology)으로 지칭된다. 하지만 혼란스럽게도 크리스테바(Kristeva)의 책에서는 이 용어가 자아의 유아적인 일부가 비합리적으로 발산되는 경우를 지칭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비판 이론, 기능주의, 역사주의, 반역사주의,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분야들을 통해서도 계속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냉정하게 거절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 이론의 함정 속에 빠지게 된다. 20세기에는 그 함정 속으로 그렇게 많은 학문의 세계가 사라졌다. - P320

문제는 사회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인간 생물학과 심리학의 물리적 실재 속에 단 한번도(이 단어가 그렇게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끼워 넣어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물리적 실재는 존재하며 문화는 어떤 별천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 P320

사회과학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회과학은 본래 물리학과 화학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에 물리학과 화학을 그렇게 부르기보다 사회과학을 경성 과학(hard sciences)이라고 불러야 한다. 언뜻 생각하면 우리가 광자, 글루온 그리고 황화 라디칼(sulfide radical) 하고는 이야기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사회과학이 더 만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과학 교과서들을 대부분 진부하다고 여긴다. - P320

친숙함은 편안함을 주고 편안함은 부주의와 실수를 낳는다. - P321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심지어 제도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등을 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그들은 잘못된개념들에 젖은 상식에 입각하여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이른바 통속 심리학(folk psychology)ㅡ아인슈타인은 이것을 "18세까지 배운 모든 것"이라고 정의했다.ㅡ을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개발된 개념들에 비해 그저 조금 발전된 논의들일 뿐이다. - P321

세련된 수학 모형을 오랫동안 사용해 온 사회 이론가들도 똑같이 통속 심리학에 만족해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과학적 심리학과 생물학의 발견들을 무시한다. 사회과학자들이 공산주의적 원칙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인종주의적인 적개심의 힘을 과소평가했던 이유가 부분적으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압력 밥솥 뚜껑이 퍽 하고 열리듯이(구)소련이 붕괴했을 때 정말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런 에너지의 갑작스러운 방출이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가 몰락해 가고 있었던(구)소련의 영토에서 벌어진 인종 싸움과 민족 분쟁이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 P321

사회 이론가들은 민족성으로 불타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계속해서 잘못 판단해 왔다. 당장 미국에서만도 그들은 (구)소련의 붕괴를 예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 원인들에 대해서 일치된 견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과학자 전체는 인간 본성의 토대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으며 그본성의 뿌리 깊은 기원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P321

사회과학은 강력한 역사적 전례의 잔재에 발목이 잡혀 있다. 사회과학의 창시자들은 고의적으로 자연과학을 무시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예컨대, 에밀 뒤르켐, 카를 마르크스, 프란츠 보애스(Franz Boas),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그의 후계자들이 전부 그런 입장을 따랐다. 그들은 초창기 자신들의 학문 분야를 생물학과 심리학이라는 기초 과학으로부터 분리하려고 애를 썼다. - P322

사실 초창기의 사회과학은 다소 소박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사회과학과 생물학 · 심리학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했다. 이런 입장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당시의 사회과학자들은 자연과학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문화와 사회 조직의 양상에 대해 왕성한 연구들을 시작했으며 사회 행동의 법칙들을 만들어 갔다. 그러나 이런 개척기가 끝난 후에 그 이론가들은 생물학과 심리학을 아예 팽개치는 실수를 범하기 시작했다. 인간 본성의 뿌리를 외면하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일 수 없는 데도 말이다. - P322

사회 이론가들은 사회과학의 또 다른 풍토병 때문에 자연과학과의 만남을 저지당했다. 그것은 정치 이념이다. - P322

정치 이념의 효과는 미국 인류학계에서 특히 분명하게 나타났다. 프란츠 보애스는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와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라는 걸출한 제자들의 도움으로 당시의 사회다윈주의에 내재된 우생학과 인종주의에 대항하여 십자군 역할을 자처했다. (이런 인식 자체는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특정 도덕적 기치로 둔갑하더니 그들은 우생학과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를 넘어 문화상대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이끌어 냈다. - P322

