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 소설의 끝이 보인다. 여기 일일이 밑줄치진 않았지만, 등장인물들에게 미처 예상치도 못했던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명윤과 인영은 의선을 찾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채 황곡시 일대에서 할 일들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는데, 이 기차가 폐탄광 일대를 지나다가 그만 탈선을 하고 만다. 이 사고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는데, 불행중 다행으로 부상을 입기는 했으나 명윤과 인영은 목숨을 건진다. 이 사고는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동안 신문에 매일같이 기사가 실렸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연락없이 지내던 사람들과도 연락이 닿게 된다. 황곡시에서 헤어진 뒤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던 장씨 그리고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가 오랫동안 안부를 알 수 없었던 명윤의 누이동생인 명아도 기사를 보고 명윤에 연락이 온다. 참 이런 걸 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것도 아니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명윤이 인영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뱉은 말인데,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생각나는 그런 문장이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힘든 일도 있고 골치아픈 일을 만나기도 하겠지만, 그런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어찌됐든간에 일단은 살아남아 있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견뎌내다보면 소설 속 인물들처럼 또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인생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을지라도 삶을 완전히 내려놓는 식의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보다는 자그마한 희망 한 조각이라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게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어찌됐든 살아 있다는 건 좋군요. - P559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P562
인간의 삶은 그것이 처해 있는 세계의 불안과 불완전함 속에서 너무나 미약하여 무가치한 것일 수 있다. 또한, 바로 그 세계의 불안과 불완전함을 감지하고 인간의 미약함을 경악스러워함으로써 삶의 무의미에 저항하는 것일 수도 있다. - P577
세계의 어둠 속에서 인간의 삶은 공허하지만 인간은 자기의 공허한 삶을 격렬하게 의식함으로써 어두운 세계보다 덜 어둡다. 어둠 속의 인간은 어둠을 응시함으로써, 어둠을 벗어나려 몸부림치거나 어둠 바깥에서 녹아내리거나 어둠에 완전히 삼키지 않으면서 존재할 수 있다. - P577
어둠 속에서 잠들 수 있다는 말은 빛 속에서 깨어 있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뜻일 터이다. - P579
어둠 속의 삶을 부정하여서는, 어둠의 공포도 삶의 공허도 극복할 수 없다 - P582
어둠 속의 삶을 인내한다고 어둠을 꿰뚫어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 P582
의선을 찾아다니며 명윤과 인영은 어둠을 헤쳐온 각자 자신들의 태도를 알게 된다. 인영은 어둠을 익숙하게 여긴 까닭이 실은 자신의 강함이라기보다 비겁함이었음을 깨닫고, 명윤은 스스로 외면했던 그것으로부터 실은 멀어진 것이 아니라 끝내 그 복판에 자신이 처해 있음을 깨닫는다. - P582
어둠을 인내하는 것도 외면하는 것도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은, 이들이 정작 바라봐야 할 어둠의 실체가 다른 데 있다는 뜻이 아닐까? - P582
어둠 속에서 서로를 할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쏘아보아야 할 것은 "폐광촌의 하늘"이라는 것을 - P582
빛은 세계의 표면만을 비출 뿐이니 "세계의 내면"을 뚫고 어둠의 육체를 만지고 싶었다 - P582
어둠에 몸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생의 의지 혹은 인간 됨의 의무에 합당하다고 - P583
걷어낼 수 없는 세계의 어둠 때문에 인간이 오직 고통과 결핍에만 시달려야 하는가. - P585
희거나 검거나 밝거나 어둡거나, 한강이 응시하는 곳에는 높고 거대하고 화려하고 시끄러운 것들이 있지 않다. 그는 낮고 작고 누추하고 조용한 것을 끈질기게 따라가서 그것들을 깊이 있게 만들고 끝내 그것들을 긍정하고야 만다. 따뜻하게 감싸안고 달콤하게 위로한다는 뜻이 아니다. 세계의 어둠을 환멸과 체념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고투로 대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치열하지만 따뜻하지 않고, 화해롭지 않지만 다행스럽다. - P586
《검은 사슴》은 "결코 벗겨지지 않는, 절대로 벗겨질 수 없는 어떤 검은 것"을 끈질기게 따라가는 이야기다. 따라서, 그 (세계의) 혹독함이 (인간의) 존엄함으로, 우울이 정념으로, 좌절이 용기로 변할 때까지 돌아서지 않는 소설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연약함으로 인한 고통을 운명의 깊이로 전환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고마워하게 한다. - P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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