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희의 아들에 따르면 이 거장은 수시간 동안 명상을 한 다음 손을 씻고, 팔을 휘젓듯 단번에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려냈다고 한다.
곽희는 풍경화가 "일상 세계의 굴레와 족쇄"로부터 "두루미의 비행과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우리의 가까운 벗이 되는" 곳으로 도피할 수 있게 한다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반드시 글자 그대로 자연 속이라고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그림 안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 P113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낸다. 뚜렷한 특징들을 찾는 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 P114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 P114
‘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 P115
만약 무언가가 웃기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지 확인하면 된다. 어떤 그림이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면 된다. - P116
대개 우리는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위협적이고 산만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주위 자극들은 무디게 만들거나 아예 무시한다. - P117
모네의 그림은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의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들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산들바람이 중요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중요해진다. 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중요해지고, 그렇게 그 순간의 완전함, 심지어 거룩함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 P117
피를 차갑게 식히면서 동시에 끓어오르게도 하는 데는 예술품 절도 사건만 한 것이 없다. - P134
‘두려운 존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여신 네이트Neith (고대 이집트 신화속 전쟁과 수호의 여신이자 저승의 여주인인 네이트를 조각한 입상) - P136
"내 월급도 중세 수준이다. 중세 유물 전시로 내 중세 월급을 벌어들인다." - P137
혼자였다가 섞여들었다가, 혼자였다가 섞여들었다가 하는도시인의 호흡. - P140
화려한 퍼레이드에서 관객의 자리를 지킬 뿐이다. 공원 벤치에 한두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것과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과 고요한 공간을 공유하며 매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손에 든 은쟁반 말고는 눈에 띄지 않도록 존재감을 숨기는 집사들에겐 익숙한 일일 테지만. - P140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람 구경도 할수록 는다. - P140
오래되고 연약한 예술에 관한 다양한 질문들이 "만지지 마세요" 라는 공통의 대답으로 귀결된다는 사실 - P142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 P143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그들의 삶과 꿈은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 P145
보기 드문 사람이다. 아는 척을 하거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충돌을 반기는 사람. - P146
사람들은 화려한 옷차림의 바빠 보이는 사람들한테는 취하지 않을 태도로 경비원들을 대한다. - P147
유니폼은 우리를 부자에게든 서민에게든 누구에게라도 공감해줄 것 같은 허름한 신사 정도로 보이게 한다. - P147
계획이 뒤죽박죽된 채로 메트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말이 되지, 보는 것마다 성큼성큼 받아들이는 유식한 사람들이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 P148
당황한 사람들은 놀라운 것들을 보고 놀란다. 숨이 닿을 거리에 피카소 작품이 걸려 있다거나 고대 이집트 신전 하나가 통째로 뉴욕에 옮겨져 있는 모습에 놀란다. - P148
폴 스트랜드Paul Strand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영화 제작자. 대표적인 모더니즘 사조의 작가로서 20세기 사진이 예술적인 잠재성을 인정받는 데 그의 작품 세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 P150
에드워드 스타이컨Edward Steichen (미국의 사진작가, 화가, 큐레이터. 패션 사진의 대부이자 제2차 세계대전 등 당대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로도 유명하다. 사진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 P150
플랫아이언 빌딩(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삼각형 모양의 22층 마천루 원래 이름은 풀러 Fuller 빌딩이지만 건물 모양이 다리미 iron처럼 생겼다고해서 플랫아이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옮긴이) - P150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itu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모던 아트의 수호자, 20세기 초반에 뉴욕에서 다수의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유럽의 아방가르드 사조를 선보였으며 사진이 예술적인 매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 P150