‘문명화된‘ 사람이 다윈적인 생존 투쟁에서 ‘원시적인‘ 사람을 이겼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 간의 차이가 역사적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그들의 유전자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믿음도 거짓이다. 게다가 문화는 엄청나게 복잡하며 환경에 잘 적응된 상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가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진화한다는 생각은 오해이며 문화적 다양성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옳지 않다. - P323

보애스를 포함해 영향력 있는 인류학자들은 모든 문화가 상이한 방식으로 동등하다고 믿으면서 문화상대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구미 사회에서는 정치적 다문화주의(political multiculturalism)가 맹위를 떨쳤다. 또한 소수 인종, 여성, 동성애자도 다수자들이 누리는 하위문화와 동등한 지위를 갖는 그들만의 하위문화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게 되면서 문화의 통합이라는 개념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여럿에서 하나로"라는 미국의 표어는 "하나에서 여럿으로"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런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s)이 개인의 시민권을증대시키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했다. - P323

인도주의적 목표를 통해 확고해진 많은 인류학자들의 본능은 생물학에 대한 그들의 반대 입장을 좀 더 공고히 하면서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지지를 더욱 강화시켜 나갔다. - P323

문화상대주의는 인종 집단들 간의 유전적인 행동 차이가 있다는 믿음ㅡ물론 이런 믿음은 증명되지 않았으며 이념적으로도 위험한 발상이다.ㅡ을 부정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결국에는 유전에 기초한 통합된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반대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해서 인간 조건에 대한 커다란 수수께끼가 생겨났다. 문화나 유전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성을 통합해 주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 P323

만일 윤리 기준들이 문화를 통해서 형성되는데 문화는 끝없이 다양하고 동등하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신정(神政, theocracy)이나 식민주의, 아동 착취, 고문, 노예 제도를 반대할 수 있겠는가? - P324

생물인류학(biological anthropology) 연구자들은 문화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유전 역사의 산물이며 그런 역사의 영향을 받은 개인의 결정으로 매 세대마다 새로워진다고 설명한다. 한편, 문화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 연구자들은 문화가 유전적 역사와는 대체로 상관없는 고차원적 현상이며 실제적으로 어떤 제한도 없이 사회마다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 P324

생물인류학적 관점은 「스타워즈」와 같은 시리즈 영화와 맥을 같이 하는데, 왜냐하면 거기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이 그 물리적 외형은 다르나 오히려 확고부동한 인간성으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 P324

반면 문화인류학적 관점은 오히려 「외계의 침입자(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류의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 여기서 등장인물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외계인의 본성을 갖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보여 준 영화는 「인디펜던트 데이」이다. 그 영화에 따르면 만일 인간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외계인이다.) - P324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변이와 문화적 변이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다양성을 생물학화하거나 본질화하는 일은 거부한다." - P324

그들(문화인류학자들)은 과학이 다양한 유형의 사고방식들 중에 하나이며 다양한 지적문화 중에서 하나의 훌륭한 하위문화일 뿐이라는 극단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인다. - P325

현대 사회학은 인류학보다 자연과학에서 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사회학은 사회학자 자신이 속해 있는 복잡한 사회에 관한 일종의 인류학적 탐구라고 해도 된다. 반대로, 인류학은 인류학자 자신이 속해있지 않는 좀 더 단순하고 동떨어진 사회에 대한 일종의 사회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연구 주제 측면에서 보면 사회학은 가계 수입과 이혼율의 관계 등을 다루고 인류학은 신랑의 결혼 지참금 등을 다룬다. - P325

근대 사회학은 정확한 측정과 통계적 분석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 P325

학계의 사회학자들은 대개 문화 연구 스펙트럼에서 생물학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 P325

자연과학의 분석 방법에 대단한 재능을 가진 탁월한 주류 이론가인 시카고 대학교의 제임스 콜먼 (James S.
Colema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과학이 설명해야 할 것은 사회현상이지 개인의 행동이 아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회 현상이 직접적으로 개인 행동의 합으로 유도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예외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초점은 설명되어야 할 사회 체계에 맞춰져야 한다. 그 규모는 양자 관계에서부터 사회, 심지어는 세계 체제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명의 초점이 하나의 단위로서의 체계에 있지. 개인 혹은 그 체계를 만드는 다른 구성 요소들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 P326

