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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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나온 표면적인 글 자체는 잘 읽혔기에 가독성이 좋았지만 그 내용의 이면에 있는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호락호락한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완독하고 난 뒤 내 나름대로 주관적으로 느꼈던 것들과 몇몇 심도있는 다른 독자님들의 리뷰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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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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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통해 저자의 감정선이 어떤 느낌인지 엿볼 수 있었다. 저자의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 여기서 느꼈던 감정선을 다시금 떠올리며 읽어나간다면 작품의 이해와 감상에 조금이나마 그 깊이를 더할 수 있을 듯하다. 또한 마지막에 수록된 해설자의 설명을 통해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까지도 배울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책의 두께는 얇지만, 그 속에 내재된 의미의 두께는 결코 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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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혜의 언니 인혜는 동생인 영혜가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는 관계로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정기적으로 병문안을 온다. 하지만 병문안을 올 때마다 점점 더 이상하고 기이한 행동과 말을 반복하는 영혜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진다.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와 같은 생각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이미 상황이 벌어진 지금 시점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을 알면서도 인혜는 자신이 마주한 현실이 너무나도 힘들었던 나머지 그런 생각으로라도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약 독자인 내가 인혜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하더라도 인혜와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했을 것 같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그렇고 현실의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인생이라는 게 마냥 편하게만 흘러가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은 걸 보면 정말로 한치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매 순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녀는 영혜의 운명에 작용했을 변수들을 불러내는 일에 골몰할 때가 있었다. 동생의 삶에 놓인 바둑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헤아리는 일은 부질없었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 P232

그는 비디오 속에 그토록 많은 날개 있는 것들을 집어넣었으면서도, 막상 자신은 가장 필요할 때 날아오르지 못했다. - P234

그녀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는 한갓 그림자에 불과했다. - P234

용서하고 용서받을 필요조차 없어. 난 당신을 모르니까. - P234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간 것뿐이야...... 더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길래.. 거기 서서 기다린 것뿐이야. - P235

비에 녹아서...... 전부 다 녹아서... 땅속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어. 다시 거꾸로 돋아나려면, 그렇게 할수밖에 없거든. - P236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제거된 시간.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만으로 이어진 시간. 바로 그녀 자신이 선택한 시간이었다. - P237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 P237

그 순간 그녀는 뜻밖의 고통을 느꼈다. 살아야 할 시간이 다시 기한 없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한달 동안 염려했던 큰병의 가능성은 오히려 사소한 번민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 P238

그는 낮게 말했다.
잠깐만 참아.
그때 그녀는 기억했다. 그 말을 그녀가 잠결에 무수히 들었다는 것을. 잠결에, 이 순간만 넘기면 얼마간은 팬찮으리란 생각으로 견뎠다는 것을. 혼곤한 잠으로 고통을, 치욕마저 지우곤 했다는 것을. 그러고 난 아침식탁에서 무심코 젓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어지거나, 찻주전자의 끓는 물을 머리에 붓고 싶어지곤 했다는 것을. - P240

아무것도 문제될 것 없었다. 사실이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언제까지나 살아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말고는 어떤 다른 길도 없었다. - P240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 P242

그녀는 다시 한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 P242

그녀는 이미 깨달았었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선 죽음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에 잃었다가 돌아온 혈육처럼 낯익었다. - P242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P244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잠을 이루지 못한 지난 석달 동안 그녀는 이따금 혼란 속에서 생각해왔다. 지우가 아니라면ㅡ그애가 지워준 책임이 아니라면ㅡ자신 역시 그 끈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고. - P246

다만 기적처럼 고통이 멈추는 순간은 웃고 난 다음이다. 지우가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그녀를 웃기고, 그녀는 문득 멍해진다. 어떨 때는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더 웃기도 했다. 그럴 때 그녀의 웃음은 즐거움이라기보다 혼돈에 가까울 테지만, 지우는 그렇게 그녀가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 - P246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 P247

저 껍데기 같은 육체 너머, 영혜의 영혼은 어떤 시공간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걸까. - P249

이제는 더이상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 P250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 P259

그녀가 이 여자를 안지 않은 것은, 영혜를 이곳에 가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61

아이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것도, 도움을 청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슬픔을 느끼기 때문에 소리없이 우는 것이다. - P265

그냥 꿈이야. - P265

그와 영혜가 그렇게 경계를 뚫고 달려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모래산처럼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면, 무너졌을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무너졌다면 돌아오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오늘 영혜가 토한 피는 그녀의 가슴에서 터져나왔어야 할 피일까. - P266

영혜는 피를 토하는 대신 눈을 뜬다. 검은 눈동자가 똑바로 그녀를 바라본다. 저 눈 뒤에서 무엇이 술렁거리고 있을까. 어떤 공포, 어떤 분노, 어떤 고통이, 그녀가 모르는 어떤 지옥이 도사리고 있을까. - P267

