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주워 모은 지식? 그런 건 지혜가 될 수 없어요. 그래서 "문으로 들어온 것은 집안의 보배가 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 P183
지혜는 누군가로부터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남에게 받을 수 있지만 지혜는 받을 수 없어요. 지식은 머리에서 자라나는 것이지만, 지혜는 마음에서 움트는 겁니다. 그 지혜는 우리 마음에 꽃으로 피어나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주워 모은 것으로는 지혜의 탑을 쌓을 수 없습니다. - P183
마음 밖에서 찾지 마세요. 이 세상 모든 것은 순간순간 새로운 것으로 채워집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릅니다. 비록 거죽은 비슷하여 똑같은 눈매와 똑같은 목소리를 하고 있지만 어제의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는 새로운 나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그렇게 순간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 P183
무엇이 똑같아 보인다면 그건 우리 마음속에 과거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거를 통해서, 어떤 관념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늘 똑같은 것처럼, 같은 것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겁니다. - P183
진정한 삶은 순간마다 새롭습니다. 꽃을 보세요. 어제 핀꽃이 다르고 오늘 핀 꽃이 다릅니다. 같은 것처럼 보여도 다릅니다. 그 빛깔과 그 향기와 그 모습이 다르다고요. 순간마다 새로운 이 삶이 종교적 신비예요. 이 신비가 우리를 본래의 나에게로, 본래의 자아에게로 인도합니다. - P184
참된 종교는 인간의 의식, 인간의 가슴을 활짝 열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건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바로 가슴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가슴이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수 있습니다. 가슴이 겹겹으로 닫혀 있으면 아무리 달변을 늘어놓고, 거짓으로 선행을 해도 가짜임을 알 수 있습니다. - P184
종교는 추상적인 군중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인과 관계를 갖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역이에요. 개인만이 실체를가진 존재이지 조직이나 집단은 실체가 없습니다. 따라서 개인이 변화해야만 개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도 변화의 길을 가게 됩니다. - P184
어떤 수식어가 붙는건 진짜가 아닙니다. 진짜 큰 것에는 크다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수식어 같은 건 없어도 돼요. 엄연한 실체가, 엄정한 존재가 있으니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 P185
불교는 부처님을 받들고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불자인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부처가 되려는 사람, 스스로 눈을 뜨려는 사람이 진정한 불자입니다. - P186
첫째, 종교적인 사람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끊임없이 묻는 사람입니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묻는 사람이 영원한 구도자입니다. 참을 향해서끝없이 노력하는, 끝없이 정진하는 구도자예요. 구도자는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 P186
둘째, 종교적인 사람은 온갖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 사람이에요. 자기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난 사람, 이기심과 야심으로부터 자기를 자유롭게, 또 바람처럼 풀어놓은 사람이에요. - P186
셋째, 종교적인 사람은 물질적인 빈부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 분수를 알아서 자제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에 중심이 잡혀서 평온하다는 거예요.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마음의 가난은 덕이 됩니다. 스스로 자기 삶을 자제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맑은 가난은 미덕입니다. - P187
현대인의 불행은 옛날과 달라서,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불행은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고 넘쳐서, 그걸 감당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 P187
우리는 내면에서부터 맑은 가난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헛된 욕구도 욕망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면에 있는 맑은 가난을 통해서만 삶의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지에는 아무 갈등도 없고, 어떠한 분란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 P187
내면에 맑은 가난이 없으면, 안으로 찬 것이 없기 때문에 흔들리고 맙니다. 안으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의 중심이 안 잡혀 있기 때문에 과시하고 허세를 떨고 권력에 편승하고 소유물에 빠져듭니다. - P187
사람들은 마음이 공허할 때 물건을 사들여요.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공허한 마음이 해소됩니까? 오히려 집착만 더생겨요. 그렇게 사들인 물건은 결국 귀찮은 쓰레기가 되고마음의 짐이 됩니다. 무엇 때문에 돈을 들여서 버려야 할 쓰레기를 사려고 합니까. - P188
버린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지고 가서 보람 있게 쓰면 돼요. 유용하게 쓰면 되는 겁니다. 내게는 짐밖에 안 되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물건도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 P189
