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도 그렇고 오늘 포스팅에서도 그렇고 저자는 반복해서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고, 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사후 관리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리고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저자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해외의 사례를 참고하고자 호주를 한동안 방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자체적으로 좋은 시스템을 만들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경우들이 많기에, 저자처럼 해외의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이 죽음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예기치못한 사고 발생시 유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갖춰진다면 그들이 입은 상처를 회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치료만 하는 케어 care를 넘어 동반하는 큐어 cure가 필요하다. 상실의 아픔을 개인에게만 맡기지 않고 보듬어 안으면서 동반해주는 것, 혼자 일어서기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이런 문화와 시스템, 그리고 정책이 절실하다. - P205

사회적 약자와 상처받은 자를 외면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 - P205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난받아야 할 무지가 아닐까요? _《소크라테스의 변명》 - P207

‘삶을 제대로 살아야 죽음도 제대로 맞을 수 있겠구나‘ - P208

잘 살아온 사람이 잘 죽는다 - P208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돈이 많고 적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단한 관계다. 주변인과의 유대 관계가 튼튼한 것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걸 수많은 죽음을 만난 후에 알게 되었다. - P208

아무리 부자여도, 사회적 명성이 화려해도 의미 있는 관계가 없는 이들의 죽음은 초라하다.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관계는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와도 같다. - P209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더 건강하고 수명이 길다 - P209

건강한 관계는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지지대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깨지지 않도록 돕는 기본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가 해줄 역할이다. - P209

이런 죽음(고독사)을 살펴보면 먼저 사회적 단절이 있고, 그다음에 생물학적 단절이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후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 P210

확실한 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고, 다만 언제 죽는지만 불확실하다. - P211

누군가 떠나면 누군가는 남겨지게 마련이고, 거기엔 이별의 슬픔이 함께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죽는다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이별을 조금 빨리 만난 것뿐이다. - P211

우린 가까운 이들을 잃으면 상실감으로 몹시 괴로워한다. 만약 나 홀로 영원히 살고 내 가족만 죽는다면 그건 굉장히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나도 곧 따라간다.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이 조금 줄어든 것뿐이다. - P211

"떠난 사람을 슬퍼할 시간에 내 곁의 사람들과 행복을 찾으세요." - P212

슬픔은 어떤 측면에서는 오만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나와 내 가까운 이는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 배반으로 슬픔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기에 슬프고, 화나고,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여서는 안 되는 것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고, 죽음, 고통은 우리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다. - P212

부디 분노와 슬픔으로 시간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한 번 지나오면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간다. 우리 삶은 리허설이 있는 연극 무대가 아니다. 시간을 되돌려 같은 길을 두 번 걸을 수도 없다. - P213

지금 누구와 걷고 있는지, 누구와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곁에 있는 이에게 미소를 보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 일상의 소중함을 함께 누리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 P213

이미 떠난 사람을 붙잡고 슬퍼하느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유한한 시간을, 더 늦기 전에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 P213

떠난 이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삶이 슬픔에 잠식되어 피폐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이 그리 길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할 시간 역시 생각처럼 길지만은 않다는것도. - P213

나는 내비게이션을 좋아한다. 내비게이션은 한 번도 "잘못 들어섰습니다. 다시 돌아가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겠습니다." - P214

‘그래, 길을 잘못 들어서면 새로운 길을 찾으면 되지.‘ - P215

우리도 인생을 내비게이션 같은 태도로 살면 좋겠다. 아무리 엉뚱한 길로 들어서도, 몇 번이고 길을 잘못 들어서도, 코앞의 분기점에서 방향이 헷갈려도, 얼른 다시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면 되니까 말이다. 후회하고 괴로워할 시간에 그저 새로운 최적 경로를 찾아 뒤돌아보지 않고 새 길로 가면 좋겠다. - P215

행복을 목적지로 두고 살아가면 결코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없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길을 찾는 데 필요한 내비게이션처럼 우리를 움직이고 살아가게 하는 수단이다. - P215

행복은 어떠한 조건을 충족하거나 현재의 고단함을 참아야 얻어낼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그저 우리 삶의 끝에 다다르기까지의 매일매일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맛있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 좋아하는 이들과 밥을 먹으러 가는 그 길에 행복이 있다. - P216

나의 매일을 이끄는 것은 ‘행복‘이라는 당근이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삶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 P216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우리 삶이 유한하다는 걸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 P216

욕심, 질투, 시기, 분노, 후회, 슬픔의 감정으로 낭비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이 짧은 시간, 행복이라는 수단을 더 많이 활용해야 한다. - P216

"딱 한순간만 소유했던 나의 모든 것들All my possessions for a moment of time." _엘리자베스 여왕 1세 - P217

우리가 지닌 이 몸조차도 딱 한순간만 소유할 뿐이다. 죽은 이들을 보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몸조차도 잠시 소유할 수 있을 뿐인데 다른 것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돈, 학벌, 명예, 외모... 그 무엇에도 그리 집착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 P217

누군가 내 삶을 전지적 시점으로 본다면, 인간 세상이나 생로병사가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 자신과 내 삶,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관대해질 수 있다. - P217

불확실한 죽음의 달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사는 것. 단 나를 둘러싼 것들에 관대할 것‘이다. 사는 동안 삶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 - P217

‘다른 사람이 해주었으면 하는 행위를 하라‘ - P218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_「신약성서」 「마태복음」 7장12절 - P218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_「누가복음」 6장 31절 - P218

사람에 대한 사랑 - P218

공자에게 자로가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恕" (용서할 서)라고 말한다. 풀어보자면 ‘서로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의미다. - P218

"스스로 행하는 도덕적 판단이 보편적 입법의 준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_칸트 - P219

마침표를 향해 가는 삶의 유한성은 인간의 숙명이다. 안달복달해도 우리는 결국 죽게 되는 운명 공동체다. 그러니 끝을 알고 살아가는 우리 서로에게 측은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너무 욕심내지도 말고 너무 미워하지도말고. 어차피 다 끝이 있으니 말이다. - P219

유한한 삶 속에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사랑, 그리고 사랑했던 그 순간들이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관계에서 나오고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 그것은 결국 사랑이다. - P219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나의 죽음‘이라는 말은 언어의 역설이다. 죽음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이 내 것 되는 순간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존재하는 이상 죽음은 결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21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은 오지 않는다. 죽음이 왔을 때에는 우리는 이미 살아 있지 않다." _에픽테토스 - P222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 버티는 삶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불안은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즉 죽음을 수용한 상태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 P222

해가 뜨면 일어나 학교에 가고 출근하듯이,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듯이. 때가 되면 태연히 삶을 끝내고 갈 뿐이다. - P222

다만 가급적 처참하거나 비극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면 좋겠다. 급작스런 죽음, 비명횡사, 낯선 곳에서의 죽음…. 되도록 그런죽음은 사라지면 좋겠다. 그러나 죽음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이 너무 힘겹지 않을까. - P222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부지불식간에 죽는 게 가장 좋다." _율리우스 카이사르 - P223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공포로 생을 낭비하지 않겠다 - P223

죽음에 사로잡혀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 P223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 놓인다면 적어도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지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있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미리 준비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가족을 잃거나 가족과 떨어져 있어서 혼자이거나 혹은 독신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는 이들에겐 특히 더 그렇다. 병원과 집 가운데 어디서 임종할지 선택하는 것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된다.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이런 시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문화가 더 확산되어야 한다. - P224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고, 타인이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죽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사회가 도와줄 수 있다. - P225

우리가 목표와 비전을 세워서 삶을 계획하듯이 죽음도 그렇게 잘 맞이해야 한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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