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똑같지 않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마라. 이 교훈은 적어도 내게는 효과가 있었다. - P5
그의 심장은 분명 "즐라탄 앞에 즐라탄 없고 즐라탄 뒤에 즐라탄 없다"는 박자에 맞춰 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즐라탄이니까. - P6
판 바스텐은 판 바스텐이고 즐라탄은 즐라탄이다. - P6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국면은 무엇보다 내용과 필치의 솔직함이다. 문학성, 리얼함, 재미 등의 장점과는 별개로, 이 자서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적을 많이 만들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 P7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즐라탄의 자서전 집필 스타일은 그의 축구스타일과 꼭 닮아 있다. 한마디로 ‘즐라탄 스타일‘이다. - P7
언제든 내 실력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18
‘나한테 찾아온 기회를 즐겨보자‘고 생각했다. 저들이 나에 대한 선입견을 굳히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 P19
무슨 일이든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이 내 철학이다.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내 주관대로 살았고, 어렸을 때부터 샌님 같은 사람들과는 즐거웠던 적이 없다. - P19
나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말만 했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 P19
갑갑했다. 나, 즐라탄은 더 이상 즐라탄이 아니었다. - P20
나는 경기를 잘하려면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 고함도 지르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야 기운이 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분노를 내 안에 봉인해두고 있었다. - P20
삶이 지지부진할 때마다 나는 돌파구를 찾는다. - P21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즐라탄이 다시 옛날 모습을 찾았다. - P21
그라운드에서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경기를 만들어가고 싶은 놈이란 말이다. - P22
페라리를 사놓고 피아트처럼 운전하는 격이야 - P23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전쟁은 원하지 않아요. 그냥 의논하고 싶어요." - P23
"내가 말다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가겠습니다. 그냥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 P23
‘이브라카다브라ibracadabra(이브라히모비치 뜻대로 될지어다)‘ 주문이 예전처럼 잘 통하지는 않았다. - P24
감독의 태도는 내 신경을 긁어놓았고 나는 날마다, 아니 매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지? 뭐가 문제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이렇게 냉담한 이유를 찾자면 내 포지션을 두고 저번에 나눴던 대화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이유라면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었다. - P26
어쨌건 나는 그에게 굽실거릴 만큼 굽실거렸으니 이제 그가 해결할 차례였다. - P26
나는 그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주관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을 다룰 줄 몰랐던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는 말 잘 듣는 모범생만 원했고, 게다가 자기가 해결할 문제를 놔두고 줄행랑을 쳤다. 그는 개성이 강한 선수들과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문제는더 꼬였다. - P26
선수로서 내게 신경을 써주는 한 그가 나를 미워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그가 나를 증오하거나 복수하려고 했다면 차라리 더 힘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 P25
"헬레나 한 가지만 해주면 돼요, 즐라탄을 잘 먹이고, 푹 재우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 P27
감독은 이 모든 결과가 내 잘못이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이 내게 주어진 최후의 기회였던 것이다. - P29
몸은 힘들지 않았지만 마음이 힘들었다. - P29
어쨌거나 내가 화가 나서 폭발할 때는 내 근처에 오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다. - P30
예전에도 다른 사람들과 옥신각신한 적은 많지만, 그래도 다음 날이면 뒤끝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었다. - P31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참고 있어야 하나? 이런 분위기에 군말 없이 적응해야 한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 P31
저 얼간이들을 약 올리는 일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 P31
이제 나는 내 목소리를 낼 작정이었다. - P32
나는 내 신조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고, 그런 일이라면 손바닥 보듯 훤하게 알고 있었다. 전에도 이런 싸움을 해보았다. 하지만 싸움에 임해 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기에 나는 미노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우리는 늘 함께 전략을 수립한다. 우리 둘 다 영리하고 거칠었다. 나는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했다. - P32
나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싶었고,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 P32
"팀이 당신 맘에 들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하나 만들면 어때?" - P32
감독을 쳐다볼 때면 내 안의 어둠이 꿈틀댔다.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을 때면 주먹을 불끈 쥐고 기어코 응징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그때는 이미 되돌릴 길이 없었다. 이제 당당하게 서서 예전의 나를 회복할 때였다. - P33
"로센고드에서 소년을 데려갈 수는 있어도 몸에 밴 근성까지 데려갈수는 없다"는 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 P33
어렸을 때 형에게서 BMX 자전거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자전거에 파이도 다이도 Fido Dido라고 이름 붙였다. 파이도 다이도는 꼬불꼬불한 머리에 거칠 것이 없는 성격의 만화 주인공이었다. - P34
내 아버지로 말하자면, "누가 내 자식들을 건드려! 어떤 놈도 내 자식 물건에는 손도 못 대"라고 호통을 치는 유형이었다. - P34
너무 수치스러워서 언젠가 복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P35
나는 온몸에 좀이 쑤셔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녀야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 P36
우리 가족은 스웨덴 서남부에 있는 말뫼 시 외곽에 있는 로센고드에 살았다. 로센고드에는 스웨덴 사람을 비롯해 소말리아, 터키, 유고, 폴란드 등에서 넘어온 가난한 이민자들이 넘쳤다. 이곳 아이들은 가진 것은 없어도 깡다구로 버티는 녀석들이었다. 밖에 나가면 아이들은 툭하면 성질을 부렸고, 집에 돌아와서도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았다. - P36
우리에게 만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 P36
모든 일을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누군가 나를 못살게 굴어도 칭얼거리는 것은 금물이다.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다. 칭얼거려봤자 시끄럽기만 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따귀를 맞거나 매질을 당하면서 호되게 야단을 맞을 뿐이었다. - P36
그 시절 어머니는 아이를 달래고 위로해줄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부양하느라 뼈가 빠지게 일했다.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다 보니 어머니는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다른 식구들도 모두 성질이 고약했다. 집에서 오가는 대화는 교양 있는 스웨덴 사람들의 대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 P38
식구들 입에 풀칠하는 일, 어머니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집에는 먹여야 할 식구가 많았다. - P39
나는 그런 집안 분위기가 싫어 밖으로 나돌았다. 동네를 뛰어다니거나 축구공을 차며 놀았다. 나는 몸도 마음도 불안정했고, 축구 선수로 성공할 싹수가 보이는 아이는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냥 공 좀 차는 시건방진 아이 중 하나였을 뿐, 축구를 잘하는 축에도 끼지 못했다. - P42
나는 경기 중에 분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을 머리로 들이받고 동료 선수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래도 축구를 계속했다. 나는 축구가 좋았다. 안마당에서든 축구장에서든 쉬는 시간이면 늘 축구를 했다. - P42
나는 굶주림의 기억을 죽어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 P48
"아버지는 술로 슬픔을 달랜다"고 형이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모르는 일이 많겠지만, 전쟁이 아버지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 P50
전쟁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의 일이었다. 나는 전쟁 같은 것은 모르고 자랐다. 어른들은 그 진실로부터 철저하게 나를 보호했다. 어머니와 누나들이 다들 검은색 옷을 입고 있을 때에도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괴상한 패션이 유행하는 줄로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크로아티아 내전 때 폭격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 P50
가족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슬피 울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세르비아 사람이고 보스니아 사람이고 통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전의 직격탄을 맞았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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