넷째, 종교적인 사람은 자신이 믿는 종교 그 자체로부터도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종교란 결국 무엇입니까? 일종의 문화현상이에요. 종교를 절대시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문화 현상이 있습니다. 철학이나 예술 같은 분야도 있고 정치나 경제 같은 분야도 있습니다. 이들도 모두 문화 현상입니다. 그중 하나가 종교일 뿐입니다. - P189
종교라고 해서 특별한 게 아닙니다. 종교를 무소불위의 절대적 가치로 보는 것은 종교 자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태초에 종교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람이 살다 보니까 이러한요소도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어디 조용한 곳에가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 혼란스러운 정신을 다스리고 싶은 마음, 이런 욕구가 인간 내면에서 일어났고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것이 바로 종교로 이어진 것입니다. - P189
자신의 마음을 어떤 틀에 가두거나 한정해 버리면, 비록 그것이 종교라 하더라도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어요.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마음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크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 P189
《금강경》에 "진리도 버려야 할 텐데, 하물며 진리 아닌 것이랴." 이런 구절이 있어요. 진리 자체에 얽매이지 말라는 거예요. 노예가 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가 제대로 살면 되는 거예요. 종교적인 사람은 어디에도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거듭거듭 성장할 수 있어요. 날마다 새롭게 성숙할 수가 있습니다. - P190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한다면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말라.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말라. 모든것을 소유하고자 한다면 어떤 것도 소유하지 말라." - P190
"모든 것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것도 되지 말라." 이렇게 압축할 수가 있어요. 무엇이 되려고 하면 그것에 매여서 그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거예요. 자기 자신을 어떤 틀에도 가두지 말고 한정시키지도 말라는 거예요. 사람은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으로 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사람은 끝없이 완성되어 가야 할 그런 존재예요. - P190
우리가 살고 있는 세월이라는 건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불변하지도 않습니다. 늘 변해요. 우리는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 P191
실망하지 마십시오. 위기 속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경제 난국이라는 것은 우리 미래를 위해서 새롭게 시작하라는 명징한 교훈입니다. - P192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내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절망한 사람에게는 내일이 없습니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 희망도 있는 거예요. 인생에는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흐린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어요. 흐리고 바람 부는 날이 지나가면 반드시 맑은 날이 옵니다. 이것이 우주의 순환입니다. 늘 이렇게 순환해요. 인류 역사 자체가 그렇습니다. 개인도, 사회도, 나라도 그렇게 순환합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 P193
사람은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 - P194
새롭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변화와 시련을겪으면서 인간적으로 더 성숙해질 수 있다면 오늘의 위기가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 P194
스콧 니어링이라는 성실한 자연주의자가 있습니다. 백 년이라는 시간을 살면서 깊고 심오한 관조의 세계를 펼친 사람입니다. - P194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결코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 집, 식사, 옷차림을 검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의 땅을 느껴라.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리고 그날그날을 살라. 다른 사람과 나누라. 인생과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라. 생활 속에서 웃음을 찾으라. 이 세상 모든 것에 애정을 가져라.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을 안으로 살펴보라." - P195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하지 않습니까? 웃음은 단지 즐겁고 기쁜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 중 하나는 복입니다. 행운이나 재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복입니다. 복은 상서로운 것이며 나누는 것입니다. 나를 이루는 근원이며 남을 이롭게 하는 수단입니다. - P196
