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좌선坐禪‘ 에 관한 얘기가 잠깐 나왔었는데, 오늘은 이에 관한 얘기가 이어진다. 첫 문장부터 뭔가 강렬한(?) 깨달음이 느껴졌다.

뒤이어지는 글에서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문장은 ‘밖에서 구하지 말고 안에서 구하라‘는 말이었다. 또한 이를 위해 ‘쳐다보지 말고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말도 굉장히 와닿았다. 어떤 진리나 깨달음이라는 것이 이미 내 안에 다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자신이 아닌 밖에서 그것들을 찾아다니며 방황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었다.

이러한 저자의 의견을 보면서 나 자신도 그러지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고, 어쩌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물론 외부의 영향을 받기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되돌아보니 종교에서의 어떤 가르침이 인간에게 삶의 지혜를 준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종교와 관련하여 신이 있네 없네 하는 유신론이나 무신론 같은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이 책의 독자인 내가 위에서 깨달은 것처럼 삶의 지혜를 배우는 도구로 종교를 대해보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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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이 나왔는데, 저자는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것, 예를 들면 마음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문장 중 하나는 ‘물질이 마음의 그림자‘(p.92)라는 말이었다. 독자인 나는 이 말을 마음이 있으면 물질이 따라가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이해했는데, 다시 한 번 곱씹어 생각해보니 단순해보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간혹 마음은 있는데 내가 가진 물질이 그 마음만큼 따라와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일단은 마음을 열고 상대방에게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할 때 그 관계가 조금이나마 좋은 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추가로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를 생각하다보니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단순히 자신만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그 마음을 부족함없이 나누기 위한 도구로써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오늘 읽은 부분에 나온 나눔같은 것들이 많아진다면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토피아를 꿈꿔본다. 비록 현실은 녹록친 않지만 말이다.

"소수레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수레에 채찍질을 해야겠느냐, 아니면 소를 몰아야겠느냐? 선禪은 앉거나 눕는 것과 상관이 없는 것이며,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부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집착이 없는 것, 그리하여 취하고 버릴 게 없는 것이 진짜 선禪이다." - P75

좌선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는 좌선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좌선의 태도, 특히 그 마음가짐의 잘못을 지적한 것입니다. 마음을 안정시키기보다는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 P75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서산 대사는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자기 성품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바르지 못한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버리는 것이나 찾는 것이나 다 같이 더럽히는 일입니다. 그렇게 서산 대사는 인위적인 행위를 물리쳤습니다. 바로 무심입니다. - P76

원래 선은 좌선으로써 행동의 근본을 삼지만, 좌선뿐 아니라 일상의 기거동작起居動作마다 삼매의 정신으로 순화하고 통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 P77

좌선은 깨달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좌선 그 자체가 부처나 조사의 살아 있는 모습, 깨어 있는 모습이기에 하는 것입니다. - P77

"그대들은 입버릇처럼 도를 닦아 진리를 깨닫는다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진리를 깨닫고 어떤 도를 닦는다고 하는가? 그대들의 지금 행동에 무엇이 모자라 또다시 깁고 보태겠다는 것인가?" - P77

말에 팔리지 말고 말 뒤에 숨은 뜻을 읽어야 합니다. 임제선사의 출발점은 본래청정本來淸靜, 즉 사람은 본래 저마다 자기 특성을 지닌 온전한 존재임을 전제한 데에 있습니다.
본래란 소급된 시간이 아니라 ‘지금 당장‘을 의미합니다. - P77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일이 없으면 그것이 곧 귀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일이 없다는 것이빈둥거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P77

"진정견해眞正見解. 그대가 바른 견해, 즉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를 얻고 싶거든 타인으로부터 미혹을 입지 말라.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은 바로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라. 그래야만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하리라." - P78

선의 세계에서는 평상심平常心을 귀하게 여깁니다. 평상심이 바로 도道입니다. 신보다는 사람을, 신기한 것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성인聖人보다는 무사인無事人을 귀하게 여기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일 없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한가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입니다. - P78