…………어쩌면 꿈인지 몰라. - P268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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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자동화와 혁신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얼핏 보면 비슷해보이는 두 개념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독자인 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적어보자면 자동화는 전문직의 업무들 중 단순반복업무를 더 이상 수작업으로 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라면, 혁신은 완전히 판을 갈아엎는 느낌이다. 기존에는 아예 할 수 없었던 제약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업무 영역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본문에 직접적으로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대두되는 인공지능(AI) 관련 기술들은 단순히 자동화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아예 판을 갈아엎는 혁신의 느낌으로 우리들에게 오고있기 때문에 앞으로 근 몇 년간 기존에 있던 업무영역이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대체되거나 또는 이동되는 변혁이 상당부분 일어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보게 된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신 기술같은 것들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자동화는 전통적 모형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고, 혁신은 관련 시스템이 없었을 때는 절대 불가능했던 (심지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실용적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P156

장기적으로 보면 전문직은 혁신 기술을 이용하고 시스템을 도입하며 이전에는 사용할 수 없던 실용적 전문성을 사용 가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 P157

요컨대, 자동화는 전문가 업무를 행정에서든 현장에서든 대부분 개선하고 최적화하는 한편, 혁신 기술의 물결이 끊임없이 퍼져 나가 기존의 전통적 수작업 업무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전문가 업무를 더욱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 P157

혁신적 시스템을 이용하면 전문직은 과거에 전문적 도움을 얻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접근할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잠재수요‘ 현실화라고 부른다. - P158

오늘날 전문가가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기술과 역량을 갖춰야 한다. 특히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배우고, 자기 분야에 필요한 자료에 숙달하며, 기계와 새로운 업무 관계를 확립하고, 다각화해야 한다. - P158

내일의 전문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유연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평생직장은 극히 드물어질 것이고, 안정성은 크게 낮아질 것이며, 예측도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 대신 새로운 역할과 작업이 나타나면서, 빠르게 배우고 발전하며 적응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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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도 그렇고 오늘 포스팅에서도 그렇고 저자는 반복해서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고, 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사후 관리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리고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저자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해외의 사례를 참고하고자 호주를 한동안 방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자체적으로 좋은 시스템을 만들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경우들이 많기에, 저자처럼 해외의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이 죽음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예기치못한 사고 발생시 유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갖춰진다면 그들이 입은 상처를 회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치료만 하는 케어 care를 넘어 동반하는 큐어 cure가 필요하다. 상실의 아픔을 개인에게만 맡기지 않고 보듬어 안으면서 동반해주는 것, 혼자 일어서기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이런 문화와 시스템, 그리고 정책이 절실하다. - P205

사회적 약자와 상처받은 자를 외면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 - P205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난받아야 할 무지가 아닐까요? _《소크라테스의 변명》 - P207

‘삶을 제대로 살아야 죽음도 제대로 맞을 수 있겠구나‘ - P208

잘 살아온 사람이 잘 죽는다 - P208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돈이 많고 적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단한 관계다. 주변인과의 유대 관계가 튼튼한 것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걸 수많은 죽음을 만난 후에 알게 되었다. - P208

아무리 부자여도, 사회적 명성이 화려해도 의미 있는 관계가 없는 이들의 죽음은 초라하다.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관계는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와도 같다. - P209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더 건강하고 수명이 길다 - P209

건강한 관계는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지지대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깨지지 않도록 돕는 기본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가 해줄 역할이다. - P209

이런 죽음(고독사)을 살펴보면 먼저 사회적 단절이 있고, 그다음에 생물학적 단절이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후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 P210

확실한 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고, 다만 언제 죽는지만 불확실하다. - P211

누군가 떠나면 누군가는 남겨지게 마련이고, 거기엔 이별의 슬픔이 함께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죽는다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이별을 조금 빨리 만난 것뿐이다. - P211

우린 가까운 이들을 잃으면 상실감으로 몹시 괴로워한다. 만약 나 홀로 영원히 살고 내 가족만 죽는다면 그건 굉장히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나도 곧 따라간다.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이 조금 줄어든 것뿐이다. - P211

"떠난 사람을 슬퍼할 시간에 내 곁의 사람들과 행복을 찾으세요." - P212

슬픔은 어떤 측면에서는 오만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나와 내 가까운 이는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 배반으로 슬픔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기에 슬프고, 화나고,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여서는 안 되는 것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고, 죽음, 고통은 우리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다. - P212

부디 분노와 슬픔으로 시간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한 번 지나오면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간다. 우리 삶은 리허설이 있는 연극 무대가 아니다. 시간을 되돌려 같은 길을 두 번 걸을 수도 없다. - P213

지금 누구와 걷고 있는지, 누구와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곁에 있는 이에게 미소를 보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 일상의 소중함을 함께 누리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 P213

