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한 다음에 바로 이 닦으면 안 된대. 뭐라더라. 위산이 치약하고 합쳐져서 이빨이 상한다나. - P155
"내가 먹는 게 아니구, 음식이 날 먹는 것 같아요. 난 그냥 정신없이, 미친 듯이 삼켜지는 거예요. 머리가 날아가버리고 없는 것 같아. 다 사서 먹기까지 한 시간도 걸리구, 두 시간도 걸려요. 어떨땐 대낮에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약속 장소로 갈 때까지 길거리에서 먹은 적도 있었어요." - P155
참을성을 다해 굶다가, 무서운 식욕이 덮쳐오면 먹구 토했죠. 위액이 나올 때까지 완전하게 토하니까 살이 빠졌어요. - P159
기대할 필요 없는 걸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어. - P160
"시작이란 말이 난 무서웠어. 차라리 끝이란 말이 더 가깝고 편했어요, 나한텐." - P162
"너한테는 타인이 그렇게 중요하구나." "그럼요, 당연하죠. 다른 사람들 없이 내가 살 수 있어요?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란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 P164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봐. 네가 태어나면서 이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잖니. 네가 죽으면, 다 끝나는 거지." 그녀는 볼멘 목소리를 높여 투덜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내가 죽어두, 이 세상은 잘만 돌아갈거잖아요." "그러니까, 너 없이 돌아갈 그 세상이라는 게 너한테 무슨 의미라는 거지?" "내 참!" - P164
오랜 시간 동안 그녀는 기름지고 단 음식에 대한 갈망과 거부감, 죄의식을 함께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폭식 충동이 몰아닥칠 때면 오히려 그런 음식들만을 찾게 되는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하루는 그런 음식들을 마음껏, 즐겁게, 천천히 먹어준다면 폭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 그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ㅡ그때쯤 그녀의 증세는 그만큼 이성적이었다ㅡ. - P165
"그게 어디가 됐건 자기 몸에 성스러운 것을 가졌다는 건, 수호신을 가진 것과 같은 거 아닐까." - P168
"아침 식전에 유산소 운동을 해야 지방이 분해된대요." - P169
"배가 고프다는 게 이렇게 기분좋은 건지 몰랐어요." - P169
대략 석 달쯤이, 기형적인 대사 작용이 정상화되는 데 필요한 시간인 모양이었다. - P169
미치는 게 얼마나 간단한 건지 사람들은 몰라. - P177
"내가 진짜 참을 수 없는 건, 그 새끼가 아니야. 지금까지두 그새낄 못 잊고 있는 엄마도 아니야. 내가 정말로 증오하는 건, 내 병신 같은 모습...... 그렇게 병신같이 당하구 있었던, 나중엔 반항도 안 하구, 다 포기하구, 어디 신고할 생각도 못 하구, 비겁하게 가출도 못 하구...... 그래요, 내가 진짜 용서할 수 없는 건, 바로 나야..... 그렇게 몇백 번을 당해도 쌌던...... 나." - P177
넌 단지 어렸을 뿐이다. 비겁해서가 아니라, 너무 어렸을 뿐이다. - P177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 P187
"글쎄...... 성스러운 건 재미없는 건가?" - P190
"인간의 몸에서 가장 독립적으로 살아 있는 기관이 바로 손 아닐까? 우리가 먹고 만지고 뭔가 만들어내고 섹스하는 모든 행위들이 이루어지는 기관이잖아. 즉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상징일 수 있는 거지." - P194
클라이언트들의 심리가 가격이 높을수록 신뢰감을 가지게 마련이니까요. - P196
너무 맑은 물에도 고기가 안 논다는 거 몰라? 외로움을 자초하지 말라구. 흐느적흐느적 살기에도 끔찍이 외로운 세상이야. - P197
"그리고 어차피 ......" 그녀는 미소를 보였다. "모든 건 사라지잖아요? 우리도 그렇고, 우리가 만든 작품도 그렇고...... 심지어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 P209
"단지 저는."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제가 사라질 때까지 그것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단지 위안으로서 말입니다. 나는 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 P209
뭔가 있다. 분명히 있다. 그녀의 태연한 얼굴을 벗기고, 그 안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었다. 거울 같은 두 눈동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꿰뚫어보고 싶었다. - P212