부처나 조사, 전통이나 스승을 최고 가치로 삼게 되면 거기에 얽매이게 됩니다. 임제 선사는 그것을 단호히 거부한 것 입니다. 이때 거부한다는 것은 극복한다는 뜻입니다. - P78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새로운 가치 창조를 방해합니다. 진정한 종교인은 종교 그 자체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의 창조력이 살아납니다. 선이라는 것은 창조를 충실히 존중하면서 모방을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큰 의미를 찾습니다. - P79

생각이 존재를 얽어매지 못한 것 - P79

임제 선사가 주장한 무위진인無位眞人이란, 범부도 성인도 중생도 부처도 소용없는 절대 자유의 주체를 말한 것입니다. 곧 자주적인 인간이기를 희망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임제, 그는 가장 종교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79

초기 인도의 불교가 인간 부정으로부터 출발한 것과 대조적으로 중국의 선은 현실의 인간을 긍정합니다. - P79

"그대들은 잘못 알지 말라. 나는 그대들이 경전이나 주석서를 이해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대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폭포수와 같은 말재주를 가졌더라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로지 그대들의 진정한 견해, 곧 깨어 있는 정신만을 대단하게 여길 뿐이다." - P79

설명을 통해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살아있는 진리를 자기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라는 말입니다. 밖에서 구하지 말고 안에서 구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려면 쳐다보지 말고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채우려고 하지 말고 텅 비워야 합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직시하십시오. - P80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부처를 찾으라. 부처란 곧 이 마음인데, 어찌 먼 곳에서 찾으려 하는가? - P80

육신은 허망하여 생멸이 있지만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 P80

요즘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자기 마음이 참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자기 성품이 참법인 줄 알지 못한다. 멀리 지나간 성인들에게서만 법을 구하려 하고, 부처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은 살피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 알면 끝없는 법문과 한량없는 진리를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 P80

선문답은 지식과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지혜의 계발입니다. - P81

"아무리 찾아보아도 마음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없는 것을 어찌 찾으려 했느냐? 찾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찌 네 마음이겠느냐?" - P81

"그대는 어디 있는고?" - P82

"밖에서 찾지 말라." - P82

질문은 지성知性으로 전개되는데, 답은 지성이 아니라 체험體驗이어야 합니다. 지知를 바탕으로 한 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을 일으키기 때문에 궁극에 이를 수 없습니다. - P82

질문을 멈추어야 비로소 해답이 나옵니다. 침묵을 지켜야 답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답을 얻으려면 침묵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처럼 어지러운 세상, 시끄러운 소음에 묻혀서는 답을 얻기 힘듭니다. 침묵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깊은 무게를 지니며, 그 무게 속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답이 담겨 있습니다. - P82

선문답은 상대가 설정한 전제 조건을 거부하고 절대 무전제의 경지로 몰고 갑니다. 그것은 대개 일문일답으로 그칩니다. 그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기 때문이지요. - P82

"무엇이 해탈, 곧 자유입니까?"
"누가 너를 묶어 놓았느냐?"
"어떤 곳이 정토, 곧 청정한 세계입니까?"
"누가 너를 더럽혔느냐?"
이처럼 선은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인 전개를 거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에게서 나온 의문에 대한 답은 자기 자신 안에서 찾으라고 합니다. - P83

답은 이미 질문 속에 있습니다. 자기를 잊어버릴 때 모든 것은 비로소 진정한 자기가 됩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건 부분인 자기가 아니라 전체인 자기 안에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 P83

꽃은 묵묵히 피고 묵묵히 집니다. 다시 가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때 그곳에 모든 것을 내맡깁니다. 그것은 한 송이꽃의 소리요. 한 가지 꽃의 모습.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기쁨이 후회 없이 거기서 빛나고 있습니다. - P83

행복의 척도를 소유에 두지 마십시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질 것인지를 고민하십시오. - P84

