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은 휴대폰 프리존이 되어야 한다. 서부시대 때 술집에 총을 맡기고 들어가듯이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식탁에 앉을때 휴대폰을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 P265
가급적이면 식탁은 유리 없이 원목 나무면 더 좋다. 유리는 차가워서 팔을 기대어 앉기가 어렵다. 차가운 유리 식탁은촉감이 별로여서 오랫동안 앉아 있게 되지 않는다. 앉아 있을 때에도 차가운 유리에 기대지 못하기 때문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앉게 된다. 그러면 마주앉은 사람과는 거리가 더 멀어진다. - P267
사람의 체온과 가장 비슷한 나무 재질로 만든 식탁을 두면 체류 시간이 더 길어지고 몸을 앞으로 기대어 가족 간의 거리가 더 좁아진다. 나무 식탁은 더 많은 시간 동안 친밀하게 가족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 P267
현대사회에서 자동차는 가장 경제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나만의 방이다. 또한 창문 밖 풍경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공간이다. 자동차의 선팅 유리는 프라이버시를 더 높이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선팅 유리는 커튼이다. - P270
공간이라는 것은 이동하는 속도에 따라 같은 공간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느 도시를 자동차를 타고 구경하느냐, 걸어서 구경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 P274
남대문교회는 주변의 고층 빌딩에 가려져 있어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공간이다. 여러분 주변에 이런 ‘등잔 밑‘ 공간을 찾아두면 좋다. 집은 작을지라도 이 도시 속에 그런 공간을 많이 아는 사람이 부자인 것이다. - P279
내 것은 내 것대로 쓰고, 숨겨진 주인 없는 공간도 내 것처럼 쓰는 것이 이 도시 속에서 부자로 사는 방법이다. - P279
예배당이나 서점 같은 조용한 공간이 좋은 이유는 내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이런 조용한 공간에서는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호수의 물처럼 마음을 물결 없이 잔잔하게 만들고 흙탕물을 가라앉히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세상에서 생각을 좀 정리해볼 수 있다. - P285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아무생각도 안 하고 멍 때리는 것이다. 머리를 비운 그 시간은 머릿속을 마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디프레그멘테이션을 하듯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P285
벽은 단순히 소통을 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안 좋은 요소를 차단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 P287
빗소리를 가장 크게 들을 수 있는 곳은 우산 속이다. 우산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자연과 우산이 함께 만들어내는 이중다. 우산이 비닐로 만들어졌는지 나일론 천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들리는 소리도 다르다. 같은 우산이라도 시간당 강수량에 따라서 만들어내는 음이 다르다. 우산 속 소리는 우산의 재료와 시간당 강수량이 만들어내는 이중주다. - P298
폭우가 내리면 빗소리에 다른 도심의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완벽한 ASMR이다. - P298
큰 나무가 띄엄띄엄 서로의 나뭇가지가 살짝 닿을 정도로 심어진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성숙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서 중력을 거슬러 수직으로 서서 자라는 건 사람과 나무뿐이다. 서로 간섭을 안 하면서도 너무 떨어져 있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다양한 나무들을 보고있으면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성숙한 사람들을 보는 듯하다. - P301
조용한 곳은 내가 존중받는 공간이다.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 있거나 기차 안에서 시끄럽게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사람이 기분 나쁜 건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껴져서다. 그들은 내가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를 준다. 그런 행동은 날 무시한다고 느끼게 한다. - P304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 이 정신없는 도시 속에서 시민들이 느리고 조용하게 쉴 수 있는 쉼터다. - P306
서점은 변화가 많은 자연이 줄어들고 있는 삭막한 도시에서 책이라는 다양하고 변화하는 콘텐츠로 자연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 P306
사람이 소득이 늘어나면 처음으로 예민해지는 부분이 청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1970~1980년대에는 카세트플레이어인 워크맨이나 마이마이가 인기였다. - P307
일인당국민소득이 더 올라가면 냄새에 민감해진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남자들이 향수를 쓰기 시작했다. 그다음 단계는 촉각이다. 그래서 지금은 만질 수 있는 애완동물 시장이 커진다. 우리나라는 이제 애완동물이라는 단어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다. 21세기에는 쓰다듬는 가전제품인 스마트폰이 나왔다. - P307
서점은 21세기 디지털 정보의 시대에 종이 인쇄라는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는 동시에 촉각의 공간이다. - P307
나에게 맞는 커피숍이나 동네 빵집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그곳이 여러분의 거실이기 때문이다. - P310
창가 스툴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과 거리를 구경하는 즐거움은 ‘내려다보는 권력‘에서 비롯된다. - P314
창가 스툴 자리는 혼자 가도 편히 앉을 수 있고, 둘이 가면 가깝게 옆에 앉을 수 있는 장점은 덤이다. - P315
폐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에 의해 모든 것이 지워져버리는 인생의 덧없음도 느끼지만, 무엇보다도 빈 공간 속에서 여러 가지 상상력이 날개를 펼친다. - P322