이미 떠난 사람을 붙잡고 슬퍼하느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유한한 시간을, 더 늦기 전에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 P213

떠난 이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삶이 슬픔에 잠식되어 피폐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이 그리 길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할 시간 역시 생각처럼 길지만은 않다는것도. - P213

나는 내비게이션을 좋아한다. 내비게이션은 한 번도 "잘못 들어섰습니다. 다시 돌아가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겠습니다." - P214

‘그래, 길을 잘못 들어서면 새로운 길을 찾으면 되지.‘ - P215

우리도 인생을 내비게이션 같은 태도로 살면 좋겠다. 아무리 엉뚱한 길로 들어서도, 몇 번이고 길을 잘못 들어서도, 코앞의 분기점에서 방향이 헷갈려도, 얼른 다시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면 되니까 말이다. 후회하고 괴로워할 시간에 그저 새로운 최적 경로를 찾아 뒤돌아보지 않고 새 길로 가면 좋겠다. - P215

행복을 목적지로 두고 살아가면 결코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없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길을 찾는 데 필요한 내비게이션처럼 우리를 움직이고 살아가게 하는 수단이다. - P215

행복은 어떠한 조건을 충족하거나 현재의 고단함을 참아야 얻어낼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그저 우리 삶의 끝에 다다르기까지의 매일매일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맛있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 좋아하는 이들과 밥을 먹으러 가는 그 길에 행복이 있다. - P216

나의 매일을 이끄는 것은 ‘행복‘이라는 당근이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삶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 P216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우리 삶이 유한하다는 걸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 P216

욕심, 질투, 시기, 분노, 후회, 슬픔의 감정으로 낭비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이 짧은 시간, 행복이라는 수단을 더 많이 활용해야 한다. - P216

"딱 한순간만 소유했던 나의 모든 것들All my possessions for a moment of time." _엘리자베스 여왕 1세 - P217

우리가 지닌 이 몸조차도 딱 한순간만 소유할 뿐이다. 죽은 이들을 보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몸조차도 잠시 소유할 수 있을 뿐인데 다른 것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돈, 학벌, 명예, 외모... 그 무엇에도 그리 집착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 P217

누군가 내 삶을 전지적 시점으로 본다면, 인간 세상이나 생로병사가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 자신과 내 삶,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관대해질 수 있다. - P217

불확실한 죽음의 달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사는 것. 단 나를 둘러싼 것들에 관대할 것‘이다. 사는 동안 삶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 - P217

‘다른 사람이 해주었으면 하는 행위를 하라‘ - P218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_「신약성서」 「마태복음」 7장12절 - P218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_「누가복음」 6장 31절 - P218

사람에 대한 사랑 - P218

공자에게 자로가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恕" (용서할 서)라고 말한다. 풀어보자면 ‘서로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의미다. - P218

"스스로 행하는 도덕적 판단이 보편적 입법의 준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_칸트 - P219

마침표를 향해 가는 삶의 유한성은 인간의 숙명이다. 안달복달해도 우리는 결국 죽게 되는 운명 공동체다. 그러니 끝을 알고 살아가는 우리 서로에게 측은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너무 욕심내지도 말고 너무 미워하지도말고. 어차피 다 끝이 있으니 말이다. - P219

유한한 삶 속에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사랑, 그리고 사랑했던 그 순간들이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관계에서 나오고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 그것은 결국 사랑이다. - P219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나의 죽음‘이라는 말은 언어의 역설이다. 죽음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이 내 것 되는 순간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존재하는 이상 죽음은 결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21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은 오지 않는다. 죽음이 왔을 때에는 우리는 이미 살아 있지 않다." _에픽테토스 - P222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 버티는 삶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불안은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즉 죽음을 수용한 상태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 P222

해가 뜨면 일어나 학교에 가고 출근하듯이,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듯이. 때가 되면 태연히 삶을 끝내고 갈 뿐이다. - P222

다만 가급적 처참하거나 비극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면 좋겠다. 급작스런 죽음, 비명횡사, 낯선 곳에서의 죽음…. 되도록 그런죽음은 사라지면 좋겠다. 그러나 죽음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이 너무 힘겹지 않을까. - P222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부지불식간에 죽는 게 가장 좋다." _율리우스 카이사르 - P223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공포로 생을 낭비하지 않겠다 - P223

죽음에 사로잡혀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 P223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 놓인다면 적어도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지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있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미리 준비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가족을 잃거나 가족과 떨어져 있어서 혼자이거나 혹은 독신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는 이들에겐 특히 더 그렇다. 병원과 집 가운데 어디서 임종할지 선택하는 것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된다.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이런 시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문화가 더 확산되어야 한다. - P224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고, 타인이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죽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사회가 도와줄 수 있다. - P225

우리가 목표와 비전을 세워서 삶을 계획하듯이 죽음도 그렇게 잘 맞이해야 한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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