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친 첫 문장을 보며 독자인 나는 살짝 의아했다. 왜냐하면 내가 지난 여름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문과 남자의 과학공부》에서 봤던 내용과는 상반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는 생존 기계는 그저 생존만을 생각할 뿐 그다지 특별한 목적이 없다는 식으로 인지되어 있었는데 오늘 본문은 그와 반대되는 듯한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읽어봐야 겠다.

생존 기계의 행동에서 가장 뚜렷한 특성의 하나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 P125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존 기계의 행동이 목적의식 있는 인간의 행동과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동물이 먹이나 배우자, 또는 잃어버린 새끼를 ‘찾는‘ 것을 보면, 인간이 무언가를 찾을 때 경험하는 모종의 주관적 감정을 그 동물 역시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감정에는 어떤 물체에 대한 ‘욕망‘, 즉 바라는 물체를 ‘마음속에 그린 그림‘ 또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 - P125

현대의 생존 기계 중 적어도 하나(사람)에서는 이 목적성이 ‘의식‘이라고 불리는 특성을 진화시켰다. - P125

이들 기계는 기본적으로 극히 단순하며, 의식이 없으면서도 목적의식이 있는 듯 행동한다. 이러한 원리는 공학분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고전적인 예로는 와트증기 기관의 조속기調速機가 있다. - P125

‘목적기계‘, 즉 의식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기계 내지 물건은 사물의 현재 상태와 자신이 ‘바라는‘ 상태의 차이를 측정하는 일종의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이 차이가 클수록 기계는 더 열심히 돌아가도록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기계는 자동적으로 그 둘의 차이를 좁혀 가며 (이 때문에 ‘음의 피드백negative feedback‘ 이라고 불린다), 자신이 ‘바라는‘ 상태에 도달하면 작동을 멈춘다. - P126

피드포워드feed-forward (실행 전에 결함을 예측하고 실시하는 제어) - P127

유도 미사일과 같은 기계가 의식을 가진 인간의 손으로 설계되고 만들어진 것이므로 의식을 가진 인간에 의해 직접 조종되는 것과 같다는 주장은 잘못된 생각이다. - P127

‘컴퓨터는 조작하는 사람이 명령한 것밖에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유전자가 행동을 ‘조종‘한다고 말할 때 그 조종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 P127

중요한 것은, 컴퓨터가 실제로 경기를 할 때 컴퓨터는 이미 독립되어 있고 프로그래머의 훈수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미리 많은 양의 지식과 전략 및 기술에 대한 힌트를 적절히 섞어 입력하여 최선의 상태로 컴퓨터를 설정해 놓는 것 뿐이다. - P129

유전자 역시 인형을 직접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간접적으로 자기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생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 후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며 유전자는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그 안에 들어앉게 된다. 유전자는 왜 그렇게 수동적이 되었을까? 왜 고삐를 잡고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을까? 그 이유는 시간적 차이 때문이다. - P129

프레드 호일Fred Hoyle과 존 엘리엇John Elliot의 소설 「안드로메다의 A A for Andromeda」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며, 좋은 공상과학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흥미로운 과학적인 논제들을 그 배경에 깔고 있다. 묘하게도 이 책은 이러한 논제들 중 가장 중요한 논점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 P129

《안드로메다의 A》와 그 속편 《안드로메다 돌파 작전Andromeda Breakthrough》은 내용이 서로 엇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외계 문명이 터무니없이 먼 거리에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말했듯이 안드로메다 성좌의 별에서 생겨난 것인지 일치하지 않는다. 전편에서는 그 행성이 우리 은하에 속하는 범위인 2백 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나 그 속편에서는 동일한 외계인이 2백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 P514

이 두 소설(《안드로메다의 A》와 그 속편 《안드로메다 돌파 작전Andromeda Breakthrough》)의 작가인 프레드 호일 Fred Hoyle은 저명한 천문학자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상 과학 소설《검은 구름 The Black Cloud》 의 저자이기도 하다. - P514

한 분야에서 뛰어난 학자가 다른 분야에서도 뛰어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고쳐야 한다. - P515