생물학은 여러 수준의 조직들에 걸쳐 일어나는 인과 관계들을 추적하는 과학으로서 뇌와 생태계의 수준에서 원자 수준까지 모든 것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도대체 왜 사회학은 뉴런에서 사회까지를 관통하는 전망의 인도를 받아서는 안 되는가? 그러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는 없다. - P326

컬럼비아 대학교의 로버트 니스벳(Robert Nisbet)은 고전 사회학에 대한 평가를 내리면서 사회학이 과학보다는 개념적으로 웅장한 하나의 예술로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니스벳은 위대한 예술의 목표는 개인적 필요 또는 심지어 철학적·종교적 아이디어의 충족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또는 예술가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종합적이며 내적으로 일관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의 말을 인용한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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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거의 2주만에 다시 읽는다. 2주 전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이전까지 있었던 다섯번의 대멸종 역사를 정리해서 보여줌과 동시에 공통된 원인들을 간단하게 분석했었다.

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이전까지의 대멸종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생명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한 것이었지만, 앞으로 발생하게 될 여섯 번째 대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 촉발될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이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보태자면 인간이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난도질한 환경의 변화가 생태계의 파괴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기후변화가 발생하여 또다른 생태계를 파괴하는 식으로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환경을 오염시켰기에 발생하는 것으로써 외부적인 원인이 아닌 인간 스스로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제 더이상 친환경을 그저 말로만 떠드는 구호정도로만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단은 나부터 그리고 우리 가족부터 친환경적인 행동을 하는데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환경에 플러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마이너스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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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중간 부분에서 지구가 인류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남긴 글이 나오는데,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지구를 걱정할 게 아니라 우리 인류를 걱정하라는 지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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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사냥을 하며 살던 구석기인들이 농사를 짓고 정착하며 사는 신석기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보면서는 본문에 언급된 구석기와 신석기의 생존방식이 마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산주의도 그렇고 자본주의도 그렇고 각각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존재했었거나 존재하고 있는 방식인데, 본문에 나오는 두란이라는 사람의 말을 통해 현존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본문의 비유에서도 잠시 언급됐듯이 공산주의의 경우 먹을 것이 아예 사라질 경우에는 그 체제가 지속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는 공산주의 방식이 아닌 자본주의 방식이 현실적으로 맞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구석기 시대의 사냥 방식이 아닌 신석기 시대의 마을 중심의 농경 사회를 선택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와 관련한 내용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에는 두란이 언급한 구석기 방식은 멸종하고 아란이 언급한 신석기 방식이 살아남는 것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란이 언급했던 자본주의의 폐혜들이 실제로 나타났다는 얘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것도 결코 완벽한 체제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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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지는 내용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뇌의 용적과 그에 따르는 에너지 효율에 관한 이야기였다. 핵심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뇌가 다른 신체기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인류의 신체 기관들이 진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결국엔 모두 자연 선택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최선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그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본문에 나온 말 중에 ‘더 강한 힘은 거저 생기는 게 아니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참 당연한 듯 보이지만 뒤이어지는 글에서 ‘에너지를 더 얻기 위해 사냥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대가지불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나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절대로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는 이전 다섯 번의 대멸종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화산 폭발, 소행성 충돌, 기후의 급격한 변화와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촉발된 이전의 대량 멸종과 달리,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은 전적으로 인간 활동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지구의 생물학적 유산을 형성하는 데 인간이 전례 없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P107

현재 진행 중인 멸종의 원인으로는 광범위한 서식지 파괴, 사냥과 낚시를 통한 생물 종의 과도한 착취, 대기·수질·토양 오염, 지역 생태계를 교란하는 침입종의 유입 등 인간이 유발한 요인들이 있다. 또한 인위적인 기후변화는 많은 생물 종이 적응할 수 있는 속도보다 빠르게 서식지와 환경을 변화시켜 생물 다양성의 손실을 가속화하고 있다. - P107