아낀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일입니다. - P85

거대한 우주의 섭리를 앞에 두고 생각해 보면, 인간은 모두 별개의 존재이면서 또 한 족속입니다. - P87

어떤 한 개인의 잘못은 인간 전체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87

미국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풍요로운 감옥‘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감옥에는 텔레비전 수상기와 오디오가 놓여 있습니다. 냉장고와 세탁기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거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이 감옥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인간이고,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런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 서야 합니다. - P87

우리 앞에는 항상 평탄한 길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은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인간의 길이고 정상에 이르는 길입니다. 내리막길은 쉽고 편하지만 그 길은 짐승의 길이고 구렁으로 떨어지는 길입니다. - P88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눈앞의 일에만 팔리지 말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선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헤아려야 합니다. - P88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자기 생애의 전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헤아린다면 인간으로서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없는 것입니다. - P88

요즘 우리 사회의 병리病理를 한마디로 진단한다면,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탐욕과, 남을 미워하는 증오와, 전체를 망각한 무지에 있습니다. - P88

탐욕과 증오와 무지는 그 자체가 독성을 지니고 있어서 주위에 해악을 끼칩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독성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탐욕은 베풀고 나누는 일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고, 증오는 넓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지는 차디찬 지식이 아닌 따뜻하고 밝은 지혜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암담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이런 극복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 P89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이것이 우리 시대에, 우리가 받은 삶의 과제라고 생각한다면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도 동시에 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89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람답게, 떳떳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대한 각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각성은결국 존재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각성이 앞선 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열립니다. - P89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세상을 내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내가 하나를 이룰 수 없는 겁니다. 각성을 해야만 비로소 마음이 열리는 거예요. 또한 마음이 열려야만 평온과 안정을 이룰 수 있고, 세상과 내가 하나를 이룰 수 있습니다. - P90

세상과 내가 하나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세요. 자신의 안에 들어 있는 얼굴이 온전히 드러날 때까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가 귓속의 귀에 닿을 때까지 간절하게 물으세요.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들어 있습니다. 묻지 않고는 해답을 이끌어 낼 수 없어요. "나는 누구인가?" 거듭거듭 물으세요. - P90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흔히 ‘무사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무사하다는 것은 속세의 의미로는 아무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만, 불가에서는 ‘덧없다‘ 이런 의미로도 씁니다. - P90

무엇이 덧없습니까? 거죽이 덧없는 것입니다. 젊어서 생생한 피부도 언젠가는 늙어 쭈글쭈글해집니다. 튼튼하던 몸도차츰 약해집니다. 반드시 변한다는 소리예요.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고, 항상 같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세월의 풍상에 삭아서 시들고 허물어져 갑니다. 그게 우주의 실상이고 근본 원리입니다. 그래서 서글프다고요? 아닙니다. 그래서 편안한 것입니다. - P90

만약 이 세상이 잔뜩 굳어 있어서 변함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숨 막혀요. 변하기 때문에 병든 사람이 건강을 되찾을 수도 있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오만한 사람이 겸손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변화가 있어야 어두운 면이 밝아질 수 있습니다. - P91

문제는 어떻게 변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예요. 거죽은 늘 변하지만 중심은 늘 한결같습니다. 거죽에 살지 않고 중심에사는 사람은 어떤 세월 속에서도 시들거나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원초적인 물음을 통해서 늘 중심에 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각성을 촉구해야 합니다. - P91

변화를 이끄는 힘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나눔입니다. 나눠 가질 줄 알아야 돼요. 원천적으로 내 것이란 없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거 없지 않습니까? 살 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간혹 부모를 잘 만난 덕으로, 혹은 사회의 도움을 받은 덕으로 잠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잠시 관리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끝내는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게 우주의 질서입니다. - P91

나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 생각해요. 아닙니다. 우선 마음을 나누어야 해요. 물질은 마음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면 같이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겹겹으로 닫혀 있으면 나눌 수가 없습니다. 나눔으로써 바람직한 인간관계가 형성돼요.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것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관계가 또한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마음을 여는 일은 나누는 일이고, 나누기 위해서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다 그렇게 순환 고리처럼 돌고 도는 것입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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