광속은 우주 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속도의 이론적 상한선이다. 거기에다 기계공학적 문제를 생각하면 사실상의 한계는 광속보다 훨씬 더 낮다. - P130

무선 전파는 우주의 다른 장소와 교신하는 보다 좋은 수단이다. 한 방향으로만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 신호를 발송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있으면 아주 많은 세계 (그 수는 신호가 가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한다)에 신호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P130

2백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 성좌에 어떤 문명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문화를 먼 외계에까지 전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직접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29

무선은 광속으로 전파되므로 그 신호가 안드로메다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 2백 년이 걸린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듯 거리 때문에 그들은 우리와 대화를 할 수 없다. 지구에서 연이어 송출된 메시지들이 각각 12세대만큼의 간격을 두고 전달된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거리에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분명히 헛된 일일 것이다. - P130

무선 전파가 지구와 화성 사이를 오가는 데 약 4분 걸린다. 이제 우주 비행사는 짧은 문장으로 말을 교환하는 습관을 버리고 대화보다는 편지 같은 장문의 혼잣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분명하다. - P130

로저 페인 Roger Payne이 지적한 대로 바다는 독특한 음향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 즉 일정한 깊이에서 헤엄치는 어떤 고래들의 엄청나게 큰 ‘노래‘는 이론적으로 세계 모든 곳에서 들을 수 있다. - P130

고래들이 실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교신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화성에 있는 우주 비행사와 같은 처지일 것이다. 수중의 음속으로 계산하면 그 노래가 대서양을 횡단하여 회담이 오기까지 약 2시간이 걸린다. 일부 고래들이 반복 없이 8분간이나 계속 독백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8분간의 독백이 끝나면 고래들은 노래를 처음부터 계속 여러 번 반복하는데, 그 반복 주기는 8분 정도다. - P131

유전자는 단백질 합성을 제어하는 일을 통해서 작용한다. 이것은 세상을 조종하는 강력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배胚를 만들려면 인내를 갖고 몇 개월 동안 단백질 (합성)의 끈을 잡고 있어야 한다. 반면에 행동의 특징은 빠르다는 것이다. 행동은 수개월이라는 시간 단위가 아닌 몇 초, 또는 몇 분의 1초라는 시간 단위로 작용한다. - P132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안드로메다 외계인처럼, 자기들을 대신해서 신속히 작동할 컴퓨터를 조립하고, ‘예상‘할 수 있는 많은 우발적 사건들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과 ‘충고‘를 사전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 두는 것뿐이다. - P133

그러나 체스 게임이 그렇듯이 생명체가 맞닥뜨릴 수 있는 우발적 사건이란 수없이 많기 때문에 도저히 그 모든 것을 예상할 수는 없다. 체스 프로그래머와 마찬가지로, 유전자는 생존 기계에게 생존 기술의 각론이 아니라 일반 전략이나 비결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 P133

북극곰의 유전자는 곧 태어날 자신들의 생존 기계가 미래에 추위를 느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그것을 하나의 예언으로서 생각해 내는 것은 아니다. 그 유전자는 생각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두꺼운 모피를 만들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 유전자가 과거의 몸속에서 항상 해 왔던 일이고, 또 그 유전자가 아직도 유전자 풀 속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P133

복잡한 세상에서 예측이란 불확실하게 마련이다. 생존 기계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도박이다. 따라서 유전자가 할 일은 뇌가 평균적으로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뇌에 미리 프로그램을 짜놓는 것이다. - P134

진화라는 카지노에서 쓰이는 판돈은 생존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유전자의 생존인데, 여러 가지 면에서 개체의 생존을 유전자 생존의 근사치로 보아도 좋다. - P134

장기적 안목에서 당신의 유전자가 살아남는 기회를 최대화하도록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 P134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올바른 도박을 하도록 뇌를 만들어준 유전자의 개체가 당연히 더 잘 살아남고, 따라서 같은 유전자를 퍼뜨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 P134

‘고도의 문학적, 학문적 취미를 가졌으나 자신의 분석적 사고로 이해할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교육을 받아 온 많은 사람들‘이 ‘허황된 철학 이야기‘에 매력을 갖는다는 메더워의 말 - P515