생물 주도의 멸종은 지구 자연사에 유래 없는 사건이다. 환경이 생물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인간, 즉 생물이 환경을 심대하게 바꾸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는 오로지 인류의 책임이다. - P107

원래 그곳에 살던 생물 종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자연환경이 변형되거나 파괴될 때 ‘서식지 파괴‘라고 말한다. 서식지 파괴는 모든 대멸종에서 중요한 원인이다. - P107

그 어떤 생명체도 배불리 먹지 않았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량을 섭취했다. 그러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는 필요 이상으로 배불리 먹으면서 ‘남획‘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 P108

모든 생명은 자기의 서식지 안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았다. 하지만 인류는 의도했든 아니든 천적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 외래종을 유입시켰다. 외래종은 토착종과 경쟁하거나 포식했고 새로운 질병을 가져와 토착종을 감소시키고 멸종을 유발했다. 인간이 도입한 침입종은 생태계의 구조와 구성을 변화시켜 생태계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 P108

인류가 끼친 가장 큰 영향은 가열이다. 한때 지구인들은 ‘global warming‘을 ‘지구 온난화‘로, ‘global boiling‘을 ‘지구 열대화‘로 번역했다. ...(중략).., global warming은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지구 가열화‘로, global boiling은 지구 열대화가 아니라 끓어오른다는 뜻의 ‘지구 비등화沸騰化‘로 바꿔야 마땅하다. - P110

지구 가열화가 진행되면서 서식지가 변하고 있다. 해양이 가열되고 산성화되고 있다. 태풍, 가뭄, 홍수 같은 극단적인 날씨가 더 빈번하고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인위적인 지구 가열화는 생명 다양성 유지에 중요한 전체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린다. - P110

제(지구) 풍경은 끊임없는 자연의 힘에 의해 조작된 진화적 변화의 넓은 획으로 그려지고 다시 칠해져 왔습니다. 자연이라는 광활한 캔버스에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생명도 그냥 잊히지는 않습니다. 흔적을 남기지요. 여러분은 제게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많은 흔적을 진하게 남겼습니다. 아마도 영원히 간직할 것 같습니다. - P115

혜성과 소행성의 충돌, 화산 폭발, 대륙의 완만한 이동, 기후의 급격한 변화로 일어났던 이전의 대격변에도 지구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변화는 있었지만 항상 견뎌냈습니다. 저는 시간과 자연에 의해 형성된 회복탄력성의 화신입니다. 제 생명은 항상 이전 세입자들이 남긴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나 꽃을 피울 새 세입자를 찾았습니다. - P115

저는 항상 그래왔듯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남겨진 상처의 심각성에 상관없이 적응하고 진화할 것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가 등장할 것이며, 아마도 여러분이 한때 집이라고 불렀던 세상에 대한 기억이 그들의 DNA에 저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 P116

여러분의 얼굴에 남은 물리적 흔적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정신적 유산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 자초한 물길의 잿더미에서 떠오르는 불사조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경고의 메시지가 될 것인가. - P116

저는 생명체의 역동적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에 불과하니 저에 대해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여러분 자신을 걱정하십시오. 생존과 멸종을 결정하는 시소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입니다. - P116

지혜가 여러분의 마지막 행동을 인도하고 여러분 앞에 놓인길을 바꿀 힘을 선사하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인류여, 임이여, 부디 인류세의 강을 건너지 마소서! - P117

하지만 세월은 이길 수 없는 법. - P123

사냥의 기본은 소리 내지 않고 최후의 순간까지 버티는 거라고 - P126

사냥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작은 초식동물이라고 하더라도 사냥하는 일은 어렵다. - P128

집단의 크기가 크니 맡은 일도 각기 다르다. 우리는 모든 일을 다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일을 다 한다는 것은 한 가지 일에 아주 뛰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다. 그러니 마을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 P129

저장을 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장점은 또 있다. 우리는 매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짐승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는 전력을 다해야 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협력이다. 사냥에 필요한 무리가 다 나서야 했다. 남자와 여자 역할이 나뉘지도 않았다. 여자도 사냥에 능숙했다. - P131