웃으면 복이 옵니다. 얼굴 찌푸리지 마세요. 복이 누군가 집에 찾아갔다가도 주인이 찌푸리는 걸 보고 ‘어이쿠, 다른곳에 가야겠네.‘ 돌아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들어오는 복을 자기 스스로 내치지 마세요. 이 복으로 나와 이웃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너무 간단합니다. 웃으면 됩니다. 이 단순한 가치가 가장 위대한 가치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아름다운 인생을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 P196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을 보려면 종교안宗敎眼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눈만 있어도 안 됩니다. 그에 어울리는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 모든 것에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 P197
출가라는 건 무엇입니까? 단지 살던 집에서 나온다고 해서 출가인 것은 아닙니다. 낡은 집으로부터, 즉 어떤 고정 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입니다. - P198
율장律藏은 부처님이 제정하신 계율의 조례를 모은 책입니다. - P199
"출가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하리라. 집에서 사는 생활은 좁고 번거로우며 먼지가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 출가한 다음에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멈추었다. 말로 짓는 악행도 버리고 아주 깨끗한 생활을 하였다." - P200
삼업三業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인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 이르는 말입니다. 수행이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몸으로 하는 행동, 입으로 하는 말, 내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 이 삼업을 맑히는 일이에요. - P201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일 두루 행해서 그 마음을 맑히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주시는 가르침이다." - P201
임제 선사 법문에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임하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임하는 모든 곳이 참되리라." 이런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주인이 되라는 거예요. 어느 곳에 가든 그곳의 주인이 되라는 겁니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가 몸담고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법계가 되고 진리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 P203
두타행頭陀行이란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떨치는 수행을 말합니다. - P204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어서 지니게 된 것은 대단함이 아닌데, 스스로 누추함을 선택한 것은 귀한 거예요.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 P205
직접 농사를 지어도 되고 음식을 만들어도 되는데 왜 부처님은 이를 금하고 걸식乞食을 하라고 하셨을까요? 농사를 짓거나 음식을 만들면 세속적 욕망과 번뇌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 P206
칠가식七家食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걸식을 위해 일곱 집을 돈다는 거예요. 일곱 집을 모두 돌기 전에 바리때가 차면 거기서 그치고, 일곱 집을 돌아도 바리때가 차지 않으면 찬 만큼만 먹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굶습니다. - P206
경전에 차제걸이次第乞已라는 말이 나오는데, 한 집 한 집 그러니까 차례차례 걸식할 집을 찾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구별하여 가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 P207
최초의 불교 정사인 죽림정사나 수달 장자가 세운 기원정사가 생기기 전에는 수하좌樹下座예요. 말 그대로 나무 아래에서 정진했습니다. - P207
나무는 사람보다 낫습니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의연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수행자의 모습 아닙니까? 그걸 배워야 돼요. 선지식으로 삼으세요. 야단스러운 것은 선지식이 아닙니다. 그건 사이비입니다 진짜 선지식은 나무나 바위나시냇물처럼 말이 없습니다. - P208
(출가 생활을 위한 네 가지 요소 중)마지막은 진기약陳棄藥입니다. 소 배설물을 발효시켜서 만든 것인데, 이것으로 병을 다스렸다고 그래요. 그런데 몹시 아프더라도 이레를 넘겨 먹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오래 약을 먹으면 범계犯戒, 즉 게를 범하게 되는 거라고 했어요. - P208
"내가 너희들에게 술을 못 마시게 한 것은 그것이 정신을 해하는 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사람을 낫게하는 것이라면 왜 못 마시게 하겠느냐. 그때는 그것이 술이아니라 약인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진짜 가르침이에요. 이것이 진짜 계戒입니다. 계는 엄격하기만 한 것이 아니에요. 융통성이 있어요. - P209
계라는 문門은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늘 닫혀만 있다면 그게 벽이지 어찌 문입니까? 그렇다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하는 식으로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건 술이 아니라 약이오." 하면서 마셔대면 천규天規를 어기는 것입니다. - P209
극단은 불건전하기 마련입니다. 지나친 쾌락도 안 좋은 것이고, 지나친 고행도 안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도를 설하셨습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를 두고 최초로 설한 것이 중도 법문 아닙니까?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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