예측 불허인 환경에서 예측을 하기 위해 유전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학습 능력을 만드는 것이다. - P135

우리에게 지도는 세계의 일부를 2차원으로 압축한 축소 모형이다. 컴퓨터 지도에는 아마도 마을을 비롯한 여러 지점이 각각 위도와 경도라는 두 가지 수치로 표시한 도표로 나타날 것이다. - P137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생존 기계는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학습할 수 있는 생존 기계보다 한 단계 앞서 있는 것이다. 시행착오중 ‘시행‘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들며, ‘착오‘는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보다 안전하면서 보다 신속하다. - P139

사회적 동물은 다른 개체들, 즉 잠재적인 교미 상대, 경쟁자, 협력자, 적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살아남아 번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른 개체들이 다음에 무엇을 하려는지 잘 예측해야만 한다. - P519

시뮬레이션 그 자체도 시뮬레이션의 대상인 세상의 일부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자기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의식의 진화가 충분히 설명되는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무한 회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형의 모형이 있다면 모형의 모형의 모형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P140

의식에 대해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가 무엇이든, 현재 우리의 목적에서 의식이란, 실행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 기계가 그들의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되는 진화의 정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P140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의 제어하에 있으며, 그 제어가 간접적이기는 하나 그와 동시에 매우 강력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 P140

생존 기계와 신경계를 조립하는 방법을 지시함으로써 유전자는 생존 기계의 행동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순간순간 결정하는 것은 신경계다. 유전자는 일차적 정책 수립자이며 뇌는 집행자다. 그러나 뇌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정책 결정권을 갖게 되었으며, 결정권 행사에서 학습이나 시뮬레이션과 같은 책략을 쓰게 되었다. - P140

진화는 실제로 유전자 풀 내 유전자들의 차등적 생존을 통해 단계적으로 일어난다 - P140

따라서 어떤 행동 패턴 - 이타적인 것이든 이기적인 것이든-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다른 행동을 ‘담당하는‘ 경쟁적 유전자, 즉 대립 유전자보다 유전자 풀 속에서 더 잘 생존해야 한다. - P141

이타적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란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신경계의 발달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말한다. - P141

무언가에 ‘대한‘, 무언가를 ‘담당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은 그 유전자가 변할 때 무언가도 변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유전적 차이 하나는 세포 내 분자들의 세세한 양상을 바꿔서 복잡한 배 발생 과정에 차이가 생기게 하고, 이것이 이를테면 행동의 차이로 이어지게 된다. - P520

진화의 근본적인 점진성, 즉 적응적인 진화는 기존의 구조 혹은 행동에 작은 변화가 생겨 진행된다 - P521

꿀벌은 부저병 foul brood이라는 세균성 전염병에 걸린다. 이것은 꿀벌의 애벌레나 번데기가 벌집 속에서 세균에 감염되어 썩는 병이다. - P141

위생적인 종류는 병에 걸린 애벌레를 발견하고 봉방에서 끄집어내 버림으로써 병을 빨리 근절할 수 있다. 한편 감염되기 쉬운 종류는 이 ‘위생을 위한 영아 살해‘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병에 걸리기 쉽다. - P141

유전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생존 기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 서로 ‘협력‘한다 - P143

유전자는 우두머리 프로그래머이며 자기의 생명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든다.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가 생애 중에 부딪치는 모든 위험을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로 심판받는다. 그것은 생존 법정에서 내려지는 냉혹한 심판이다. - P144

생존 기계와, 생존 기계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는 뇌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개체의 생존과 번식이다. 이 ‘군체‘ 내의 모든 유전자는 이에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먹이를 찾고, 잡아먹히지 않으려 하고, 병이나 사고를 피하려 하며, 나쁜 기후 조건에서 몸을 지키려 하고, 이성을 찾아 교미를 시도하며, 자기들이 누리는 것들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려 한다.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원한다면 주위의 야생 동물을 잘 관찰해 보라. - P144

신호란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의 근육의 힘을 이용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 P521

나이팅게일의 노래는 정보가 아니며 다른 동물을 속이는  정보는 더욱더 아니다. 그것은 설득력 있고, 최면을 거는 것이며, 주문을 거는 웅변이다. -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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