사냥을 한 다음에는 공정하게 분배했다. "야, 내가 마지막에 노루의 심장을 찔렀으니, 노루의 내장과 뒷다리는 내 거야!"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냥을 잘하든 서툴든 열심히 하든 농땡이를 치든 추파 같은 우두머리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적당히 나누어 주었다. 모든 이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 P131

저장할 게 없으니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다 같이 배불렀고 다 같이 배고팠으며 도구와 무기를 공유하고 옷도 같이 지어 나누어 입는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딱히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도 없다. 지혜가 있는 사람과 사냥과 채집에 능한 사람이 우리 무리를 이끌기는 하지만 그 권한이 자기 자식에게 넘어가는 게 아니다. 능력에 따라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우두머리였다고 하더라도 늙으면 버려지는 게 당연하다. 사냥하다 죽든, 아파서 죽든, 지혜가 있든, 멍청했든 죽으면 다 똑같이 파묻는다. - P131

두란이 보기에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삶은 달랐다. 그들은 온종일 일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쳐 죽는 사람은 있어도 힘들게 일하다 아파서 죽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일에 시달리다가 아파서 죽는 사람이 있다. - P131

두란의 가장 큰 불만은 먹을 것을 쌓아놓은 곳간의 크기가 집집마다 다르다는 점이었다. 어떤 집 곳간은 크고 어떤 집은 작다. 곳간이 큰 집 사람은 작은 집 사람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동등한 동료가 아니고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당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 P132

도대체 마을 사람들은 이 좋은 수렵 채집 생활을 왜 포기한 것일까? 왜 짧은 노동과 평등한 사회를 포기하고 힘든 농사의 길에 들어선 것일까? 그들이라고 고된 노동과 빈부의 차이 그리고 계급 사회를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 P133

세상이 따뜻해지면서 사람의 숫자가 늘었다. 우리와 짝을 지을 수 있는 다른 무리였다. 사람이 늘다 보니 같이 먹이를 두고 경쟁하는 일이 생겼다. 이건 그래도 서로 잘 피해 가면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 조상들이 찾아다니던 길목에 원래 있던 동물과 열매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이 더워지니 그전에 살던 짐승과 열매들이 달라졌다. 이런 일이 지속되었다. - P134

이렇게 생각해 보면 마을 사람들이 긴 노동 시간과 불평등이 좋아서 농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그들은 환경의 변화에 창의적으로 적응한 사람들 아닌가! 나는 마을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내 삶을 변화시키기로 했다. 이제 동료들과 헤어질 때다. 나는 아내와 함께 나만의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 P134

길을 떠나기 제일 좋은 시간은 해가 뜨기 직전이다. 이때가 가장 서늘하기 때문이다. 서서히 체온을 높이면서 걸어가야 지치지 않는다. - P135

한 해가 지난 후 만나자고 했던 두란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두란뿐만 아니라 우리 집단의 그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 사로잡히거나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짐승 떼와 열매 나무를 찾지 못해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 P136

강 옆으로 펼쳐진 이상한 초록색 사각형 들판은 더욱 넓어졌고 마을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사람들과 같이 사는 짐승의 무리도 많아졌다. 마을 사람들은 정말 쉬지 않고 일한다. 하지만 건강 상태는 수렵과 채집을 하던 우리보다 훨씬 못해 보인다. - P136

크로마뇽인은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프랑스 남서부 크로마뇽 지역의 호모 사피엔스를 말한다. - P138

현대인은 우리(네안데르탈인)를 1856년에야 처음 발견했다. 독일의 뒤셀도르프 근처에 있는 네안더 Neander 계곡Thal에서 우리 동료의 뼈가 발견되었다. - P140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단지 조상이 같을 뿐이다. - P140

진화는 순간적인 사건이 아니다. - P140

하이델베르크인(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이라는 고인류가 있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지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아프리카에서 출발했다. - P140

