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이면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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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를 읽으면서 저자인 손흥민 선수의 성장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자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의 교육 철학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예전에 TV프로그램에서 손웅정 감독님이 언론사와 인터뷰하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는데 방송에서 잠깐 봤던 그 이미지와 철학을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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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대한축구협회의 지원을 받아 독일의 함부르크로 축구 유학을 가게 된다. 독자인 나는 외국 유학을 별도로 가본적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솔직히 외국 유학에 대한 막연한 환상같은 것이 있었다. 그냥 다 좋을 것만 같았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지면으로 접한 저자의 축구 유학 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꿈꾸던 유럽이라는 무대에서 축구를 할 수 있기에 좋은 점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낯선 언어와 문화, 음식 등으로 인한 문제라든지 비자같은 행정적인 절차 등을 비롯한 신분적인 불확실성의 연속 등 이루 다 말하기 힘들정도로 어렵고 힘든 일들도 많았음을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위와 같은 갖가지 어려움들을 딛고 지금 저자의 성공을 이루게 해준 이면에는 당연히 저자 본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저자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의 역할도 크다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확고한 교육철학은 저자의 멘탈이 종종 흔들릴 때 나침반같은 역할을 하여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저자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저자의 성장 스토리를 보며 진짜 그냥 이루어지는 건 없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고 마음 깊이 느껴졌다. 힘듦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것들을 극복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성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그게 정도正道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역경없는 성공은 없다. No pain, No gain.

90분이 지났을 뿐인데 세상이 둘로 쪼개졌다. 승자와 패자. - P11

나는 기계가 아니라서 당연히 힘들다. 경기를 위해서 대륙과 대륙을 왕복하다 보면 피로가 쌓인다. 그래도 행복하다. 경기에 계속 출전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할 뿐이다. - P12

나는 둥근 물체를 보면 무조건 발로 찼다. 집에서든 골목에서든 운동장에서든 늘 공차기를 하며 놀았다. 공을 차고 놀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 P20

"나가 놀아" - P20

아버지는 지금도 "자유라는 연료를 태워야 창의력이 빚어진다"라고 말씀하신다.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고 관찰하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재미있어 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는 지론이다. - P20

항상 이기는 게임만큼 재미있는 게 어디 있을까. - P22

바깥세상은 춥다 못해 시릴 정도야. - P22

자식의 고집과 부모의 걱정이 부딪히면 언제나 자식이 승리한다. - P23

단순해 보이는데 제대로 해내려면 오랫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했다. - P24

나는 훈련만 하는 대신, 훈련을 위해서 100%를 쏟아야 했다. - P24

싫증이나 게으름도 사치였다. 조금만 느슨해졌다 싶으면 곧바로 불벼락이 떨어졌다. - P24

7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자그마치 5,110시간이다. - P25

매일 똑같은 볼리프팅과 8자 드리블 프로그램만 반복하니까 당연히 따분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능숙해졌다고 생각해도 아버지는 계속 두 아들에게 똑같은 메뉴만 시켰다. 이런 반복 훈련을 버틸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그래도 축구가 너무 재미있었다. 둘째,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감히 지루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셋째, ‘필요하니까 하는 거겠지‘라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 P25

아버지의 이론은 간단했다. 하나를 제대로 할 수 있어야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양쪽 발로 볼을 마음대로 다룰 줄 알아야 패스도 하고 크로스도 올리고 슛도 때릴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 다음에 움직임을 익히고 전술을 배우는 순서였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정한 기준에 다다르기 전까지 두 아들을 절대 다음 단계로 보내지 않았다. - P26

아버지는 기본기를 중시했고, 성적(경기 결과)으로 유소년을 평가하는 지도 방식을 정말 싫어하셨다. - P27

훈련도 축구, 노는 것도 축구였다. 재미있으니까 멈출 수가 없었다. 예전에 ‘음악만이 세상이 유일하게 허락한 마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내게는 축구가 그랬다. - P28

우리는 아직 ‘발로 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도록 연습하는‘ 과정에 있었다. 밤에 정전이 되어도 밥숟가락을 자연스럽게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처럼 말이다. - P29

뛰어난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만큼 재미있고 동기 부여가 되는 일은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회가 찾아왔다. 유럽에서 볼을 차고 싶다는, 춘천 촌놈에게는 말도 안 되게 거창한 찬스 말이다. - P36

꼬마 시절부터 꿈이 둘 있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 그리고 유럽에서 뛰어 보고 싶다는 꿈. - P37

꿈은 일단 크게 가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세뇌(?)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 P37

춘천 맨땅에서 종일 볼리프팅을 반복하는 꼬마의 꿈치고는 정말 거창했다. ‘이 다음에 커서 토니 스타크가 되겠어요‘ 이런 느낌이랄까. - P38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10대 소년이 유럽 축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실력과 함께 개인의 스타일도 중요하다. 경기장 안에서 뛰는 스타일이 유럽과 잘 맞아야 한다. 볼을 다루는 개인 기술만큼 ‘어떻게 뛰는지‘도 유럽과 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경기장 밖에서는 유럽의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섞일 줄 알아야 한다. 섞이지 못하면 꾹 참고 버티기라도 해야 한다. 쉽게 들릴지 모르지만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사춘기 소년이 혼자 버티기란 정말 어렵다. - P40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축구 선수들은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당연하게 들려도 실천이 그만큼 어렵기에 지도자들이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 찾아온 기회, 그때는 몰랐지만 마지막이 될 기회를 내가 잡았다. 온 가족이 어려움 속에서도 나의 꿈을 끌어주고 응원해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다. - P44

