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도입부에는 화자인 나와 나의 아내로 지칭되는 사람이 등장한다. 한 가지 특이사항은 아내의 몸에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피멍이 군데군데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 별도로 자세하게 밑줄치진 않았지만, 아내로 나오는 사람의 캐릭터가 굉장히 감성적인 듯 보였다. 무언가 자기만의 감상에 젖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나 할까?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간선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차들을 보면서 아내가 내뱉은 말인데,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아내라는 사람의 스타일을 어느정도는 대략적으로 짐작해볼 수 있었다. 뒤이어지는 내용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결코 평범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을 듯하다.

......다들 어디로 저렇게 달려가는 거야? - P20

허기와 피로 때문에, 밥 떠먹을 깨끗한 숟가락 하나도 남김없이 싱크대의 개수통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식기들 때문에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먼 곳에서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다는 것 때문에, 긴 비행 시간 동안 겪은 소소한 일들과 이역의 기차에서 본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피곤해?‘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괜찮아‘라고 강인하고 참을성 있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외로웠다. - P28

외로움 때문에 화가 났다. 내 몸이 보잘것없어 세상의 어떤 것도 나에게 엉겨붙지 않는 듯한 느낌, 어떤 옷으로도 가릴수 없는 한기, 무엇으로도 누구로부터도 위로받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용케 스스로에게 숨겨왔을 뿐이라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났다. 언제 어디에서나 혼자이며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미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 P29

이상하지요 어머니,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고 맛보는 것이 없어도 모든 것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요. - P32

모든 것이 마음 탓이라고 - P35

나는 그것을 힘주어 깨물었다. 내가 지상에서 가졌던 단 한 여자의 열매를. 그것의 첫맛은 쏘는 듯 시었으며, 혀뿌리에 남은 즙의 뒷맛은 다소 씁쓸했다. - P39

.......지겨워, 진저리가 나. - P46

그러나 이제 이 고요한 방에 혼자 있자니 아이는 그렇게 지겨운 아빠라도 곁에 있었으면 싶다. 연신 일회용 종이 잔을 비우며 우두커니 앉아 있어도 좋고, 앞이빨로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이 연놈들을......하고 뇌까려대도 좋다. - P48

지겨워... 지겨워, 정말. - P54

기다리기로 마음먹으면 시간의 속력이 더 느려지는 것을 안다. - P57

이것만은 알아두십시오. 나, 이 세상에서 더 바라는 것 없는놈입니다. 미련도 없는 놈입니다. - P59

엄마는 어떻게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했을까. - P61

우는 것과 좋아지는 건 뭔가 분명한 관계가 있는 거라고 - P61

꼬챙이로 붕어빵 틀을 들출 때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 있는 물고기들을 아이는 지느러미 끝을 잡고 끄집어냈다. 아직희끗한 붕어들의 뚜껑은 도로 덮어놓았다. 태어나려면 그 뜨거운 틀 속에서 더 견뎌야 했다. 옆엣것들과 똑같이 견디지 않고는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 P76

붕어를 다 꺼낸 다음에는 틀들을 세로로 세워둬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눕혀놓으면 그 부분이 너무 달궈져서 반죽과 고물을 붓고 나면 그쪽만 타버린다. - P76

틀의 얼굴 모양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붕어들은 하나같이 웃는 입꼬리를 하고 있었다. 제가 웃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 P76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P77

.......이렇게는 못 살아! - P79

언젠가부터 아이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저 생겨난 일대로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견디는 데익숙해져 있었다. - P91

해질녘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 P99

눈을 떠라.
눈을 떠! - P105

"......혼자 초를 그리게 되기까지는, 이렇게 삼천 장을 그대로 베껴야 된단다." - P117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다. 부처님 앞에 절하듯이 한 장 한 장 그대로 베끼기부터 해야 되는 거야. 주름 하나 어깨선 하나 다르지 않게 하려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 - P118

눈물로 세상을 버티려고 하지 마라. - P119

눈물 따위로 버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마. - P119

내 살아온 동안 쌓아온 것들이 고스란히 내 병이야...... 이제 와서 보니 후회가 되는구나, 한평생 칼을 품고 살아왔던 것 같으니. - P120

말해야 한다.
나는 다짐했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물어야 한다. - P122

"저는 바라는 게 없어요. 그쪽이 바라는 대로 하세요" - P125

나는 그의 흉터와 용기를 함께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바로 그 흉터가 나에게 안겨준 충격 때문에, 평생 숨기고 싶었을 알몸을 보여줄 만큼 나를 신뢰해준 데 대한 고마움 때문에 그를 받아들였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 P127

하루하루를 인내하고 있는데, 네 몸을 견디며 살아주고 있는데,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니. - P128

나는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 P134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의 흉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 흉터 때문에 그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의 흉터가 다만 한 겹 얇은 살갗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다는 것이 내 마음의 얇은 한 겹까지 벗겨내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죄가 있다면 모두 나의 것이었다. - P134

삶이 얼마나 긴 것인지 몰랐던 죄. 몸이 시키는 대로 가지 않았던 죄. 분에 넘치는 정신을 꿈꿨던 죄. 분에 넘치는 사랑을 꿈꿨던 죄. 자신의 한계에 무지했던 죄. 그러고도 그를 증오했던 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가학했던 죄. - P135

나는 타인의 그것처럼 그의 흉터를 보았다.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듯이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 P135

세계가 다른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을 낯설게, 그리고 오래 바라보았다. 선한 것과 악한 것, 의무와 책임과 방기, 진실과 거짓 따위가 내 눈앞에서 경계선을 무너뜨려갔다. 나는 그 혼란에 더 이상 놀라거나 당혹스러워하지 않았다. 다만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 간격이 나를 구해주었다. - P135

우리는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미워하지않았다. 다시 평화가 찾아오자 나는 다시 작업에 열중할 수 있있으며, 예전보다 더욱 내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 P135

작업실에 온종일 틀어박혀 있으면 나는 자유로웠다. 몰입만큼 자유를 주는 것이 어디 있는가? - P135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시간 낭비잖아요" - P137

아주 높이 올라간 상태에서 뒤돌아봤을때 후회될 만한 짓들은 하고 싶지 않았어. - P139

일단 목표가 생기면 그는 최선을 다했다. - P140

그 애는 날 원해. 상대방이 날 원한다는 걸 느낀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까마득히 잊고 지냈어. - P143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다. - P144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 P148

어디서 이 묵묵한 인내가 나오나. - P149

어떻게 이토록 고요한 얼굴인가. - P150

"뭘 준다고 하면 ‘그럼, 그럴까?‘ 하고 좀 받어. 원, 주는 사람 성의도 생각해야지!" - P151

"의료보험료는 괜히 내? 이럴 때 쓸려구 내는 거 아냐." - P152

처음부터 그렇게 되었어야 했던 것을 어리석게 버텨왔을 뿐 - P155

......지나가는 아픔 하나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다는거냐? - P156

그 가죽 안에서 악취 나는 거품처럼 부글거리고 있는 것은 오래 묵은 분노와 후회와 증오, 억울함과 자책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것들이 내 살을 속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식시켜왔다. -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