하이델베르크인은 약 100만 년 전에 등장했다. 하이델베르크인 남자의 키는 평균 180센티미터, 체중은 100킬로그램까지 나갔으며 뇌용적은 1100~1400밀리리터였다. 현대인과 비슷하다. 하이델베르크인이 언젠가 유럽으로 진출했고 45만 년 전쯤 여기서 우리 네안데르탈인이 분기되어 나왔다. 여전히 하이델베르크인은 존재했으며 30만 년 전쯤 다시 호모 사피엔스가 분기되어 나왔다. - P141

우리 네안데르탈인(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은 흔히 호리호리한 인류로 불린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앞에 ‘호모‘라는 속명이 붙은 모든 인류가 그렇다. 그럼 호리호리하지 않은 인류도 있었다는 말일까? 그렇다. ‘파란트로푸스‘라는 속명을 가진 인류다. - P141

파란트로푸스속과 호모속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뇌의 용적이다. - P143

뇌의 크기가 어느 정도 범위 안에 있으면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현대인의 경우 남성의 뇌가 여성의 뇌보다 조금 더 크지만 그렇다고 남자가 더 똑똑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 P143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싶은 게 있다. 바로 건강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또 뭔가를 가지고 싶어 한다. 명예, 권력, 돈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세 가지 가운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 하나만 가져도 행운이다. 가끔가다가 두 가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 정말 부럽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가지려는 사람이 있다. 행운이 반복되어 한 사람에게만 올 리가 없다. 부정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감옥에 간다. - P144

커다란 뇌를 가지려면 뭔가 다른 것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무엇을 포기해야 했을까? 에너지 효율을 따져봐야 한다. 뇌는 1킬로그램당 11.2와트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사람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체중 1킬로그램당 1.25와트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뇌는 아주 비효율적인 기관이다. 그래서 뇌를 마냥 키울 수가 없다. 뇌를 키우려면 어딘가에서는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 - P144

근육은 생각보다 에너지를 적게 쓴다. 1킬로그램당 0.5와트에 불과하다. 현대인에게 많은 트러블을 일으키는 피부도 0.3와트에 불과하다. 아주 효율적인 기관이다. 근육과 피부에서는 줄일 에너지가 없다. 뇌보다도 에너지를 많이 쓰는 기관을 줄여야 한다. - P144

누가 낭비하는가? 심장과 신장이다. 각각 32.3와트와 23.3와트를 사용한다. 크기를 줄이면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진화는 작아지는 방향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줄일 게 없다. - P145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관이 있다. 바로 내장이다. 내장은 1킬로그램당 무려 12.2와트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내장은 먹이를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기 위한 기관인데 이 기관을 작동시키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기관이다. - P145

내장의 필요를 줄여야 한다. 조금 먹든지 식성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조금 먹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성되는 에너지가 줄어드니 말이다. 답은 정해졌다. 식성을 바꾸는 것이다. 고기를 먹어야했다. 풀만 먹는 소는 위장이 4개나 되고 되새김질을 하며 창자가 엄청나게 길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식물의 소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는 식물보다 훨씬 소화가 잘된다. 소화기관의 길이를 훨씬 줄일 수 있다. - P145

호리호리한 인류는 내장을 줄이는 대신 뇌를 키웠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물론 "음, 나는 뇌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야겠어. 그러니까 내장을 줄여야지"라는 생각을 해서 진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방향으로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 개체가 자연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 P145

더 강한 힘은 거저 생기는 게 아니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네안데르탈인)는 하루에 4000킬로칼로리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크로마뇽인보다 매일 400킬로칼로리의 열량을 더 섭취해야 한다. 매일100그램의 단백질을 더 섭취해야 하는 셈이다. 100그램의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고기 330그램을 먹어야 한다. 우리는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사냥을 더 많이 해야 한다. - P146

그런데 생각해 보라. 사냥이 쉬운가? 우리는 사냥감 동물보다 느리고 발톱과 이빨도 보잘것없다. 다행히 우리는 현대인보다 더 큰 뇌를 가졌다. 우리는 돌과 뼈, 나무 등을 이용해서 창이나 손도끼 등 다양한 종류의 도구를 만들었다. 힘보다 머리를 써서 사냥한다. 커다란 코뿔소나 매머드도 사냥할 수 있다. - P147

