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복신앙적인 맹목적인 기도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 책에 나오는 불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나 천주교, 이슬람교 등을 비롯한 어떤 종교를 불문하고 자신의 인생을 건지는 것은 자기자신일 뿐이지 단순히 기도만 한다고 자기 인생이 건져지는 것은 아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기도라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어떤 행위에 더해 올려지는 토핑(?) 같은게 아닐까 싶다. 뭔가 완성도를 조금 더 높이기 위한 정도의 것으로 보아야지 기도만 한다고 자기가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질 거 같았으면 아마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신을 붙잡고 다 기도했을 것이다. 물론 기도라는 것의 효능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게 멘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일정부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멘탈이라는 것도 기본적인 실력이 바탕이 된 상태에서 얹어져야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지 아무런 실력이나 바탕도 없이 멘탈만 강하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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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부처님과 같은 공덕을 이루기 위한 열 가지 행원 중 아홉번째 행원에 해당하는 항순중생恒順衆生 이라는 파트의 내용에 눈길이 꽃혔다. 여기 나온 내용 중에 부자란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나누는 사람입니다.(p.67) 라는 내용이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주는데 익숙하기보다는 무언가를 받는데 익숙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자는 상대적으로 희소하고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 원리를 진정 마음으로 깨치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만이 부자가 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지 않나 싶다.

여기서 문득 든 생각은 주는 것에 있어서 단순히 어떤 금전적인 것만을 주는 것에만 국한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돈이 많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비금전적인 것, 예를 들면 꼭 돈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지고는 있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어떤 물건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든가 하는 것도 그 행위 속에서 비움이라는 가치가 실현됨과 동시에 다른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어떤 새로운 채움이 생겨나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이러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과정에서 싹트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생시켜서 우리 사회를 보다 따뜻하고 굳건하게 만드는데 이바지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불교와 관련된 책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보는데 읽으면서 불교의 가르침이나 깨달음이 이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한 줄기 빛 또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슨 신이 있네 없네 뭐 이런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어떤 종교든 간에 그 속에 담겨있는 어떤 가르침이나 교훈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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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좌선坐禪‘ 이라는 것에 관한 얘기가 잠깐 소개되는데, 이는 불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번 포스팅에서 다뤄보겠다.

진정한 불심 없이 기도만 한다고 무엇이 이루어집니까? 중생 스스로가 자신을 건지는 것이지,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 P60

지계持戒란 계를 받은 사람이 계법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청정한 생활 규범을 지키는 데에는 파계가 뒤따르기도 하지만 참회를 계기로 오히려 수행을 심화할 수 있습니다. 참회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참다운 종교인에는 이런 정형이 많습니다. - P61

사람은 항상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워지려면 참회하고 발원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허물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그릇된 생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허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허물을 고쳐서 새로워져야 참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 P61

"죄는 자성自性이 없어 한 생각을 따라 일어난다. 한 생각이 사라지면 죄도 없어진다. 죄도 없고 생각도 쉬어 이 둘이 함께 공하면, 이를 가리켜 진짜 참회라 한다." - P61

다섯째 행원은 수희공덕隨喜功德입니다. 곧 남의 공덕을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 P61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 인색하고 옹졸합니다. 누가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생각입니다. - P61

시기와 질투는 일종의 열등감입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지요. 다 부질없는 번뇌입니다. 번뇌에 빠지니 내 마음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 P61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기쁨과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 P62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남의 흉이나 보는 것은 스스로 허물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참회하고 발원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 P62

자기 세계가 없는 사람, 마음이 불안하고 정서가 불안한 사람이 시기와 질투에 빠집니다. - P62

발보리심發菩리心, 불도의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십시오.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십시오. 나 혼자만이 아닌 전체를 생각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한 뿌리에서 자라고 나뉜 가지임을 기억하십시오. 한 나무는 같은 바람에 따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 P62

여섯째 행원은 청전법륜請轉法輪, 곧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 P63

요즘 우리들은 자기 말만 하려고 들지 남의 말을 들으려고하지 않습니다. 본시 듣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들을 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의사소통이 단절된 이유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듣지 않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의 말을 들으려면 그만한 정성과 인내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 P63

다들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어진 것도 한 원인일 테지요. 오늘날 가정이 건조해져 가는 이유는 대화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공통적인 지적 관심사가 없습니다. - P63