조지아 오키프(모더니즘 사조의 미국 화가. 대표작으로는 꽃을 접사하듯 크게 확대해 그린 정물화 시리즈, 뉴멕시코의 자연을 그린 풍경화 시리즈, 뉴욕의 마천루 시리즈가 있다) - P150
사진에서 눈을 돌려 전시실을 둘러보니 문득 웃음이 터질 것같다. 전 세계에서 모인 수십 명의 살아 숨 쉬는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데 하나같이 벽에 걸린 무색의 움직임 없는 인물 사진들을 보느라 옆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현실의 사람들은 흔해 빠진 대상들로 간주되는 듯하다. 정말이지 아무 때나 볼수 있는 대상 아닌가. 우리의 삶을 순식간에 지나쳐 영원히 사라져버릴 낯선 이들에게 왜 구태여 관심을 쏟겠는가. - P151
(옛말에서 성스럽다Sacred는 단어의 의미는 ‘분리되어 있는‘이었다) - P152
때때로 우리에게는 멈춰 서서 무언가를 흠모할 명분이 필요하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그것을 허락한다. - P152
손 틈새로 금세 빠져나가버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 P152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 P152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 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버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 P152
나는 눈을 관찰 도구로 삼기위해 부릅뜬다. 눈이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이런 일에 그다저 능숙하지 않다는 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 P152
나는 사람들이 입고 돌아다니는 옷과,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손을 잡거나 혹은 잡지 않는 몸짓에서,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하고, 내 눈을 마주하거나 피하고, 얼굴과 자세에서 기쁨이나 조급함, 지루함이나 산만함을 보이는 방식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내가 보는 대부분의 것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저 이 장면에 깃든 눈부심과 반짝임을 바라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 P153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 P153
입원해 있는 톰을 방문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던 때를 기억한다. 누구라도 심술을 부리거나, 실수로 부딪힌 다른 승객에게 쏘아붙이면 그게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고 무지해 보였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는데도 말이다. - P153
오늘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 P153
베라자노 다리(브루클린과 스태튼섬을 잇는 현수교) - P157
수도승들이 혼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 감옥처럼 작은 방이라고 추측했지만 사실 클로이스터, 즉 회랑은 수도원 가운데에 있는 야외 공간이었다. 속세로부터는 떨어져 있지만 태양과 달과 별과는 닿아 있는 곳. - P160
쿠사 수도원(오늘날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피레네산맥의 카니구산 기슭에 지어진 베네딕트회 수도원) - P160
‘거대하다‘는 뜻의 ‘맘무차Mammucia‘ - P160
<메로드 제단화Mérode Altarpiece>(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수태 소식을 전하는 장면을 그린 세 폭제단화, 북부 유럽풍 회화를 일컫는 ‘플랑드르 회화‘의 대표작) - P162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 십자가(바다코끼리 상아를 조각해 만든 로마네스크풍 십자가, 영국 남동부의 도시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의 수도원에서 발견되어 그 이름을 얻었다) - P162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까지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농부 몇몇이 오후의 식사를 즐기는 모습 말이다. 배경 중간쯤 교회가 있고 그 뒤로 항구 그리고 황금빛 들판이 아스라한 지평선까지 굽이쳐 펼쳐진다. 화면 앞쪽에는 큰 낫으로 곡물을 거두는 남자들과 그것을 한데 묶느라 허리를 굽힌 여자가 보인다. 맨 앞쪽 구석에는 일을 하다가 배나무 아래에 앉아 식사를 하는 아홉 명의 농부들이 다소 희극적이면서도 애정을 담아 묘사되어 있다. - P164
브뤼헐의 이 명작을 바라보며 나는 가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흔한 광경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지었고 그들 중 대부분이 소작농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평생 노동을 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휴식을 취하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도 일상적이고 익숙한 광경을 묘사하기 위해 피터르 브뤼헐은 일부러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의 맨 앞자리를 이 성스러운 오합지졸들에게 내주었다. - P164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 P166
버디 홀리 (1950년대 중반 미국 로큰롤을 주도한 인물. 생전에 즐겨 착용한 나비형 뿔테 안경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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