우리(네안데르탈인)는 지형지물을 잘 활용하며 끈기가 있다. 얌전한 코뿔소나 매머드를 창으로 자극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크로마뇽인이 사용하는 투창, 그러니까 던지는 창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까이 접근해서 긴 창으로 찌르며 동물을 자극한다. 화가 난 동물들이 우리를 쫓아오게 한다. 우리는 절벽을 향해 달려간다. 절벽 바로 앞에서 우리가 옆으로 피할 때 사냥감들은 미처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우리의 식사거리가 되는 것이다. - P147

사냥에 매일 성공하는 게 아니지만 한번 성공하면 모든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는다. 남으면 썩어서 버리는데, 목숨 걸고 사냥한 식량을 그렇게 낭비할 수는 없다. 최대한 먹는다. 폭식을 하는 것이다. 무조건 먹어야 한다. 또 얼마 동안이나 기아에 허덕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 P147

우리 네안데르탈인은 있을 때 잔뜩 먹어서 몸에 지방을 쌓아둘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야 평소에 적게 먹어도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우연히 생겼다. 다행히 우리 몸에 SLC16A11 유전자가 생긴 것이다. 이 유전자는 빠르게 지방을 몸에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현대인의 몸속에 남아 현대인에게 비만과 당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아니, 우리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왜 현대인의 세포에 남아 있을까?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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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전직 절대자는 아카데미 펫 관리자 10 (완결) 전직 절대자는 아카데미 펫 관리자 10
말랑부들 / ARC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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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10권에서는 악한 세력들이 선한 세력들을 모조리 말살시키기 위한 계략을 짜고 실행하다가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결국 자신들의 발등을 찍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통해 뭐든지 심은대로 거둔다고 하는 정직하지만 때로는 무섭기도 한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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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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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처받는 경험들을 하곤 한다. 그것은 대표적으로 인간관계에서의 상처일 수도 있고 사랑하던 사람과의 갑작스런 헤어짐일 수도 있으며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신체의 일부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업무상으로 자신의 생각과 실상이 다를 때 겪을 수 있는 내적 갈등으로 인한 상처일 수도 있다.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만큼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핸디캡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대강 생각나는 핵심 인물들만 읊어봐도 보경, 은혜, 연재, 지수, 복희, 서진, 민주 등이 있고 휴머노이드 로봇 기수(騎手)인 콜리와 말(馬)인 투데이가 있다. 아무튼 여러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들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면 제각기 다른 모양의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비록 상처의 종류는 다를지라도 이 땅에 태어난 이상 그 상처가 크든 작든 관계없이 각자의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은혜와 연재, 지수, 복희, 서진, 편의점 사장 등이 합심해서 투데이라는 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그 과정은 다른 누군가에겐 그닥 의미없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일이 투데이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남들의 시선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데이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 함께 동참하는 각각의 인물들을 보면서 모든 사람은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상황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돕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간혹 자기 안에 있는 상처에 몰입한 나머지 지금 현재를 갉아먹는 우(愚)를 범하는 경우들이 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그랬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 상처들을 극복하고 이겨내며 살아나가야만 한다. 과거가 후회스럽다는 이유로 그냥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음같아서는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 과거를 되돌려놓고 싶지만 그것은 시간의 비가역성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저자는 과거의 잘못된 것들로 인해 파생되는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내가 무슨 상처가 있고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등의 이유로 인해 현실에서 낙심하거나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 놓여있던 간에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 안에서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그 방법을 실천한다면 비록 세상은 그들의 행동을 비웃을지언정 그 개인, 그 당사자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고 그로인해 자신이 처한 악조건이나 안 좋은 환경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경이 그랬고, 은혜가 그랬고, 연재가 그랬다. 지수도 마찬가지다.

지수의 경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연재를 이용해서 채우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이기적으로 보이는 이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연재의 친언니인 은혜의 핸디캡을 조금이나마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보며, 사회가 용인하는 선에서 자신의 욕심대로, 본능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는 게 어쩌면 자기자신 뿐만아니라 사회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삶이란 어쩌면 각자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경주(레이스)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기에 남들의 시선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앓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을 총동원하여 이루어가는 거다.