톨스토이의 기도문에는 "나의 내부에 있는 존재여, 나를 도와주소서. 남을 대할 때 그의 내부에서 내 자신을 발견할 수있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남의 내부에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대개우리의 마음에는 강한 자의식 덩어리가 있어 남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못합니다. 제대로 듣고 배우려면 공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명할 수 있으려면 마음속 덩어리를 버려야 합니다. 빈 마음이 필요합니다.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습니다. - P64

"아주 작은 미미한 것에도 수많은 부처님 세계가 있다. 그 낱낱의 세계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있다. 그때 내가 몸과 말과 뜻의 갖가지 방편으로 설법해 주시기를 간청한다." - P64

일곱째 행원은 청불주세請佛住世, 곧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 P64

진정한 스승을 청하는 말씀입니다. 마음으로 존경할 수 있는 스승과 함께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누구와 함께할수 있다는 것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인간이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P64

그 ‘누군가‘가 꼭 위대한 인물일 필요는 없습니다. 내 부모를 모시는 것도 스승을 모시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 모시는 일은 지금과 같은 핵가족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송강 정철도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떠나신 후에는 애달픈 것입니다.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효일 것입니다. - P65

여덟째 행원은 상수불학常隨佛學, 늘 부처님을 본받아 배우는 것입니다. - P65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가르침이 있는 까닭은 또 무엇입니까? 가르침만 있고 배움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과 같습니다. 길을 닦아 놓았는데 왜 가지 않습니까?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은 필요 없는 것처럼, 배우지 않으면 가르침 역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 P65

옛 성인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배움으로써 우리는 앞날의 밝은 지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의 자취에서 많은 지혜와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불자들은 석가모니의 생애와 가르침을 환히 알아야 합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시시한 잡지는 거르지 않고 보면서 성인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 P65

출가인과 재가인을 막론하고 불자이면서도 불교 교리에 문맹인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방식의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막연한 종교관에 휘말려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것입니다. - P66

많이 알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바르게 행하는 일이 소중합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바깥만 쳐다보려 하지 말고 안을 들여다보는 마음 자세를 익혀야 합니다. - P66

뭐든지 가득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텅텅 비우십시오. 그래야 새로운 눈이 뜨입니다. 그리고 홀로 있는 시간을 준비하십시오. 몸만 덩그러니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고독을 음미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비우는 일입니다. - P66

많은 사람이 시간을 귀하게 쓸 줄 모릅니다. 목적 없는 생활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지 오는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순간이 지금 이렇게 소멸해 가고있는데 무섭지 않습니까? 이 소멸에서 벗어나는 것은 배움밖에 없습니다. - P66

진리를 담은 사상이나 경전이 우리를 형성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렇다고 새로운 샘물만을 끝없이 계속 찾아다니는 것은 정신적으로 깊이 탐구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가장 맑은 샘물을 하나 정하여 그곳에서 날마다 새로운 지혜를 길어 마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 P66

"부처님께서는 처음 발심한 때로부터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으셨다. 수없이 몸과 목숨을 보시하고, 경전 쓰기를 수미산만큼 하셨다." - P67

아홉째 행원은 항순중생恒順衆生입니다. 늘 이웃의 뜻에 따르라는 가르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 P67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이웃과의 반목과 사소한 이해관계 때문에 얼마나 옹졸하고 꽉 막힌 행동을 하게 됩니까. - P67

부자란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나누는 사람입니다. - P67

줄수록 열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받는 것은 큰 부담이 따르지만, 주는 것은 안과 밖이 모두 홀가분한 일입니다. - P67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은 남을 해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곤궁함에 손을 내밀지 않으면 그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타인의 도움 속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 P67

"모든 이웃, 곧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섬기고 공양하기를 마치 부모와 같이 하라. 스승과 같이 받들며 성자나 부처님과 다름없이 받들라. 병든 이에게는 의원이 되어 주고, 길 잃은 이에게는 바른 길을 일러 주라." - P68

"이웃의 뜻에 따르는 것은 곧 부처님께 순종하고 공양하는 일이며, 이웃들을 존중하여 받드는 것은 곧 부처님을 존중하여 받드는 일이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은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 P68