이어령 교수는 벽돌담과 돌담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벽돌담은 똑같이 생긴 벽돌로 만들어져 어느 벽돌 하나가 빠지면 대체 가능하나, 돌담은 돌들의 모양이 각기 달라서 하나가 빠지면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P324
성곽길에 올라가면 좋은 점은 옛 시절을 느낄 수도 있고 덤으로 서울시 전경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곽이 산 능선에 위치해서다. - P325
아파트에서 태어난 세대여, 익선동에 가서 골목길과 마당을 만나보라. 그러면 당신이 놓친 공간적 경험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같은 외부 공간이라도 넓은 아파트 정원과 공원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 P329
이탈리아 베니스가 특별한 이유는 단위면적당 골목길의 갈림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니스는 여러 번 가도 항상 새롭고 길을 잃는다.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공간 구성이 복잡하면 여러 가지 장면이 만들어진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넓은 공간이라고 느낀다. - P331
익선동은 한마디로 몸은 덜 피곤한데 엔터테인먼트는 더 되는 공간이다. - P331
익선동은 내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다채로운 공간 체험이 가능한 인터액티브한 장소다. - P333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쓴 《정신착란증의 뉴욕Delirious New York, 1978>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은 뉴욕이 엘리베이터 덕분에 고밀화된 도시가 됐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뉴욕의 카오스적 고밀도 도시 공간을 예찬하는 책이다. - P335
시장은 이 도시 속에서 후각이 가장 다양하게 자극받는 공간이다. 시장을 걸으면 다양한 냄새가 권투의 잽처럼 정신없이 좌우에서 때려댄다. 시장은 ‘냄새‘의 공간이다.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다양한 냄새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경험해보고 싶다면 지금 재래식 시장으로 가보기 바란다. 그 냄새가 내 감정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다. - P336
무기력하더라도 배는 고파오기 마련이다.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생동감과 생명력이 넘치는 오라 Aura를 시각, 청각, 후가, 미각, 촉각으로 느낀다면 비로소 잃어버린 욕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336
빛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려면 어두운 곳에 가야 하듯이 삶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려면 죽은 자들의 공간에 가야한다. 현충원에 가면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 P339
현대 도시의 문제 중 하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주변에 너무 없다는 점이다. - P339
삶에 대한 깊이를 더 느끼려면 죽음은 그림자처럼 따라와야 한다. 삶이 빛이라면 죽음은 그림자다. 그림자는 빛을 느끼게 해준다. 가끔씩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보는 것도 의미있는 삶을 위해 좋을 것이다. - P340
버려진 산업 시설은 또 하나의 유적지다. 버려진 수도시설이었던 선유도공원은 지금은 서울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 P341
선유도 공원은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시공간의 장소다. - P345
보통 공원에서 갈대숲 같은 공간은 범죄자들이 엄폐해 있다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시에서는 꺼리는 자연 요소다. 보스턴의 백베이펜스Back Bay Fens 공원은 이런 갈대숲이 많아 치안상 문제가 되곤했다. - P346
갈대숲의 또 다른 매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는 점이다. 바람이 불면 일렁이는 갈대는 마치 가을 들녘에나 나가야 볼 수 있는 바람의 풍경을 제공한다. - P348
보통 어느 사람이 그 도시에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은 도시의 도로망을 파악하면서부터라고 한다. - P349
뉴욕의 타임스퀘어가 특별한 이유는 브로드웨이와 격자형 그리드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한 삼거리여서다. 별마당 도서관도 쇼핑몰의 복도가 모여드는 교차점에 자리한다.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공간 구조다. - P351
쇼핑몰에서 유일하게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공간 - P351
별마당 도서관은 공짜로 앉아서 햇빛을 볼 수 있어 특별한 공간이다. 별마당 도서관은 코엑스몰의 타임스퀘어이자 센트럴파크다. - P353
숭고한 빛은 위에서부터 내려온다. 어느 공간을 성스럽고 영적으로 만들고 싶으면 자연 채광을 위에서부터 내려오게 한다. 대표적으로는 판테온 천장의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있고,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도 그렇다. - P355
위에서부터 떨어진다고 해도 형광등 불빛은 숭고하지않다. 위에서 떨어지는 인공조명은 ‘싸구려‘일 뿐이다. 흔히 이 같은 조명을 정육점 조명이라고 한다. - P355
위에서부터 오는 자연 채광의 대표적인 장소는 숲속 나뭇가지 사이로 떨지는 빛이다. 그래서 숲은 항상 멋지다. 심지어 비좁은 골목길이 좋아 보이는 이유도 골목길 위에서 햇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P355
옆자리에 누가 앉느나는 그 공간의 성격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다. 아무리 평범한 공간도 내 옆자리에 특별한 사람이 있으면 그 공간은 특별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내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 P356
오랜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는 비행기나 두 시간 정도 싫으나 좋으나 옆에 앉아 있어야 하는 극장 옆자리도 중요하다. 아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옆자리는 결혼식장 주례 앞에 서 있을 때 내 옆자리일 것이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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