어쩌면 투데이를 살리겠다는 그들의 꿈과 목표는 다른 사람들 특히 경마장의 말 관리인이나 경마장에 판돈을 들고 오는 도박꾼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크게 의미없고 하찮아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는 전제하에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그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들의 시선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빨리 달리든 말든 관계없이 내가 가야 할 길을 끝까지 완주하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레이스 중간에 투데이의 등에서 스스로 낙마한 콜리도 얼핏보면 중간에 낙마했기에 포기한거 아니냐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콜리의 목적은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투데이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자신의 목적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콜리는 절대 중간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고 보잘것없어보이는 목적일지라도 각자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설령 그것이 빠르지 않을지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게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듯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투데이가 천천히 달리자 경마장의 관객들이 투데이와 기수인 콜리에게 쌍욕을 하면서 맥주캔을 집어던지는 등 비판적인 행동을 보이지만, 그들의 비판을 애써 무시하면서 콜리는 투데이와 레이스를 꿋꿋이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투데이가 속도를 내고 싶어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걸 느낀 콜리는 스스로 낙마해서 누운채로 아름다운 하늘 천 개의 파랑을 보며 삶을 마감한다.

행복이라는 건 그 이유가 거창하든 사소하든 관계없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어떤 긍정적인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것이 설령 콜리처럼 죽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갑자기 좀 생뚱맞긴 하지만 문득 십자가에 못박혔던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나기도 했다. 비록 십자가의 고통이 있었지만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나서 ‘다 이루었다‘ 하고 죽는 장면은 마치 콜리가 투데이를 달리게 한 뒤 낙마하는 장면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별을 5개가 아니라 15개, 25개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만에 좋은 작품을 읽은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다. 이 작품과 관련하여 검색을 하다보니 뮤지컬로도 무대에서 공연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원작 소설을 뮤지컬이나 영화로도 만나보면 아주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추가로 생각나는 내용이 있어 좀 더 보태보자면, 연재가 콜리에게 했던 말 중에 실수가 기회(?)라고 했던 말도 생각난다. 콜리는 제작상의 오류로 인해 일반적인 휴머노이드와는 조금 다른 칩이 삽입되어 인간의 단어 천 개를 별도로 학습할 필요도 없이 기본 탑재된 상태로 기계가 가동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로봇들과는 달리 등장인물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조금은 특별한 로봇으로 나온다. 이것이 어찌보면 사고였을 수도 있지만 콜리에게는 인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장면을 통해 자신이 설령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불평만 하기보다는 그것을 역이용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나가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대화의 중요성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평소에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내성적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혼자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삭히는 경우들도 많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대화하는 과정자체가 굉장히 피곤하고 스트레스로 느껴지기에 아예 그 자체를 피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대화를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으며 이는 오해의 불씨가 되어 내 마음을 불타게 만들수도 있다. 그로 인해 오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내 마음 한 구석을 가득 채워서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 소설에서는 내성적인 성격의 연재와 달리 친구인 지수는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으로 나오는데 서로 성향이 정반대이다보니 소통과정에서 다소간에 오해가 생겨서 지수가 마음에 상처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대화하는 것을 설령 기피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대화를 하지 않을 경우에 파생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해가 있거나 불편한 관계가 있다면 지금 당장 또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속한 시일 내에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대화를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예상했던 이야기의 흐름과 실제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조금씩 다르게 흘러가서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간만에 좋은 작품을 읽을 수 있게 해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이 소설이 과학문학상 수상작이다보니 본 소설의 내용이 끝나고 맨 뒷부분에는 심사위원 분들의 심사평을 만나볼 수 있었다. 수상작을 선정하게 된 기준이라든지 이 공모전에 도전했던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전하는 간단한 격려와 함께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점들을 피드백해주셨다. 또한 개인적으로 처음 알게된 이야기도 있었는데 해리포터를 쓴 작가도 출판사로부터 8번이나 까이고 나서 유명작가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미 알고 계셨던 분들도 있겠지만, 이 얘기를 보면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 에디슨의 말도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상처는 내가 충분히 극복할 수 있기에 신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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