"이웃으로 큰 자비심을 일으키고, 자비심으로 보리심을 발하고, 보리심으로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다. 나무뿌리가 수분을 받으면 가지와 잎과 열매가 무성해지듯이, 생사 광야의 보리수도 이와 같다. 모든 이웃은 뿌리가 되고, 부처님이나 보살은 꽃과 열매가 된다. 자비의 물로 이웃을 이롭게 하면 지혜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그러므로 이웃이 없다면 보살은 끝내 깨달음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 P68

열째 행원은 보개회향普皆廻向입니다. 모두 다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 P68

"처음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부터 이웃의 뜻에 따르기까지.
그 모든 공덕을 온 법계에 있는 모든 이웃에게 돌려보내라. 이웃들이 항상 평안하고 즐겁고 병고가 없게 하라. 나쁜 일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착한 일은 모두 성취된다. 온갖 나쁜 길의 문은 닫히고 인간이나 천상이나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은 활짝 열린다. 이웃들이 저지른 나쁜 업으로 인해 받게 되는 온갖 고통의 과보를 대신 받으라. 그 이웃들이 모두다 해탈을 얻고 마침내는 더없는 보리를 성취할 수 있도록 힘쓰라." - P69

"깨닫지 못한 모든 중생에게 무거운 괴로움이 있다면 내가대신 받고, 깨닫지 못한 중생이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깨달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보살의 미덕이고 전체인 자기를 드러내는 소식입니다. - P69

삼재를 면하는 법이나 지옥의 고통을 피하는 법 - P69

첫째, 모든 이웃에게 예배하고 또 그들을 공경하십시오.
둘째, 이웃의 덕행을 찬탄하십시오.
셋째, 여러 가지로 공양하십시오.
넷째, 지은 허물을 참회하십시오.
다섯째, 남이 지은 공덕을 함께 기뻐하십시오.
여섯째, 설법을 청해서 들으십시오.
일곱째, 부모와 형제가 오래 살아 계시기를 바라십시오.
여덟째, 부처님을 본받아 배우십시오.
아홉째, 이웃의 뜻에 따르십시오.
열째, 내가 지은 공덕을 모두 이웃에게 돌려보내십시오. - P70

만약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큰 서원을 따라 나아가면, 모든 이웃의 기틀을 성숙시키고, 더없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며, 수행과 원력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 P70

어떤 사람이 깊은 신심으로 이 열 가지 원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고 베껴 쓴다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죄업이라도 이내 소멸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받은 몸과 마음의 병이며, 갖가지 괴로움과 사소한 악업까지도 모두 소멸할 것이다. - P70

보현보살의 원을 몸소 행하는 사람은, 어떤 세상에 있더라도 달이 구름에서 벗어나듯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부처님과 보살이 모두 칭찬하고, 천상과 인간이 모두 예배하고 공경할 것이다. - P71

맛있는 음식을 대할 때 가족이나 친구를 생각하십시오. 좋은 책을 읽었을 때도 그렇게 하세요.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은 기쁨입니다. 인연이고 또 맺음입니다. - P71

삶은 항상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선이 없는 삶은 침체됩니다. 종교는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이웃과 세상에 도달하는 데서 그 뜻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날마다대하고 마주치는 구체적인 이웃이 나를 깨우쳐 주고 나를 형성시키는 고마운 선지식인 줄 알아야 합니다. - P71

사람은 본질적으로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웃을 통해서 만남과 눈뜸과 새로운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오늘부터 우리는 보현보살의 화신입니다. - P71

질문을 멈추어야 비로소 해답이 나옵니다.
침묵을 지켜야 답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 P72

"앉아 있는다고 해서 그것을 선禪이라 할 수 없습니다. 현실속에 살면서도 몸과 마음이 동요됨이 없는 것을 좌선이라 합니다. 생각이 쉬는 듯한 무심한 경지에 있으면서도, 온갖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을 좌선이라 합니다. 마음이 고요에 빠지지 않고 또 밖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을 좌선이라 합니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을 좌선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앉을 수 있을 때, 그것이 부처님이 인정하시는 좌선일 것입니다." - P74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는 "모든 대상에 대해 생각이 동요됨이 없는 것을 좌坐라 하고, 본성을 보아 흩어지지 않음을 선禪이라 한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본성을 본다‘ 는 것은 지혜의 활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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