구텐탁. 이히 하이세 흥민 손. 이히 프로이에 미히 디히 켄넨출레르넨. - P45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죽어라 파는 가풍 - P46

생전 처음 만나는 독일어는 황당한 녀석이었다. 단어마다 성별을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는 사실부터 충격적이었다. - P46

제도권에서 한 번 밀리면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 P46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면 처음부터 가지도 않는다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 - P46

"민아. 너는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걸 명심해. 네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유럽에 진짜 갔다고 만족하면 안 돼. 유럽 진출, 프리미어리그라는 꿈이 있잖니. 지금 너는 지금까지 꿈꾸던 곳의 옆 동네까지만 일단 간 거야. 거기서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면 정말 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 P49

도공이 단 한 개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수많은 도자기를 빚고 깨기를 반복해야 한단다. 아버지는 나라는 도자기를 빚기 위해서 아무런 대가 없이 7년 세월을 보냈다. 내가 여기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엄청난 불효일 수밖에 없다. - P50

어릴 때부터 나는 유럽에서 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꿈을 키웠다. 유럽에 가기만 하면 자신 있게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정작 그런 바람이 이뤄진 날, 처음 자려고 누웠는데 흥분되기는커녕 걱정부터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침대에 머리를 파묻고 눈을 감았지만 쏟아지는 걱정에 잠을 설쳤다. - P50

일상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라운드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 P60

해당 국가의 언어를 최대한 빨리 습득해야 한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면 도움이 되지만 최고의 의사소통 방법은 역시 그 나라 말이다. 습득 과정은 쉽지 않다. 그걸 극복해야만 한다. 살아 보니 그랬다. - P60

독어는 어려웠다. 속성 과외로 얻은 일말의 자신감은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현지 독일어 앞에서 깨끗이 녹아 내렸다. 손짓 발짓으로라도 의사소통하려고 애썼다. - P61

어렵게 잡은 기회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해야 한다는 절박함 - P61

동료들의 독일어를 빨리 알아듣고 싶어서 선택한 방법은 ‘다짜고짜 들이대기‘였다. - P62

클럽하우스에 들어갈 때마다 큰 목소리로 ‘구텐 모르겐!" 이라고 외쳤다. 처음엔 당연히 창피했다. 그 다음에 돌아오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으니까. 한국이나 독일이나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 P62

학교 수업에서 새로 배운 표현을 그날 훈련 중에 무조건 써먹었다. - P62

독일 아이들은 뜬금없는 들이대기에 "너 그 말 어디서 배웠어?"라며 재미있어 했다. 덕분에 한마디라도 더 말을 섞을수 있었다. 내가 잘못 말하면 고쳐 주기도 했다. 그렇게 독일 친구들과 직접 주고받은 단어나 문장은 신기하게 저절로 외워졌다. - P62

나는 내가 뛰는 팀이 지는 꼴을 못 본다. 눈물이 많은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어렸을때부터 뭔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울음이 터졌다. 슬퍼서 운다기보다 그냥 눈물이 나온다. - P62

누가 봐도 쉽게 알 정도로 아이들은 내게 패스를 주지 않았다. 인종 차별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아이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텃세였을 것이다. - P63

연습 경기 중에도 나는 패스를 받지 못해 혼자 뛰다가 끝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가서 볼을 빼앗아 오기로 결심했다. 안 주면 내가 직접 챙길 수밖에 없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대가 볼을 잡을 때마다 과감하게 달려들었다. 남들 눈에는 이런 모습이 ‘투지 넘치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 P64

경기에서 득점도 조금씩 쌓여 가다 보니까 독일 친구들도 천천히 내게 마음과 패스를 열어 줬다. 내가 좋은 위치로 파고들 때마다 패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 P64

1년 연수 기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P64

기량의 종합 점수를 중시하는 한국 축구와 달리 유럽에서는 개성을 중시한다. 차별화된 무기가 하나만 있어도 잠재력으로 평가받기가 수월하다. 내게는 슈팅 능력이 그런 무기였다. - P66

유럽에서 뛴다는 판타지의 실사판은 늘 배고픈 일상이었다. - P69

내가 힘든 티를 낼 때마다 아버지는 "성공은 선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인생을 투자해야 10년, 20년 후에 결과를 거둘 수 있다고. - P69

게으름이나 꾀병을 위한 틈은 없었다. 아버지는 말만 하고 뒷짐 지는 타입의 지도자가 아니다. 모든 근력 운동을 나와 똑같이 하셨다. 심지어 나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들 때도 있었다. - P70

나를 위해서 한국에서 날아온 아버지가 눈앞에서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내가 게을러질 수는 없었다. - P70

나는 아버지께 감사할 뿐이었다. 그때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혼자 버티기에는 함부르크 유소년 생활이 너무 외롭고 배고프고 힘들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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