"상상력을 동원하는 거예요. 모든 일상사를 상상하면서.... 가장 말끔하게 행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거죠. 사람들은 우아해지고 싶어하니까...... 똑같이 물건을 꺼내더라도 엉덩이를 쳐들고 땀을 흘리면서 꺼내는 게 아니라, 주르륵 레일을 타고 나온 것을 가볍게 들어올리고 싶어하니까." - P217
"나도 카모마일을 좋아해요. 잠이 안 올 때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 P218
누군가에게 ‘뭔가 있다‘고 느낄 때면, 그 숨겨진 비밀이 손에 잡히지 않을수록 더더욱, 나는 그 사람을 향한 호감과 일종의 몰입을 경험하곤 했다. - P228
한때, 저것들이 내 삶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이상 그 작업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L이 떠났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한 시절이 지나간 것이다. 거기 불어넣을 수 있을 만큼의 내 에너지와 시간이 모두 소진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지긋지긋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 P231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 P233
"정 미안하면... 대신 당신이 모델이 되어주면 어떻습니까?" - P233
그거였군. 나는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내가 원한 게 그거였어. - P233
자신의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평소보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이다. - P236
빛이 들어오는 창 아래의 작업대 앞에서 P는 톱질에 열중해 있었다. 소매를 걷어올리고 더러운 면장갑을 낀 그의 팔뚝에는 푸른 핏줄이 불거져 나왔으며, 두 눈은 진지하게 번쩍였다. 저것이 저 사람이 혼자 있을 때의 표정인 것이다. 농담과 사교적인 웃음, 정치적인 언사와 비꼬기, 자기 연민의 과장된 포즈따위가 모두 생략된, 지극히 단순한 얼굴이 거기 있었다. - P236
나는 그 의자에 앉아, P가 방금 꺼내 썼던 얼굴을 벗는 것을. 지극히 단순한 얼굴로 돌아가는 것을, 그 벗어놓았던 얼굴을 잠시 후 다시 걸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 P236
넌 그게 문제야. 도대체 폐 끼치는 즐거움을 모른다는 거..… - P237
"커피뿐 아니라 다른 음식에도 날마다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해보곤 하지. 어차피 요리도 상상력이니까. 안 그래?" - P237
장소를 바꾸면 사람은 좀 달라진다. 특히 자신이 먹고 잠자는 집이나, 반대로 완벽하게 낯선 장소에서는 평소와 다른 모습,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 P238
못을 빼도 못 자국이 남는다는 말처럼 말야, 다 극복했다 해도 그 자린 여전히 남아 있게 마련이지. - P240
"......여기가 내 천국이야." - P246
가만히 앉아서 지루하게 들여다보는 것보다. 이렇게 걸어가다가 마주치는 게 더 인상적인 법이니까. - P248
"이 집에 살 사람들이, 내가 상상한 대로 살아주진 않을 거예요. 사람에 따라선 취향대로 개조해버리기도 하니까. 난 그래서, 내가 설계한 집엔 다시 안 가요. 갈 일도 없지만, 어차피 그 사람들 거잖아. 처음부터 내게 아니지. 내가 주인이 돼보는 건 오늘 하룻밤뿐이야.." - P251
눈멀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보는 것들을 얘기하지 않는 버릇이 있죠. - P253
"당신에게 뭔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P254
"처음엔 차가울 거고, 다음엔 발열감이 있을 겁니다. 마치 델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조이는 느낌이 뒤따를 겁니다." 개어놓은 석고액을 이마부터 바르기 시작하며 나는 설명했다. - P255
"석고가 굳을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 겁니다. 석고를 떼어낼 때도 아플 테고..... 하지만 맨얼굴이 아니니까, 조금은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P255
그 내부를 나는 들여다볼 수 없었다. - P259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L이었다. - P261
죄스러움과 부끄러움, 그러나 그것들을 이겨낼 만큼의 결백한 용기 - P264
"난・・・・・・ 남의 눈에 비친 나 말구는 내가 없는 것처럼 살았어요. 만일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날 그렇게 학대했다면 진작 감옥 갔을 거야. 그렇게 굶기구. 한꺼번에 먹이구, 손을 집어넣어서 토하게하구...... 감옥에 갇힌 죄인이래두 그렇게 다룰 순 없는 거잖아."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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